2009년 3월호

미 외교협회(CFR)의 북한 급변사태 대비 보고서

“한국 육군 30% 감축계획은 유사시 북한 안정화의 걸림돌”

  • 하태원│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입력2009-03-10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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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말 미국 외교협회가 라운드테이블 토론회를 열면서 배포한 북한 급변 대비 보고서는 집단지도체제, 장성택의 후견인 역할 등 김정일 유고시 권력승계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살펴보면서 미국이 이 문제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 검토하고 있다. 특히 붕괴 이후 한국군이나 미군이 북한에 진입할 경우 최대 46만 규모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은 주목할 만하다.
    미 외교협회(CFR)의 북한 급변사태 대비 보고서

    1월28일 미 외교협회(CFR)가 발표한 ‘북한 급변 준비 (Preparing for Sudden Change in North Korea)’ 보고서.

    1990년대 중반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는 북한의 붕괴를 시간문제로 판단했다. 하지만 북한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고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북한이 보여준 질긴 생명력(resiliency)을 볼 때 체제가 쉽게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즈음의 대세다.

    하지만 지난해 8월경부터 김정일(67)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흘러나오면서 다시 한번 북한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전망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절대권력인 김 위원장의 유고(有故)는 북한의 지배구조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1월28일 미국 외교협회(CFR)는 ‘북한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대비’라는 보고서 출간을 계기로 워싱턴 사무소에서 라운드테이블 토론회를 개최했다. 보고서 작성자인 폴 스테어스 CFR 선임연구원과 ‘벼랑끝 협상’ 등의 저서를 펴낸 바 있는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이 주제발표자로 참석했다.

    스테어스 연구원은 김 위원장 유고를 대비하는 것은 늦출 수 없는 우선과제라고도 했다. 그는 “의학적으로 60세 이후 뇌졸중이 발생했을 경우 25% 정도는 1년 안에 사망하며, 5년 내에 사망할 확률은 50%를 넘는다”고 말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1994년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20년 이상 권력수업을 거친 뒤 넘겨받았지만 현재의 후계구도는 안개 속”이라며 “북한이 불안전하게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스나이더 연구원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이 중국에 대해 북한 급변사태 대비책을 공동마련하자고 제안했지만 중국이 거부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대비책은 주변국의 협조 속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테어스 연구원도 “북한 급변사태 대비는 공동 군사작전의 차원보다는 북한 내 권력의 순조로운 이양을 가능케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낫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스테어스 연구원과 조엘 위트 컬럼비아대 웨더헤드 동아시아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52쪽 분량의 보고서를 요약한 내용이다.

    1. 북한의 변화 예상 시나리오

    북한의 갑작스러운 변화 가능성은 여러 가지로 예상해볼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북한의 변화 시나리오는 리더십의 변화를 뜻하는 ‘위로부터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① 관리된 권력승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를 지명했다는 징후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는다. 적어도 고(故) 김일성 주석이 20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세습을 준비한 것과 같은 방식의 후계지명 방식은 취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현재의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권력승계절차에 돌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명시적이지는 않다.

    북한이 취해온 부자세습의 관례를 고려할 때 김정일 가문의 세 아들 중 한 명이 권력을 승계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장남인 김정남(38)의 경우 서출(2002년 사망한 성혜림의 아들-필자 주)이라는 한계가 있다. 차남인 정철(28)과 삼남인 정운(25)도 때때로 후계자 반열에 오른 것으로 언급됐다. 2004년 사망한 고영희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후계구도에 근접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많은 전문가는 이들이 나이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세 아들 중 한 명을 전면에 내세우되 장성택(63) 조선노동당 행정부장, 김정일의 개인비서이자 현재의 부인 또는 파트너로 알려진 김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후견인(caretaker) 역할을 하는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한다. 특히 김옥의 경우 현재 최측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김정일 위원장과의 개인적인 관계에만 의존하는 그의 파워는 결국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장성택의 경우 조직지도부 부부장, 행정부장 등을 역임하며 스스로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했고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라는 점, 군·당 주요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는 점 등이 인상적이다.

    관리된 권력승계 방식의 나머지 한 가지 가능성은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다.

    결론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를 지정한 상태에서 지도부가 바뀌는 ‘관리된 권력승계’의 경우에는 매끄러운 권력이양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재임하면서 1400명의 군 장성 중 1131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했고 주택, 교육, 개인 자동차, 고급양주 등 많은 복지혜택을 제공했다는 점도 군부가 현상타파보다는 현상유지를 택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②경쟁적 권력승계

    내부정보가 많지는 않지만 북한 내에도 개인적 경쟁관계에 놓인 인물들이나 파벌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경우 김 국방위원장의 유고 이후 권력승계는 대단히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권력투쟁이 장기간에 걸쳐 때로는 유혈사태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폭력적인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있다.

    권력투쟁의 과정은 권력승계를 노리는 개인들의 리더십이나 인적 네트워크, 조직력 등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밀리에 소유하고 있는 은행계좌의 접근권을 누가 차지하느냐 여부도 권력투쟁의 최종 승리에 이르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권력의 승계 여부는 물론 경쟁을 통해 차지한 권력을 평화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도 군부와 국가보위부의 지지 정도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시나리오에 따를 경우 북한에서 새로운 체제가 등장할 수 있지만, 김정일 가문으로부터 정통성을 끌어오는 형식을 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김정일 가문과의 깨끗한 절연을 통한 새로운 정책방향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내부적인 정치개혁이나 외부세계에 대한 개방을 추진할 수도 있다.

    ③권력승계 실패

    김정일 정권 이후 대다수의 지지와 정통성을 확보한 지도체제가 성립하지 못할 경우 북한이 과거 동유럽처럼 무정부상태의 혼란에 빠지는 ‘권력승계 실패’시나리오도 상정해볼 수 있다. 이때 북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은 동유럽에 비해 훨씬 심각한 인도주의적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주체사상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취약하고 외세의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는 물론 농업 생산 역시 인민을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유엔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75%의 주민들이 식량섭취량을 크게 줄이고 있고 절반에 가까운 주민들은 하루 세 끼가 아닌 두 끼로 연명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북한의 권력통제 상실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북한이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단계에 들어갈 경우 남한으로의 흡수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남한으로서는 급속한 흡수통일보다는 사전단계인 연방제 형태를 거쳐 질서 있는 통일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2. 도전과 딜레마

    관리된 권력승계가 이뤄질 경우 누가 권력을 잡든 간에 미국과 한국, 일본 등은 북한의 권력 교체기간에 새로운 지도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반면 중국은 새로운 북한의 지도부에 대해서도 기존에 중국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관계를 원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강화 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도 있다.

    경쟁적 권력승계가 이뤄질 경우 권력투쟁의 기간이 길어진다면 워싱턴으로서는 보다 개혁적이거나 외부세계에 대한 개방을 지향하는 정파를 지지할 수 있다. 또한 권력투쟁 과정에서 한 정파가 남한 정부에 대해 공식·비공식적인 지지요청을 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하게 돌아갈 수 있다. 남한으로서는 이 같은 요청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고,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또 다른 정파가 중국의 지지를 요청한다면 한중 관계가 급속히 경색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인민군이 연루된 국경에서의 유혈사태 역시 고민거리다. 권력투쟁에서 패한 군벌 중 일부가 집단적으로 투항하는 사태도 개연성이 높다. 특히 군대의 경우 대규모 이동이 가능한 수송수단과 연료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낮지 않다. 대규모 군 병력이 실제로는 투항할 의도를 갖고 이동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오해로 인한 전면적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식량배급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의 붕괴로 인한 대규모 탈북사태도 골칫거리다.

    대량살상무기(WMD)의 안전확보 및 북한 내 치안과 안정 유지는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개입 개연성을 높이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다. 주변국들은 북한 WMD의 무단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데 원칙적인 공감대를 갖고 있지만 누가 어떤 방식으로 북한의 WMD를 안전하게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이견이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북한 급변사태시 북한에 군을 주둔시키는 것보다는 병참지원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북한의 WMD 위협을 제거하는 데 있어서는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①안보와 안정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북한 내 치안과 안정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인구 1000명당 5~10명의 병력이 필요하다. 북한의 현재 인구가 2300만명인 것을 감안할 경우 11만5000~23만명의 군 병력을 한국과 미국 등이 충원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한 수만명의 경찰병력이 기본임무를 통해 군 병력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이 향후 10년간 육군 병력을 30%가량 감축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점은 유사시 북한 내 치안유지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북한군이나 치안 및 정보기관 출신자, 10만명에 이르는 특수군 출신자들이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 주둔에 대해 저항운동을 전개할 경우에는 치안 및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병력 수도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미 국방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저항운동 발생시 1000명당 20명의 주둔병력이 필요한 만큼, 북한에 최대 46만명의 치안 및 안정화 병력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현재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의 3배를넘는 규모로, 한국과 미군만으로는 이에 대응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②대량살상무기(WMD)

    북한 급변사태가 벌어질 경우, 미국으로선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함께 6~8개로 추정되는 핵무기 및 핵 물질, 4000t에 이르는 화학무기와 북한이 보유한 생물무기를 찾아내 안전을 확보하고 처분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WMD를 찾아내서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수천명의 병력과 최첨단 탐지장비를 구비한 기술진이 필요하다. 게다가 영변 핵 시설처럼 기존에 존재가 드러난 시설뿐 아니라 WMD 관련 의혹이 있는 모든 곳을 조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또한 중국 등 다른 주변국도 북한 WMD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이들 국가가 경쟁적으로 탐지 노력을 벌일 경우 중대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3. 미국의 정책제안

    미국 정부는 북한에서 정권교체를 추구하기보다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편이 낫다. 이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한 논의의 장은 북핵 6자회담이다. 북한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북한 정권을 강화하는 방향의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안정유지는 북한 내부에 대한 효과적인 통치가 가능한 선에서 그쳐야 한다.

    또한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일방적인 행동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북한의 변화를 관리하겠다는 한국의 바람과 리더십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고압적인 강요만큼 한국의 국민감정을 건드리는 일은 없다. 물론 이 같은 조언이 미국의 정책당국으로 하여금 지역 내부의 우려사항에 대해 침묵하거나 바람직한 정책추진을 위축시켜야 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은 민주적이고 비핵화를 추진하며 주변국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통일한국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을 한국 측에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급변이 한국과 미국이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도전이라는 사실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관련국과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체적인 정책으로는, 우선 대북정보능력을 강화하고 북한 측과 계속 접촉할 수 있는 창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북한 국내정치나 경제사정 등과 관련한 정보수집 능력과 정세파악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6자회담은 물론 별도의 채널을 통해 북한과의 접촉면을 늘려나가자면 6·25전쟁 당시 숨진 미군 유해 발굴사업 재개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 역시 필수과제다. 특히 한국과의 합동군사훈련을 통해 정치·외교·경제 및 법률적 전략 분야에서의 긴밀한 조율을 통해 북한 긴급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태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또한 북한으로부터의 불필요한 오해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중국과의 조용한 대화 추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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