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서태지 세대와 장기하 세대

‘시대유감’했지만‘별일 없이 산다’

  • 구가인│동아일보 신동아 기자comedy9@donga.com │

    입력2009-05-07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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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기하는 ‘사회현상’이 됐다. 이제 겨우 1집을 낸 그는 요즘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아닌 신문 칼럼과 시사잡지, 시사 프로그램 등에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1990년대 초 20대 초반의 서태지는 X세대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와 비슷한 듯 다른 모습으로, 2000년대 말 20대 후반의 장기하는 88만원 세대와 인디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이다.
    서태지 세대와 장기하 세대

    장기하와 얼굴들

    요즘 ‘뜨고 있는’ 장기하는 1982년생 00학번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초중반엔 사춘기를 보냈고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이후 2000년 대학에 입학해 예전만큼 낭만적이진 못한 대학시절을 보냈을 그는 ‘포스트 IMF 세대’에 속한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교수의 말을 빌리면 장기하가 속한 세대는 “최초로 승자독식체제를 받아들인 세대”이며 세대의식이 전무하고 “(정치적)목소리가 작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의 세대는 ‘인턴세대’, ‘트라우마세대’라고도 불린다.

    장기하 열풍과 88만원 세대

    장기하가 관심을 받는 건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들려주는, 흔치않은 20대 뮤지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 그 이야기는 1990년대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다”며 ‘교실이데아’를 부르고 “정직한 사람의 시대는 갔다”며 ‘시대유감’을 표하던 서태지의 이야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민주화 이후 낙관론이 지배적이던 1990년대 초와 불황으로 비관론이 지배하는 2000년대 말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혹은, 새로움을 갈망하던 ‘문화르네상스 시기’를 보낸 젊은이와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의 차이일 수도 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시고 ‘별일 없이 산다’고 말하는 장기하의 노래를 언론에서는 ‘88만원 세대의 자화상’이라고 표현했다.

    서태지 세대와 장기하 세대

    서태지는 1990년대 초중반 X세대의 상징이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

    ‘싸구려 커피’는 2008년 5월 출시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싱글앨범 수록곡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전직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였던 장기하는 “공부는 잘하는 분야일지 모르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건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을 택했다”고 말한다. 그의 노래는 처음엔 인터넷 UCC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포크를 연상시키는 멜로디와 기발한 가사, 읊조리는 랩과 미미시스터즈의 퍼포먼스는 기존 대중가요에서 볼 수 없던 파격이었다. 20대 중심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40대 아저씨들의 통화연결음에도 ‘싸구려 커피’가 울려 퍼졌다. ‘싸구려 커피’가 수록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싱글앨범은 약 1만2000 장 판매됐으며 2월 말 발매된 첫 번째 정규앨범도 3월 한 달 동안 1만3000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메이저 연예기획사 소속 가수의 음반이 5만장 기록을 깨기 어려운 현재의 시장상황에서 인디 레이블(음반사) 출신 장기하가 별다른 마케팅과 홍보 없이 그 못지않은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은 무척 이례적이다(장기하의 소속사인 붕가붕가레코드 측조차 싱글앨범 ‘싸구려 커피’의 경우 “처음엔 500장 팔릴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할 정도다). ‘싸구려 커피’는 3월 초 열린 한국대중음악상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 최우수 록(노래)으로 선정됐으며, 장기하는 아이돌 출신 가수들을 제치고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이 됐다.

    물론 현재 장기하의 인기만으로 ‘사회현상’ 혹은 ‘열풍’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빅뱅’이나 ‘슈쥬(슈퍼주니어)’를 모르는 기성세대가 장기하의 노래에 호응한다는 것, 그의 노래 속에서 풍자하는 남루한 현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장기하가 신문의 연예면이 아닌 칼럼과 시사잡지 혹은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 서태지가 당시 X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2000년대 말 장기하는 미디어와 대중이 지금의 88만원 세대를 이해하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서태지 세대와 장기하 세대

    최근 인디문화를 접할 수 있는 대안문화 공간도 늘고 있다. 서울 홍대 주변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1층에 문을 연 자주출판서적 전문 서점 ‘더 북스’.

    서태지의 스무 살과 장기하의 스물일곱

    장기하는 ‘인디계의 서태지’라고 불린다. 재미있게도 1972년 2월21일생 서태지와 1982년 2월20일생 장기하는 꼭 10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서태지가 스무 살이던 1992년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해 자신의 곡 ‘난 알아요’를 들고 화려하게 데뷔한 반면, 장기하는 2008년 UCC를 통해 세상에 존재를 알린 후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현재 장기하의 나이는 스물일곱. 20대 초반 이미 ‘문화대통령’자리에 등극한 서태지가 1996년 팀 해체와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가 1998년 솔로로 컴백했을 때 나이가 스물여섯이었으니, 스물일곱 신인 장기하는 서태지에 비하면 한참 늦어 보인다(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앞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고 장기하 역시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로 활동한 바 있지만 대중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장기하와 얼굴들’부터다).

    그렇다고 당시 서태지의 출발이 빨랐던 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가요계에는 서태지 또래의 20대 초반 스타 싱어송라이터가 많았다. 신승훈은 1989년 22세의 나이로 데뷔했으며 1994년 데뷔한 박진영 역시 22세였다. 이 밖에도 015B, 듀스, 신해철, 유희열, 김현철, 윤종신, 이적, 김동률 등 1990년대 인기를 얻은 많은 싱어송라이터가 20대 초반에 데뷔해 당시의 대중문화를 이끌어갔다. IMF외환위기 이후 이들은 자기 색을 가진 뮤지션으로서 남아 있거나, 산업적인 측면을 파악하고 연예산업을 발전시키거나(JYP의 박진영, YG 양현석) 두 갈래로 나뉘었다. 결국 1990년대 20대로서 목소리를 내던 그 ‘오빠’ 스타들은 30,4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인기스타, 혹은 기획사 사장님으로서 문화권력을 쥐고 있는 셈이다.

    현재 대중음악계의 중심에 있는 아이돌 스타들의 나이는 채 스무 살이 되지 않는다. 기획사의 상품으로서가 아닌 작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오롯이 전달하는 20대 스타는 찾기 힘들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연예기획사가 치밀한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는 젊은 뮤지션들이 대중문화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비단 가요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계 역시 마찬가지다. 박찬욱, 봉준호, 김기덕, 홍상수, 김지운 등 이름이 알려진 스타감독들은 대부분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 생이며 1990년대 중·후반에 데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는 “2000년 이후부터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진출하며 영화가 산업화되다 보니 감독보다는 프로듀서 중심의 시스템으로 변하게 됐다”면서 “제약이 많은 기획영화에서는 앞 세대 감독들에 비해 신인 감독이 드러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88만원 세대의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디문화와 DIY 예술가들

    최근 ‘인디’문화가 관심을 받는 것, 이곳이 많은 젊은 작가의 무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인디펜던스(Independence·독립)의 줄임말인 ‘인디’는 제작(또는 유통)에서 상업적인 거대자본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한, ‘주류(Major) 문화’에서 벗어난 문화를 의미한다. 장기하의 인기와 함께 ‘워낭소리’ ‘낮술’ ‘똥파리’ 같은 저예산독립영화들의 전례 없던 흥행 성적은 인디문화의 저변 확대를 증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 불황으로 대중문화계가 위축됨에 따라 문화적 선택 폭이 좁아진 상황에서 문화 소비자로서 대중이 ‘새로운 문화’로 인디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해석한다. 문화비평 웹진 ‘가슴’의 박준흠 대표는 장기하의 인기를 “장기하 자체의 스타성 못지않게 인디문화에 대중이 호응하고 받아들일 시점에 이르렀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음반시장이 2000년경 4000억원대로 정점을 찍은 이래 지금까지 줄곧 하락해서 500억~600억원대로 줄은 데 반해 인디음반시장은 점차 확대되는 편”이라면서 “1990년대 50장 정도에 그친, 한 해 발매되는 음반수가 최근에는 250장 정도로 계속적인 증가세”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이상용 평론가는 “시장이 축소되면서 상업영화 제작편수가 줄어드는 것에 반해 독립제작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의 제작편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일반 관객의 인지도나 수용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인디음악 | 인디음반이나 독립영화의 제작편수가 증가하는 것은 기술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음반 제작의 경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PC)의 발전에 힘입어 녹음뿐 아니라 믹싱, 마스터링을 포함한 전 과정을 집에서 할 수 있는 ‘홈레코딩 시스템’을 통한 제작이 가능해졌다. 장기하의 소속사인 붕가붕가레코드는 홈레코딩과 더불어 판매하는 모든 CD를 직접 컴퓨터 CD라이터를 통해 굽고 라벨을 손으로 붙이는 ‘수공업 소형음반제작’방식으로 유명하다. 1만2000장이 팔린 ‘싸구려 커피’ 싱글 앨범도 “모든 임직원이 총동원돼” 찍어낸 결과물이다(‘싸구려 커피’는 밀려드는 주문에 한동안 품절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후 ‘장기하와 얼굴들’ 정규 1집은 기계제작을 했다).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28) 대표는 “수공업 소형음반제작방식(이하 수공업 제작)은 음반의 홍보 콘셉트였다”면서 “기존 제작방식과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 음반이 유통망을 타고 들어갈 때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공업 제작방식이) 무엇보다 목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공장에서 한 번 앨범을 찍어내는 데 150만원 정도 드는데 ‘싸구려 커피’ 싱글 나왔을 때만 해도 불확실한 상황이라 최대한 싸게 만들어야 했어요. 수공업 제작은 재료비로 CD 한 장 가격 1000원만 드는 거죠. 그렇게 아낀 돈으로 다음에 또 정규음반 낸다는 게 목표였습니다.”(고건혁)

    ▶ 독립영화 | 영화 역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어느 정도 노하우만 습득하면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거주하는 옥탑방을 세트 삼아 좀비영화를 만든 4인 영화 창작집단 키노망고스틴의 오영두(34)씨는 “5~7년 전만 해도 스태프가 많이 필요하고 필름영화를 찍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독립장편영화를 찍기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접근이 쉬워진 덕분에 너무 쉽게 찍어 문제가 될 정도다”고 말했다.

    서태지 세대와 장기하 세대

    1000만원으로 제작한 DIY독립영화 ‘낮술’.

    ▶ 자주출판 | 출판 분야도 마찬가지다. 데스크 톱 출판시스템과 나아가 레이저 프린터기의 발달은 자주출판을 가능하게 했다(자주출판은 ‘1인 출판’과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자주출판은 기존 유통망을 이용하기보다는 독립된 유통망을 가지고 있고,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출판을 통해 ‘원하는 책을 생산하는 것’ 자체에 더 의미를 둔다). 비정기적 디자인문화학술지인 ‘가짜잡지’도 이에 해당한다. 3년 전 동인지 형식으로 출발한 ‘가짜잡지’는 두 명의 편집자와 이들이 섭외한 필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편집자인 홍은주(24)씨는 실제 출판디자인회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로 잡지의 기획과 편집과 디자인을 맡는다. 그는 “새로 잡지를 내기 전에 먼저 주문을 받은 뒤, 주문량만큼만 소량 출판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손실이 크진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작과 홍보 여건이 편리해졌다 하더라도 수익을 낼 만한 수준은 못 된다. 인디 작가들로선 어느 정도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경비의 최소화를 위해 혼자서 모든 것을 도맡는 DIY(Do It Yourself) 방식으로 제작하는 젊은 작가도 늘고 있다. 최근 3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독립영화 ‘낮술’의 노영석(31) 감독 역시 DIY 제작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빌린 1000만원으로 115분짜리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혼자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미술 등을 해냈다. 영화동호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카메라 관련 정보를 구하고 배우를 구했다. 조명 장비가 없어서 촬영은 주로 낮에만 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 공모에서 떨어진 후 자비로라도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노 감독은 “촬영과 연출을 같이 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따로 조율할 필요 없이 마음먹은 대로 찍으면 되니까 유리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터넷은 이들 작가들이 활용하는 유통과 홍보 수단이다. 인디밴드 ‘절룩거리네’ ‘스끼다시 내 인생’ 등으로 알려진 1인 프로젝트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36)씨는 2003년 홈 레코딩으로 음반을 제작한 후, 홈페이지를 만들어 음반을 판매했다. 당시 인디밴드로서는 드물게 2000장의 판매고를 올린 그는 지금도 꾸준히 홈페이지를 통해 음반을 판매한다. 이씨는 “1990년대 말 이후로 기획사 소속 가수가 아니면 자신의 음악을 홍보할 공간이 사라졌다. 이때 인터넷이 대안으로 떠올랐고, 2000년 중반 이후로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하고 판매하는 게 일반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유통과 홍보 방식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주출판사인 미디어버스의 구정연(34)씨는 “인디문화가 주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유통망이 넓어지면 저변이 확대될 수 있다. 해외에는 자주출판물만을 유통하는 서점 혹은 대안공간이 많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

    인디 작가들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사이가 가장 많다. 이들의 특징을 하나로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주로 사회저항적인 메시지가 강했던 과거에 비해 그 색깔이 다채로워졌다는 것은 최근 인디문화의 경향이기도 하다. 음악평론가 조원희씨는 “인디음악의 경우 2000년대 초반까지 특정 장르에 편중돼 있고 연주력만이 최고 가치로 여겨지던 인디신의 분위기였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하나의 범주로 묶기 어려울 만큼 장르가 다양해졌다. 추상적이지 않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가사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들 작가들이 젊은 나이에 비해 소극적이며 도전의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씨는 “에고의 사이즈가 작다”는 말로 설명했다.

    “예컨대, 예전 젊은 작가들은 내가 힘들게 살더라도 언젠가는 역사가 되겠다, 미술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욕망이 있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는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없어 보여요. 에고의 사이즈가 작아요. 88만원 세대의 공통된 특징인 거 같아요. 작업량이 적고 그 크기도 작고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조금씩 하는데 그걸로 제 목소리를 내기엔 부족하죠.”(임근준)

    이렇듯 ‘목소리가 작다는 것’은 88만원 세대의 특징이자 한계로 꼽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평론가는 장기하와 장기하 세대가 서태지가 그랬듯 ‘판갈이’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이들이 애초에 원한 건 판갈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붕가붕가레코드의 모토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다. 고 대표는 “생업에 쫓겨 음악을 그만두지 않도록 생계를 유지할 환경을 만들면서도 계속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바람은 인디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소망이기도 하다. 취재를 위해 만난 젊은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재미’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얘기했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보죠. 하지만 대신 재밌는 일을 하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흐르더라도 남들과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벤츠를 몰고 가는 것과 내가 마티즈 몰고 가는 것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거죠. 삶에서 즐겁게 사는 게 중요한데 명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삶이 즐거워지는 건 아니잖아요. 남이 많은 것을 가졌다고 부러워하고 우울해할 필요도 없고, 그런 것들이 세상이나 자신을 발전시키지도 못하고…. 그런 점에서 현재를 즐겁게 사는 게 더 중요한 거 같아요.”(오영두)

    “되는 데까지 잡지를 만들 생각인데 언제까지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저희 잡지는 외부 구성원(독자)을 생각하기보단 잡지를 만드는 구성원 사이에 소통의 동력이 되는 매체였어요. 첫 번째 잡지를 만들고 우리도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발견했고, 다음에는 더 재미있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면 그 뒤부터는 우리가 계속 잡지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을 어디서 찾을까, 내부적으로 질문을 많이 해요. 어쩌면 잡지를 계속 만드는 거 그 자체가 목표인지도 모르겠어요. 계속해서 재미있게, 하지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잡지를 만드는 거요.”(홍은주)

    “사람들은 홈런, 대박을 얘기하지만 제겐 음악을 하는 순간이 더 소중해요. 음악을 평생 하는 게 목표예요. 물론, 경제적으로 불안하지만요.”(이진원)

    서태지 세대와 장기하 세대

    최근 1집을 발표한 장기하(가운데)는 ‘인디계의 서태지’ ‘장 교주’등의 별명으로 불린다.

    장기하 세대와 루저 스피릿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네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번 건 네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다 하지만/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장기하와 얼굴들 ‘별일 없이 산다’ 중’

    장기하는 서태지가 될 수 있을까. 그 가능성 여부와는 별개로 장기하는 다른 길을 걷고자 하는 듯하다. 그는 팬덤이 만들어진 지금도 CF 출연과 언론 인터뷰를 거절하는 대신 홍대 주변에서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 장기하는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줄곧 “재미있는 것만 하고 싶고, 음악이 재미있기 때문에 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때문에 ‘루저 정서’는 장기하의 노래와 함께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루저 마인드와 루저 스피릿은 다르다. 전자가 진짜 패배자가 가진 나태함에 지나지 않는다면, 후자는 삶의 비루함을 알면서도 낙천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다. 장기하의 노래와 인디작가들의 작업은 후자에 가깝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겠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물론 누군가에겐 개인의 재미와 행복이 작고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소함처럼 획득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싸구려 커피’를 마셔야 하는 삶을 ‘별일 없이’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로써 타인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것. 이는 짱돌을 던지고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 못지않은 반란 아닐까. 그리고 이는 서태지가 아닌 장기하가 할 수 있는,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장기하 세대 작가들에서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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