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쇼핑의 재구성

  • 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9-04-30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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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의 재구성

    최근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은 루이비통 네버풀. 1920년에 처음 선보인 디자인이다.

    발신정보:Boy from N.Y.(2009.4.15)

    수신인: 서울 쇼퍼홀릭

    문서제목: Happy for You!


    메일 정말 기쁘게 읽었답니다. 그 가방은 쇼퍼홀릭씨에게 정말 잘 어울릴 거예요. 여름에 서울 갈 테니, 꼭 가방 든 예쁜 모습 보여줘요!

    발신정보: 서울 쇼퍼홀릭(2009.4.14)



    수신인: Boy from N.Y.

    문서제목: 오옷! ^*


    지금 막 택배아저씨가 제게 가방을 전해주었어요.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제 보잘것없는 상상보다, 훨씬 더 멋지네요. 게다가 가방 안쪽에 씌어진 사인 ‘Marc!’ ‘리미티드 에디션의 스페셜 리미티드’니 비싸게 팔라는 친구도 있어요. 절대절대 안될 일이죠. 물론 경제위기에 가방을 쇼핑한 건 천벌을 받을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 모든 걸 잊었어요. 1년 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고 싸구려 백반만 먹을 각오입니다. 여름휴가 여행도 깨끗이 포기했어요. 당신은 21세기에 내가 찾은 진정한 나의 친구예요.

    발신정보: 서울 쇼퍼홀릭(2009.4.8)

    수신인: 서울 근검절약

    문서제목: Re: 절대 사지 말 것!


    메일 잘 읽었어. 네 말이 모두 맞아. 전세계가 경제위기고,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하고, 차라리 채권에 투자해보라는 말도. 하지만 넌 이 가방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서 그래. 아티스트의 그래피티가 들어 있어서 소장가치도 있거든. 내가 부도덕한 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잖니. 오늘도 또 죽도록 일하고 있다고. 너한테 조언을 구할 때 이런 뻔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건만.

    P.S. 다음 주 월요일 약속은 미루자. 또 야근이거든. 바빠서 이만!

    발신정보: CRAZYFORBAG(2009.4.7)

    수신인: 서울 쇼퍼홀릭

    문서제목:Re: You MUST HAVE IT!!!!!


    네가 이렇게 소심해지다니!! 불황이란 게 실감난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너는 늙고, 가방은 ‘솔드아웃’될 거야. 지금 그걸 갖지 않으면, 파리에 남겨둔 애인처럼 죽을 때까지 눈앞에서 어른거려 평생 후회하게 될 거다. 네가 늙어서, 혹시 그 가방을 갖게 되더라도 네 구부정한 등과 늘어진 팔뚝살과 어울리지도 않을 거고. 가능할 때 움켜잡을 것!

    발신정보:Boy from N.Y.(2009. 4.2)

    수신인: 서울 쇼퍼홀릭

    문서제목: 현명한 선택


    분홍색. 내심 나도 분홍이 좋았답니다. 뉴욕에서도 분홍을 들고 다니는 남자는 드물어서 난 포기했죠. 하기야 서울에서는 남자들이 까만 브리프 케이스가 아니라 프린트가 있는 토트백만 들어도 이상하게 보더군요. 서울에서 토트백을 들고 한 모임에 갔을 때, 어떤 여자분이 조심스럽게 물어보더군요. “게이세요?”참, 가방은 지금 잘 패키징해서 익스프레스로 보낼게요. 가방값은 ‘잇백닷컴’을 찾아보시고, 오늘 환율(다행히 좀 내렸군요)을 곱해서 보내주세요. 마음 같아선 선물하고 싶지만 제 가방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주세요!

    발신정보: 서울 쇼퍼홀릭(2009. 3.25)

    수신인: 부장님

    문서제목: 뉴욕통신원 건


    지시하신 대로 뉴욕에서 직접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조사해줄 수 있는 사람을 구했습니다. 휘트니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여성으로 얼마 전 한국에 왔던 광고기획자 조엘씨 소개인데, 그의 책임감과 안목은 믿으셔도 좋을 겁니다. 사실 제가 쇼핑에 관해 아주아주 사소한 부탁을 슬쩍 했는데, 그것도 잊지 않고 있더군요. 보통의 한국 남자들이라면 한번 알아볼게, 말해놓고 잊었을 겁니다.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이 있다면, 또 쇼펄로지(shopology)적 성이 따로 있나 봅니다. 분명한 취향, 예민한 표현 방식, 충동적 욕망 등등의 특질로 남녀를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죠. 걱정마세요. 부장님은 모든 면에서 남성다우십니다. ^^;:

    발신정보: Boy from N.Y.(2009.3.22)

    수신인: 서울 쇼퍼홀릭

    문서제목: Surprise!!!


    정말 놀랍고 기쁜 소식 전할게요! 가방을 구했답니다!! 나와 같은 건물에 있는 패션회사의 보스가 바로 그 가방을 다른 색깔로 두 개나 갖고 있는 걸 봤지 뭐예요. 그 브랜드의 새 부티크 오픈 파티 때 하나는 디자이너로부터 선물을 받았고-그는 거물이랍니다- 하나는 비즈니스 관계를 생각해서 구입했다는군요. 쇼퍼홀릭씨가 얼마나 갖고 싶어하는지 알기에, 하나를 팔라고 설득했어요. 로고프린트 위에 씌어진 그래피티 컬러가 하나는 푸샤 핑크, 다른 하나는 오렌지예요. 어떤 색을 원하세요?

    발신정보: 서울 쇼퍼홀릭(2009. 3.10)

    수신인: Boy from N.Y.

    문서제목: 가방에 대하여


    바람과 구름을 뚫고 용감무쌍하게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잠시 상상해봤습니다. 참, 가방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솔드아웃’된 아이템을 구입할 방법도 없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광고일을 하시니까 그쪽에 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P.S. 지난달 세일에 구두를 하나 샀기 때문에 더 이상 지출은 무리인 것 같아요. ㅠㅠ.

    발신정보:Boy from N.Y.(2009.3.8)

    수신인: 서울 쇼퍼홀릭

    문서제목: 뉴욕 도착


    뉴욕에 돌아왔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뉴욕의 미술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큐레이터를 찾아볼게요. 글 잘 쓰고 시크한 사람이면 더 좋겠죠? 그리고 쇼퍼홀릭씨가 말한 그 가방도 열심히 알아볼게요. 리미티드 에디션이기 때문에 구할 가능성이 높진 않아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술은 역시 서울에서 떠들썩하게 마시는 게 제일 맛있는 거 같아요. 한국이 그리워요.

    이 칼럼은 실화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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