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천도교 최고지도자 성희롱 사건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성적 수치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라서 책임이 더 크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9-07-06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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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항하자 더 세게 쥐어 얼마나 아프던지…”
    • “딸 가진 부모로서 교령님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다”
    • “벽력강하(霹靂降下)의 놀라운 소식”
    천도교 최고지도자 성희롱 사건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천도교 김동환 교령은 6월4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쪽에서 소리가 계속 나오면 대답이 필요하다”면서 소통을 주문했다. 청와대가 국내 7대 종단 대표를 초청한 자리에서다.

    이 대통령은 “잘 새겨듣겠다. 애쓰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7대 종단의 하나인 천도교는 “현대사회의 모순은 선천세계의 마지막 그림자로 개벽의 시대가 전개된다”고 믿는다. 김 교령은 천도교 최고지도자.

    그는 지난해 이 대통령을 만났을 때 “민심이라는 밑바닥이 얼음처럼 미끄러우면 바퀴는 바퀴대로, 바닥은 바닥대로 따로 돌고 상호 호응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복적으로 성희롱 발생”



    그런데 김 교령이 이끄는 천도교의 민심이 흉흉하다. 김 교령이 성추행 사건으로 망신당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최근 여신도 A씨가 김 교령에게 추행을 당했다며 낸 진정에 대해 “피진정인이 진정인에게 한 성적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정했다.

    인권위는 김 교령에게 “인권위가 주최하는 특별 인권교육을 받을 것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가 종교지도자에게 권고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동아’가 단독입수한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김 교령은 A씨의 겨드랑이로 손을 둘러 가슴 아랫부분을 잡고 얼굴에 손을 대면서 예쁘다고 말하고, 조용한 곳에 가자고 제안했다. 또한 성희롱이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인권위는 “피해자가 천도교에서 사법부와 같은 기능을 하는 감사원에 신고했으나 성희롱 사실 여부의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천도교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면서 근신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진정인이 느꼈을 정신적 충격과 성적 수치감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피진정인은 교단의 대표자로서 교회와 사회에서 타의 모범이 돼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이런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이 더욱 크다”고 꼬집었다.

    인권위는 조사 과정에서 종교지도자와 신도를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같은 상하관계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 고심했다고 한다. 인권위는 결국 “일반 사기업체와 달리 고용관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교직자들이 업무나 공적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으므로 업무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엔 인권위 문경란 상임위원과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황덕남(변호사) 비상임위원이 참여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종교지도자의 언동을 인권의 잣대로 다룬 사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령의 성추행이 처음 논란이 된 것은 지난해 여름이다. 당시 A씨는 김 교령에게 추행을 당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교령의 손버릇이 나빠요. 상습적으로 희롱했습니다. ‘조용한 곳으로 가자’ ‘내 집에 가자’고도 했어요. 저말고도 피해자가 또 있어요. 교령실에 여자 혼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도 돌았습니다. 겨드랑이 밑을 꽉 쥐기도 했고요. 제가 반항하자 더 세게 쥐어 얼마나 아프던지. 이젠 천도교 쪽은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A씨가 인권위에 진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신도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천도교 최고지도자 성희롱 사건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6월4일 청와대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초청 오찬.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성추행의 주인공으로 (교령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또한 교단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교헌(敎憲)에 의해 임시대회를 요구했지만 이상한 기준으로 묵살하고 있으며, 교령과 뜻을 달리하는 분들에 대해 마구잡이로 부당 징계를 감행하고 있습니다.”(천도교 수원교구 ‘교단정상화를 바라는 우리의 의견’ 중에서)

    “우리 천도교 여성 동덕(同德) 한 분이 중요 교직자에게 성희롱, 성추행을 당했다는 벽력강하(霹靂降下)의 놀라운 소식은 당면한 교단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묵묵히 수도 정진하려는 지방 교인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기고 말았습니다. 최근 떠돌아다니는, 쉬쉬하면서 숨기려고 급급한 일, 일반사람들이 알까봐 두려워하는 일, 우리 삼천포지부 여성회 일동은 일련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도저히 같은 여성으로서 지나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천도교 여성회 삼천포지부 회원 일동 심고(心告) 발췌 요약)

    김 교령의 언동이 성희롱이라는 인권위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김 교령은 이렇게 말했다.

    “A씨의 몸을 만진 적이 없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런 말(‘조용한 곳으로 가자’ ‘내 집에 가자’)도 한 적이 없다.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다. 증거를 대보라고 해라. 그런 일 절대로 없다. 여신도가 그들의 사주를 받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조작이다. 날조다.”

    “물러날 생각 없다”

    지난해 7월 천도교 감사원은 “교회의 명예와 교회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교단의 질서를 문란케 하는 해교행위를 했다”면서 A씨에게 6개월 근신의 징계를 내렸다. 천도교 고위인사는 “교령이 여신도를 아끼는 마음에서 보듬은 걸 문제 삼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일 아니냐”고 김 교령을 두둔했다.

    인권위 결정이 알려진 6월4일 일부 교인들은 천도교 교령사를 방문해 ‘김동환 교령 사퇴 촉구서’를 전달했다.

    “교령님은 교헌과 규정이 정한 종문의 체면을 오손하는 등 심대한 잘못으로 교회의 규율을 범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더 이상 교령의 직을 수행하는 것은 스승님과 교단에 돌이킬 수 없는 과오이므로 즉각 사퇴하시기를 촉구합니다.”

    한 교인은 “딸 가진 부모로서 교령님의 행동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교령님께서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령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억울합니다. 인권위 조사는 엉터리예요. 인권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겁니다.”

    A씨는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명예를 회복해서 기쁘지만 교단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듭니다. 심정이 어수선해요.”

    성희롱 예방교육 전문가인 장윤경 갈등경영연구소 소장은 “합리적인 여성이 굴욕감, 혐오감을 느낄 만한 성적 언동이라면 성희롱에 해당한다”면서 “피해 여성이 문제를 제기했다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누명을 쓰거나 낙인이 찍히는 사례가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사인여천(事人如天)은 천도교의 윤리관을 응축한 표현으로 한울님을 공경하듯 사람도 그와 똑같이 공경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믿는 천도교의 밑바닥 민심이 얼음처럼 미끄럽다. 한 천도교인은 “교령께서 신도들을 보듬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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