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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미사일·개성공단 … 좌충우돌 북한의 속내

북한은 지금 준(準)전시 상태, 인민 군기 잡는 중

  • 신석호│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NLL·미사일·개성공단 … 좌충우돌 북한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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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미사일·개성공단 … 좌충우돌 북한의 속내
대북 삐라에 놀라다

북한이 ‘수령 절대주의 체제’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이 줄어드는 실질적 손실보다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그것이 수령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일 최고지도자 1인에게 권력이 고도로 집중된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다. 이 체제에서 최고지도자는 ‘체제 그 자체’이며 ‘체제 유지’라는 국가의 목적은 곧 최고지도자의 안위라고 할 수 있다. 황 비서에 따르면 이 체제에서 국가의 모든 정책은 수령의 권위를 높이고 수령의 지배권을 확대하는 데 집중된다.

북한은 1990년대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라는 대외적 위기에 직면해 체제 유지를 위해 대남정책에서 ‘민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는 1990년대 ‘민족대단결론’에 대한 강조를 시작으로 2000년대에는 ‘우리민족끼리’라는 담론으로 정착됐으며 이 연장선에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의 6·15공동선언과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의 10·4정상선언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남한 내 지배적 여론이 북한의 민족담론에 등을 돌린 것은 북한 지도부의 관점에서는 최고지도자가 내세운 대남전략과 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수령의 권위가 감히 실추된 상황에 해당한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이 지난해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사실이 9월 한국 등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특히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소식을 담은 남한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삐라)이 북한 전역에 살포됐다. 납북자가족모임(회장 최성용)이 만든 전단에는 “우리와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김정일은 자유세계의 언론에 의하면 막내아들 김정운(25세)의 치명적인 사고와 병으로 충격을 받고 풍을 만나 움직이기 힘든 반신불수 상태라고 합니다. 당신들의 ‘위대한’ 독재자의 말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독재자가 병들어 쓰러져 있습니다”라고 적시했다. 이를 통해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인민들의 입과 입을 통해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지도부는 민감하게 대응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중순 조선노동당 내 비서국(우리의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이 임명한 고위간부들의 동향을 24시간 파악해 보고하도록 체제 유지 담당 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트 내부에서 후계 문제가 은밀하게 논의되는 등 절대 충성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외국 정보기관들이 대북 정보활동을 벌이는 중국지역에서 내부 비밀 누설자 색출활동을 벌이고 내국인의 해외출장을 제한하고 외국인의 방북을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등 외부 정보의 유입과 유언비어 확산 방지에 부심했다. 이 와중에 남측의 전단이 살포되면서 전방의 군인들마저 동요하고 있다고 판단되자 이를 빌미로 대남 공세를 강화한 것이다.



대남 공세의 3단계 심화

실제로 지난해 북한의 대남 공세를 추적해보면 김정일 건강 이상 이후 대남 공세가 질적, 양적으로 강화됐음을 알 수 있다. 2008년 이후 북한의 대남 공세는 세 시기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먼저 지난해 3월24일 북한이 개성공단 내에 있는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에 상주하던 한국 당국자 11명을 사실상 추방한 이후부터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시기다.

두 번째는 지난해 10월2일 북한 군사실무회담 북측 대표단이 남측 군 당국에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 통행의 제한 차단을 뜻하는 이른바 ‘12·1조치’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그해 12월1일자로 실행에 옮긴 이후부터 같은 달 17일 현장을 확인하는 시기다.

세 번째는 올해 1월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우리의 총대는 원쑤들의 그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을 주장한 이후부터 대남 무력도발을 시사하다가 2월24일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를 예고한 뒤 한미 합동군사훈련 반대를 명분으로 한국은 물론, 미국과의 무력 대결 긴장을 조성하는 시기다. 세 시기의 특징은 표와 같다.

먼저 Ⅰ시기와 Ⅱ시기의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시기 북한은 남한 당국과의 관계를 단절한 뒤 민간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들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의제를 병렬적으로 내놓는다. 이때는 행동보다는 말이 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Ⅱ시기에 들어서서는 민간관계도 제한적으로 차단했으며 말뿐이 아닌 ‘12·1’조치라는 적극적인 행동화를 단행했다. 모든 시기에 군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Ⅱ시기 이후에는 군이 직접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Ⅱ시기의 경우 군은 모두 네 차례 실제 모습을 나타냈다.

당국 간 회담을 끊은 뒤 처음으로 10월2일 군사실무회담과 같은 달 군사실무책임자 접촉에 나타났고 국방위원회 간부들이 11월6일과 12월17일 두 차례에 걸쳐 개성공단에 직접 나타나 현장을 시찰하고 남측 당국자들을 위협했다. Ⅲ시기의 경우 올해 1월17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TV에 나타난 것이 사례다.

북한은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이 터진 이후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8월 중순까지 사건 관련 대응 조치 3건만을 내놓으며 이렇다 할 대남 공세를 하지 않았다. 또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도 여간첩 원정화 사건에 대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1건과 9월5일자 김정일 담화, 9월8일자 공화국 창건 60돌 경축 중앙보고대회 문건 등 3건의 대남 메시지를 제외하고는 일절 대남 공세를 하지 않았다. 이들이 10월 초를 계기로 대남 공세의 질적 전환을 꾀한 것은 당연히 김정일 건강 이상이 영향을 주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남한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삐라) 발송이 한 원인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군이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돈이 되는’ 개성공단까지 차단하려 한 것은 최고지도자의 건강 이상에 따른 엘리트들의 긴장 고조와 충성 경쟁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우선 ‘유일사상 10대 원칙’ 등에 따라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훈련받은 북한 엘리트들이 김정일의 건강과 사생활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한 대북 전단 문제를 그냥 앉아서 말로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민간단체들은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전단을 살포했고 북한은 이에 대해 말로 대응해왔던 점도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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