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당신의 미래가 걱정됩니까?

  •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onn@sogang.ac.kr│

    입력2009-07-01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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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미래가 걱정됩니까?
    한마디로, 필독서다. 여러분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다면 말이다. 김형기, 임혁백, 김호기 교수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정책자문위원회와 정권인수위 등에 정책 브레인으로 참여했던 한국 최고의 일급 지성들이 만든 ‘새로운 진보의 길: 대한민국을 위한 대안’(김형기 김운태 편)은 그런 책이다.

    레이건에서 부시로 이어지는 미국의 보수주의혁명이 1970년대 소수 학자가 만든 작은 연구소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 공화당의 정책은 헤리티지 재단, 민주당의 정책은 브루킹스연구소를 통해 만들어져왔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 같은 정책연구소와 정책연구는 덜 발달한 상태다. 이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자칭 ‘중도진보적’ 지식인들이 ‘지속가능한 진보’를 추구한다는 정책포럼을 만들어 연구해온 국가 비전을 이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큰 선물을 한 것이다.

    이들의 출발점은 ‘구좌파’의 사회민주주의와 ‘신우파’의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자는 ‘유럽의 제3의 길’이다. 나아가 한국의 진보는 민생파탄에 따른 노무현 정부의 실패,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라는 진보정당의 실패, 민주노총과 같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실패 등 정권, 정당, 운동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며 새로운 진보, 즉 근본주의적인 진보와 구별되는 ‘현실주의적인 중도진보’의 길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새로운 진보는 군사독재 시절의 발전국가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넘어선 ‘한국판 제3의 길’이라는 것이다.

    사람 중심의 그레이트 코리아

    이 제3의 길은 ‘자율, 연대, 생태’를 기본가치로 하며 실사구시를 추구한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춘다, 반시장경제와 반기업 이미지를 탈각한다, 민족주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 국가안보를 중시한다, 북한인권을 요구한다, 노동의 권리만이 아니라 윤리도 주장한다, 사회적 타협을 추구한다는 등의 중도적인 원칙을 제시한다. 이에 기초해 저자들은 21세기 글로벌화와 지식기반경제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세계로 열린 ‘지속가능 선진경제’를 추구해야 하는 바 이는 인간의 창의성을 동력으로 하는 ‘창조경제’, 경제주체 간의 협력에 기초한 ‘협력경제’, 녹색기술에 기초한 ‘청정경제’라는 ‘3C경제’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는 이를 위해 혁신주도성장과 동반성장을 결합한 신성장체제와 관계금융시스템이라는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제시한다. 또 소득 재분배보다는 기회의 재분배에 주력하는 사회투자국가, 이를 위한 학습복지제도의 도입, 노동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유연안정성의 실현,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의 격차에 따른 노동자 내부의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한 연대지식정책 등 다양한 대안을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경제체제에 기초해 ‘사람 중심의 그레이트 코리아’를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인 구상이다. 이 그레이트 코리아는 당당한 나라를 바라는 국민 평균의 애국주의에 기초한 것이지만 자율, 연대, 생태가 관철된다는 점에서 보수적 의미의 그레이트 코리아와 다르며 통일한국, 분권 한국, 글로벌 한국이 그 기본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던지고 있는 질문들, 그리고 대안들은 모두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시의적절한 화두이다.

    다만 이 책이 자신들의 노선에 대한 총론 격의 첫 책이라 그러하겠지만 대안과 정책포럼을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는 느낌이다. 과거 ‘진보개혁(진보와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의 문제는 급진성이 아니라 관념성, 추상성이었다. 사실 급진성으로 말하자면 정주영의 반값 아파트 공약이 더 급진적이었던 것 아닌가? 결국 진보개혁세력은, 예를 들어 서구의 기본소득제 같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자신들의 노선을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원론 수준과 똑같은 추상적 수준에서 사회주의에서 사민주의로, 사민주의에서 제3의 길로 오른쪽으로 한 클릭씩 변화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노선이라고 혼동해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와 관련, 하나만 더 지적한다면 이 연구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한 곳(24쪽)에서는 ‘참여, 연대, 생태’라고, 또 다른 곳(39쪽)에서는 ‘자율, 연대, 생태’라고 이야기하는 등 가장 중요한 목표에서조차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이 같은 가치들이 이 책이 제시하는 프로그램 속에 잘 녹아있는 것 같지 않다. 한 예로, 3대 가치 중의 하나인 생태 문제의 경우 500쪽이 넘는 책에서 고작 4,5쪽 분량으로 극히 원론적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가치 선언이 아니라 이 가치 실현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다.

    또 가장 중요한 경제체제 문제에 대해 ‘지속가능 선진경제’라고 주장하며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발전국가, 신자유주의와 다른 이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작동과 규제 양식이 무엇인가 하는 핵심문제에 대해서는 애매하기만 하다. 지속가능 선진경제는 목표이지 발전국가, 신자유주의처럼 거기로 가는 경제체제의 명칭은 아니다. 사회적 합의에 따른 조정시장경제라는 애매한 표현뿐이다. 조정시장경제라면 유럽식 사회코포라티즘이라는 뜻인가?

    이명박 정부는 중도보수?

    개념의 문제도 있다. 이 책이 ‘중도진보적’ 노선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신자유주의정책을 추구했다고 인정하는(251쪽)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자유주의적 개혁정권’내지 ‘중도개혁정권’이 아니라 ‘진보정권’ 내지 ‘중도진보정권’이라고 규정하면서 이의 실패를 ‘진보정권의 실패’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까지 ‘냉전적 보수’내지 ‘강경보수’가 아니라 ‘중도보수’라고 보는 것(61쪽)은 문제가 있는 이념적 분류다. 그렇다면 한국정치에서 어느 세력이 강경보수인가?

    진짜 문제는 이 책이 겨냥하는 정치세력이다. 저자들이 그동안 걸어온 그간의 역사성,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정치적 힘이라는 변수를 생각할 때 그 세력은 당연히 민주당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민주당의 좌경화다. 즉 서구의 제3의 길이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중도적 노선이었다면 이들이 제시하는 제3의 길은 발전국가와 신자유주의라는 제1의 길과 제2의 길보다 ‘좌경한 노선’이다! 다시 말해, 서구와 달리 발전국가와 신자유주의라는 우리의 두 길은 둘 다 진보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한국판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진보는 사실 ‘새로운’ 진보가 아니라 ‘첫’ 진보다(물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같은 진보는 있었지만 이는 다른 이야기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히려 ‘뉴민주당 플랜’을 통해 그간의 노선을 분배주의로 비판하고 우경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 연구 프로젝트는 현실성이 낮다.

    그것이 아니라 이 연구가 진보신당(친북반미 중심의 민주노동당은 이 프로젝트와 상당한 거리가 있고)과 같은 진보정당을 겨냥한 것인가? 춥고 배고프며 ‘별 영양가도, 영향력도 없는’ 진보정당을 위한 고언이라면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진보신당 등은 이를 읽고 고민하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주도세력의 면면을 볼 때 그 같은 작은 성과에 만족할 것 같지 않고, 진보정당의 역사성을 고려할 때 진보정당의 우경화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이 연구는 기존의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넘어서 이 프로젝트를 실현시킬 수 있는 ‘새로운 헤게모니 블록’내지 ‘새로운 진보정치 블록의 형성’(251쪽)을 희망하고 있고 ‘수권능력이 있는 새로운 중도진보정당이 창출’(61쪽)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 문제는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민주당의 좌파가 떨어져 나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과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창조적 재구성’과 관련해 깊이 고민해볼 화두다.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레이트 코리아’라는 우리의 미래상에 대한 일종의 ‘광고카피’다. 이 책은 이 두 단어로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대중에게 세일즈하고 있는데 무언가 잘못 골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에나 적합한 카피다. 물론 그 앞에 “사람 중심”이라는 부제를 달았고 ‘그레이트’라는 개념을 일상적인 의미 이외에도 북한과 해외교포들을 포함한다는 의미까지를 포함해 중층적으로 사용하려한 노력이 보인다. 또 ‘당당한 나라’라는 ‘국민 평균적 애국주의’를 고려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레이트 코리아’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낡은 부국강병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을 준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 지역에서의 ‘지역열강(regional power)’ 구상에서는 ‘아류 제국주의’의 냄새까지 나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전쟁추구적 애국주의가 떠오르기까지 했다.

    21세기 한국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진보의 상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라면, ‘그레이트 코리아’가 아니라 ‘뷰티풀 코리아’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뷰티풀 코리아’로 바꾸기를 권한다. 책을 덮으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것은 새롭지도, 진보적인지도 않은 ‘낡은 보수주의자’ 김구의 ‘나의 소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한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중략) 그래서 진정한 세계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진보의 길 : 대한민국을 위한 대안’ 김형기 외 지음/ 한울/ 527쪽/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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