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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신정 장애인공동체

“이모, 내일도 자고 갈 거예요?”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임마누엘신정 장애인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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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신정 장애인공동체
혼자 공 던지는 성수가 심심해 보여 “공기놀이를 하자”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공기가 뭐예요?” “공기? 그게 뭐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말 못하는 정인이도 눈을 꿈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서 큰딸(은아)과 작은아들(성수)의 손을 잡고 문방구에 갔다. 내 조카들은 문방구에만 가면 이것 사주세요, 저것 사주세요 보채기 일쑤인데, 이 아이들은 물건 구경하며 500원 하는 공기 하나에 만족한다. 선생님은 공기놀이가 손 발달에 좋을 거라 했지만, 아이들은 공기놀이하는 걸 버거워했다. 대신, 내가 공기를 손등에 올려놓고, 공중에 띄운 뒤 다시 손으로 잡자 묘기를 본 것처럼 신기해했다.

아이들과 친해지나 싶었는데, 오후 4시가 되니 선생님이 오셨다. 단정한 차림의 중년 여성이었다. 구로지역자활센터에서 사회적일자리사업으로 장애아동을 지도하는 분이라고 했다. 수미와 성수는 (기초생활)수급자이므로 정부지원으로 수업을 받는다. 주로 종이접기를 많이 하는데, 놀이이자 단순노동을 위한 준비과정이기도 하다. 그러곤 대학생 봉사자 둘이 와서 학습지 과외를 해줬는데, 이번에도 수미와 성수만 배웠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개선 가능성이 높아서다. 6개월간 두 아이를 가르친 김민혜 선생님이 말했다.

“못 읽던 글자를 떠듬떠듬 읽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해져요. 그러니 더 열심히 가르쳐야죠.”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선생님이 가시고 “청소하자”는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큰딸 은아는 땀 흘리며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들은 빨랫대에서 걸레를 걷어와 물에 적신 뒤 자기 방을 닦는다. 행동이 느린 정인이도 2층 침대가 있는 남자 방 이곳저곳을 닦는다. 매일 청소해서 그런지 먼지가 없다.

그 사이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고,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은 기도를 하곤 양껏 먹는다. 말라깽이 성수에게 엄마는 “이 정도는 꼭 먹어야 한다”며 할당량을 정해준다. 반찬을 집어 아이들 밥에 올려주자, 내 얼굴을 할끔할끔 보곤 빙긋 웃는다. “나 이모 사랑해.” “나 엄마도 사랑해.”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박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응, 엄마도 성수 사랑해, 우리 아들 사랑해” 하고 대꾸해줬다. 그는 수미에게 밥 먹이느라 자신은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고래처럼 밥을 내뿜으면, 혼내기도 하고 뱉은 밥을 먹기도 한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엄마 다음으로 수미가 좋다는데, 아무래도 내가 그런 감정을 가지려면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렇게 밥을 먹곤 잠시 TV를 본 뒤 오후 8시가 되자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떻게 나가나 싶어요”

박 선생님 방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장애인 아이들과 같이 사는 이유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물류회사에서도 일하고, 보습학원 강사도 했는데, 맞질 않았어요. 회사 다닐 때는 계산이 빠른 사람들과 지내는 것 자체가 어려웠죠. 머리 굴리는 아이들하고 씨름하고, 공부하지 않겠다는 아이들 붙잡아두는 괴로움이 있었고요. 그러다 노인시설에서 일하는 삼촌이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하셔서 구파발에 있는 ‘포도밭’이란 데서 지적장애인 3명하고 그곳 선생님하고 그렇게 3년간 먹고살았어요. 정말 천국이었어요. 순한 애들하고 있는 것도, 이웃사람들하고 음식 나눠 먹는 것도 행복했어요. 그러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가자는 생각에 사회복지사 과정을 이수하고 바로 여기로 왔어요. 그때가 아마 2005년 11월이었을 거예요.”

결혼은 안 할 거냐고 물으니, 곧 할 생각인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했다.

“아이들하고 정이 들었는데, 어떻게 나가나 싶어요. 그룹홈 선생님들이 대부분 미혼이거나 이혼, 사별하신 분들인데…. 주5일제라고 하지만 우린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가까울수록 쉬기도 어렵죠. 제 경우에는 설에도 애들 데리고 다 같이 부산 다녀오고 그랬어요. 그리고 아이 다섯 봐주고 하루 3만원을 받는 조건인데 누가 오려 하겠어요. 우리도 박봉이긴 하지만 사랑으로 사는 거죠. 주말부부로 사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떨어져 사는 게 좀 걸려요. 막내 수미는 제가 나가면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입양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면 받던 혜택을 못 받게 되니 엄두가 안 나요.”

힘든 것은 없느냐 묻자 다 큰 성수와 수미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게 어렵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주문 걸 듯 아이들에게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침 책상에 있던 파일을 열어보니 아동기록카드가 있다.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하였는데 다운증후군임. 형편이 힘든 가정에서 경제적으로 힘겨워할뿐더러 시부모를 비롯 남편까지 산모의 탓으로 괴롭힘. 부부는 아이의 친권을 포기하겠다고 함. 당분간 임시보호를 하면서 사후 상담 요.’

생활비에 대해 묻자 엄마 특유의 걱정이 이어진다. 100만원 안팎으로 다섯 아이 식비, 생활비, 학교공과금 내기에도 빠듯하단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던 중 어느새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하루도 그녀에게는 편치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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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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