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가상 시나리오’‘장성택의 눈’으로 본 북한 권력엘리트 파워게임

“다 같이 살자는 겁니다, 아님 정말 총과 총이 맞붙는 걸 보시겠습니까”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03-10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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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 권력변화 분석은 일종의 퍼즐 맞추기나 다름없다. 대부분은 관측 혹은 추측으로 점철된다. 그럼에도 최근 일련의 흐름은 평양 내부에서 뭔가 큰일이진행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후계문제 소식과 김정남의 행보, 급작스레 이뤄진 핵심 포스트의 인사발령이 그 통로다. 이러한 흐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다.
    ‘가상 시나리오’‘장성택의 눈’으로 본 북한 권력엘리트 파워게임

    장성택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 2002년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국가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1946년 강원도 천내에서 출생한 장성택 부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로 1995년 ‘당 중의 당’이라고 불리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되면서 권력 2인자 자리에 올랐다. ‘친중파(親中派) 테크노크라트’로 분류되는 그는 2002년 경제시찰단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하는 등 개혁·개방 지향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후계문제와 관련해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던 장 부장은 2004년 초‘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축출되어 가택연금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이는 차남 정철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애썼던 당시 김 위원장의 처 고영희의 작품이라는 게 정설. 2005년 말 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중앙무대에 복귀한 그는 현재 당 행정부장을 맡고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과 당국자들의 배경설명을 기반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 이후 평양 내부에서 전개된 상황을 장성택 부장의 시각에서 팩션(faction) 형식으로 구성했다. 팩션이란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은 개연성 높은 가상내용으로 다루는 기법을 말한다. 등장인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는 모두 사실과 정보에 근거하고 있고 특히 해설 부분에서 제시된 자료와 분석은 모두 실제의 것이지만, 시나리오 부분에서 이들 사이에 벌어진 것으로 다룬 사건과 대화는 가상이다.

    장면1‘나는 살 수 있을까’

    한밤을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위원장이 쓰러졌다는 급박한 전갈이었다. 전화기 건너편의 보좌관은 거의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김격식 인민군 총참모장. 수화기 속의 그는 “이상동향이 있으면 즉각 보고하겠다”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한다. 말은 하지 않지만 ‘이상동향’이라는 말이 휴전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이심전심이다.



    이럴 때일수록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는 걸 그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침대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지금 위원장이 죽는다면, 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위원장이 죽을 경우 비상 상황에 대응하는 핵심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될 게 뻔했다. 이 때를 틈탄 미국과 남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모든 권력을 군사위원회로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는 없었다. 당 행정부장이라는 자신의 직함으로는 사태를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중앙군사위원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김영춘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도 겸직하고 있다. 모든 면에서 상황은 자신에게 불리했다. 늙은 너구리를 연상케 하는 김영춘의 얼굴이 칠흑같이 어두운 창문에 어른거렸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불과 수년 전의 뼈아픈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리제강과 군부, 그리고 그들 뒤에 있던 고영희의 위세에 눌려 가택에 연금돼 지내야 했던 적잖은 세월이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시간의 연속. 위원장이 죽는다면, 이번에는 훨씬 더 가혹한 위기가 기다리고 있을 게 뻔했다.

    한 번도 권력을 탐해본 적은 없었다. 스스로 권좌에 오르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다만 언제나 강경노선으로만 치닫는 군부의 휘둘림에 나라가 망가지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뿐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렇게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위원장이 세상을 떠나면 인민들이 나서서 변화를 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유약한 정철과 그 뒤에서 섭정할 고영희와 군인들이 그런 사태를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건 공화국의 미래가 아니었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찌됐건 군부가 움직이려면, 특히 위원장의 유고(有故)를 틈타 쿠데타라도 일으키려 한다면, 군령권을 쥔 총참모장 김격식은 이를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어렵게도 그를 총참모장으로 만든 이유가 그것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있을까. 과연 김격식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과거의 인연은 인연일 뿐, 위원장이 죽고 나서도 믿을 수 있을까. 어느새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였다. 그는 아내의 침실로 건너가 오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북한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유고가 발생할 경우 이를 대응하는 조직은 당 중앙군사위원회나 국방위원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선노동당 규약 27조에 의거해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하게 돼 있는 중앙군사위는 유고인 최고사령관을 대신해 비상사태와 관련된 주요 결정을 내리는 형식상의 주체가 된다 (‘신동아’ 2006년 11월호 ‘김정일 유고! 파워게임 카운트다운’ 기사 참조).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이후 비상권력의 주체는 군부, 특히 1980년대 이래 승승장구해온 군사파 인물들이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최근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된 김영춘이 대표적이다. 김정일 위원장을 제외한 중앙군사위의 최선임자는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이지만, 병색이 완연한 그는 비상상황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이들 군사파 고위 장성들은 장성택 부장과는 대립 혹은 경쟁관계에 있다는 게 정설이다. 장 부장이 가택연금에 처해졌던 시기에 김영춘, 김명국, 김일철, 현철해, 리명수 등 군사파 인물들이 승승장구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 반면 장 부장이 중앙무대에 복귀한 후인 2007년 4월에는 김영춘 당시 총참모장이 경질되고 김격식 대장이 총참모장에 임명된 바 있다. 김격식은 장 부장의 좌천 직전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물러난 적이 있다. 김영춘과 장성택의 길항 관계 혹은 김격식과 장성택의 협조 관계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군부가 무력행동을 벌이는 극단적인 상황을 염려해 장성택이 ‘자기 사람’을 총참모장으로 심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이유다.

    문제는 장성택 세력과 군부세력이 무력충돌로 치닫는 경우 장성택 측이 동원할 수 있는 물리력이 극히 제한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형인 장성우가 평양 북쪽 3군단장을 지낸 인민군 차수이기는 하지만, 장성택의 좌천 당시 당 중앙위 민방위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래 동생의 복권 이후에도 다른 자리로 옮겼다는 징후는 없다. 전차 등 압도적인 전력이 몰려 있는 휴전선 인근의 전방군단이 대부분 앞서 설명한 군사파 인물들에 의해 장악돼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부 부대가 장성택 측에 가담한다 해도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존재하는 것. 인민보안성 등 한때 장성택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던 비군사 무장조직을 합해도 마찬가지다.

    평양에서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경우 이를 방어하는 임무는 평양방어사령부와 호위사령부가 담당한다. 평양의 중심지인 중구역과 모란봉구역은 대동강에 둘러싸인 호리병 지형인데, 평양방어사령부와 호위사령부는 호리병의 목에 해당하는 칠성문거리, 안상택거리, 승리거리 등에 무력을 배치해 지형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신동아’ 2006년 11월호 ‘평양 군사 쿠데타’ 기사 참조). 뒤집어 말하자면 평방사와 호위사를 장악하지 못한 세력이 대규모 군사행동을 벌이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장면2 “밀어붙여도 됩니다.제가 평양에 있질 않습니까! ”

    ‘얘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미워져가는군.’ 정남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남이 데리고 들어온 프랑스 의료진이 목례를 건넸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정남에게 머물렀다. 위원장의 상태가 생각만큼 심각하진 않다는 인사치레도 귓가에서 맴돌기만 했다. 당장 죽지 않으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아버지 대신 결재하시느라 바쁘시지요?”

    너무 오래 해외에 머물렀던 것일까. 10년 전만 해도 믿을 만했던 정남의 날카로운 눈빛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 사람을 공화국의 다음 지도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던 10년 전 자신의 결심은 옳았던 것일까.

    “결재권을 갖고 있는 동안에 고모부께서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에 군인들을 싹 갈아치우지 않으면 기회는 없습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의료진을 내보내고 단 둘이 남은 자리, 정남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정남의 상황판단은 늘 날카로웠다. 제멋대로의 성격 때문에 가늠하기 쉽지 않아서 문제일 뿐 그가 목숨을 건 도박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정남의 그런 날카로움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말씀드린 보고섭니다. 보시고 바로 소각하시죠.”

    그가 꺼내든 파일의 꼭대기에는 김경옥이라는 이름 석자가 적혀 있었다

    “지난번에 말씀 드린 대로, 오늘 아침에 김경옥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발령 냈습니다.”

    “언젯적 김경옥입니까. 이 양반 일흔도 넘지 않았습니까.”

    “저와는 오랜 인연이 있는 사람입니다. 일단 총정치국을 견제할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야 군인들을 물갈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고모부는 늘 일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밀어붙여도 됩니다. 제가 평양에 있질 않습니까!”

    순간 그는 정남의 굵은 목을 조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너는 도대체 인생이 그리 쉬우냐. 나는 목숨을 걸고 있는데, 너는 무엇을 걸고 있느냐. 너는 일이 어그러져도 죽지 않는다. 너는 못되도 가족을 잃지 않는다. 너는 그저 지금처럼 전 세계를 떠돌며 유랑하면 그뿐 아니냐.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화를 가까스로 가라앉히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가상 시나리오’‘장성택의 눈’으로 본 북한 권력엘리트 파워게임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동승한 리무진이 군복 차림의 호위사령부 요원들의 삼엄한 경호 속에 평양 시내로 향하고 있다.

    “당은 그래도 제 뜻을 따라주지만, 군 인사는 위원장 본인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기력을 찾으시면 들어가 뵐 겁니다. 와이프도 그게 좋겠다고 얘기하고요. 이건 그전에, 그러니까 준비작업에 해당하는 겁니다.”

    아내가 동의했다는 말에 정남은 한층 누그러진 듯했다. 어린 시절부터 고모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 정남이었다. 지금 이 미묘한 시점에서, 그들 부부가 같은 판단을 내렸다면 다른 이에게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일 터였다.

    30분 뒤, 집무실 자리에 앉은 그의 눈에 메모가 띄었다. 보고 싶지 않은 이름. 갑자기 저녁을 먹자는, 그것도 오늘 저녁이어야 한다는 강한 톤의 전갈이었다. 그 순간 그의 등에는 소름이 쫙 끼쳤다. ‘그들’이 자신을 보자고 할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누군가 정남과 그의 대화를 엿들었고, 그들에게 전한 것이다.

    장성택이 후계구도에서 김정남을 지지해왔다는 견해는 정설에 가깝다. 두 사람은 모두 ‘친중파(親中派)’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장성택 실각 직후 김정남이 프랑스에 머물던 장금송 등 장성택의 가족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는 정황이 확인된다.

    장성택의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실각 이후 후임으로 임명된 리제강이 당시 친(親)김정철파의 리더로 분류된 것 역시 정보당국 관계자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장성택의 좌천 이후 그의 측근인 최춘황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리광근 무역상 등을 제거하는 데 리제강 부부장이 주요 임무를 담당했다는 것. 장성택 부부장이 리제강, 리용철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제1부장 등 친김정철파에 의해 축출당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 배경이었다.

    주목할 것은 장성택의 실각을 전후해 ‘김정철 후계론’의 핵심 증거로 급부상했던 ‘학습제강’의 제작처가 조선인민군출판사였다는 사실이다. 김 위원장을 향한 ‘존경하는 어머님’의 한없는 충성심을 강조하는 학습제강은 고영희 우상화를 통해 정철이나 정운을 후계자로 옹립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전직 정보당국 최고위 관계자는 “문제의 제강은 실제로 2003~04년에 인민군 전방부대에 대대적으로 배포돼 강연 자료로 활용됐다”고 말한다. 바꿔 말하자면 이러한 움직임이 당시 군부 핵심인사들의 협조 혹은 양해하에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이 무렵부터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한 군사파 지도자들이 정남보다는 정철 혹은 정운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음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2004년 5월 고영희가 사망한 이후 김정남의 활동공간은 넓어지고 장성택은 중앙무대에 복귀한다. 그러나 이후 리제강, 리용철 등 친김정철 인사들은 물론 김명국, 리명수, 현철해 등 군부인사들도 건재했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는 이들이 이 무렵부터 김정일 위원장의 관리하에 일종의 세력균형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에 동의한다.

    그러나 지난해 말 알려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인사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김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상태에서 이처럼 핵심 포스트의 인사발령을 냈다는 사실은 급박한 사정이 있거나 혹은 김 위원장을 대리한 인물의 독자행동이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북한 군사 전문가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임명된 김경옥은 1970년대부터 중앙당과 서기실에서 군사 분야를 담당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며 “군부보다는 장성택과 더 연결고리가 많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경옥은 조직지도부 내에서도 군, 특히 총정치국을 담당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친김정철파의 핵심으로 알려졌던 리제강과 리용철 두 사람이 맡고 있었던 것도 우연치고는 공교롭다. 이 시기 병석의 김 위원장을 대신해 장성택 부장이 상당 수준의 결정권을 행사했다는 소식을 감안하면 김경옥의 임명이 권력투쟁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장면3‘총참모장 연락두절, 연금상태 추정’

    자정이 넘었다. 거나한 술자리, 어둠침침한 조명 건너편의 그들의 머릿속도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게 손에 잡힐 듯 훤히 읽힌다. 좀처럼 본론을 꺼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시 다른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껍데기뿐인 미소 속으로 살얼음 같은 긴장이 흐른다.

    그는 군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미국과 남한이 언제든 휴전선을 넘어 치고 올라올 것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하는 그들의 주문을 믿지 않는다. 무력만이 해결책이라고, 본때만이 돌파구라고 믿는 군사력 지상주의자들의 말에 조직 이기주의 외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너희는 무엇을 염려하는가, 일신의 안위인가. 나는 공화국의 미래를 걱정할 뿐이다.

    보좌관이 급히 뛰어 들어와 쪽지를 건넨 것은 그때였다. ‘총참모장 관저에 정체불명 군인들 습격, 총참모장 연락두절, 연금상태 추정.’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것이었나.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테이블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가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요. 총참모장은 저희가 모시고 있습니다. 민방위부장, 인민보안상, 다른 분들도 저희가 길목을 확보하고 있고요.”

    “뭘 원하는 거요? 위원장이 이 일을 묵과할 것 같습니까?”

    노기 띤 음성이 흔들린다. 사실 그건 노기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나올 거라고는 미처 상상 못했던 자신의 순진함에 대한 실망감과 공포였다.

    “김경옥을 왜 그 자리에 두셨는지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당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왜 군이 이런 짓을 벌입니까!”

    “지금 함께 순진한 척 내기라도 하자는 겁니까!”

    낮은 목소리를 이어오던 그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다. 이미 상황은 선을 넘었다. 의례적인 논리 싸움은 끝났다. 지금은 남은 패를 모두 까야 하는 상황이다.

    한참의 침묵. 테이블 너머의 또 다른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우리만 살겠다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그런 거라면 위원장께서 그걸 인정해 줄 리도 없지요. 다 같이 살자는 겁니다. 장 부장도 살고, 우리도 살고, 리제강도, 리용철도 함께 살자는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남을 고집하려 들지 마십시오. 당장은 장 부장이 정남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겠지만, 실제로 권좌에 오르면 어떻게 될지 장담 못하기는 장 부장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정남을, 정말 온 마음으로 믿을 수 있습니까.”

    장성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한참의 침묵, 이윽고 상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정운으로 갑시다. 위원장도 이미 얼추 마음을 굳혔습니다. 장 부장만 생각을 바꾸면, 장 부장이 자꾸 위원장을 충동질하지만 않으면,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최소한 앞으로 5~6년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정말, 총과 총이 맞붙는 상황을 보시겠습니까.”

    머릿속으로 수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어린 시절, 통통한 볼이 한없이 귀여웠던 정남의 얼굴. ‘그래 내가 너를 지켜주마’라고 다짐했던 그 모든 기억. 그리고 늘 패기만만한 정운의 얼굴, 이제 20대 중반, 빛이 나기 시작하는 그의 젊음.

    결국 관건은 위원장의 판단이었다. 그는 뭐라고 할 것인가. 정말 정운으로 갈 생각일까.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마음을 굳힌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자리를 박차고 나서면 위험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진땀이 흘렀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후계문제와 관련해 최근 두드러진 변화는 ‘김정운 낙점설’의 급부상이다. 1월15일 ‘연합뉴스’는 한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1월8일경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하달했다”고 전했다. 통일부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최근 북한을 방문한 다수의 인사가 이에 대한 ‘소문’을 전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후계문제와 관련해 북한 안팎에서 많은 이야기가 돌고 있지만, 이를 금지하는 공식적인 조치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정철 유력설이 한창이던 2005년 12월과 2006년 10월 후계 논의를 금지하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1월3일 영국의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최근에도 후계논의 금지가 있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이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평양이 후계문제를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는 것은 주목할 만한 시그널이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후계문제 전문가는 “김정남-장성택, 김정철-리제강 혹은 군부라는 그간의 도식을 놓고 따져볼 때 김정운으로의 후계결정은 타협안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정남이나 정철이 후계를 맡을 경우 극단적인 권력투쟁이나 대대적인 숙청을 피하기 어렵지만, 대립선이 엷은 정운의 경우 후계체제 준비를 이유로 상당기간 공생(共生)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군부가 정운의 세습에 부정적이지 않다는 당국자들의 설명도 맥을 같이한다. 나이 어린 ‘혈통’을 형식상의 지도자로 놓고 실질적인 집단지도체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가상 시나리오’‘장성택의 눈’으로 본 북한 권력엘리트 파워게임

    1월24일 중국 베이징의 서우두 공항에서 일본 NHK 방송 카메라에 잡힌 김정남.

    장면4 마지막 퍼포먼스

    “그래, 그런 일들을 벌였단 말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목소리가 낮다. 병석이기 때문일까. 그럴 리 없다. 평소의 그라면 지금쯤 길길이 날뛰어야 옳다. 차갑도록 냉정한 목소리의 의미는 그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각오는 했지만, 머리가 띵하다.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는 저를 겨눴지만, 다음에는 위원장을 겨눌 수도 있습니다.”

    아무 말이 없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격식은 바꿉니다. 그건 나도 생각하고 있던 바예요.”

    “그렇지만 저들은 물리력을 사용했습니다. 이건….”

    “지금 그게 핵심이 아니라는 건 장 부장도 알지 않습니까.”

    핵심이 아니다? 그럼 뭐가 핵심이라는 말인가.

    다시 한참의 침묵, 비로소 위원장이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내 누워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정남이로 가자면 손을 댈 게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언제 다시 쓰러질지 모르는데, 그런 아슬아슬한 상황을 만들 수는 없어요.”

    뒤집어 말하면 정운으로 가면 현재 상황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건 너무 근시안적인 생각이 아닌가.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위원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압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정남이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순간, 그는 머릿속에서 선이 하나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김격식 연금 계획을 위원장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건 이제 분명해졌다. 돌이켜보면 원래부터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자연스러웠다. 누구도 위원장의 암시 없이 그런 일을 벌일 배짱은 없다. 그리고 그 결정은 공화국의 미래에 대해 위원장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장 부장이 뭘 잘못했다는 게 아니오.”

    방안의 공기가 쇠처럼 무겁게 옥죄었다. 이미 승부는 났다. 모두가 후계를 만드는 데 협조하길 바란다는 건, 본래 위원장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 막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가 진심이라면, 모두가 힘을 공유하며 다음 세대를 만들어가길 원한다면, 아직 내게도 기회는 있다. 그가 나의 가치를 여전히 믿는다면, 후계를 만드는 데 내 능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마지막 승부수는 남아 있는 셈이다. 대신, 그 믿음에 값하는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럼 이제부터 정남이는 가급적 평양에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겠지….”

    “군도 묶어둬야 합니다. 이번에 위원장께서 그들의 뜻을 들어주셨으니, 대신 그들도 반대급부를 치러야 합니다. 총참모장 후임인사를 그들 뜻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번 일에 관계된 꼭대기는 쳐내야 합니다. 어차피 후계를 만들자면 군도 세대교체를 해야 하니까요. 안 그러시면 그들은 언제든 총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을 겁니다.”

    “그 말, 내 알아들었습니다. 다만, 총참모장 문제는 내게 생각이 있으니 다른 말 하지 말아요.”

    “그렇지만….”

    “이미 말했습니다. 다른 말 말라고.”

    일주일 뒤, 집무실에 남아 있던 그는 일본 TV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정남이 후계문제에 관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저 유창한 서울말씨.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일까. 마지막 퍼포먼스는 데드라인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렸다. 이제 자신에게는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자의 분노였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3남 정운을 매개로 하는 ‘타협안’은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도 매력적일 수 있다. 후지모토 겐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쏟아지는 ‘정운 자질론’과는 별개로, 권력지형도의 얼개만 살펴봐도 그렇다. 본인이 회복 불능 상태에 놓였을 때 권력 엘리트끼리 내분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김 위원장 입장에서, 정운의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매개로 당과 군의 핵심이 협력할 수 있다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변수가 된다.

    거꾸로 말하자면, 권력 엘리트 대부분의 협력과 지지가 없으면 불안요소가 많은 3대 세습과정이 순탄치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유추해볼 수 있다. 누군가 목숨을 걸고 반대할 수밖에 없는 후계자를 지명한다면 그 리스크 관리는 간단치 않을 게 불문가지. 이번에는 김 위원장의 권력세습 시기와는 달리 후계 구축이 단기간에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 놓고 볼 때 1월24일과 27일 김정남이 베이징에서 외신기자들과 만나 “(후계문제는) 아버지만이 결정하실 일”이라고 언급한 점은 곱씹어볼수록 의미심장하다. 특히 정운이 후계자로 지명됐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으며 (후계자 문제를) 가정하고 상상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덧붙인 대목이 그렇다. 평소와는 달리 준비된 듯 또박또박 답변한 태도는 계획된 발언이라는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신과 아버지가 후계문제를 논의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라고 보는가 하면, 후계문제가 본인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만약 정운으로 후계문제가 결정됐다면, 이제부터 김 위원장의 당면과제는 권력 엘리트들 사이의 역할 정리와 권력분배가 된다.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본인이 통치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후계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두는 것이 그 핵심이다. 자칫 구조가 깨질 경우 파벌싸움이나 내란 같은 극단적인 위기가 올 수 있는 까닭이다.

    장면5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가상 시나리오’‘장성택의 눈’으로 본 북한 권력엘리트 파워게임

    2월12일 새로 임명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리영호 총참모장 등과 함께 북한군 포병사령부 산하 부대의 포사격 훈련을 참관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쇼는 화려했다. 건너편 산자락을 포연이 순식간에 뒤덮었다. 천지를 흔드는 대포 소리는 언제나 압도적이다. 훈련을 참관할 때마다 그도 ‘무력이 곧 모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침략하는 적들을 섬멸적 화력으로 단매에 요절낼…”. 쇼가 쇼답자면 말이 거칠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다. 미국이, 남한이, 그에 답할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건너편에 김영춘과 리영호가 보였다. 도무지 본심을 가늠하기 어려운 저 얼굴. 그리고 ‘그들’의 얼굴도 보였다. 현철해, 리명수, 김명국. 가슴팍에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과 별 계급장이 유난히 아찔하게 느껴졌다. 그들 뒤로 드리워진 오극렬의 그림자가 손에 잡힐 듯 겹쳤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들이 고개를 돌려 미소를 보낸다. 묘하다. 어제는 목숨을 겨누고, 오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어 보인다. 오늘은 웃고 있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피 말리는 싸움은 이어질 것이다, 늘 웃는 얼굴로.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2월12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위원장이 김영춘 신임 인민무력부장과 리영호 총참모장을 대동하고 포병사령부 산하 제681군부대의 포사격 훈련을 참관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는 김정각 총정치국 1부총국장, 현철해 김명국 리명수 대장 등 군 고위간부들과 김기남 당 중앙위 비서, 장성택 행정부장, 박남기 당 중앙위 부장 등이 동행했다.

    이 행사는 2월11일 이뤄진 군부 핵심 인사발표의 기념식 차원으로 보인다. 4월 하순 정도로 예상되던 군 수뇌부 인사가 두 달 이상 앞당겨 발표된 것도 이례적이지만, 임명된 김영춘과 리영호의 이력은 더욱 특징적이다.

    김영춘은 앞서 전한 대로 장성택이 복귀한 이후 총참모장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이번에 인민무력부장으로 복귀했다. 특히 1994년 함경북도 소재 6군단의 쿠데타 음모를 적발, 처단하는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정치적 감각도 탁월하다.

    리영호 신임 총참모장은 그전까지 쿠데타 대비의 중추인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냈다. 공개된 이력사항이 거의 없지만, 정치군관 경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단순한 소장 군사파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김격식 전 총참모장의 경우 경질 이후의 발령사항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변화가 최근 ‘국방위 참사’라는 직함으로 보도된 박명철의 경우다. 장성택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그는 2003년 말 장성택 실각과 함께 좌천됐다가 이번에 중앙무대에 복귀해, 국방위원장의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참사 자격으로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렇게 놓고 보면 최근 평양 권력핵심의 인사 변동은 특정 세력의 약진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장성택의 관점에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견제관계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한 김영춘의 인민무력부장 임명과 측근인 박명철의 국방위 진출이 비슷한 시기 이뤄졌다는 점은 군부와 장성택 그룹 사이의 권력분점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여기에 장성택과 가까운 것으로 분석되는 김격식을 경질하고 그간 쿠데타 관리를 담당했던 리영호를 총참모장에 앉힌 것은 인민군 내부의 분파행동이 ‘경거망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군사파가 됐든 친(親) 장성택파가 됐든 무력으로 권력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직속 관리자’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다양한 반론이 존재한다. 김영춘이 고영희 생존 당시 김정철 급부상의 후견인 노릇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장성택과 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대표적이다. 리영호에 대해서도 정치군관으로서의 경력보다는 그의 세대에 주목해 현철해 김명국 리명수 등이 후견하는 ‘차세대 주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부분에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이번 군 수뇌부 인사가 인민군의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이며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포석의 의미가 크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선명성’을 입증해야 하는 수뇌부의 입지가 최근의 대남 강경노선에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는 분석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인사 흐름이 권력분점을 통한 상호견제구도 형성을 목표하고 있다면, 그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한 국책연구기관의 군사 전문가의 말이다.

    “그간 김정일 위원장의 용인술은 각 세력을 잘라 하나하나를 손아귀에 넣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권력의 분점은 기본적으로 역할분배(division of roles)가 핵심이다. 전자가 각 파벌 간의 역할을 끊는 작업이라면 후자는 역할을 이어 상호 협조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평양은 이런 작업에 익숙한 편이 못되고, 특히 김 위원장으로서는 거의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쉽지 않을 것이다.”

    힘의 분점은 아주 미묘한 충격으로도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게 권력학의 기본공식이다. 권력엘리트들이 후계체제 구축을 매개로 권력분점에 동의했다 해도 그 평화가 후계 구축 완료시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종적을 알 수 없는 김격식의 거취, 신임 평방사령관 임명, 아들의 미국 망명과 관련해 좌천된 것으로 알려진 ‘군사파의 정신적 대부’ 오극렬 전 당 작전부장의 복귀 여부, 오는 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국방위원회 위원 보충 인선…. 고비고비마다 권력을 나눠가진 그룹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사활을 걸 것이다. 그렇게 내려진 각각의 결정이 권력분점이 유지되고 있는지 혹은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시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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