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박연차 탈세조사 비화

“박연차 조사한 국세청 고위간부 수시로 룸살롱 드나들다 총리실에 적발”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9-05-09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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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박연차 세무조사 중 “한상률 청장 내사하라” 사정기관에 지시
    • 한상률, ‘박연차 리스트’ 들고 청와대와 거래 시도했다?
    • 한상률, 청와대 갔다 온 뒤 “청장 유임됐다”고 큰소리치고 다녀
    • 국세청 간부 소환한 총리실에 국세청·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의 전화 쇄도
    • 국세청 간부, “총리실 갔다 온 건 사실, 하지만 경고 아닌 업무협조였다”
    박연차 탈세조사 비화
    박연차(64)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를 덮쳤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와 최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구속됐고 부인 권양숙, 아들 노건호, 조카사위 연철호씨 등이 수사를 받고 있다. 그야말로 초토화다.

    이번 로비 의혹은 이명박 정권에도 칼을 겨누고 있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구속됐고 이종찬 전 민정수석비서관, 이 대통령 후원자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도 위태위태하다. 이번 사건의 종착역이 어디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여름 시작된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발단이 됐다.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박 회장 회사의 홍콩법인 APC 계좌 문제, 이번 사건에 결정적 증거가 됐다는 박 회장 여비서의 ‘로비 다이어리’도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이미 확인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말 국세청의 고발을 받은 직후 ‘로비 다이어리’ 등 세무조사 결과를 넘겨받아 수사를 진행해왔다.

    관가의 저승사자

    최근 ‘신동아’는 박연차 사건의 시발점이 된 국세청 세무조사의 배경과 진행상황에 대한 취재중, 지난해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책임자였던 국세청 고위간부가 부적절한 사생활 문제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공직윤리관실)에 소환, 경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물론 특별한 의혹이 확인됐거나 대형 게이트는 아니다. 하지만 ‘신동아’는 이 사건에 주목했다. 이 국세청 고위간부가 태광실업 세무조사 책임자였다는 점 외에도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국세청, 청와대, 검찰 등 사정기관 내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사고의 중심에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세청 등 사정기관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한 공직윤리관실 당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중순 어느 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실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공직윤리관실 관계자였다. 대화 내용을 재구성하면 대략 이렇다.

    “J 국장님이신가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52059;·#52059;·#52059;입니다. 잠깐 저희 사무실로 와주셔야겠습니다. 저희 지원관님이 국장님을 뵙고 싶어하십니다.”

    “무슨 일입니까.”

    “와보시면 압니다. 사무실 위치 아시죠? 정부중앙청사 창성동 별관 4층입니다.”

    “네, 곧 가겠습니다.”

    전화통화가 끝나고 몇 시간 후 J 국장은 공직윤리관실로 찾아왔다. 공직윤리관실에 파견된 국세청 직원이 창성동 별관 사무실에 도착한 J국장을 안내했다. 공직윤리관실은 흔히 ‘암행감찰반’으로 불린다. ‘관가의 저승사자’라는 별칭도 붙어 있다. 과거 청와대 특명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청 사직동팀(경찰청 형사국 조사과)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노무현 정권이 끝난 뒤인 지난해 2월 폐지됐던 이 조직은 5개월 만인 지난해 여름 지금의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날 공직윤리관실에서 J 국장을 부른 사람은 지원관실 책임자인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이다. 이 지원관은 노동부 감사관 출신의 2급 공무원으로 경북 포항 사람이다.

    J 국장이 공직윤리관실에 불려오는 과정에는 작은 실랑이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J 국장에게 전화를 건 직후 공직윤리관실에는 전화가 쇄도했다. 국세청 전현직 간부들, 현직 청와대 고위인사들의 전화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무슨 일이냐, J 국장을 부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공직윤리관실은 당황했다. 한편으로 불쾌했다. 공직윤리관실 관계자는 J 국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왜 그러십니까. 여기저기 전화하지 마시고 그냥 조용히 들어오세요.”

    당시 공직윤리관실에 전화를 건 고위공직자 중에는 현 국세청 최고위직 인사인 L씨와 청와대 고위간부 K씨, 전직 국세청 간부로 J 국장의 선배인 또 다른 K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 현 정부의 핵심인사이거나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당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공직자의 부적절한 행위를 경고하기 위한 소환이었다. 권력 실세들이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아보는 것 자체가 공직윤리관실로서는 일종의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실제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공직윤리관실의 한 관계자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당시 여기저기서 전화가 쇄도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이를 두고 공직윤리관실 내에서는 ‘불쾌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당시 공직윤리관실에서 J 국장을 부른 이유는 뭘까.

    박연차 탈세조사 비화

    지난해 12월12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J 국장을 소환하기 한 달쯤 전부터 공직윤리관실은 J 국장에 대해 조용히 암행감찰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J 국장의 사생활과 관련된, 혹은 공적인 활동이랄 수도 있는 동선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견됐다. 암행감찰은 11월 하순경부터 12월 말까지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이유로 감찰이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암행감찰 과정에서 확인된 J 국장의 동선은 이상했다. J 국장은 감찰기간 중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V 룸살롱에 마치 출근하듯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 감찰기간 중 근무일을 기준으로 10여 일간 드나든 횟수가 10번 정도였다고 한다. 공직윤리관실의 한 관계자는 “매일 미행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미행하는 날마다 같은 업소에 드나들었다”고 밝혔다.

    들고나는 시간도 거의 같았다. 밤 9시를 전후해 들어가선 밤 12시 전에 나오는 식이었다. 다른 곳에서 사람들과 술을 마신 이후에도 꼭 이 룸살롱에 들렀다 귀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J 국장은 몇몇 기업 대표와 술자리를 하는 장면이 암행감찰 기간 중 여러 차례 목격됐다. 그중에는 지난 정권 5년간 각종 M&A를 성공시켜 국세청의 조사 대상에 올랐던 Y그룹 관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수 합병 등으로 수년간 시끄러웠던 대기업 계열사 L기업의 대표와는 서울 강남의 또 다른 술집에서 술을 마신 사실도 확인됐다. 비슷한 시기 국세청 주변에선 ‘J 국장이 대기업 S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도 불거진 바 있다.

    최근 기자는 당시 사건, 사실 해프닝이라고 해도 좋을 이 사건의 진상을 묻기 위해 J 국장을 만났다. 4월1일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였다. 이틀 후인 4월3일에는 전화로도 이런저런 해명을 들었다.

    4월1일 만났을 당시 J 국장은 기자의 취재 내용을 듣고 “총리실에 가서 오해를 다 풀었다. 후배들과 몇 번 술자리를 했을 뿐인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비교적 승진이 빠르고 위치가 위치다 보니 조직 내외에 적이 많다. 이런저런 의혹을 많이 샀다. 얼마 전에는 외제 승용차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4월3일 전화 통화할 당시에도 J 국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틀 전과는 주장이 조금 달랐다. 4월1일 직접 만났을 당시 “V 룸살롱과 관련된 부분을 물어보려 한다”고 기자가 말했을 때 “오해다”라고 말했던 그는 이틀 뒤에는 “나는 V 룸살롱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을 바꿨다. 기자가 “2주일여간 10번이나 드나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니 “(기자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J 국장과의 인터뷰 이후 J 국장의 행적을 알려준 여러 사정기관 관계자들에게 그의 주장을 알리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J 국장의 설명은) 거짓말입니다. 직접 확인한 내용들입니다. J 국장에게도 암행감찰 사실을 충분히 알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월1일과 3일, 두 번에 걸쳐 접촉한 J 국장과의 대화 내용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지난해 12월경 총리실에서 사생활과 관련된 경고를 받은 일이 있나.

    “총리실에서 전화가 와서 갔다 온 일은 있다. 그러나 경고는 아니었다. 업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듣는 정도였다. 조언을 받았다고 해도 좋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는 것 자체가 괴롭다.”

    -사생활, 특히 부적절해 보이는 술자리가 문제가 되어 불려간 것 아니었나?

    “술자리 문제에 대해 지적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술과 관련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길래 답을 했을 뿐이다.”

    -총리실의 전화를 받은 직후 총리실에 많은 사람이 문의 전화를 했다. (국세청 간부) L씨와 청와대 현직 간부 등인데 알고 있었나.

    “전혀 몰랐다. L씨나 청와대 사람들에게 그런 걸 부탁한 일은 절대 없다. 사실이라 해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총리실에서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얘기한 적이 있나?

    “후배 과장에게 얘기했고 그 과장이 총리실에 파견된 국세청 직원에게 전했다고 들었다. 총리실에 갔을 당시 그 직원이 (공직윤리관실) 1층 로비까지 내려와서 나를 안내했다. 도와달라는 취지로 윗사람들에게 전화하고 그러지 않았다.”

    -총리실에서 본인을 조사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나중에 보고를 받아 알게 됐다. 총리실에서 미행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총리실의 경고를 받을 당시 J 국장은 차기 인사에서 ‘국세청 인사의 꽃’으로 불리는 본청 조사국장 0순위로 꼽히고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공직윤리관실에 갔다 온 이후인 12월 말 단행된 국세청 고위직 인사에서 J 국장은 세간의 예측을 깨고 조사국장에 임명되지 못했다. 인사 배경과 관련 국세청 내에서는 “총리실 내사 때문에 밀렸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한 국세청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J 국장에 대해 이런저런 의혹이 불거진 것은 사실이다. 나도 알고 있었다. 회사(국세청) 내에서는 많이들 알고 있는 문제다”라고 전했다.

    J 국장은 지난해 7월 말 시작된 박연차 회장 소유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당시 이 조사를 지휘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이었다. 당시 세무조사는 서울지방국세청 효제별관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조사4국 3과가 맡았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직접 조사 상황을 챙겼다는 얘기도 들린다.

    J 국장은 한 전 청장과 아주 가까웠다. 국세청 내에서 그는 한 전 청장의 오른팔로 불렸다. J 국장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기자와의 대화 도중 “내가 워낙 한 전 청장과 가까워서…”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내내 국세청이 진행한, 전 정권에 대한 사정성격의 세무조사를 주도한 것도 한 전 청장과 J 국장 두 사람이다. 노 전 대통령의 친구 정화삼씨와 관련된 세무조사,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이상호씨가 원장으로 있는 우리들병원에 대한 세무조사, 그리고 박연차 회장 소유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이 모두 그랬다.

    J 국장이 총리실에 불려갔던 지난해 12월은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막 끝난 때로 국세청, 청와대, 검찰이 이 문제로 아주 긴박하게 움직이던 때였다.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한 차례 조사 기간이 연장되는 진통을 거쳐 지난해 11월 말 모두 끝난 것으로 전해진다. 조사가 끝난 뒤 국세청은 박 회장을 탈세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국세청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수사를 진행, 지난해 12월12일 세금 포탈,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박 회장을 구속했다. J 국장은 당시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의 전말을 잘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J 국장에 대한 암행감찰은 12월 말 마무리 됐다. 공직윤리관실의 경고가 있은 이후에도 상당기간 J 국장에 대한 감찰은 계속됐다. 冬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세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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