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샤토 오브리옹 vs 오퍼스원

484년 농익은 보르도 최고 와인 VS 캘리포니아 고급와인의 젊은 선구자

  • 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입력2009-07-03 16: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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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고급와인 시대를 연 오퍼스원은 보르도 와인을 벤치마킹했다. 그 결과 보르도 와인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오브리옹과 많은 유사성을 갖는다. 30년 짧은 역사가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프랑스의 우아함이 담긴 오브리옹과 미국의 힘이 느껴지는 오퍼스원의 닮은 점, 다른 점을 살펴보자.
    샤토 오브리옹 vs 오퍼스원

    오퍼스원 와이너리.

    보르도의 샤토 오브리옹과 캘리포니아의 오퍼스원은 라이벌이라 할 만하다. 둘 다 해당 지역을 대표할 정도의 높은 품질을 자랑하고 있으며 스타일 면에서도 유사하다. 오브리옹은 유서 깊고 화려한 역사를 지닌 반면, 오퍼스원은 짧은 역사에도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 와인의 역할 모델이 되어 고품질 와인 생산의 봇물을 이루었다.

    오브리옹의 특별한 맛은 파리에서 미국대사로 활동한 토머스 제퍼슨 미국 제3대 대통령을 매혹시켰을 정도다. 고증으로 밝혀진 미국 최초의 와인 애호가 제퍼슨의 영향으로 이후 미국 상류사회에 오브리옹이 유행했을 것이다. 한편 제퍼슨이 오브리옹을 방문한 지 200여 년 지난 1999년, 오퍼스원 20주년 기념식에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축하 엽서가 도착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샤토 오브리옹 vs 오퍼스원

    오브리옹(좌) 오퍼스원(우)

    샤토 오브리옹은 보르도 와인 중에 가장 오래된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대서양 건너에 있는 오퍼스원은 캘리포니아 고급와인의 효시라는 점에서 두 와인은 선구자적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캘리포니아는 품종선택, 양조방법, 숙성방법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보르도를 참고했다.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등을 주된 품종으로 삼았고, 이들을 혼합해 최적의 맛을 선보이려고 했다. 또한 프랑스산 오크통을 수입해 ‘캘리포니아에서 만든 보르도 와인’으로 포장해 출시했다. 특히 보르도 스타일을 강조하기 위해 아상블라주(assemblage·여러 품종을 혼합하는 블렌딩 기법)를 적극 활용했는데, 미국에서는 이를 메리티지라고 따로 호칭함으로써 미국화했다. 이러한 경향은 캘리포니아 와인산업 성장에 큰 동력을 제공, 캘리포니아가 보르도를 위협하는 와인산지로 성장하도록 이끌었다.

    최고 와인의 세대교체

    오브리옹과 오퍼스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자. 우선 둘 다 지역을 대표하는 최고급 와인이다. 오브리옹은 1855년 나폴레옹 3세가 부여한 최상위 등급 1등급에 선정됐다. 그전까지 나폴레옹 3세는 메독 지역의 샤토들로만 품평회를 했는데, 메독의 남부에 있는 오브리옹의 품평회 참가를 막기 어려웠다. 워낙 유명한 와인이었기 때문이다. 오브리옹은 1959년에 실시된 지역 등급 심사에서도 1등급으로 선정됐다. 해당 지역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1등급으로 선정된 샤토는 오브리옹이 유일하다. 오퍼스원은 오브리옹과 좀 다르다. 등급 심사가 아예 없다. 오퍼스원은 오브리옹 같은 영예의 등급을 받지는 않았지만, 첫 출시 당시 가격이나 현재의 유통가격 그리고 미국인들의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볼 때 명실상부 미국 최고급 와인의 선구자다.



    두 양조장의 소유체계도 좀 다르다. 샤토 오브리옹은 다섯 개의 1등급 샤토 중에서 미국과의 관련성이 가장 높다. 과거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으며, 현재 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한편 오퍼스원은 프랑스와 미국의 합작품이다. 하지만 둘 다 이미 사람의 한계를 넘어섰다. 주인이 바뀌거나 경영자가 바뀌어도 품질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다.

    오브리옹은 수백 년간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온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물론 19세기 말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진디)로 인해 포도밭의 대부분이 망실돼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오일쇼크 때는 유통시장의 기능이 마비된 데다 설상가상 빈티지까지 좋지 않아 와인 판매에서 절대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경영자들의 지혜로 위기를 슬기롭게 넘겼다. 오퍼스원 역시 창업자 필립 드 로쉴드 남작과 로버트 몬다비 이후 세대교체가 원활히 이루어졌다.

    최고의 와인으로 인정받는 로마네 콩티의 공동 소유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오베르 드 빌렌은 자신은 그저 한 시대를 책임지는 청지기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세대마다 책임자들이 이러한 자세로 포도원 경영을 맡는다면 와인의 명맥이 이어짐은 물론이고 세월이 지날수록 전통과 품질이 반석 위에 세운 집처럼 견고해질 것이다. 당대에 세계 최고의 와인 반열에 오른 안젤로 가야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탈리아의 대표 와인이지만, 향후 세대교체가 잘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실수는 전혀 없고, 빈티지의 특성이 투명하게 반영된 와인을 만드는 수준으로 올라서야 명실상부한 ‘그랑 크뤼(Grand Cru·최고급 와인)’가 될 수 있다. 비욘디 산티의 미래 역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현재의 오너 프랑코 비욘디 산티는 여든을 훌쩍 넘겼지만 노익장을 과시하며 양조장을 돌본다. 그의 집념과 노력이 다음 세대로도 잘 이어질지 여간 궁금한 게 아니다.

    샤토 오브리옹 vs 오퍼스원

    샤토 오브리옹 건물.

    나무를 촘촘하게 심어라

    양조 방식에서 오브리옹과 오퍼스원은 공통점이 많다. 왜냐하면 오퍼스원을 창업한 로쉴드 가문에서 양조방식에 많은 지침을 내렸고, 나머지 공동 창업자인 로버트 몬다비 측에서도 이를 환영해 보르도 최고 샤토의 양조법을 상당 부분 따랐기 때문이다. 두 양조장은 모두 발효를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 통을 사용한다. 온도조절이나 위생관리에 최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포도밭을 구역으로 나누고 구역별로 수확한 포도를 구분해 발효시킨다. 빈티지별로 품종마다 완숙상태가 다르고, 밭마다 품질이 달라서 각기 따로 발효시킨다. 와인을 구분해 여러 샘플을 만들고 실험실에서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 이들을 혼합하는 실험을 통해 최종 아상블라주를 결정한다.

    오크통 숙성을 위해서는 오크통을 바닥에 한 층으로 깐다. 바닥면적이 좁은 샤토에서는 보통 2층이나 3층으로 오크통을 쌓아 숙성하지만, 오퍼스원이나 오브리옹은 한 층으로만 오크통을 배열한다. 작업에 용이하고 숙성에도 만전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퍼스원은 오브리옹처럼 프랑스산 새 오크통을 쓴다. 수확한 포도의 품질이 완벽하고 타닌이 많으므로 새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오크의 기운이 더해져 훌륭한 와인으로 거듭난다.

    포도나무 재배에도 공통점이 많다. 오퍼스원 이전 시대에는 캘리포니아 포도밭은 나무 사이 간격이 2.4m였다. 소출을 많이 올릴 목적으로 나무 사이를 벌려놓았다. 하지만 오브리옹이나 무통 로쉴드는 그 간격이 1.2m밖에 되지 않는다. 포도나무를 더 촘촘히 심어서 나무 간의 경쟁을 유발, 소출을 줄이면서 품질을 높이는 방식이다. 뿌리가 더 깊이 박히도록 해서 포도 완숙을 기하는 재배방법이다. 나무를 촘촘하게 심으면 나무수가 많아지고, 가지치기 일감이 늘어나 노동력이 더 필요해지니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여기서 태양의 열과 빛 중에 무엇이 포도에 더 이로운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열은 포도를 익혀 당분을 높인다. 즉 포도를 농축시킨다. 빛은 광합성을 유발해 껍질을 숙성시킨다. 해서 타닌과 색깔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빛이 더 중요하다. 오퍼스원의 나무도 보르도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로버트 몬다비가 역설할 때 많은 동료가 반대했다. 오퍼스원의 시도는 전례가 없던 것이지만, 이제는 고급을 지향하는 캘리포니아 포도밭의 규범이 됐다.

    수확한 포도의 품질은 다 같지 않다. 품질을 최고로 중시하는 양조장에서 포도의 수준을 따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기대 이하의 포도는 어떻게 할까? 10년 미만의 어린 포도나무의 포도와 30년 정도 된 포도나무의 포도가 품질이 같다고 볼 수 없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샤토에서는 세컨드 와인을 생산한다. 품질이 떨어지는 포도를 샤토의 대표 와인 생산에 쓰지 않고, 별도의 다른 와인을 만드는 재료로 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간판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탈락된 포도로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 세컨드 와인은 간판 와인과 같은 테르와(Terroir)에서 나왔으므로 소비자로서는 좀 더 저렴한 값에 간판 와인의 일부를 맛보는 의미가 있다. 오브리옹의 세컨드 와인은 르 클라렌스 드 오브리옹(Le Clarence de Haut-Brion)이며, 5000케이스 정도 생산한다. 오퍼스원의 세컨드 와인은 오버추어(Overture)다.

    카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

    오브리옹과 오퍼스원은 다른 점도 많다. 우선 오브리옹은 동일한 이름으로 화이트 와인도 만든다. 오브리옹이 위치한 페삭-레오냥 마을 자체가 화이트나 레드 어느 것이나 다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양조장이 원하면 레드와 화이트 둘 다 양조할 수 있다. 반면 오퍼스원은 화이트를 전혀 만들지 않는다.

    두 와인은 같은 보르도 포도로 양조했지만 맛에 차이가 있다. 이른바 스타일의 차이다. 하지만 풍성하고 화려한 아로마는 비슷하다. 오브리옹은 보르도 1등급 와인 중에서 메를로를 가장 많이 혼합한다. 메를로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거칠고 단단한 카베르네 소비뇽의 날카로움을 메를로의 진하고 풍성한 느낌으로 감싸는 덕분에 오브리옹은 1등급 와인 중에 가장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다. 오퍼스원은 9할 정도를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채우는데, 이상하게도 오브리옹의 느낌과 유사한 데가 있다. 이는 나파밸리의 뜨거운 태양 아래 농익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농축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보르도의 메를로와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풍부한 일조량속에서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이 완숙되면서 특유의 거칠고 날카로운 특질이 메를로처럼 부드러워지니 오퍼스원에서 오브리옹의 화려함이 느껴지는 게 무리는 아니다.

    두 와인 모두 화려한 바닐라와 초콜릿 아로마 아래로 블루베리와 블랙커런트 향이 배어난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오브리옹은 미네랄 향이 강하다. 흙먼지 같은 냄새다. 뿌리가 땅속 깊이 박혀 있어 자갈 토양에서 배어 나오는 광물 향취가 와인에 이식된다. 오퍼스원의 나무들은 길어야 30년 정도 됐으니 오브리옹의 깊은 맛을 따라가기엔 멀었다.

    두 양조장의 차이는 포도 이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다분히 경제적인 측면이라고 보는데, 오브리옹은 일반인이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오퍼스원은 입장료만 내면 언제든 가능하다. 오퍼스원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캘리포니아 와인의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다. 추억의 첫 페이지는 아마도 로버트 몬다비로 시작될 것이다. 로버트 몬다비는 오퍼스의 공동 창업자라는 이유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와인 세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드리아 해를 바라보는 이탈리아 마르케 지방이 고향인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난 로버트 몬다비는 미국 와인산업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그가 정하고 유지하면 그게 곧 규범이 됐다. 일찌감치 포도 품종을 라벨에 표시한 것이 오늘날 신세계 와인의 규칙이 된 점이나 소비뇽 블랑을 퓌메 블랑이라고 이름을 바꿔 품종을 표시했어도 둘이 같다고 여겨지는 점이 그렇다. 결정적으로는 미국 땅에서도 고급 와인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만방에 증명해 보이기 위해 오퍼스원을 탄생시켰다.

    샤토 오브리옹 vs 오퍼스원

    샤토 오브리옹 지하 셀러에 있는 제퍼슨 흉상.

    유일한 단점, 가격

    샤토 오브리옹은 품질만큼이나 뛰어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유명세가 유럽 뿐 아니라 대서양을 넘나드는 오브리옹은 일찍이 프랑스 밖에서 먼저 명성을 얻었다. 샤토 오브리옹은 보르도의 쟁쟁한 라이벌 샤토 마고나 샤토 라투르가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프랑스 최고의 와인이었다. 1663년 영국 수필가 사무엘 피프스는 일기에 “내가 한 선술집에서 ‘호 브라이언’이란 와인을 마셨는데, 그건 전에 마셔보지 못한 훌륭한 그리고 아주 개성 있는 맛이었다”고 적었다. 영국의 계몽사상가 존 로크는 1677년에 샤토를 방문해 당시 영국 귀족사회에서 인기가 넘쳤던 오브리옹의 실체를 확인하려 했다. 오브리옹의 인기는 대서양을 건너갔다. 오브리옹은 5대 샤토 중에서 가장 먼저 미국에 수출됐다. 1787년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제퍼슨이 셀러를 방문했으며, 200년 뒤 그의 동상이 셀러에 세워졌다.

    중세 귀족의 별장으로 널리 애용된 샤토는 가문의 부침에 따라 사고 팔렸다. 오브리옹 역시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801년에는 한때 유럽 외교무대를 주름잡았던 프랑스 외무부 장관 탈레랑의 손에 들어갔다. 3년 만에 큰 차익을 남기고 팔았지만, 그가 소유하는 동안 오브리옹이 외교에서 참기름 구실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근거 없는 소문들이 오늘날 오브리옹의 판타지를 강화한다. 탈레랑이 당대 최고의 요리사 카렘과 손잡고 오브리옹과 요리의 환상 궁합을 무기로 빈 회의에 참석한 각국의 외교관들을 녹였다는 일화가 그중 하나다. 어쨌거나 빈 회의 결과 프랑스 국토가 예상보다 넓어졌다.

    1935년에 미국인 클라렌스 딜롱이 오브리옹을 인수한 이후 딜롱 가문이 계속 소유하고 있다. 클라렌스는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인이다. 그의 아들은 케네디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현재의 오너는 클라렌스의 외증손자이자 룩셈부르크 왕자인 로버트. 오브리옹의 유명세는 영화에도 나온다. 톰 크루즈 주연의 ‘야망의 함정(The Firm)’에도 등장하고, 한국영화 ‘작업의 정석’에서는 여성을 유혹하는 도구로 쓰인다.

    오브리옹은 눈을 감고도 찾아낼 수 있다. 5대 샤토를 섞어놓아도 오브리옹은 샤토 이름이 양각된 데다 병 모양이 남달라 손으로 만져보면 쉽게 골라낼 수 있다. 오퍼스원은 보르도 표준 병에 담는다.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오브리옹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오브리옹은 보르도 1등급 와인 중에서 100점을 가장 많이 받았다. 오브리옹의 유일한 단점은 비싸다는 점이다. 요즘 환율대로라면 수입 원가만 해도 100만원에 육박한다. 그런 면에서 와인은 이미 럭셔리다.

    반면 오퍼스원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 와인은 그저 그런 와인이 대부분이었다. ‘보물섬’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스티븐슨의 신혼여행 이야기인 ‘실버라도 무단점유자(The Silverado Squatters)’를 읽어보면 과거에 나파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여행 시기는 1880년이다. 제3장 ‘나파 와인’ 대목에서 작가는 나파의 환경을 자세히 기술했다. 작가가 임시로 묵었던 공간은 마야카마스 산맥의 세인트헬레나 산 어깨 부분에 버려진 한 광산 캠프. 와인애호가였던 작가는 나파 와인이 실험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며, 캘리포니아 와인의 저급한 이미지를 감추고 스페인산이라고 허위 라벨을 붙이는 행태를 목격했다고도 적었다. 작가는 슈램스버그(Schramsberg winery)를 방문했는데, 이 양조장 웹사이트를 보면 자세한 내용이 기술돼 있다.

    나파밸리의 환골탈태

    초라한 과거를 지닌 미국 와인산업은 두 인물을 통해 크게 성장한다. 로버트 몬다비와 로버트 파커다. 파커는 와인 평가에서, 몬다비는 와인 양조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몬다비는 소박한 식탁 위에 와인 한 병만 올려도 분위기가 금세 좋아진다는 와인계의 오랜 믿음을 신봉했다. 2008년 5월, 94세로 작고한 로버트 몬다비의 부고 기사를 쓴 프랑크 프라이어는 ‘뉴욕타임스’에 “그는 훌륭한 와인(fine wine)은 좋은 생활에 절대 필요한 부분이라고 믿었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훌륭한 와인’이란 주관적인 것이다. 와인거래상들은 보통 100달러 이상의 와인을 가리킨다고 홍콩의 와인가게 BBR 대표 니콜라스 페냐가 말했다. 코카콜라와 벌크와인으로 유명한 미국에서도 좋은 와인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런 와인이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고 나아가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고 믿었던 몬다비는 52세 때 집념을 불사르며 나파밸리에 양조장을 세웠다.

    오늘날 나파밸리는 캘리포니아의 핵심 지역이다. 과학적 분석과 기술을 통해 환골탈태했다. 포도를 재배하는 데 있어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온화한 태양이 가끔은 포도를 태워버릴 기세로 뜨겁게 내리쬔다. 포도는 적당한 일조량 속에선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익어야 고유의 특성이 와인에 묻어난다. 이에 일부 고급 생산자들은 시행착오 끝에 서늘하게 오랫동안 익어가는 포도밭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파밸리는 양조가들에게 엘도라도 같은 곳이다. 여기에서 보르도 최고 와인을 능가하는 고급 와인들이 태어나고 있다.

    오퍼스원이 이러한 와인에 길을 제공한 것이다. 1979년에 첫 빈티지를 선보인 오퍼스원 이후로 많은 애호가가 전 재산을 양조장에 투자해 최고급 와인생산 붐을 이룬다. 일단의 애호가가 가격에 상관없이 열광하는 와인의 카테고리를 ‘컬트 와인(Cult wine)’이라고 하는데, 오퍼스원은 이런 컬트 와인 탄생에 공헌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와인으로는 1990년부터 시판되고 있는 할란 에스테이트, 1992년부터 출시된 스크리밍 이글이 있다. 스크리밍 이글은 미국의 최고가 와인으로 유명하다.

    오퍼스원에서는 미국의 힘과 프랑스의 우아함이 느껴진다. 데뷔한 이후 미국 와인으로는 처음 50달러대에 거래되는 신기록을 세웠고, 이후 출시가격과 유통가격이 계속 상승해 미국산 와인 가격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언론에서는 당시 최고가 와인들이 15~20달러에 거래된 사실과 오퍼스원의 출시가격을 비교하면서 “오퍼스가 이겼다(Opus won!)”며 오퍼스원의 탄생을 축하했다.

    독특한 모양의 병 vs 파란 라벨

    오퍼스원의 양조장 건물은 환상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창업자인 로쉴드 남작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1988년에 작고했고 1991년에 완공됐다. 그러니 와인이 출시되고 12년이 지나서야 오퍼스원의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양조장에서는 여러 근거를 내세워 오퍼스원의 높은 가격을 합리화했지만, 여전히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조장이 내세운 근거로는 우선 포도나무를 해당 면적에 더 많이 심어 관리비용, 즉 인건비가 더 많이 든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매년 프랑스산 새 오크통을 준비해야 하며, 3개월마다 통 갈이를 실시한다. 오크통의 와인이 산화되지 않도록 눈금이 내려가면 수시로 채워 산화를 방지하는 것도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블러드 앤 와인’에도 오퍼스원이 등장한다. 130만달러짜리 목걸이를 훔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데, 와인 가게 주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설정이 독특하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수영장에서 여유롭게 마시는 와인이 오퍼스원이다. 목걸이를 서로 차지하려는 등장인물들의 대립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오퍼스원이 클로즈업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BMW, 목걸이, 고급패션 등과 함께 오퍼스원 역시 그런 럭셔리임을 암시한다.

    오퍼스원을 만든 두 인물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와인 병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오퍼스원의 라벨에는 로버트 몬다비와 로쉴드 남작의 옆얼굴이 그려져 있다. 오퍼스원의 파란 빛깔 라벨은 오브리옹의 독특한 병모양만큼이나 기억하기 쉽다.

    장 드 퐁탁의 오브리옹 역사는 1525년 4월23일 시작됐다. 보르도의 5대 샤토 중에 이만큼 정확한 정보를 지닌 곳이 없다. 오브리옹은 이미 484주년을 맞았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보르도, 아니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이다. 한편 오퍼스원은 이제 30주년을 맞이하는 캘리포니아 포도원이지만, 보르도를 벤치마킹함으로써 보르도 같은 최고급 와인 대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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