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호

듣지 않고 들으리라, 오래된 이야기들을

  • 김갑수│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입력2009-04-02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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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껏 휴대전화 번호를 몇 번이나 바꿨는가? 사람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데는 여러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새것이 주는 희열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귀찮고 피곤하고 때론 아프기까지 하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그래서 있는 모양이다.
    • 그러나 우리는 다만 익숙해서 편할 뿐 그 좋은 것의 진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새것에 또다시 눈길을 빼앗기는 이유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듣지 않고 들으리라, 오래된 이야기들을
    You changed nothing! ” 줄라이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이토가 외친 첫마디다. 그는 1991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묵었던 광화문의 내 독신 아파트 풍경을 떠올렸다. 1998년인가 결혼해 부인과 함께 찾아와 구경했던 내 공덕동 작업실 풍경 역시 기억해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게 똑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용물은 대부분 달라져 있었다. 오디오 기기는 전부 다른 것이고, 음반의 양은 상상할 수 없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토의 눈에 ‘킨상(이토가 나를 부를 때 이런 소리를 낸다)’의 공간은 언제나 똑같아 보이는 모양이다. 수많은 기기, 음반, 그리고 정신없이 쌓여 있는 책, 거기에 우중충하게 늘어져 있는 용도 불명의 소품들까지. 그렇구나! 나는 언제나 똑같다. 하나도 변치 않고 똑같아 보이는 세월을 몇십년째 흘려보내고 있구나!

    이토와는 여러 해째 소식이 끊겨 있었다. 일본에 들르면 만나곤 했는데, 내 불찰이 컸다. 영문 편지에 답장하는 일이 여간 고되지 않아 여러 차례 미루었더니 그예 연락이 두절되고 만 것이다. 재작년에 두 차례나 도쿄에 들렀지만 미안한 마음에 연락도 못했다.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내 성향이 우리를 다시 연결해주었다. 모처럼 긴 휴가를 얻은 그가 오래된 내 휴대전화 번호로 국제전화를 걸어 통화가 된 것이다.

    ‘마이 애니멀 프렌드’

    이토와의 인연을 거슬러 가본다.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직장이 출판사다. 산더미처럼 자료도서를 쌓아놓고 검토하는데(정확히 말해 커닝할 거리를 찾는데), 괜찮아 보여 골라 놓은 책의 뒷면에는 항상 후덕한 할아버지 캐리커처와 함께 같은 기획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나오 준(七尾 純). 일본의 유명한 아동도서는 죄다 나나오 준 선생을 거쳐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죄스럽기도 한 데다, 마음 깊이 우러나는 존경심을 참을 수 없어 긴 편지를 보냈다. 그 인연이 만남으로까지 이어졌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나나오 선생이 서울을 방문한 것이다.

    인연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나고야 공대 대학원생이던 나나오 선생의 아들이 배낭여행 삼아 서울로 나를 찾아왔다. 사시나무처럼 가냘파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함께 간 성균관대 앞 카페에서 나의 권유로 노래를 부르다 불같이 노한 주인장에게 쌍욕을 들으며 쫓겨나기도 했다. ‘어디 감히 왜놈 노래를 부르냐’는 우국지사의 불호령이었다. 그때 엉엉 우는 그를 달래다 우리는 형제처럼 가까워졌다. 대학원생 이토 요분은 세파를 전혀 겪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좀 늦은 나이에 장가를 들었을 때는 가장 먼저 새신부를 대동하고 도쿄의 나나오 선생을 찾아뵈었다. 물론 나고야에 사는 이토와도 며칠을 함께 보냈다. 가녀린 나무나 풀 같아 보이는 이토를 두고 나는 ‘플랜트’라고 불렀는데, 그는 나를 ‘마이 애니멀 프렌드’라며 놀렸다. 온갖 과잉으로 넘쳐나는 천성을 그도 알아 본 것이다.



    나나오 준을 통해 알게 된 일본 출판계 전문인들이나 이토를 통해 만난 대학원생들은 좋은 일본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만나기 전에 한국에 대해 열심히 공부까지 하고 나왔다. 가령 “한국에 고추가 전래된 것이 불과 300년 전인데 왜 그렇게 맵게 먹느냐?”고 묻는다. 내가 알 턱이 있나! “중국과 일본은 모두 긴 나무젓가락을 쓰는데 왜 한국만 가느다랗고 짧은 쇠 젓가락을 사용하는가?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불편하지 않나?” 아휴, 생각이나 해봤나! 김유신 장군에 대해, 세종대왕에 대해, 혹은 인사동의 유래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캐묻는데 애고야, 뭐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나고야 공대생들은 나로 인해 한국 사람은 자기 나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토와 지낸 3월초 나흘은 흡사 안타깝게 헤어진 옛 애인과 재회해 보낸 시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그도 벌써 서른여덟 살의 중견 사회인이다. 첫 인사 때 박사과정이었던 그의 아내는 대학교수가 됐고, 이토도 소니사(社)의 중견 엔지니어로 성장했다. 하지만 녀석의 외양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싱겁게 웃기는 버릇도 여전하다. 세월도 그도 정지해 있는데 그의 사회적 지위만 불쑥 위로 치켜 올려진 느낌이다.

    부여집, 열차집, 영동골뱅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군요! ” 하는 이토의 탄성 때문에 새삼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나는 처음 개설한 은행계좌 하나만 몇십년째 쓰고 있다. 신용카드 역시 그 계좌로 만든 것 하나뿐이다. 휴대전화 번호도, 유선전화 번호도 개통할 때 받은 그대로다. e메일 역시 처음으로 만든 유니텔의 유료 계정이 유일하다(왜 여태 돈 내고 e메일을 쓰냐는 지적을 자주 받는데, 바꾸기 싫어서 할 수 없이 매달 1만400원을 낸다).

    하나만 고수하는 경향에 ‘입사치’를 빼놓을 수 없다. 맛난 것이 먹고 싶을 때 일삼아 찾아가는 식당이 셋 있는데 모두 수십년째 단골이다. 청계천 6가 천막골목 안쪽, 마른 날에도 질척질척한 철공소들 사이에 돼지곱창구이집 ‘부여집’이 있다. 1980년 봄날, 세상을 피해 백양사에 딸린 암자에 한동안 숨어 지낸 적이 있다. 그때 나를 데려갈 상이군인을 소개받은 장소가 부여집이다. 그때 이래 지금까지 나는 억척스러운 단골이다. 특히 하루 데이트의 종착지는 대부분 부여집이어서 주인장은 내가 사귄 여인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부여집 아저씨가 모르는 여인은 내가 사귄 여인이 아니라 그냥 여인이다. 물론 ‘그냥 여인’들과도 자주 간다. 언젠가는 KBS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 여인과 함께 갔다가 내내 철공소 아저씨들의 부릅뜬 시선을 받아야 했다. 부여집에 갈 때마다 왁자하게 들리던 ‘씨부럴’ 등의 간투사가 그날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험악한 술집에 어울리지 않는 꽃을 두고 좌중에 긴장된 분위기가 깔렸던 것 같다. 주인아저씨는 비싼 오소리감투를 서비스로 내놓았다. 그날따라 유난히 옷차림이 화려했던 아나운서는 처음 먹어본다면서도 돼지 창자를 아작아작 잘 씹어 먹었다(고맙다).

    종로 피맛골 안 ‘열차집’엔 오직 아내하고만 들른다. 그곳에서 오래 일한 할머니 종업원 두 분이 우리 부부 얼굴을 잘 아는 터라 다른 여인을 대동하기가 껄끄럽다. 돼지기름으로 부쳐낸 녹두빈대떡과 어리굴젓의 조화! 그 맛을 모르면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 그 사람, 맛없는 사람이다. 그 피맛골이 곧 헐리는 모양인데, 내 집이 헐리는 것처럼 괴롭다(제발 여기저기 부수지 좀 마라! ).

    ‘치열한 철면피한 물질’

    또 하나의 단골은 충무로 골뱅이 골목에 있는 ‘영동골뱅이’다. 이 집만 20여 년째 다녀서 무려 200군데나 된다는 인근 식당의 골뱅이 맛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인상 좋던 주인아주머니는 이미 은퇴하고 주먹코 아들이 이어받았는데, 텔레비전 맛집 소개에 여러 번 등장한 모양이다(나는 벽에 걸린 텔레비전 화면 캡처 사진이 정말 보기 싫다). 영동골뱅이에서 나오면 전방 5m까지 마늘 냄새가 팍팍 풍긴다. 제아무리 ‘깔끔녀’라도 한 젓가락 먹어보면 이내 마늘과 파절임 범벅에 탐닉하고 만다. 나는 화사한 옷차림과 고운 화장발에서 과격하게 뿜어져 나오는 여인의 마늘 향기에 익숙하다.

    우연히 선택된 대상 하나를 계속해서 끌고 가는 것, 되도록 변경하지 않으려는 것, 거기에 무슨 깊은 뜻이 있으랴만 굳이 찾자면 ‘과거 연민 미래 불안’이라는 내 숙명적 기질이 오래된 것과 편안한 조합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것은 특별한 것이다. 음식도 사람도. 시인 정현종의 오래된 첫 시집 ‘고통의 축제’에 이런 시구가 있다.

    오오 노시인들이란 늙기까지 시를 쓰는 사람들. 늙기까지 시를 쓰다니! 늙도록 시를 쓰다니! 대한민국 만세(!) 그분들이, 예술보다 짧은 인생의 오랜 동안을 집을 찾아 헤매다 돌아온 어린애라는 느낌을 나는 참을 수 없다. 반갑구나 얘야, 내가 망령이 아니다. 얘야 소를 잡으마,’-‘노시인들, 그리고 뮤즈인 어머니의 말씀’ 중에서-

    ‘오랜 동안을 집을 찾아 헤매다 돌아온 노시인’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그토록 열망했던 시인의 삶이었건만 어느 결엔가 시는 나를 떠나가버렸다. 대신 ‘오랜 동안 헤매다 돌아온 어린애’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어린애 방식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그런데 시가 떠나고 남은 자리, 남겨진 삶에 대한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시가 ‘고통의 축제’ 시집에 적혀 있다.

    ‘내 귀에 밝게 와서 닿는/눈에 들어와서 어지럽게 흐르는/저 물질의 꼬불꼬불한 끝없는 미로들./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능청스런 치열한 철면피한 물질! ’ -‘철면피한 물질’ 중에서-

    정현종이 노래한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철면피한 물질’은 무얼까? 시 전문(全文)을 제대로 읽는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철면피한 물질은 진짜 물질이다. 시를 떠나보내게 된 배경에 온갖 종류의 물질이 개입돼 있다. 돈이거나 돈으로 산 물건들이다. 정말 철면피한 물질들이다. 참 쓸쓸한 일이다. 재산 따위를 쌓으려 애쓰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러모아놓은 오디오며 음반, 책들이 모두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불과하다. 참으로 ‘능청스런 치열한 철면피한 물질! ’

    그런데 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오래된 것들은 더는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다. 분명 쇳조각이나 플라스틱이나 종이로 구성돼 있지만 거기에 세월이 담기면 물성 너머 어떤 자취가 드리운다. 물질이 추상화하고, 물질의 입자와 체적이 언어로 변용된다. 나를 스치고 지나간 세월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때로 수치스럽고 때로 치욕스럽고 너무 많은 순간 비겁하고 치사했다(차마 그 내역을 말할 수는 없다). 내 오래된 e메일과 휴대전화 번호와 은행계좌 따위가 바로 그 더러운 내역의 거주지다. 그러나 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더러운 사연들이 오래되면 적어도 나에게는 더럽지 않다. 웃기기도 하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다시 ‘고통의 축제’를 읽는다.

    ‘여기 우리는 나와 있네/고향에서 멀리/바람도 나와 있고 불빛도/평화가 없는 데를 그리움도 나와 있네.’ -‘외출’ 중에서-

    오래된 것들. 참으로 오래된 것들. 어떤 우연의 개입으로 나에게 닿아 오랜 시간을 함께 흘러온 오래된 것들. 오래된 것들은 스스로 추억을 재구성해 현실의 나를 새롭게 조립한다. 간혹 나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낡아버린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느끼게도 만든다. 줄라이홀을 보고 20년 전의 작업실과 똑같다며 이토는 “You changed nothing! ”을 외쳤다. 그러니까 줄라이홀은 오래된 작업실이다. 오래된 공간이란 얼마나 다정한가!

    풀레인지와 인클로저 바람

    오디오로 인한 소란이 도무지 멎지 않는다. 대개는 몇 개월 혹은 1년 주기로 한동안 바람이 불었다가 사그라지는데 이번엔 꽤나 오래간다. 턴테이블 바람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곧바로 스피커 바람이 불었다. 풀레인지와 인클로저가 요즘 관심사다. 설명해보면 이렇다. 먼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스피커는 멀티웨이 시스템이다. 고음을 담당하는 트위터와 중음의 스쿼커, 저음을 내주는 우퍼, 이렇게 3웨이(way)가 기본 구성이다. 고음과 저음만으로 구성된 2웨이도 많고, 4웨이나 5웨이도 가능하다. 이 각각의 유닛에 적절한 전기신호를 보내는 장치가 네트워크다. 그러니까 스피커란 둘 이상의 유닛과 네트워크 그리고 이것들을 수납하는 인클로저(통)의 조합이다.

    소리를 만드는 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상호보완적이다. 스피커 유닛은 보통 알니코(천연자석)인지 페라이트(인공자석)인지 따지는데, 생선회에서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를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알니코 자석으로 만든 유닛이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그밖에 네오디뮴 소재도 있고 아주 오래된 것은 자석이 아니라 코일로 이루어진 필드 타입도 있다. 네트워크는 재주꾼이 새로 만들지 않는 한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무래도 오리지널을 더 높게 친다. 문제는 인클로저다.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밀폐형인지, 덕트(duct)로 진동을 뿜어내는 베이스리플렉스(bass-reflex) 방식인지, 미로처럼 돌아 나오는 백로드 타입인지에 따라 매우 다른 음색이 만들어진다. 인클로저의 재료가 무엇인지도 관건이다. 맑고 투명한 울림의 미송이 가장 선호되며, 깊고 중후한 울림으로는 자작나무를 택한다. 현대 스피커에는 호두나무도 많이 사용된다. 어쨌거나 멀티웨이 스피커 시스템은 사운드 디자이너가 구성한 조합의 예술이다. 어떻게 조합했는지에 따라 같은 재료가 전혀 다른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스피커를 선택할 때는 바로 이 구성방식의 효과를 이해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음악 장르를 대입시켜야 한다.

    내 스피커는 대부분 멀티웨이 방식이었다. 그러다 최근 멀티웨이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스피커 맛을 새로 알았다. ‘풀레인지’로 불리는, 네트워크 없이 한 개의 유닛만으로 고중저음 전역을 소화하는 방식이다. 실제 고역도 저역도 빈약하지만, 유닛 간에 겹침이나 간섭이 없고 네트워크로 인한 착색이 없는 소리가 나온다. 순수한 음향세계가 바로 풀레인지의 강점이다. 대부분의 풀레인지는 유닛만 따로 돌아다니고 사용자가 임의로 인클로저를 제작해 사용한다. 그런데 내 풀레인지 열광은 우연히 맞닥뜨린 인클로저로부터 출발했다.

    중후하면서도 에로틱한 사운드

    나른하게 졸음이 오는 어느 늦은 오후,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사연을 발견했다. “여긴 청주임다. 수피카 통 두 가지 분양함다. 허벌나게 무겁슴다. 가격은 없음다. 기냥 빨랑 가져가십쇼.” 어떤 청주 사나이가 자기가 쓰던 스피커통 두 종을 그냥 주겠다고 오디오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기기를 설명해놓은 글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름이 낯익은 고수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허벌나게’ 시리즈였다. ‘거 허벌나게 고마운 사람이구먼.’ ‘지도 허벌나게 갖고 싶구먼유’ 등등. 나도 장난으로 댓글 대열에 한 자락 끼어들었다. ‘지가 허벌나게 좋은 책을 선물할 수 있는뎁쇼?’

    몇 시간 후 뜻밖에 나에게 전화가 왔다. 걸걸한 근육질의 음성이다. 승용차로는 불가하니 엄청 큰 차를 동원해야 하고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가져가라는 전갈. 큰 차를 어떻게 수배했는지 시시콜콜한 얘기는 그만두자. 다만 걸걸한 목소리의 사나이가 BMW 최고급 기종을 몰고 나타났다는 사실, 그가 데려간 곳이 내 작업실보다 훨씬 큰 규모의 개인 음악 감상실이었으며 오디오뿐 아니라 거창한 드럼세트를 갖추고 연주를 즐기는 인물이라는 사실, 그가 유명한 금융회사 지점장으로 허벌나게 교양인이었다는 사실은 일러두자.

    어쨌거나 세상에는 별난 사람이 참 많다. 그가 공짜로 선사한 인클로저는 최고급 원목으로 장인이 제작한 미로식 백로드 타입이었다. 제작하려면 그 비용이 웬만한 중급 스피커 값보다 더할 것이다. 그토록 허벌나게 무거운 통을 어떻게 사내 둘이 번쩍 들어 올렸는지 모르겠다. 날아갈 듯이 서울로 돌아왔고 곧장 알맹이(통만 있으니 유닛을 구해야지!)를 찾아 미친 듯이 헤매다 광주광역시에 숨어 있던 영국제 굿맨 액숌 10 유닛을 급행으로 구입했다. 손재주 있는 친구 서병성이 꼬박 한나절 걸려 밑바닥 바퀴까지 장착 완료!

    이렇게 손에 들어온 풀레인지 스피커 사운드가 나를 허무의 바다에 풍덩 빠뜨리고 말았다. 대체 이럴 수가! 줄라이홀 벽은 온갖 이름난 스피커들로 빽빽하다. 레슬링 선수 같은 하츠필드의 저역이 용트림을 하고, 윤기가 찰진 기름 같은 오이로다인이 소프라노의 물방울을 영롱하게 튕겨낸다. 그러나 아서라, 알맹이 하나만으로 촉촉하게 뿜어내는 굿맨 풀레인지의 중후하면서도 섬세하고 문득문득 에로틱한 사운드! 그전에 평판에 장착시킨 풀레인지의 위력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신비롭고 신선한 음향의 비경이 펼쳐질 줄은 정말 몰랐다.

    공짜로 허벌나게 멋진 인클로저를 얻었다. 거기에 장착한 풀레인지에서 기대 이상의 사운드가 펼쳐진다. 이만하면 행복하게 만족의 잠을 취해야 옳겠건만, 좋은 일은 내게 언제나 새로운 병통의 시작점이었다. 좋으면 막장까지 좋기 위해서, 좋은 일의 끝장을 보려고 눈을 가리고 앞으로 직진하는 것이 ‘이 남자가 사는 법’이다. 갖가지 타입의 풀레인지를 탐색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인클로저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다.

    듣지 않고 들으리라, 오래된 이야기들을

    현대인은 일상의 인상 깊은 소리(표식음)에 쉽게 이끌린다.

    ‘이 남자가 사는 법’

    먼저 몇 해 전 별생각 없이 처분한 알텍 755A를 다시 구입했다. 전에 가졌던 것은 일본에서 제작된 덕트 타입의 인클로저인데 새로 구한 것은 미국에서 만든 밀폐형 통으로 더 많은 출력을 요구한다. 몇 년째 통을 만나지 못한 채 선반에서 혼자 놀고 있던 텔레풍켄 ‘빨간배꼽’ ela 8에게 인클로저를 구해줘야 했다. ‘빨간배꼽’은 풀레인지의 정석과도 같아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애용되는 기기 중 하나다. ‘가난한 자의 웨스턴일렉트릭’으로 불리는 회사가 있다. 웨스턴에 OEM 방식의 납품을 많이 했던 듀케인이다. 듀케인에서 만들어 50년 동안 용케도 잘 보관해 바삭바삭하게 건조된 통울림이 낭랑한 인클로저와 8인치 유닛을 구해야만 했다. 나아가 클랑필름의 1940년대 걸작품 나비댐퍼 유닛에 온켄 인클로저를 구해줘야 했다(이 놈은 굉장한 물건이다). 풀레인지는 아니지만 구동방식이 비슷한 탄노이 모니터 골드 10인치도 새 인클로저를 맞춰줘야 했다. ‘이베이’를 통해 낙찰받은 영국제 굿맨 8인치는 운송 중에 있고, 그리고, 그리고 또….

    대관절 이거이 대관절 뭔 일이당가! 나는 난데없이 대여섯 조의 풀레인지 스피커를 새로 들여놓고 말았다. 그러고도 몇 종류를 더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실내는 자금자금한 스피커들로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힌다. 이 모든 구입 행위는 ‘해야만 했다’로 서술되어야 한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막을 수 없는 어떤 위력에 피동적으로 이끌린 것이기 때문이다. 풀레인지 유닛과 인클로저를 구입하는 과정은 한 번도 오디오숍을 통하지 않았다. 전부 인터넷이나 지인을 통한 개인 거래였다. 청주에서의 행복한 만남도 있었지만 복장이 터져 잠 못 들게 만든 상대도 있었다. 그건 늘 그렇다.

    침묵이 일러준 소리의 본질

    풀레인지 섭렵에 여념이 없던 와중에 이토가 다녀간 뒤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들판에 외따로 서 있는 나무 같은 식물성 인간. 그는 언제나 조용하다. 내 삶이 온갖 욕망으로 부글부글 얼마나 시끄럽고 부산스러운지 이토의 잔잔한 음성이 일깨워준다. 그가 돌아가고 며칠째 틈틈이 월터 휘트먼의 일기 모음집 ‘나 자신의 노래’를 뒤적이고 있다.

    노경의 휘트먼은 아마도 이토와 나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감싸안아줄 것이다. 시끄러움과 고요함 사이에 월터 휘트먼의 시정이 담겨 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할 것이다. 나는 서로 합쳐지고 융화되거나 뒤따르는 모든 소리를 듣고 있다. 도시 안의 소리, 도시 밖의 소리, 밤과 낮의 소리들을…’

    합쳐지고 융화되는 소리나 음악은 도취의 열광을 자아내는 한편 존재를 피폐하게도 만든다. 너무 많은 소리, 너무 많은 음악에 휩싸일 경우다. 인도의 신비주의자 키르팔 싱은 소리 없는 침묵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소리의 본질은 움직임과 침묵의 양쪽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존재에서 비존재로 지나간다. 소리가 없을 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듣는 능력 그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소리가 없을 때조차 듣는 힘은 매우 예리하다. 한편, 소리가 있을 때에는 듣는 힘은 거의 개발되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의 예민함. 나는 너무 많은 소리에 파묻혀 듣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요즘 생활에, 특히 작업실에 결핍된 것은 정적과 침묵이 아닌가 싶다. 단순한 무음이 아니라 음악 다음에 찾아오는 정적 같은 것. 며칠 간 앰프에 불을 지피지 않고 늘어선 소리통들을 다만 형상으로만 쳐다보면 어떨까? 스피커에서 음악을 거둬버리면 무엇이 들릴까? 사람에게서 말을 거둬버리면 어떤 존재로 변할까? 케사라(Che Sara), 무엇이 될까?

    음악이 아닌 소리에서 특별한 인상을 이끌어내고자 음향학자 머레이 쉐이퍼는 표식음이라는 것을 정의했다. 그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느꼈다는 표식음의 사례를 옮겨본다.

    -파리 카페의 타일이 덧대어진 바닥에 무거운 금속 의자가 끌리는 소리

    -파리 지하철에서 오래된 객차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울림, 그리고 이어서 걸쇠가 떨어질 때 딸캉거리는 날카로운 소리

    -호주 멜버른 노면전차의 가죽 손잡이 소리-가죽손잡이를 강하게 당기면, 수평으로 걸린 기다란 봉에 미끌려, 키익키익 소리가 난다.

    -터키 콘야 마을 마차 택시의 고음 벨소리

    -런던 교외 지하철의 몇 개 역에서 녹음 방송으로 ‘문에서 떨어져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하는 인상적인 목소리.

    아름다운 음악이 주는 피로감

    대개 침묵과 정적은 예찬의 대상인 반면 소리와 소음은 혐오의 대상물로 전락하기 일쑤다. 그렇게 보면 음악처럼 시끄러운 소음도 없을 것이다. 음악소리는 정적의 일부로 동화되려 하기보다 끊임없이 귀를 잡아당기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니 음악을 사랑한다면서 정적을 예찬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까?

    듣지 않고 들으리라, 오래된 이야기들을
    김갑수

    1959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국어국문과 졸업

    시인 및 음악칼럼니스트

    저서 : ‘나의 레종데트르’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시집 ‘세월의 거지’ 등


    갑자기 늘어난 줄라이홀의 스피커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려준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이 피로감은 왜일까? 시간의 문제인 것 같다. 만들어진 지는 수십년이 지났으나 내 곁에 머문 시간이 너무 짧다. 오래된 e메일 주소, 오래된 전화번호, 오래 다닌 식당에서 편안한 안도감을 느낀다. 새 식구가 된 풀레인지 스피커들은 그 같은 안도감을 주지 못한다. 아마 평온한 안도감이 찾아올 때까지 견디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다 보면 오륙십 살이 넘은 유닛과 통들이 저희의 세월을 내게 가르쳐줄지 모른다.

    음악을 틀지 않고 물끄러미 수풀처럼 우거진 스피커들을 쳐다보노라면 조금씩 소리의 말문이 열리는 듯도 하다. 듣지 않고 들으리라, 오래된 것들의 오래된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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