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거울을 보는 여자

  • 입력2009-06-04 2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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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을 보는 여자

    ‘거울을 보는 비너스’ 1644년, 캔버스에 유채, 122×177cm,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여자에게 거울은 또 다른 자아다. 여자가 거울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것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울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거울은 또한 여자에게 정신과 의사다. 남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거울 속 자신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유일한 누드화로 1600년대 스페인 회화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소재다. 벨라스케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신화에서 주제를 빌려왔다.

    비너스가 벌거벗은 채 침대 위 회색 새틴 시트에 누워있다. 그녀의 살갗은 장밋빛으로 빛나고 풍만한 엉덩이에 비해 허리가 유난히 가늘다. 비너스는 뒷모습조차 관능적이다. 거울 속 비너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큐피드의 손목에는 리본이 감겨있다. 리본은 비너스의 아름다움과 큐피드의 관계를 상징한다. 이 작품에 큐피드가 없다면 침대에 누워있는 여인의 누드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임이 금방 드러난다. 벨라스케스는 여인이 비너스임을 상징하기 위해 큐피드를 등장시켰다.

    거울을 보는 여자

    ‘허영’ 1904년, 캔버스에 유채, 130×125cm, 개인 소장

    비너스의 뒷모습과 큐피드가 받쳐 든 거울 속의 희미한 얼굴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 관계를 탐구하려는 벨라스케스의 의도다. 벨라스케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울의 효과에 관심을 가졌고 화폭에 허구의 공간까지 담아내기를 원했다. 이 작품은 거울을 이용한 그의 여러 작품 중 하나이면서 그의 유일한 누드화다. 이 작품은 동시대의 누드화에서 강조된 풍만함과 달리 여인의 몸을 날씬하게 표현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로마에 체류하던 중 당시 스무 살이던 정부(情婦) 플라미니아 트리바에게 관능적인 포즈를 요구했다. 관능적인 이 작품은 1914년 한 여권 운동가에 의해 난도질당하기도 했다.



    여자에게 거울은 기대와 설렘, 그리고 희망을 선사한다. 외출하기 전 자신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 여자를 그린 작품이 프리드리히의 ‘허영’이다. 커튼이 쳐진 방 안 큰 거울 앞에서 여자는 손거울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여인은 자신의 뒷모습을 손거울로 비쳐보는 중이다. 여자는 손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황홀한 듯 미소를 짓고 있다. 커튼이 쳐진 방 안과 손질한 하얀 드레스는 그녀가 저녁 외출 준비 중임을 암시한다. 벌거벗은 여인의 화사한 피부는 외출을 준비하는 여인의 들뜬 마음을 짐작케 한다.

    거울을 보는 여자

    ‘아침욕실’ 1971년, 캔버스에 유채, 192×113cm, 개인 소장

    여자의 방 특유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오토 프리드리히(1862~1937)의 이 작품에서 애완용 원숭이가 드레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젊음을 파괴하는 시간과 유혹의 문란함을 암시한다. 프리드리히는 빈 분리파에 속하나 동시대 예술가들과 다르게 여인의 누드를 왜곡하지 않고 부드럽고 밝게 표현했다.

    거울은 속임수가 없다. 거울은 결점까지 드러내지만 여자는 자신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싶어한다. 자신의 결점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보테로의 ‘아침욕실’이다. 침대 앞에 대형 거울이 있음에도 뚱뚱한 여인은 작은 손거울로 자신을 보고 있다. 작은 거울 속 여인의 얼굴은 거울의 크기만큼이나 작다. 여인은 지금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거울 속 여인의 모습은 앙증맞고 귀엽다. 하지만 화면을 넓게 차지한 그녀의 모습은 기형적일 정도로 뚱뚱하다. 풍만한 허벅지는 살이 쪄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 신발은 살찐 다리와 발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빈약해 보인다. 그녀의 엉덩이와 허리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여자는 자신의 결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얼굴만 보고자 작은 거울에 의지한다. 페르난도 보테로(1932~)는 뚱뚱한 사람을 즐겨 그린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비틀어서 과장되게 표현한다. 이 작품 속 여인도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거울을 보는 여자

    ‘거울 앞에 선 누드 여인’ 1897년, 마분지에 유채, 63×48cm, 뉴욕 하우프트 컬렉션 소장

    매춘부에게 거울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녀들에게 거울은 삶의 서글픔이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것은 스러져가는 젊음과 미래에 대한 공포다. 매춘부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로트레크의 ‘거울 앞에 선 누드 여인’이다.

    거울을 보는 여자
    박희숙

    동덕여대 미술학부 졸업

    성신여대 조형대학원 졸업

    강릉대학교 강사 역임

    개인전 8회

    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클림트’‘명화 속의 삶과 욕망’ 등


    거울 앞에 선 매춘부는 평범한 검은 스타킹을 신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손에는 방금 벗은 듯한 블라우스가 들려 있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손님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매춘부의 부드럽고 탱탱한 젊은 육체는 남자에게 사랑받는 시간이 짧다는 것을 암시한다. 화면 왼쪽의 헝클어진 침대는 매춘부가 나이 들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앙리 드 로트레크(1864~1901)는 이 작품에서 남자에게 상처 받는 매춘부의 마음과 시들어가는 육체의 덧없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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