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호

프로메테우스 경제학 외

  • 담당·이혜민 기자

    입력2009-04-01 18: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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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메테우스 경제학 외
    ▼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프로메테우스 경제학 _ 류동민 지음, 창비, 340쪽, 1만5000원

    나는 내 정체성과 관련해, 예컨대 대학교수보다는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자라는 점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므로 ‘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은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자가 쓴 마르크스 경제학에 관한 그 무엇일 수밖에 없다. 오래전 대학출판부에서 낸 강의교재를 제외하면, 내게 사실상 최초의 단독 저서이기도 하다. 따라서 처음 원고를 쓰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마지막 교정쇄를 넘기는 순간까지 나는 어깨에 힘을 잔뜩 넣고 잘난 체하고 싶은, 시도 때도 없이 삐져나오는 욕망에 맞서 싸워야 했다. 여기에서는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책이 아니고자 하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자기 책을 선전하는 듯한 민망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고 싶다.

    출판사에서 붙였고 나 자신도 선선히 받아들인 ‘새로운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라는 부제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은 통상적인 의미의 마르크스 경제학 교과서는 아니며 새로운 세대를 가르치거나 설득하기 위한 책은 더더욱 아니다. 먼저 ‘교과서’가 아니라는 것은 교단으로 상징되는 높은 곳에 서서 아래에 위치한 청중(학생)에게 특정한 기술이나 사고체계를 일방적으로 전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나는 지은이와 읽는 이가 대등한 위치에 서서 민주적으로 소통하기를 원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교과서가 아니라는 것은 통상 마르크스 경제학이 가져야 할 미덕(또는 비판자의 처지에서는 악덕)으로 상징되는 특징, 즉 방법론에서 출발해 혁명을 위한 강령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꿰어지는 체계를 지향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애석하게도 즉각 처방전으로 써먹을 수 있는 한국 경제의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한다. 아니, 원래부터 그럴 의도가 없었다.

    다음으로 젊은 시절 진보이념의 세례를 받았던 386세대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세대를 설득하거나 훈계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386세대라는 말이 욕이 되어버린 현실을 잘 알기 때문만은 아니다. “젊어서 좌파, 늙어서 우파” 따위의 보수적 버전이나 “88만원 세대여 단결하라”는 진보적 버전의 표현이 본의 아니게 숨기게 되는 정치적 맥락을 살펴보고자 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의 회색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푸름에도 그것을 어떻게 이름 붙여 부르냐는 수많은 회색의 이론이 있어왔고, 그것들이 때로 막대한 물질적 힘과 결합되어 소나무 그 자체를 부숴버리기도 하는 현실을 이 순간에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나같이 일천한 경제학자의 비판을 받을 이유가 별로 없음에도 실명으로 거론된 많은 분은 센세이셔널리즘을 위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는 결코 아니다. 최소한 소통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거나 다루어질 만한 가치가 있다고 감히 내가 평가했기 때문이다.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미래에 집중하라 _ 마티아스 호르크스 외 지음, 박희라 옮김

    “트렌드는 아주 구체적이고 분석 가능하며, 체계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무엇이다. 이 책이 추구하는 목표는 ‘트렌드의 인식’이 아니라 ‘트렌드의 활용’이다. 트렌드를 이용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자는 것이다.” 저자는 미래학자이자 트렌드 전문가로 트렌드를 통해 미래를 읽는다. 1998년 미래연구소를 설립해 미래아카데미, 미래어드바이저, 미래컨설팅, 미래출판사의 4개 비즈니스 영역으로 나눈 뒤 휴렛팩커드,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인텔, BMW 등과 같은 세계 최고 기업을 컨설팅하고 있다. 미래의 고객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경쟁력 있는 기업은 그 요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트렌드를 목적에 맞게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비즈니스북스/ 320쪽/ 1만5000원

    뉴 골든 에이지 _ 라비 바트라 지음, 송택순 김원옥 옮김

    ‘뉴욕타임스’, ‘뉴스위크’에 칼럼을 쓰는 라비 바트라는 탁월한 경제학자로 평가받는다. 역사 순환주기와 경제학적 예측 도구를 활용해 1980년대 소련 공산주의 붕괴, 2010년 미 독점 자본주의 해체를 예측해서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전세계적 금융대란 이후’를 말한다. “세계적인 불황이 지나면 지금과 같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는 해체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세력이 등장하면서 전례 없는 번영의 시대, 이른바 뉴 골든 에이지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전례 없는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기존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배 계층의 배를 불리고, 소득과 부의 불균형을 악화시키는 (번영은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한 방울씩 젖어든다는) 적하(滴下)경제학은 빈곤의 주범이다. 그러므로 지식인들은 전세계에 빈곤의 씨를 뿌리는 적하경제학에서 벗어나야 한다.” 리더스북/ 360쪽/ 1만5000원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_ 프란츠 M 부케티스 지음, 원석영 옮김

    “이 책의 기본 테제는 자유의지란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상은 전적으로 유용하다. 환상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생존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책에서 저자는 철학사에서 자유의지에 대한 궤적을 밟으며, 다위니즘을 토대로 자유의지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건 곧 인간의 고유한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유의지에 대한 속성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의지가 자유로운지 혹은 부자유한지에 대해 명석하게 아는 것은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동물로서의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열음사/ 240쪽/ 1만3000원

    프로메테우스 경제학 외
    ▼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누구나 가슴속엔 꿈이 있다 _ 이영숙 지음, 북스코프, 328쪽, 1만1000원

    이 책은 1972년 파독 간호사로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의사가 된 한 인간이 걸어온 역경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1953년 가난한 집안의 일곱 자매의 맏이로 태어난 나는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 국가채무에 대한 담보로 독일로 파견된 파독 간호사 중 하나였다. 한국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또한 조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멀고도 낯선 독일로 향했다. 그 후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뤘다. 그 토대에는 나와 같은 파독 간호사와 파독 광부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 나의 삶은 우리가 지금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이면과 그 궤적을 함께했던 것이다.

    나는 1977년까지 에센의 한 가톨릭병원에서 낮에는 간호사로 근무하고 밤에는 야학으로 대학입학자격시험인 아비투어(Abitur)를 준비해 1978년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튀빙겐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내가 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다들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최종학력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다였다. 그러나 단 하루도 쉬지않고 일하고 공부한 끝에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국제결혼이 흔치 않던 시절인 1981년, 튀빙겐대학교 수학과 박사과정 학생이던 독일인을 만나 결혼했다.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한 남편의 투병생활을 뒷바라지하며 천신만고 끝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도 땄지만 남편은 결혼한 지 5년 만에 병이 재발해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들 얀과 단둘이 힘든 생의 도전에 또다시 맞닥뜨리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개인병원을 개원해 10년 넘게 운영하고 생활의 안정을 찾아갈 무렵인 2005년, 이제는 그 모질던 시련도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을 때 남편을 앗아간 병과 같은 병이 내게 찾아왔다. 뇌종양과 그에 더해 폐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기적적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 다시 병원을 운영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으나 2007년 다시 척추암이 발병해 병원 문을 닫고 치료를 받았다. 다시 병을 물리치고 현재는 건강한 몸으로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떻게 독일에서 그 힘든 의대를 졸업했습니까?”라고 누가 물으면 나는 이 모든 어려운 일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의 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대답한다.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 우리 가족에 대한 사랑, 등록금 없이 의대에 다닐 수 있었던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감사, 독일인들과의 국경을 넘어선 인간적인 사랑, 또 독일인인 남편과의 사랑…. 나는 이 많은 사랑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세계시민’인 것이다.

    이영숙│의사│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_ 구중서 지음

    1971년 가톨릭 잡지 ‘창조’를 창간하면서 편집주간을 맡았던 저자는 김수환 추기경을 발행인으로 만났다. 이후 40여 년간 인연을 이어오며 가까이에서 추기경을 지켜본 그가 김수환 추기경 평전을 냈다. 추기경의 사제로서의 삶뿐 아니라, 당당하게 신념을 밝힌 어린 시절과 포근했던 유학생 시절의 소소한 얘기도 담았다. 저자인 문학평론가 구중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침묵에서 신비에 찬 신앙과 평화를 느꼈다며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짓고 있다. “한 시대의 위인도 인간으로서 한계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당대적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했다. 그가 떠난 뒤에 남은 일들은 뒷세대의 사명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가? 자성할 문제들이 무겁게 우리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 책만드는집/ 208쪽/ 1만2000원

    조용헌의 명문가 _ 조용헌 지음

    ‘어찌 우리는 정과 반만 있고 합(合)이 없는가? 합을 도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못나서 그런 것일까. 우리 민족은 지지리도 못난 민족인가?’ 분열된 우리 사회를 걱정하던 저자가 희망을 찾았다. 혼란기를 슬기롭게 헤쳐간 명문가 자재들 덕분이다. 우당 이회영 집안은 재상을 10여 명 배출한 소론 명문가였으나 구한말 나라가 망하자 만주로 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전용 선착장을 가지고 있던 안동의 고성이씨 임청각 집안도 독립운동 하는 데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 이상룡 이래 후손은 고아원에서 자랐을 정도다. 서울의 간송 집안은 문화재를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10만석 자산가였던 간송은 국외로 유출되거나 그럴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사들여 간송미술관을 탄생시켰다. 저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되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랜덤하우스/ 353쪽/ 1만6000원

    인간 이해 _ 알프레드 아들러 지음, 라영균 옮김

    “대인관계나 공동생활에서 실패하는 것은 대부분 인간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심각한 결과다. 우리의 태도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동생활을 저해하는 요소들은 사라지고, 우리는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3대 심층심리학자로 꼽히는 저자는 개인심리학의 창시자다.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 그는 ‘인간 심리의 근간이 초기 유년 시절에 형성된다’고 믿는다. 이 책은 “개인의 그릇된 행동이 잘못된 사회활동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개인의 과오를 일깨워줌으로써 사회 적응을 좀 더 용이하게 해주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그 자신이 부진한 차남이었기 때문인지 열등감, 보상심리, 인정욕구, 권력욕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 했다. 일빛/ 296쪽/ 1만6000원

    프로메테우스 경제학 외
    ▼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_ 최원식 지음, 창비, 299쪽, 1만6000원

    내가 처음 동아시아론을 초(草)한 게 1993년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창작과비평’ 봄호)인데, 그 시절에는 ‘동’자만 봐도 대뜸 ‘대동아공영권’의 재판(再版)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아시아인의 아시아’를 내걸고 아태지역을 거대한 전장으로 만듦으로써 주변 나라들에 치명적 고통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도 끔찍하게 자멸한 그 전쟁의 이데올로기가 ‘대동아’였으니 한편 이해할 만한 구석도 없지 않지만 내용을 잘 살피지도 않은 채 새로운 사유의 모험에 비관용적인 지식사회의 습벽이 안타깝기도 했다.

    동아시아론은 아시아에서 구미(歐美)를 모두 추방하는 편협한 ‘대동아’와는 인연이 없다. 동아시아에서 구미는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점을 냉정히 헤아리면서 근대 이후 동아시아를 제어해온 구미에 대한 근본적 인식을 추구하자는 게 핵심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한국사회 최고의 벤치마킹 대상인 구미 자본주의 모델을 다시 보려는 동아시아론이 동구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생각한 것은 물론 아니다. 알다시피 동아시아론은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1992년에 이르는 동구혁명에 직접적으로 촉발되어 제출된 것이다. 동구든 구미든 이제 서도(西道)가 황혼에 들었다는 예감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화두였다.

    한국은 이제 약소국이 아니다. 아시아의 네 용과 함께 주변부에서 탈출한 뒤 한국의 민주주의도 성큼 전진했다. 이런 조건들에 비춰 그 사이 한국사회 추동력의 핵인 민족주의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강대국의 침략적 민족주의는 나쁘고 약소국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좋다는 이분법은 한국이 중진국으로 상승하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동아시아라는 중간 장(場)에서 서구주의와 민족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는 한국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하자는 것인데,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국에 상륙한 즈음, 나는 우리 안의 대국주의를 반성하는 ‘세계체제의 바깥은 없다’(1998)를 기초했다. 경제 발전과 민주화라는 두 토끼를 잡은 뒤 마치 선진국인 양 들뜬 분위기로 흥청대다가 맞이한 충격 속에서 통일을 앞두고 대국주의로 질주하려는 충동을 일단 제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뒤 그 씨앗은 대국도 아니고 소국도 아닌 ‘중형(中型) 국가’가 우리가 택할 최선의 길이 아닐까 하는 데로 진화했다. 주변 4강을 달래는 한편 북을 포용하며 통일의 최종형태로서 남북국가연합을 적극적으로 사유함으로써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에 한발 다가서고자 하는 매듭이 중형국가론이다.

    1993년 이후 2008년에 이르기까지 느릿느릿 사유하면서 거둔 총 14편의 원고를 3부로 나누어 정리한 이 책이 21세기 한국의 선택을 토의하는 데 혹 작은 언덕이라도 된다면 무상의 영광이다. 강호제현의 아낌없는 질정을 바란다.

    최원식│인하대 인문학부 교수│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 _ 이덕일 지음

    언제부터 여성이 섬세한 존재로 규정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는 “성리학의 본류가 예학으로 흐르면서 남성, 장손 중심의 종법이 확고해짐에 따라 현재의 여성상이 형성된 것”이라 지적한다. “출가외인과 여필종부가 바람직한 여성상의 전형으로 떠받들어진 것은 300여 년 남짓한 기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여성성이라는 이미지가 국한된 탓에 역사 속에서 ‘축소 해석’된 여성들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고구려 제국 재건이란 태조의 유훈을 실천한 천추태후, 나라를 두 개나 개창한 소서노, 세계제국 원나라 황후로 군림한 기 황후, 조선시대 천주교를 받아들인 강완숙, 천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한 정난정…. 필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받았던 우리 역사의 모든 여성의 삶에 이 책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옥당/ 528쪽/ 1만8900원

    황종희 평전 _ 쉬딩바오 지음, 양휘웅 옮김

    원자바오 총리가 존경한다는 황종희에 관한 평전이 나왔다. 저자는 “17세기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인 황종희에 대해 쓰느라, 장장 3년에 걸친 집필 기간 연구 서적을 되짚느라 조금도 나태해질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황종희는 17세기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민주계몽주의자로 무엇보다 사람을 근본으로 생각하는 민주사상가였다. 그랬기 때문에 ‘군주권에 대해 구속력을 갖춘 중국식 민주주의 틀’을 주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자바오가 주목한 황종희 사상의 핵심도 바로 이 ‘민주군객론’이다. 번역자 양휘웅은 “황종희의 대표작인 ‘명이대방록’뿐 아니라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이 담긴 그의 시와 문장, 인물평이 담긴 묘지명과 행장(行狀) 등을 통해 사상을 살폈다는 데 이 책의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돌베개/ 656쪽/ 3만3000원

    야나기 가네코, 조선을 노래하다 _ 다고 기치로 지음, 박현석 옮김

    한 무리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일본인이란 무리도 마찬가지다. 조선인 말살 정책을 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야나기 가네코처럼 조선 문화 부흥을 위해 애쓴 이도 있다. 가네코는 남편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조선민족미술관 설립을 추진하고 광화문 철거를 반대했다. 일본의 유명 성악가인 그녀는 3·1 운동의 실패로 침체돼 있던 조선에 힘을 주고자 남궁벽 등 ‘폐허’ 동인들과 함께 조선 곳곳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팩션인 이 책에는 “예술로 모두 하나가 되고, 노래가 희망을 전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깨달은 가네코의 삶”이 담겨 있다. NHK 프로듀서 출신으로 현재는 영국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KBS와 NHK가 공동으로 기획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 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을 제작했다. 21세기북스/ 325쪽/ 1만원

    프로메테우스 경제학 외
    ▼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사케 류(流) _ 김혜주 김소영 지음, 알덴테북스, 187쪽, 1만3500원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도래한 몇 년 전부터 와인은 무서운 속도로 국내 주류시장을 파고들었다. 와인이 일상에 깊숙이 들어오기 전까지 음식이란 것은 먹어 맛있으면 좋은 것이고고, 일본 요리 정도를 두고서 ‘눈으로 먼저 맛봐야 한다’는 앞선 미식가들의 조언만이 있었을 따름이었다. 와인 덕에 사람들은 ‘오감을 활용해가며 먹는 즐거움’에 빠져들 수 있었다. 여기에 와인의 다양한 역사와 스토리는 와인의 매력에 솔깃한 사람들의 발목을 확실히 잡아버렸다.

    여간해서는 식을 줄 모를 것 같던 국내 와인에 대한 관심이 최근 급속도로 사케로 향하고 있다. 2003년부터 매년 50%를 넘어서는 매출 증가율을 보이더니 2008년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일본 청주 수출 자료에 따르면 우리가 미국, 대만에 이어 3위의 수입국이 되었다. 이미 미국에서는 상류층이 즐기는 술을 벗어나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10년 전부터 미국의 사케 수입은 매년 평균 10%를 웃도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나라 안팎으로 그 인기가 높아가는 술, 사케에 관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입문서가 나왔다. ‘사케,流’. 사케(酒)는 쌀과 쌀누룩, 물을 원료로 발효시킨 후 맑게 거른 술, 청주(淸酒)를 이르는 일본어로 니혼슈(日本酒)라고도 한다.

    대개 모든 입문서가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사케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았다. 역사, 제조 방법, 사케와 음식, 사케 테이스팅, 사케 라벨 읽는 법 등에 관한 소개가 100여 컷에 가까운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 지루하지 않다. 일본 양조장에 일일이 연락을 취해 얻은 사진들이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해준다. 아울러 책의 후반부에서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사케 중 유명하고 인기 있는 사케 55종을 소개했다. 이들은 핫카이산, 구보타 시리즈, 고시노 간빠이를 비롯해 국내 사케 전문 수입 회사들이 뽑아준 ‘잘나가는’ 선수급이다.

    이 책의 이채로운 점이라면 사케를 소개하는 데 와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이 사케의 롤모델로 삼은 술이 와인이다. 그러다 보니 와인의 앞선 점을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이미 와인보다 더 훌륭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전에 이미 이들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내용을 자연스럽게 녹여두었다. ‘와인은 눕혀서 보관해야 한다는데 사케도 그럴까?’ ‘포도 품종이 다양하듯 사케를 만드는 쌀의 품종도 다양할까’등 와인 상식을 이야기하고 사케와 비교하기 때문에 와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어려움은 전혀 없다.

    이러한 내용 전개의 근저에는 두 저자의 공통점인 와인 커리어가 있다. 김소영은 기키자케시(일본술 전문 가이드) 자격증과 소믈리에 자격증을 모두 보유한 국내 유일의 인물이다. 필자는 원래 와인통이다. 오랜 기간 와인 마케터로 일하다 사케의 매력에 빠진 전형적인 케이스다.

    김혜주│알덴테북스 대표│

    권위에 대한 복종 _ 스탠리 밀그램 지음, 정태연 옮김

    “신념에 따라 도둑질이나 살인, 폭력을 혐오하는 사람도 권위자에게 명령을 받으면 그러한 행위를 상대적으로 쉽게 할 수 있다.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명령을 받게 되면 평소에는 하지 않을 행동도 주저 없이 하게 된다.” 저자는 복종관계에 놓인 개인은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일을 행할지라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30년 전 출간된 이 책은 지금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저자의 지도교수 제롬 부르너는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사회, 어느 곳에서나 권위에 대한 복종이 너무나도 쉽게 발생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행동 대부분은 맹목적이거나 관습에 순응하는 뿌리 깊은 습관에 따른다는 것도.” 밀그램의 보고서가 발간된 이후 개인의 ‘분별력 있는 판단’의 중요성이 회자됐다. 에코리브로/ 317쪽/ 1만5000원

    죽음의 중지 _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은 이렇듯 평범한 물음에 대해 대답한다. 동화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실상은 가혹하다. 아픔이 지나쳐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이는 고통만 이어가고, 이들을 곁에 둔 이들 또한 허우적댄이다.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삶의 규칙과 절대적인 모순을 이루는 이 사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엄청난, 그리고 이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이해해줄 만한 불안을 일으켰다. 총 40권이나 되는 세계사 책을 훑어보아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는 서술은커녕, 단 한 건의 사례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기만 하면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죽음의 의미가 읽힌다.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라마구는 마르케스, 모르헤스와 함께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꼽힌다. 해냄/ 282쪽/ 1만2500원

    권력의 병리학 _ 폴 파머 지음, 김주연 리병도 옮김,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기획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받을 권리를 가진다. 불평등의 간극이 커지면 갈등도 커진다는 것이 ‘권력의 병리학’의 중심 주제다.” 책은 저자의 목격담과 자유주의 인권관 주장,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권력의 병리 작용을 드러낸 그는 의사이자 인류학자다. 페루, 러시아, 르완다, 멕시코에서 현지 사람들의 치료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보건과 인권, 불평등한 사회가 질병의 확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책을 써왔다.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 신장을 위한 시민단체 ‘건강과 동반자’ 창립 임원이며 하버드 의과대학 세계보건 및 사회의학부 사회의학과 부학장이다. 후마니타스/ 507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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