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인천국제공항

‘무한 욕망’이 기립한 초근대적 인공도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9-07-03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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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국제공항은 극한의 기술과 노력이 집산된 거대한 무기질의 공간이다. 공항의 긴 회랑은 일상에서 탈주하려는 이들로 붐빈다.
    • 수많은 재난 영화에서 보았던 관제탑의 긴장은 팽팽하고, 출국장의 무국적성은 점점 더 미끄러지는 삶을 사는 우리를 닮았다.
    인천국제공항
    # 05:30 :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초여름의 새벽은 황홀하다. 그 흔한 학생용 24색 크레파스는 물론이고 전문가의 색채 도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빛들이 우주의 어둠과 밝음 사이를 서성거린다. 한강 북단을 가로지르는 강변북로가 자유로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지점, 가양대교를 지나자마자 곧 이어지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는 유려한 주황색으로 빛나는 방화대교로 인해 금세 세속의 온갖 도로와 이별한다.

    오직 공항을 향해 질주하는 신생의 속도! 새벽 5시의 초여름은 검푸른 하늘과 그 아래의 조명들, 그리고 그 조명들이 이내 하나둘씩 꺼지면서 갑자기 익숙했던 시공간을 탈주해버리는 듯한 환영을 제공한다. 차창을 열면 고속도로의 일직선이 선사하는 싱싱한 바람이 차 안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와 이내 쾌청한 하루를 예고한다. 자동차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극한의 속도로 내달린다.

    터널과 톨게이트와 영종대교를 스쳐 지나가면 이제 골격을 드러내기 시작한 공항 배후단지의 수많은 건물이 보인다. 곧 현대적 삶의 대표적 이정표이자 아이콘인 공항터미널이 나타날 것이다. 공항은, 일반 이용자가 길어야 서너 시간밖에 머물지 않는 일시적 거처이지만 극한의 기술과 노력, 야망이 집산된 거대한 무기질의 공간이다.

    극한의 인공 도시, 인천국제공항은 198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향상, 그리고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항공운송 수요가 증대한 뒤 최첨단 미래형 동아시아 허브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국책사업의 장쾌한 결산이다. 김포국제공항이 있었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이를 확장하려면 서울 서북부와 김포 일대의 민원을 해결해야만 했다. 김포국제공항은 30분 안에 서울 도심으로 들어선다는 입지 조건에도 고소음 발생 항공기 운항 금지, 심야시간 운항 및 정비 금지 등의 조처를 시행해야 했으므로 신공항 건설은 불가피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100km 이내의 모든 지역이 신공항 후보지로 검토 대상에 올랐다. 장애물 제한 요건, 기상조건, 지형조건, 접근성, 환경영향 평가, 장래 확장 가능성, 지원시설 확보 용이성, 건설비용 등 10여 개 항목에 따라 수도권 인근과 경기, 충남 등에 위치한 22개 지역을 검토했고, 예비조사를 거쳐 영종, 시화, 송도, 송산, 이천, 발안으로 압축됐다가 최종적으로 영종도가 낙점됐다.

    용(龍)이 여의주를 물다

    영종도와 막판까지 경합을 벌인 곳은 시화. 두 곳 모두 개발이 용이한 갯벌에 위치한다는 점과 지형, 기상, 장애물 제한 요건 등에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다만 시화가 영종도보다 바다 수심이 2m가량 깊어 지반조성 공사비가 많이 들고, 수원·오산·평택 등 군 항공시설과 중첩, 긴장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 영종도를 최종 입지로 선정했다.

    1990년 12월27일부터 20년 가까이 인천국제공항과 더불어 한 생애를 보낸 인천국제공항공사 윤영표 영업본부장은 그 나름의 독특한 해석으로 영종도가 공항 부지로 결정된 것은 ‘유구한 역사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국제공항은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마루(永宗島·영종도)에서 활주로 위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유유히 날아오르는(龍游島·용유도) 곳이니 곧 21세기 동아시아 허브라는 해석이다. 극한 기술의 집합체인 인천국제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 사이를 매립한 땅에 들어섰다.

    윤 본부장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은 건설비가 비교적 저렴했다. 영종·용유도 사이 간석지는 만조 때 수심이 1∼2m에 그쳐 부지매립 비용이 3.3㎡ 당 14만원밖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수년 앞서 바다를 매립한 일본 간사이공항은 평균 수심 18m의 바다를 매립하면서 인천국제공항의 10배나 되는 비용을 썼다. 또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항공기 이착륙의 안전 조건으로 활주로 반경 4km 주변의 높이 45m 이상 구릉을 제거하도록 권고하는데, 인천국제공항은 용유도, 영종도, 신불도, 삼목도의 구릉을 절토하는 데 큰 장애가 없었고, 더욱이 절취한 석자재는 방조제와 활주로 공사 때 재활용됐으며, 흙과 소나무 역시 공항 조경에 쓰였다. 소음 피해에 따른 민원 발생 없이 연간 1억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이 가능한 점은 인천국제공항의 또 다른 이점이다.

    개발 초기, 젊은 나이의 ‘항공맨’ 윤영표는 버스를 타고 동인천으로 가서 그곳의 월미도에서 하루 5회 운항하는 연락선을 타고 용유도와 영종도로 출근했다. 점점이 떠있는 두 섬의 현장 막사에서 바라본 영종도 일대는 초현대식 공항이 들어서는 부지답지 않게 태고의 생태와 삶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섬과 섬 사이, 갯벌과 갯벌 사이, 연락선과 작은 고깃배 사이, 오래 이어져온 전통의 삶과 머지않아 펼쳐질 초현대 공간 사이에서 젊은 시절의 윤영표는 서해의 황홀한 낙조를 바라보았다. 한 생애를 바칠 만한 거룩한 처녀지가 눈앞에 장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또 한 사람의 기억을 따라가보자. 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팀 이재훈 차장은 개발 초기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인천국제공항

    인천국제공항은 극한 기술의 집합체다.

    “가끔 일이 많은 직원까지 합세하면 많게는 6명이 한 방에서 자기도 했다. 이때 가장 큰 고통은 누울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천장을 보고 누울 공간이 안 돼 모로 누워야 했는데, 서로 마주 보고 자기도 그렇고 해서 전부 한 쪽 방향으로 고개를 두고 자야 했다. 지금도 그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아침이면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어떤 날은 월미도에 짙은 해무가 껴서 오후 1시까지 나루터에서 기다리다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배를 타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 꼬불거리는 섬 도로를 비상등을 켜고 달리기도 했다.”

    그런 시절, 영종도 일대는 다만 광막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몇 개의 섬에 지나지 않았으나 매립해 얻은 공항 부지는 2020년께 여객 1억명과 화물 700만t을 처리할 수 있는 거대한 인공도시로 확장된다.

    윤영표 본부장은 2001년 3월29일, 수없는 종합 시운전과 가상훈련 끝에 마침내 개항해 첫 비행기가 내리던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간직한다. 개항 전날, 활주로에선 진공흡입기를 이용한 이물질 제거작업이 벌어졌고, 여객터미널에서는 소방차를 동원해 대청소를 진행했다. 항공사, 세관 등 김포공항 상주기관과 입주업체도 저마다 밤을 새우면서 D-데이를 맞았다.

    마침내 새벽 5시, 방콕발 아시아나항공 OZ423편이 활주로에 안착했고, 오전 8시30분 마닐라행 대한항공 KE621편이 이륙함으로써 인천국제공항의 역사가 시작됐다. 물론 그 전날, 부지 선정에서 개항까지 영종도에서 구슬땀을 흘린 공항맨들은 김포공항에서 이륙한 37편의 화물용 항공기가 밤새도록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안전하게 착륙하는 장관을 보면서, 성공을 예감하고 있었다.

    #06:50 : 인천국제공항 도착장

    새벽에서 아침 사이, 도착하는 사람도 지쳐 있고, 기다리는 사람도 지쳐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도착장의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점이다. 도착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마중 나온 사람을 채 찾지 못한 경우일 뿐, 대부분은 환영객과 함께 서둘러 주차장으로 빠져나간다.

    이제 막 도착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은 비행기 안에서 긴밤을 보낸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지친 몸으로 크고 작은 여행 가방을 끌고 나온다. 새벽같이 공항으로 달려와 친지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달려가 여행가방을 넘겨받는다. 포옹하는 사람, 악수하는 사람도 있고 가볍게 목례하는 직원도 보인다.

    상하이와 콸라룸푸르에서 연달아 비행기가 도착하고, 소풍길에 나선 초등학교 아이들의 목소리처럼 번창하더니, 곧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도착장은 고요해진다.

    인천국제공항은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평가와 지표에서 언제나 뛰어난 성취를 거둬왔다.

    2008 ACI 주관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 4연패
    미국 Global Traveler 지 선정 3년 연속 최우수 공항
    IATA Eagle Award 선정 최우수 공항
    Air Cargo World 지 선정 최우수 화물공항
    2007 ACI 주관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 3연패
    미국 Global Traveler 지 선정 2년 연속 최우수 공항
    영국 OAG 선정 세계 최고 공항
    Air Cargo World 지 선정 우수 화물공항


    운항본부 운항안전팀 황명석 대리는 “모든 일상 업무는 오직 안전에 집중돼 있다”고 말한다. 그는 스위스에 위치한 국제공항협의회에서 1년 동안 항공 안전 관리를 익힌 전문가로 항공기가 여객터미널에 접근하는 계류장의 안전시설을 살피는 게 업(業)이다. 거대한 항공기는 물론 그 아래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특수차량의 방향과 속도를 관리하고, 미세한 작업 도구나 철재 파편을 엄밀하게 살피는 그에게 안전은 지상 과제다. 그는 “안전은 공항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인천국제공항

    공항은 초근대적 비(非)장소다

    안전을 지상과제로 삼는 인천국제공항의 대헌장을 실감케 한 짤막한 에피소드 하나. 우리 일행을 안내한 인천국제공항공사 홍보실 강호규 대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류장관제탑에서 근무했다.

    계류장관제탑은 4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운영을 시작한 인천국제공항 2단계 신축 시설의 하나. 지상 비행기를 관제하는 계류장 관제 업무는 그동안 공항 관제탑 18층의 임시 장소에서 이뤄지다가 높이 65m 규모의 계류장관제탑을 신축해 옮겨왔다.

    물론 이 계류장관제탑 역시 엄중한 보안시설이라 안으로 들어가려면 여러 단계의 보안 절차를 밟아야 한다. 국가정보원의 허가도 필요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설에서 근무한 강호규 대리가 일행을 안내했는데, 사전 보안절차를 거치지 않은 그는 나와 사진기자를 관제탑으로 올려 보낸 뒤 1층의 작은 의자에 앉아 꽤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려야만 했다. 문 하나만 열고 들어가면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데도 누구 한 사람 그 문을 임의로 통과하지 못했다. 허가받지 않은 지역은 결코 스쳐지나갈 수도 없는 극한의 보안 수칙은 철두철미했다. 수십 번이나 보안카드를 확인받으면서 나는 이 거대한 시설이 얼마나 엄정하게 운영되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11:20 :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길고 널찍한 회랑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그 옆을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양옆으로 줄지어 선 수많은 면세점, 혹은 구경을 하고 혹은 구매를 하고 또 그 옆으로 한가로이 산책하듯 걸어가는 사람들. 출국장의 풍경이다. 출국장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 사이 가장 붐빈다.

    만약 저 산책자들의 손에 티켓이 없다면 이 출국장 내부의 풍경은 근사한 대형 쇼핑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출국장의 긴 회랑은 인천국제공항이 “국제공항이라는 공간은 무국적성과 공항을 통해 어디든 국가로의 이동이 가능하며 일상의 삶이 완전히 탈출하는 공간”(문학평론가 김우창, ‘국제공항-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에 대한 명상’ 중)임을 확실히 증명한다.

    이 공간은 특정한 장소라기보다는,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의 용어를 빌리건대, 하나의 ‘비(非)장소’다. 그에 따르면 장소는 인류학적 흔적과 역사, 문화가 내장된 곳으로 특정한 언어 및 지역성과 삶의 방식이 혼성된 정체성을 보여주지만 비장소는 임시로 거처하거나 통과하는 공간이다. 호텔, 기차역, 공항이 대표적인 비장소의 공간인데, 마르크 오제에 따르면 현대는 이러한 초근대적 비장소를 나날이 더 많이 생산한다.

    왕자웨이의 ‘중경삼림’, 차이밍량의 ‘거기 지금 몇시인가?’, 박기용의 ‘모텔 선인장’ 같은 영화가 이러한 비장소에 머무르는 인간의 삶을 섬세하게 스케치하고 있으며 무라카미 류의 소설 ‘공항에서’도 비장소를 다루고 있다.

    마르크 오제가 비장소의 공간에서 개인은 독립적 내면을 상실하고 구체성을 결여하면서 익명의 상실을 겪는다고 말했거니와 무라카미 류의 소설집 ‘공항에서’는 술집, 공원, 노래방, 편의점 같은 현대도시의 무기질 공간을 다루고 있는데, 그 한 대목인 ‘공항에서’라는 단편에서도 ‘근대화의 물결로부터 밀려났거나 홀로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변화를 거부하거나 휩쓸린 사람들’을 차분히 다루고 있다.

    일시적 거류민

    그런 시선으로, 4층의 에어스타 테라스에서, 다시 공항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여객터미널 4층 중앙에 위치한 이 테라스는 공항 전경과 세계 각국의 비행기가 한눈에 보이는 공간으로 야간에는 공항 계류장의 조명 불빛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책과 커피, 무료 인터넷을 제공하는 공간인데, 이 테라스 입구의 간이의자에 앉으면 공항 출국장의 긴 회랑을 내려다볼 수 있다.

    긴 회랑은 압도적 크기와 세련된 디자인과 빛나는 구성으로 이용객을 ‘쾌적한 소비’의 한순간으로 유도한다. 사람들은 지금 어디 먼 곳으로 나가려는 게 아니라 마치 오랫동안 미뤄둔 쇼핑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듯이 보인다. 물론 누구도 이 ‘쾌적한 공간’에서 오랫동안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기나긴 회랑은 역사와 문화의 퇴적층이 아니라 쇼윈도가 극한의 길이를 지향하면서 늘어선 것일 따름이다.

    결코 뿌리내리고 살 만한 곳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어디 공항뿐이랴, 현대의 공간은 점점 더 이와 같은 극한의 현재성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아무도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찬우물 삼거리가 OO마트 삼거리로 바뀌고 서당말과 밤골이 7단지, 8단지로 옷을 갈아입고, 그 신생의 거리에 다국적(곧 무국적) 커피전문점이 생기듯이, 지금 이 거대한 인공도시의 한복판에도 우리 내면에 화인처럼 찍혀 있는 온갖 브랜드의 의류와 잡화가 일동 기립해 있고, 그 사이로 비장소의 일시적 거류민들이 비행기 티켓을 들고 유유히 산책한다.

    이 공간의 순간성은, 다만 공항이라는 인위의 조건만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가 나날이 편리해지는 듯하면서, 사람이 뿌리내리고 살 만한 곳이 되지 못하는 것”(김우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다듬게 해준다. 우리는 점점 더, 미끄러지는 삶을 살아간다.

    인천국제공항
    #15:00 인천국제공항 관제탑

    항공 운항의 절대적 관건을 쥐고 있는 관제탑. 수많은 재난 영화에서 보았던 그 극한의 긴장과 팽팽한 열기는,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8각 구조의 22층 규모로 높이 100.4m에 달하는 관제탑에서 22명의 관제사가 4팀으로 나눠 하루 2교대 방식으로 근무한다.

    인천국제공항 관제탑의 권원오 탑장은 낯선 방문자의 사소한 질문에 농담을 섞어가며 대답한다. 주위의 동료, 후배도 어느 평범한 빌딩의 사무실에서처럼 일한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그들의 눈은 언제나 계기와 활주로로 향해 있고, 전용 마이크를 이용해 항공기와 교신할 때면 일체의 감정이나 호흡도 느끼기 어려울 만큼 건조하면서도 정밀하게 소통한다. 수십 대의 모니터가 인천국제공항 상공의 모든 항공기(그러니까 일반 여객기뿐만 아니라 헬기나 전투기까지 포함하여)를 포착했으며, 레이더의 범위를 넓히면 한반도 상공의 비행체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권 탑장은 인천국제공항 역사의 분기점인 2001년 3월29일 새벽, 그 첫 항공기가 활주로에 착륙했을 때 관제를 맡았던 베테랑. 그가 레이더 스크린을 손으로 짚어가며 한반도 상공의 지금 모습을 설명했다. 레이더 스크린 위에 모든 항공기의 기종과 편명, 고도와 속도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기호들은 낯선 것이었다. 권 탑장이 지형지물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 나는 비로소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활주로와 관계시설, 산과 섬, 그리고 도시들, 관제탑은 그 모든 것을 조망하는 위치에 서 있다. 쾌청한 날에는 저 멀리 북한의 옹진반도가 보인다.

    김휘양 관제사에 따르면 한 편의 비행기가 이륙해 목적지를 향해 비상하는 데는 몇 단계의 관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항공사가 항공교통센터에 비행계획서를 제출해 승인을 받으면, 이에 준해 항공교통센터는 이륙 30분 전 이착륙 공항의 관제기관에 해당 항공기의 비행자료를 전송한다. 최종적으로 비행기 안전사항을 점검한 조종사는 관제사와 교신해 이륙 허가를 받는다. 관제탑은 섬세한 절차를 통해 수시로 조종사와 소통하며 허가를 내준다. 이후에는 서울접근관제소와 항로관제소가 비행기를 담당한다.

    돌발상황이 벌어지면 극한의 긴장이 요구되는 관제탑 업무지만 이 특별한 시설 위에서 바라보는 영종도 일대는 김 관제사에게 늘 새로운 감흥을 준다. 그는 북한의 옹진반도에서 강화도, 김포 일대와 인천의 계양산, 완공을 눈앞에 둔 인천대교와 그 사이의 수많은 섬을 가리키면서 “드넓은 창공으로 뻗어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인간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눈앞에 펼쳐지는 사계절의 놀라운 변화 앞에서 겸허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장엄하게 저물어가는 왕산리의 낙조와 천지를 가득 메우는 봄철의 해무 앞에서 극도로 긴장된 관제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인간은 역시 거대한 자연의 품 안에서 나름의 위력을 부릴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17:10 인천국제공항 휴게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경외심을 갖는 것은 저 18세기 이후 인간이 자연스레 가진 낭만적 감정이다. 중세와 격절하면서, 인간은 신 없는 시대를 살게 됐다. 신이 부재하는 우주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며 동시에 극복해야만 하는 존재다. 검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끝없는 밤바다 혹은 거대한 저녁 하늘의 장엄한 황혼 앞에 서면 인간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부정하기 어려운 매혹에 사로잡힌다.

    이제 그러한 자연 공간에 대한 경외심은 인간 스스로 빚어낸 거대한 인공 구조물 앞에서 재현된다. 험준한 산악을 가로지르는 중앙고속도로, 도심을 관통해 바다 저 멀리 뻗어나가는 부산 광안대교, 압도적 스케일의 복합 쇼핑몰은 저 중세나 근대의 인간이 바라보았던 황혼에 물든 바다만큼이나 복합적이고 경이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비행기가 속도를 높이려 휠을 뒤로 젖힐 때, 그리하여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해 허공으로 날아오를 때,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일렁거린다.”

    공군 경력을 포함해 23년째 조종석을 지킨 아시아나항공 손환주 기장의 말이다. 그는 공군사관학교 4학년 때, 프로펠러기를 조종한 후 ‘하늘에 살면서 하늘에 목숨 바친다’는 노래를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이후 무사고 운항으로 지구의 창공을 누볐다. 그는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던 동남아 상공의 짙은 뭉게구름과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로 발생한 터뷸런스(난기류)와 맞싸워야 했던 극한의 순간을 기억하면서, “인간은 거대한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싸워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손 기장은 “인천국제공항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공항이다. 이것은 애국심도 아니고 자만심도 아니다. 사실, 그 자체다”라고 했다. 예컨대 태국 방콕공항은 규모는 크지만 동선이 필요 이상으로 긴데다 계류장 관제 및 안전 관리가 기대에 못 미치고, 싱가포르의 창이공항 역시 최신 기술을 집적해 건설했지만 인간적 공간 배치 면에서 아쉽다는 것이다. 반면 인천국제공항은 일반 이용자의 검색과 세관 절차까지 여느 국제공항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수준이라고 그는 평가했다.

    같은 항공사 박경혜 승무원 역시 인천국제공항의 인간적 측면을 강조한다. 호주의 미항(美港) 시드니를 포함해 세계에서 이름난 공항과 도시를 웬만큼 돌아다녀보았지만 “인간에 대한 배려만큼은 인천국제공항이 단연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이 한국문화박물관과 전통문화체험관을 운영하는 것은 공항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려는 실험이다. 특히 전통문화체험관은 그 이용객 수가 2008년에만 10만명이 넘는다. 입국장 4곳의 ‘문화의 거리’도 공항의 인간적 면모를 느끼게 해준다.

    박 승무원은 “인천국제공항의 문화적 실험이 인공도시 안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면서 “무미건조하고 답답할 것 같은 공항을 인간적 서비스로 채워나가는 것은 일상을 벗어나려는 공항 이용자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21:10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과연 이러한 실험은 어떤 성과를 거둘 것인가? 인간의 온기가 깊이 밴 ‘인공 낙원’은 실현 가능한 꿈인가?

    아직 가부의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공항을 빠져나와 서울로 직진하는 길을 잠시 미뤄두고 을왕리해수욕장 근처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멀찍이 바라본 인천국제공항은 서서히 밤의 시간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평일 저녁임에도 을왕리 해변에는 가족, 연인이 저마다의 추억을 쌓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볼꽃놀이를 하는 아이들,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들, 바다로 뛰어가는 아이들, 또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들, 그 곁으로 모래를 밟으며 느리게 걸어가는 연인들. 그 모든 풍경 위로 황혼이 내려앉고 다시 그 붉은 허공 속에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아득한 곳으로 날아오른다.

    인위적 공간의 조성은 현대적 삶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우리네 삶은 점점 더 거대한 인공구조물 속으로 편입된다. 이 한적한 바닷가의 모래나 파도는 어쩌다 시간을 내서 찾아야만 하는 비(非)일상이 됐고, 빌딩과 커피숍, 지하철과 공항 같은 인위의 공간이 실존의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그 익명의 거대한 공간 안에서 우리는 일하고, 말을 걸고, 휴식을 취하고, 더러 사랑을 나눈다. 인공구조 안에 필연코 인간의 따스한 온기를 담아내는 것은, 생태 운동의 거룩한 일만큼은 아닐지라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작은 깃발이다. 피상적인 이벤트나 문화시설의 배치만으로 인천공항이 인간적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마저 생략된 극한의 인공공간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오른편으로 인천대교가 견고하면서도 장려한 형체를 드러낸다. 10월 완공되는 이 다리는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데, 바다 구간 길이만 11.7㎞에 달한다. 서해의 그 많은 섬과 갯벌과 해안선들, 그 역사와 문화 위로 빚어진 극한의 인공도시를 뒤로하고 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 나는 조금은 거칠게, 자동차의 가속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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