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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의 남자 옷 이야기 ⑦

핸드메이드 슈트의 자존심, 나폴리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핸드메이드 슈트의 자존심,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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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드 슈트의 자존심, 나폴리

나폴리 장인들은 바늘을 깊게 넣어 땀을 뜨는 정성스러운 바느질을 통해 수준 높은 슈트를 완성한다.

나에게 나폴리 슈트에 대한 유쾌한 기억이 있다. 매년 전세계 멋진 남성들이 모이는 ‘피티 워모(Pitti Uomo)’라는 남성복 전시회에서였다. 피렌체에서 열리는 이 유명한 전시회는 이탈리아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지역의 가장 전통있고 유서 깊은 남성복 브랜드들이 새 시즌의 컬렉션을 제시하고, 전세계 바이어들이 상품을 구매하는 비즈니스 공간이기도 하다. 가장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들이 모이기 때문에 이들을 촬영해서 보여주는 블로그가 생겨날 만큼 보는 이의 눈이 즐거워지는 자리다.

나는 바이어로서 매년 두 차례 꼬박꼬박 참석해 좋은 제품을 선별해 한국의 소비자에게 소개한다. 한번은 전시회 중 에스프레소를 한잔하며 잠시 쉬고 있었다. 이탈리아인으로 보이는 멋진 노신사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그 슈트는 아톨리니입니까?” 아니, 이탈리아인들이 아무리 슈트에 남다른 애정과 눈썰미를 가지고 있다지만, 내 몸에 맞게 제작된 맞춤 슈트의 브랜드를 외관만 보고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라인만 보면 브랜드를 짐작할 수 있다면서 “당신은 얼굴은 동양인인데 몸은 이탈리아인 같다”면서 웃었다.

내가 입은 맞춤복은 체사레 아톨리니라는 나폴리 브랜드로, 한 벌의 슈트를 만들기 위해 수십 명의 장인이 동원되는 수제복이다. 이런 슈트 브랜드를 가진 이탈리아가 멋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슈트에 대한 남자들의 일반적인 안목 자체가 높다는 점이 더 부럽다. 나폴리 슈트의 어깨 라인은 매우 부드럽거나, 정교한 수작업으로 부드러운 주름을 수놓은 것이 특징이다. 일본 오사카나 부산 등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 특유의 정서가 있듯이, 나폴리 슈트에도 이탈리아 남부 항구도시만의 유쾌한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세계 최초로 ‘길드’ 결성

나폴리 슈트에 대한 관심은 한국 남성복 시장의 점진적 성숙이라는 시대성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클래식한 콘셉트의 브랜드인지, 트렌드를 따르는 디자이너 브랜드인지 따지지 않고 이탈리아산 브랜드면 무조건 명품이라고 환호했던 반면, 이제는 브랜드의 고유 성격이 자신과 맞는지 따져보는 경향이 생겼다. 남성복의 스펙트럼이 별로 넓지 않은 한국에도 나폴리식이냐 로마식이냐 혹은 클래식이냐 트렌드냐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들이 출현하면서 브랜드네임보다 슈트의 퀄리티와 역사적 배경이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정말 품질이 좋은 슈트란 어떤 것인가? 과연 누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만들어낼까?” 하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시장에 꼭 필요했던 질문으로 이어진다.



문화적 유산이 풍부하고, 세계적으로 출중한 패션 브랜드를 많이 배출한 국가답게 이탈리아인들은 모든 문화영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중 슈트에 관한 한 나폴리 장인의 자존심은 이탈리아의 그 누구보다 하늘을 찌른다. 지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탈리아 슈트 스타일의 뿌리가 나폴리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남부 지역 장인들의 손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전세계에서 장인 조합인 길드가 최초로 결성된 곳이 나폴리다. 1351년에 이미 재봉 장인 길드를 위한 기술시험이 실시될 만큼 이 도시엔 장인이 많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수준 높은 클래식 슈트를 제작하는 테일러를 사르토(Sarto)라고 하는데, 이미 19세기부터 이탈리아 전역에서 인정받은 사르토는 모두 나폴리 출신이었다. 1930년대 빈첸초 아톨리니(Vincenzo Attolini)는 영국의 복식 철학을 바탕으로 나폴리 고유의 스타일을 정립한 가장 실력 있는 사르토로 손꼽혔다. 그의 가업을 잇는 아들이 바로 전세계 기성복의 최상위에 랭크된 체사레 아톨리니의 오너이자 나폴리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실력파 장인 체사레 아톨리니(Cesare Attolini)다. 아톨리니 가문이 정립한 나폴리 슈트의 특징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고 유럽의 무역 허브구실을 할 정도의 규모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문화는 전 유럽의 신사들에게 수용될 만큼 국제적이다. 나폴리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역사적으로 그리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아랍, 터키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고 이들 타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흡수해 재해석하면서 발달했다. 또한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 열강의 지배를 받으면서 각국의 복식 전통과 나폴리만의 기술을 혼합한 독특한 나폴리 스타일을 형성해왔다. 그러므로 나폴리 슈트에는 나폴리를 넘어 전 유럽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나폴리 스타일은 산업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적인 문화의 핵심이 되는 핸드메이드 정신, 즉 장인의 정교한 수작업으로 획득 가능한 품질에 대한 일관성 있는 지향을 보여준다. 특히 인체의 움직임을 반영해서 제작하는 나폴리 슈트는 어깨와 소매, 허리 등 인체의 입체적인 부분을 정교한 수작업으로 처리함으로써, 착용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겉으로 드러나는 스타일도 유려하다. 나폴리 슈트의 어깨 라인은 보는 사람이 좀 작아 보이지 않느냐고 걱정할 만큼 몸에 밀착되지만, 정작 슈트를 입은 사람은 전혀 답답함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작업의 비밀은 나폴리 장인의 숙련된 바느질 솜씨다. 소재의 가격에 상관없이 바늘을 깊게 넣어 땀을 뜨는 정성스러운 바느질을 통해 옷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들만의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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