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美‘엘리트 양성소’아이비리그의 비밀

“한인 학생은 SAT 만점 받아도 하버드대 합격 장담 못해”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입력2009-07-03 1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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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서 아이비리그는 ‘엘리트 양성소’로 꼽힌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은 일찍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성적뿐만 아니라 리더십, 창의성 등을 평가해왔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특혜입학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 한국에서도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고 있어 주목되는 부분이다. 동아일보사는 미국 명문대학 전형과정을 파헤친 다니엘 골든씨의 ‘The Price of Admission’ 번역판을 7월 중순경 출판할 예정이다.
    • 그의 저서를 발췌한 내용과 저자 e메일 인터뷰를 실는다. ‘편집자’
    美‘엘리트 양성소’아이비리그의 비밀

    하버드대 졸업식 장면.

    The price of Admission 요약

    빌 프리스트 전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의 아들 윌리엄 해리슨 프리스트 주니어와 앨 고어 전 부통령의 아들 앨 고어 3세는 공통점이 많다. 테네시 주에 뿌리를 두면서도 학비가 비싼 워싱턴의 사립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들은 숙제보다는 파티를 즐겼다. 성적만으로 보면 이류대학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프리스트와 고어는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에 각각 합격하면서 아버지가 간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프린스턴대는 해리슨 프리스트를 지적 가능성보다는 그의 집안이 수백억을 기부해 학생회관 등을 지어주었고, 아버지가 저명인사인데다가 학교 재단 이사회에서도 봉사했기 때문에 받아들였다. 하버드대는 재단 이사회 전임 멤버였고, 부통령을 지낸 동문의 아들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이처럼 부자이거나 연줄 있는 집 자녀들은 실력이 없어도 명문대학에 슬며시 들어간다. 그 수가 수천명에 달한다. 특권층에 대한 특혜현상은 당파를 가리지 않는다. 부와 권력, 민주당과 공화당, 차별 철폐운동의 지지자와 반대자, 좌파 할리우드 영화배우와 우파 재벌 등 정치와 문화 전 영역을 망라한다. 일단 대학에 들어가면 부유한 학생들은 식사클럽이나 동아리, 비밀결사 등과 같은 배타적인 클럽에 가입해 미래의 고용주가 될 동문이나 영향력 있는 동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린다. 예를 들어 최근 프린스턴 대학의 한 고상한 식사클럽에 가입한 학생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조카, 2004년 민주당 부통령후보인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의 딸, 제이 록펠러 상원의원의 아들 등이 있다.

    美‘엘리트 양성소’아이비리그의 비밀

    The Price of Admission 책표지

    이 책은 미국사회의 권력과 풍요로움으로 가는 관문인 100여 곳의 사립대학이 부유하거나 연줄 있는 학생에게 특혜를 주는 입시제도의 이중 잣대를 폭로한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혹은 남몰래 특별대우를 받는다. 그들을 받아줄 대학 입학처장과 직접 대면하는 특권을 누리며, 입시라는 고된 여정을 일등석에서 편안하게 보낸다. 그들은 다른 지원자라면 바로 낙방할 만한 일들인 서류 접수 마감일 경과에서부터 음주운전까지 용서받는 능력을 지닌 자들이다.



    부자에게 유리한 체육특기생

    최근 입시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지고 있음에도 명문 대학들은 여전히 동문자녀에게 특혜를 제공한다. 대학들은 과거에 부모가 큰 기부금을 냈거나 앞으로 기부 가능성이 있는 집 아이들에게 입학이라는 대가를 정산한 뒤 줄의 맨 앞으로 안내한다. 거의 모든 정상권 대학이 학교 발전기금 부서에서 입학 담당 부서로 이들 ‘기부 입학자’의 명단을 넘기는데, 부유한 집 아이들은 고등학교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거나 SAT 점수가 합격선보다 300~400점 낮아도 종종 합격하곤 한다.

    대학들은 또한 학교의 지명도를 높여줄 만한 유명인사 자녀의 환심을 사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주요 교수들에게도 자녀 입학 특례나 전액 장학금 같은 회유책을 쓴다. 그리고 체육특기생의 경우 서민층 또는 소수인종 학생들이 주로 혜택을 보고 있다는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오히려 백인과 부자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농구나 미식축구, 육상 종목에 주로 참여하는 소수 인종에 대한 특혜와 상쇄되도록 일류대학에서는 고소득층 백인들이 주로 즐기는 조정, 스쿼시, 승마, 스키, 요트, 펜싱, 골프 종목 특기생을 뽑는데, 심지어 코넬이나 버지니아 대학의 경우는 폴로도 체육 특기자 선발 대상이다.

    대학 당국은 특권층 특혜에 대해 실험실도 지어야 하고, 장학금도 줘야 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미국 내 최고의 사학인 칼텍은 입학 절차의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고도 충분한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명문대 입시에서 특권층에 대한 특혜는 총체적 불균형을 낳는데, 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일류 대학 재학생 가운데 소득분포 기준 하위 25% 출신 학생은 겨우 3~11%라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2004년 대통령선거에 불만이 있는 투표자라면 예일대를 비난해도 된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존 케리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둘 다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예일대 입학 특혜의 수혜자다. 둘 다 그 학교에서 중간쯤 가는 학생으로, 예일대의 비밀결사인 해골 종단 소속이었는데 그곳에서 훗날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관계들을 맺었다. 그리고 둘 다 집안의 전통을 잇기 위해 딸을 예일로 진학시켰다.

    美‘엘리트 양성소’아이비리그의 비밀

    예일대 교정.

    자라면서 나는 미국과 이 나라의 대학입시가 실력 중심이라 믿어왔다. 이민자인 내 부모는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분들은 현명하게 살아오면서 박사 학위를 얻고 매사추세츠 대학의 종신 교수로 우뚝 섰다. 나는 공립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하버드와 코넬 두 대학교를 지원했고, 그 두 학교에 모두 합격했다.

    그때 그 시절에는 연줄이 없는 학생들이 아이비리그에 합격할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았다. 내가 입학한 1974년에는 하버드대에 1만1166명이 지원해 1600명이 합격했다. 2005년 지원자는 두 배인 2만2797명으로 증가했으나, 입학 정원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버드와 다른 명문대를 지원하는 지원자는 풍선처럼 점점 불어나는데, 특혜 집단을 위한 자리를 유지해야만 하니 일반 지원자 합격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지금은 내 성적(SAT 1410, 고교 10등, 심화과목 한 과목 수강) 수준의 지원자가 동문자녀나 기부 입학자, 체육특기생, 교수 자녀, 소수인종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아마 원서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교육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2002년에 입학 특혜에 대한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비로소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곧 특종을 캐냈다. 결국 나는 특권층의 입학 특례에 대한 기사를 네 번 1면에 썼다. 이후 찬반양론이 엇갈린 독자의 e메일이 쇄도했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도 후속 기사를 내보냈다.

    하버드대 입시 경쟁률은 10대 1이 넘으며, SAT 만점자도 반 이상이나 불합격한다. 신입생 열에 아홉은 출신고교 상위 10%에 드는 학생이다. 하버드 로스쿨은 전체 지원자의 11%만이 합격한다.

    주요 기부자들의 자녀들은 이보다 훨씬 합격률이 높다. 명사 인명록과 동창회 명부, 기타 자료를 통해 424명의 하버드재정위원회 회원 가운데 218명이 하버드에 자녀를 보냈음을 확인했다. 많은 기부자들이 한 명 이상의 자녀를 보냈으므로 하버드에 진학한 전체 자녀의 숫자는 최소한 336명이다. 거의 300명이 학부에 입학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미국 권력의 복도로 진입하는 관문인 로스쿨과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재정위원회 회원 자녀들이 하버드에서 얻는 것은 단지 지적인 세련됨만은 아니다. 최고의 취업을 보증하는 졸업장과 힘 있는 친구, 그리고 배우자를 얻게 되며, 미국 귀족사회 내에서 가문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게 해준다.

    하버드는 지원한 동문자녀의 3분의 1 정도를 합격시키는데, 이는 일반적인 평균 합격률의 4배에 가까운 수치다. 동문자녀들은 전체 학생수의 13%를 차지한다. 하버드 입시에서 동문 특혜의 가장 큰 명분은 돈이다. 동문 기부가 하버드 기금을 주도하며, 졸업생의 기부 의지와 능력은 그 자손에게 학교가 베풀 특혜의 깊이에 영향을 미친다.

    제2의 유대인-차별받는 아시아계

    헨리 박은 명문 그로톤 고교의 1998년 졸업생 79명 중 14등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SAT 수학 과목에서는 800점 만점을, 영어와 합계 점수에서는 1600점 만점에 1560점을 기록했다. 전국 상위 0.25%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이고 크로스컨트리 팀 선수로 활동했으며, 급우들과 공저한 수학 논문이 저명한 학술저널에 실리기도 했다. 자녀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그로톤 고교의 수업료에 허리띠를 졸라매던 근면한 중산층 한국인 이민 가정의 아들로서 헨리는 대학입학사정관들의 관심을 끌 만한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로톤 고교의 진학 상담교사는 헨리의 성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헨리가 아이비리그에 합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다음 등급 학교에 지원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헨리는 진학 상담교사의 조언을 무시했고 결국 하버드, 예일, 브라운, 컬럼비아, 스탠퍼드, MIT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 사이 아이비리그 학교들은 그로톤고 출신 학생 34명을 받아들였는데 브라운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딸을, 하버드는 거액 기부자의 손자를, 컬럼비아는 흑인 지원자를, 스탠퍼드는 대학 이사장인 석유재벌의 딸을 각각 받아들였다.

    헨리의 어머니 수키 박씨는 “제가 순진했어요. 저는 대학입시에서 당락이 오로지 성적으로만 결정되는 줄 알았습니다”고 말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대학 진학에 있어 제2의 유대인이다. 1950년대 이전 유대인을 배제하기 위해 세워진 동문 특혜와 리더십 같은 입학 기준들이 이제는 아시아계를 거부하는 데 적용된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다른 소수인종들처럼 인종에 따른 특혜도 없고, 백인 상류층이 축적해놓은 부와 가문에서 오는 이익도 누리지 못한다. 입학사정관들 사이에서 아시아계 학생은 수학과 과학과목을 만점 받도록 부모에 의해 조종되는 준로봇이라는 이미지로 고착화됐다.

    1990년에 발표된 미 교육부의 보고서는 하버드대에서 아시아계 학생이 백인 학생보다 약간 우수한 SAT 점수와 학교 성적에도 불구하고 합격률이‘현저하게 낮았다’고 발표했다. 보고서는 1979년에서 1988년 사이 하버드대 입시에서 아시아계는 13.2%, 백인은 17.4%의 합격률을 보였다고 결론지었다. 연방 조사관은 백인과 아시아계의 전반적인 합격률 격차를 비교하며 ‘백인이 독점하는 동문 입학과 체육특기생 분야에서 특혜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아시아계는 전체 하버드 지원자의 15.7%를 차지했지만 동문 자녀군에서는 3.5%, 체육특기생군에서는 4.1%에 불과했다.

    대학입학사정관의 편견

    연방 조사관은 또한 하버드대 입학사정관들의 고정관념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다. 하버드 입학사정관들은 ‘개인적 자질’ 항목에서 백인보다 아시아계에게 평균적으로 낮은 점수를 줬다. 아시아계 학생들에게는 지원자 파일에 적힌 메모에 반복적으로 ‘조용함/수줍음, 과학/수학 지향, 성실함’과 같은 표시를 한 것이 조사에서 밝혀졌다. 어떤 사정관은 한 아시아계 학생의 지원서에 이러한 메모도 해놓았다. ‘조용한 편임. 그리고 물론 의사가 되고 싶어함.’ 또 다른 메모에는 ‘성적과 지원 서류가 그동안 내가 읽은 아시아계의 전형적인 서류임. 수학에는 놀랄 만한 재능이, 영어는 그와 반대’라고도 적혀 있었다.

    세 명의 프린스턴 대학 연구원이 2004년에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류대의 경우 같은 합격률을 보이려면 아시아계는 다른 인종보다 50점 이상 더 높은 SAT 점수가 필요하다고 한다. 예일대 기록에 따르면 아시아계 신입생의 SAT 평균점수는 1999년 입학생의 경우 1493점, 2000년은 1496점, 2001년은 1482점이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백인 입학생의 평균은 이보다 40점 정도가 낮았다. 그리고 흑인과 남미계 입학생은 백인 입학생보다도 100~125점이나 뒤처졌다.

    입학사정에 관한 아시아계의 불만은 프린스턴대를 향해 끓어오르고 있는데, 이 학교의 아시아계 입학률은 예일(18%)이나 하버드(19.7%), MIT(26%)보다 훨씬 낮은 12%(2004년 기준)이다. 1980년대 말, 프린스턴대가 자체 조사로 밝혀낸 것은 아시아계의 입학률이 백인보다 낮은 이유는 아시아계 동문 특혜 대상자와 체육특기생의 희소성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번역 이기대씨’

    하버드대 졸업식 장면.

    The Price of Admission 책표지

    예일대 교정.

    주: 여기에서 등장하는 SAT 점수는 1600점 만점 기준임.

    ‘The price of Admission’ 저자 대니얼 골든 인터뷰

    “미국 명문대 입시에서 아시아계는 과거 유대인처럼 차별당해”


    美‘엘리트 양성소’아이비리그의 비밀
    미국에 사는 한인교포 자녀들 중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많다. 그런데 실제로 한인학생 중에는 만점에 가까운 SAT 점수를 받고도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에 떨어지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왜 그럴까? 특별활동이 부족해서? 에세이를 잘못 써서? 한인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리더십 문제? 미 명문대의 특혜입학을 파헤친 ‘The Price of Admisson’을 저술한 대니얼 골든씨(사진)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을 퇴사한 뒤 7월부터 블룸버그 근무를 앞두고 있는 그를 e메일 인터뷰했다.

    아시아계는 ‘제2의 유대인’

    ▼ 당신은 책에서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미국인이 명문대에 진학할 때 다른 어떤 그룹보다도 높은 장벽을 경험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그리고 당신은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을 ‘제2의 유대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왜 그런가? 1900년대 초반 똑똑한 유대계 미국인들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나.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미국 명문대의 특권층 선호현상은 특정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바로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이 피해자다. 미국 대학들은 입학전형과정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가장 높은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숫자를 제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버드, 예일대 등의 자료를 보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합격선에 들기 위해 다른 어떤 그룹보다 SAT 점수가 높아야 한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대통령상 등 미국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가장 권위가 있는 상 수상 비중이 30%에 달하지만 아이비리그 정원의 15%를 차지할 뿐이다. 몇 년 전 뉴욕의 헌터고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학교는 미국 최고의 명문고 중 하나로 꼽히는 학교다. 거기에서 나는 똑똑한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만난 여학생은 고등학교 학점이 4.0점 만점에 3.7점이었고, SAT가 1600점 만점에 1530점이었다. 그래서 내가 ‘축하한다’고 말했더니, 그 학생은 ‘아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아시아계 기준으로는 실패라고 보면서 자조(自嘲)한다’고 말하더라. 유대인도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학입학에서 똑같은 차별을 경험했다. 대학은 유대인 입학에 쿼터 혹은 상한선을 뒀다. 어떤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유대인 지원자에 대해 ‘시험점수는 높지만 상상력이 부족하고 원만한 성격을 갖추지 못한 학생’으로 유형화했다. 이 같은 공정하지 못한 고정관념이 이제는 아시아계에 적용되고 있다.”

    ▼ 당신은 책에서 좋은 성적을 갖추고도 명문대에 불합격한 한국계 지원자 헨리 박씨 사례를 언급했다. 같은 학교 친구에 비해 SAT 점수가 340점이 더 높았지만 친구는 스탠퍼드에 합격한 반면 헨리 박씨는 지원한 명문대에서 모두 떨어졌다. 한국계는 명문대에 지원할 때 박씨처럼 될 가능성이 높나.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 앞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한국계 미국인 학생들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명문대에 꼭 합격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美‘엘리트 양성소’아이비리그의 비밀

    뉴욕 명문고인 헌터고교. 아시아계 비중이 높다.

    미 명문대의 부자와 동문자녀 특혜

    ▼ 당신의 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례가 없는 책이다. 어떤 계기로 이런 책을 쓰게 됐나.

    “2003년은 미국 대법원이 대학입학에서 소수인종(흑인, 히스패닉, 아메리카 인디언) 지원자들을 배려하는 것을 금지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취재했다. 왜냐하면 대입전형과정에서 부유한 백인들이 주 수혜자였던 동문과 거액기부자 자녀에 대한 특혜관행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사와 취재를 통해 ‘특권층 우대’현상이 당시 대학들이 인정했던 것보다 더욱 규모가 크고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밝혀낼 수 있었다.”

    ▼ 많은 사람이 대학입학에서 동문 자녀를 우대(legacies)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외에 부자와 동문을 우대하기 위한 어떤 제도가 있나.

    “대학들은 비록 동문은 아니지만 자녀들이 입학한 뒤 그 대가로 거액을 기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자의 자녀를 전형과정에서 ‘발전(development)’이라는 명목으로 우대해준다. 그리고 학교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유명인사 자녀에게도 그런 특혜를 준다. 이밖에도 폴로나 조정 같은 분야의 체육특기생들은 대학에 입학할 때 유리한데, 이런 종목 스포츠는 주로 부유한 계층이 한다. 부자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 동문자녀 우대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명문대학을 SAT 고득점자만으로 채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형과정에서 ‘순수한 의미의 능력주의’는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런 견해를 당신이 반박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리고 동문자녀 우대제도가 당신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나쁜 것인가.

    “나는 대학이 입학사정을 할 때 ‘부(富)’보다는 ‘능력’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SAT가 지원자 능력의 유일한 혹은 최고의 척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 대학은 대학 정신에 맞는 재능과 잠재력을 갖춘 학생들을 뽑을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대학은 최고의 공과대 학생을 원할 수 있고, 어떤 대학은 최고의 예술가를 뽑을 수 있다. 또 다른 대학은 수학자를 선호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SAT 점수가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상황에서는 드로잉 능력이나 교사 추천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학이 그런 능력을 어떻게 정의하고 평가하건 간에 학생 가족의 지위나 재산보다는 지원자의 능력과 성취에 근거해 합격을 결정하는 것이 낫다.”

    ▼ 요즘은 한국에서 고교과정을 마친 한국학생들이 미국 대학에 곧바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대학입학 전형과정에서 부닥치는 문제는 뭐가 있나.

    “다른 해외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지원자가 미국 대학에 진학할 때 경험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재정문제다. 하버드나 예일대 등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대학은 외국학생에게 재정지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많은 미국 대학은 전형과정에서 자국 학생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재정형편을 감안하지 않는다. 그런데 해외학생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아마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중산층 한국학생은 미국에서 학부교육을 받으려 할 경우 상당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 2006년 하버드대는 중산층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조기입학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몇몇 대학이 똑같은 조치를 취했다. 당신은 이런 변화가 그동안 부유층이나 동문 자제들에게 특혜를 줘왔던 기존 대학전형 절차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유층 자녀에 대한 특혜는 그들이 지원하는 시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에 ‘언제’ 지원하건 특혜를 받는다. 실제로 하버드대가 부유층 학생에게 유리하도록 자격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전형 초기가 아니라 입학전형 마지막 순간이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Z리스트’라고 하는데, 배경이 좋은 고교졸업생을 일단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은 뒤 나중에 합격시키는 것이다.”

    ▼ 당신 책에서 듀크대와 브라운대가 흥미로운 사례로 소개됐다. 그런데 이 두 대학은 어떤 의미에서 현명한 전략을 쓴 것 아닌가.

    “마케팅 측면에서 그들의 전략은 성공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후원자(듀크대 사례) 혹은 영화배우(브라운대) 자녀를 합격시키기 위해 입학과정의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부도덕했다고 볼 수 있다.”

    ▼ 입학전형 과정에서 동문자녀 및 기부자 자녀 우대제도 등을 완전히 없애면 대학기부금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신화인가. 당신이 책에서 소개한 칼텍, 쿠퍼유니언, 베리어(berea) 사례는 대안모델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런 우려는 신화다. 텍사스 A&M 대학의 경우 동문우대제도를 중단했는데 기부금 모집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도 없었다. 오히려 기부금이 증가했다. 텍사스 A&M이 2004년 동문 우대제도를 중단한 이후 기부금모금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며, 대학재단에 대한 기부금액이 두 배로 늘어났다. 칼텍, 베리어, 쿠퍼유니언은 입학전형 과정에서 지원자가 동문자녀인지 아닌지를 전혀 고려사항으로 참조하지 않고 있지만 재정적으로 잘하고 있다. 이 대학들은 대학의 설립취지와 운영방식에 뜻을 같이하는 충성스러운 기부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 당신은 이 저서에서 명문대 전형방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책 출간 이후 반응은 어땠나.

    “어떤 대학들은 나의 건설적인 비판을 환영했다. 그런데 내 모교인 하버드대는 그들의 입학관행을 밝힌 점에 대해 상당히 불만을 가졌다. 그러나 아무도 내 책에 도전하지 않았고, 책에 나온 내용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 그동안 대학들과 이른바 그 분야 전문가들은 대학 입학에 대해 토론할 때 동문자녀 우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애써 무시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더욱이 내가 밝힌 내용을 뒷받침하는 스캔들이 몇 차례 이어졌다. 최근에는 ‘시카고트리뷴’이 일리노이주립대학이 정치인, 대학재단이사, 기타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추천한 지원자들을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수백명 합격시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 당신은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만약 지금 시점에서 과거와 똑같은 SAT, 고등학교 시절 학점, 에세이를 가지고 하버드에 지원한다고 했을 경우 합격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불합격했을까.

    “불합격했을 것이다. 우선 하버드대학 지원자가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그런데 입학 정원은 거의 같다. 때문에 과거보다 합격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다음으로 나는 합격선 근처에 해당하는 지원자였기 때문에, 당시 내 수준의 실력으로 지원했다가는 요즘은 불합격했을 것이다.”

    ▼ 한국에선 최근 많은 대학이 입학사정관 숫자를 늘려가면서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신입생 선발비율도 높이는 추세다. 전통적으로 한국 대입에서는 수학능력시험 성적이나 내신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동문자녀 우대나 기부입학제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한국의 대입전형에 대해 충고 한다면.

    “나는 한국의 대학입학 전형에 대해 잘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데 홍콩, 싱가포르,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지역에서 많은 대학이 그동안 정부 재정지원에 주로 의존해오다가 동문들을 대상으로 기부금을 적극 모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재정의 기반을 확충하려는 이런 노력은 평가받아야 하지만, 이런 것들이 앞으로 대학전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려는 부족한 것 같다. 이런 대학들은 필연적으로 고액기부자들로부터 기부에 대한 대가로 자신들의 자녀들을 입학시키라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대학들은 이런 압력에 저항해야 하며, 전형과정의 공정성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뉴욕 명문고인 헌터고교. 아시아계 비중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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