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이명박 국세청과 한상률

“내가 경상도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고생 안 했다”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9-07-07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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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성해운 수사 때 “한상률 5000만원 받았다”는 진술 나와
    • “누가 거짓 소문을…” 신성해운 문제로 검찰과 국세청 심하게 다퉈
    • 검찰, 국세청 압수수색 때 박연차 리스트 원본 확보 못했다
    • 한상률 낙마 몰고 온 대구 술자리 멤버는 이상득 의원 지인들
    • ‘룸살롱 출입’국세청 국장, 총리실은 ‘부적격’, 청와대는 ‘승진인사’?
    • ‘정보’ 강조하고 기업식 경영마인드 강조한 국세청장 평가도
    이명박 국세청과 한상률

    한상률 전 국세청장(위)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세청 전경.

    박연차 게이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7월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발단이 됐으니 꼬박 1년을 끈 셈이다. 결과는 비극이었고 실체적 진실은 영원히 묻혔다.

    이번 사건의 주연은 누가 뭐라 해도 박연차(64) 전 태광실업 회장이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전·현 정권 실세들이 차례차례 불려나가 조연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박 전 회장만큼이나 비중이 컸던 주인공이 또 있다. 바로 한상률(55) 전 국세청장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그는 절대로 잊히면 안 되는 인물이다. 그는 박연차라는 이름의 ‘판도라의 상자’를 처음 열었고 상자 속 모습을 속속들이 들여다봤다. 상자를 뒤지며 보물찾기에 나섰던, 그러나 아직 그를 만나지 못한 검찰은 상자 속 모습이 처음엔 어땠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상자가 열리기를 바라지 않았던 수많은 권력자의 구애를 한 몸에 받은 사람도 바로 한 전 청장이었다. 그는 그렇게 이 사건의 처음과 끝에 서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유일하게 국세청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가 떠난 빈자리는 아직도 채워지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국세청’ 추적기는 곧 ‘한상률’ 추적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지금 미국의 어딘가에서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세무공무원 or 정치인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이 필요합니다. 단지 법이나 규정에 저촉되지 않으면 된다는 수준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는 자기변신의 창조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한상률 국세청장 취임사 중에서, 2007년 11월 30일)

    2007년 가을 어느 날, 느닷없이 터진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뇌물수수 사건으로 국세청은 충격에 휩싸였다. 국세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교도소 담장 위에 선 국세청장’이라는 비아냥이 국세청을 때렸다. 한 전 청장은 그런 와중에 국세청장에 취임했다.

    부랴부랴 단행된 인사였지만 ‘한상률 국세청장’은 사실 예정된 인사에 가까웠다. 충남 서산 출생, 태안고, 서울대 농대 졸업…, 출신성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는 능력 하나만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는 서울지방국세청(이하 서울청) 조사4국장,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청장, 국세청 차장 등을 거친 흔치 않은 조사통이었다. 그를 잘 아는 한 국세청 직원은 “한 전 청장은 과장시절부터 국세청장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준비했던 사람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준비한’ 국세청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청장 취임 20일 만에 살아남느냐 죽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전 정부에서 임명한 사정기관 수장이 새 정부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믿는 게 있다면 누구보다 뛰어난 친화력과 자신감 정도였다. 한 전 청장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새 정부 측 인사들과 스킨십을 시도했고 새 정부의 코드에 맞는 구상, 정책을 준비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가 내건 화두는 ‘기업프렌들리’였다. 노무현 정부가 성장보다는 분배에 관심을 쏟는 바람에 기업활동이 위축됐고 성장동력이 떨어졌다는 게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자의 생각이었다. 당선자가 들고 나온 ‘기업 프렌들리’의 핵심은 규제철폐와 유연한 세무행정이었다.

    한 전 청장은 여기에 철저히 발을 맞췄다. 2008년 1월14일, 한 전 청장은 “올해 세무조사 건수를 지난해에 비해 5~10% 정도 줄이겠다. 기업들이 세금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선 1월6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도 기업의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투자 의욕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정기 세무조사를 대폭 줄이고, 세무조사 방식도 전면 재검토한다는 방안도 내놨다. 새 정부가 내세운 ‘일자리 300만개 창출’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세정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혀 새 정부 인사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노력한 만큼 결실은 돌아왔다. 새 정부 출범 직후인 3월7일 국세청장 유임이 확정됐다. 한 전 청장은 유임에 보답하듯 정부부처 중 처음으로 노무현 정부가 없앴던 기자실을 확대, 부활시켰다. 기자실 부활은 이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줄곧 주장했던 공약사항 중 하나였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여권인사는 “(기자실 문제가) 이 대통령 측에서 한 전 청장을 ‘우리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이명박 국세청과 한상률

    5월6일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는 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권력 앞으로

    정책적으로 새 정부에 협조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 전 청장은 인수위 시절부터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과 본격적으로 스킨십을 갖기 시작했다. 인수위 관계자들과 한 전 청장의 만남이 여러 차례 있었다.

    당시 시중에는 이명박 정부 측 인사들과 한 전 청장을 연결해주는 사람이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한 전 청장은 1994년 추 전 장관이 국세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비서관으로 일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추 전 장관이 청장으로 있을 때 한 전 청장을 각별하게 생각했다. 한 전 청장은 윗사람이 하나를 요구하면 10개를 가지고 오는 사람이다. (추 전 장관이) 국세청을 떠난 뒤에도 한 전 청장을 각별하게 챙겼다”고 말했다.

    당시 한 전 청장은 이상득, 정두언 의원 등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들과 두루두루 접촉했고 빠르게 친해졌다고 전해진다.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도 여러 번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정 의원과는 노무현 정부에서 준비했던 BBK 관련 세무조사 결과 등을 매개로 접촉을 시도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 전 청장이 열심히 ‘권력 앞으로’ 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당시 인수위에는 국세청 몫으로 현 서울청 이현동 청장(행시 24회)이 나가 있었다. 이 청장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경북고를 나온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는 그다지 주목받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국세청 내에서는 같은 기수 중 선두주자로 조홍희 현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을 꼽는 시각이 많았다.

    이 청장의 인수위원 발탁은 한 전 청장에게 ‘굿뉴스’가 아니었다. 일단 이 청장은 한 전 청장 사람이 아니었다. 이 청장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직접 지원을 받는다는 소문도 귀에 거슬렸다. 인수위와 대통령비서실을 거쳐 2008년 6월 국세청에 돌아온 이 청장은 곧바로 ‘국세청의 꽃’이라 불리는 국세청 조사국장에 임명됐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 청장 지인의 얘기다.

    “한 전 청장이 취임 초기부터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후배인 이 청장과도 좀 부딪친 것 같고 현 정부 실세들과 친분이 있는 경상도 출신 국세청 인사들의 움직임에도 무척 신경을 썼습니다. 이런 말도 한 일이 있어요. ‘내가 경상도 출신이었으면 이렇게까지 고생하겠느냐’고. 아마 그때가 신성해운 사건이 막 터졌을 때인 것 같습니다. 식사자리에서였는데 생각해보면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일이 꼬였어요.”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 의혹

    그러나 앞서의 일들은 한 전 청장에게 닥칠 수많은 시련을 생각하면 짧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한 전 청장의 운명을 바꾼 사건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인수위 시절이던 2월 초 불거진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 의혹’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전 사위였던 이재철(37)씨와 신성해운 전 간부 서민호(58)씨가 정 전 비서관과 신성해운을 세무조사했던 국세청(서울청 조사4국) 공무원들을 뇌물 수수혐의로 고소·고발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한 전 청장은 2004년 당시 담당 국장(조사4국장)이었다.

    사건 초기부터 국세청과 검찰 주변에서는 ‘2004년 당시 서울청 조사4국장이었던 한 전 청장이 신성해운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실제로 이재철씨가 검찰에 제출한 로비 리스트(이씨는 이 로비 리스트가 검찰의 요구에 따라 사후에 작성한 것이라고 진술했다)에도 이 내용은 포함되어 있었다. 언론에도 공개됐던 당시 리스트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은 신성해운의 간부 김OO으로부터 현금 5000만원을 전달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의혹이 증폭되면서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한 전 청장의 앞길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2월1일이지만 검찰은 이미 두 달 전인 2007년 12월경부터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인사검증을 하던 인수위에도 보고됐다. 당시 인수위에서 인사검증 작업에 참여했던 한 사정기관의 관계자는 “정보가 국세청에서도 들어왔고 검찰의 보고를 통해서도 들어온 것으로 기억한다. 한 전 청장을 반대하는 측에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당시 떠돌던 의혹은 사실이었을까. 실체적 진실이야 알 수 없지만 의혹을 가질 만한 단서는 얼마든지 있었다. 수사과정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들도 속속 나왔다. 검찰의 수사기록 몇 개를 공개한다. 다음은 고발인인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의 전 사위 이재철씨의 2007년 12월13일 진술기록이다.

    □ 피고발인 김OO(신성해운 상무)이 2004년경 서울지방국세청 한상률 국장에게 현금 5000만원을 전달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검찰 : 위 한상률은 누구인가요.

    이재철 : 당시 신성해운 세무조사의 담당국인 서울지방국세청 국장이었습니다.

    검찰 : 위 한상률에게는 어떻게 돈을 전달하였는가요.

    이재철 : 2004년 5. 중순 11:00경 신성해운 본사 사무실에 전화로 김OO에게 “점심 같이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김OO이 저에게 그 전화로 “나 지금 바쁘고, 점심 먹고 누구와 같이 한 국장에게 5000만원을 전달하러 가야 된다. 그러니 내일 같이 점심을 하게 OO일식집으로 와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검찰 : 그럼 진술인은 김OO이 한 국장에게 위 5000만원을 전달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단 말인가요.

    이재철 : 예, 김OO으로부터 한 국장에게 5000만원을 전달하였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검찰 : 어떻게 말을 들었는가요.

    이재철 : 그 다음날 12:00경 위 OO일식집에서 김OO이 저에게 “어제 누구하고 같이 한 국장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 한 국장이 하는 말이 청와대, 중부청장, 본청 차장님이 염려를 해주고 신경써 주셔서 세무조사는 잘 해결된 것 같다. 추징세액은 담당하고 상의를 하고 있다. 그러니 네가 추징세액도 잘 알아봐라”라고 하였습니다.

    검찰 : 어떤 명목으로 주었는가요.

    이재철 : 신성해운 세무조사의 담당국장이니까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는 명목으로 준 것입니다.

    이명박 국세청과 한상률

    지난해 12월12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5000만원 받았다?

    이씨는 2008년 2월 22일 작성된 조서에서 다음과 같은 진술도 남겼다.

    “김OO 상무가 이름을 모르는 세무사를 통해서 한상률 국장에게 5000만원을 주었다고 2~3번 이야기를 해서 5000만원으로 (교부내역서에) 기재한 것이고….” (수사기록 5999쪽)

    한 전 청장의 금품수수 의혹은 2004년 신성해운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을 당시 이씨와 함께 국세청 로비에 가담했던, 지난해 수사과정에서 일부 혐의가 인정된 신성해운 측 로비스트의 검찰 진술에서도 확인된다. 다음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신성해운 측 로비스트 L씨의 진술조서 중 일부. (괄호 속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기자가 적어 넣은 것이다.)

    “이재철이 윗선은 장인(정 전 비서관)이 로비를 한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들(정·관계 고위인사들)을 지칭하였는데, 이재철이 조사4국장인 한 국장, 김OO OOO청장, 이OO 차장은 장인이 알아서 로비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피의자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김OO인지 김OO인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재철이 (국세청 출신 세무사) 김OO의 이름을 말하면서 ‘이 사람이 한 국장에 대해 로비를 할 수 있는 선이 된다’고 말을 했습니다. 김OO은 국세청에서 근무했던 사람인데 한 국장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였고, 왜 한 국장을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재철이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2008년 2월17일)

    하지만 이런 진술에도 불구하고 한 전 청장은 단 한 차례도 검찰조사를 받지 않았다. 검찰은 처음부터 한 전 청장을 수사대상에서 배제한 듯한 느낌마저 풍겨 궁금증을 키웠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혹시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지난해 7월경, 이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검찰 관계자는 기자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사건의 실체를 확인한다는 의미에서도 한 번쯤은 불러야 하지 않나요.”(기자)

    “증언만 있고 특별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한 조직의 수장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검찰 관계자)

    “증거가 없기는 검찰이 조사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기자)

    “그만합시다. 솔직히 우리도 힘들어요.”(검찰 관계자)

    검찰에서 철수하라

    2008년 3월20일,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 의혹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에서 특수2부로 옮겨졌다. 본격적인 수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2004년 당시 신성해운 조사를 맡았던 국세청 직원들에 대한 줄소환이 이어졌다. 고발인의 진술밖에는 다른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조사는 꽤 강도 높게 진행됐다. 검찰 조사는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진행됐다. 신성해운 측으로부터 정치자금 1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었던 이광재 의원은 6월 초 검찰에 소환됐다.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되면서 국세청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찰이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 과정에서 국세청 직원들이 신성해운 측과 수천만원이 넘는 금전거래를 한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기세로 봐선 불똥이 한 전 청장에게 언제라도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전 청장은 주말에도 출근하며 상황을 체크했다.

    당시 국세청에서 이 사건을 총괄 지휘한 사람이 조홍희 서울청 4국장(현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이었다. 그는 ‘한상률 구하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한때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 반발하며 검찰에 파견돼 있던 국세청 직원들에게 철수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국가기관 사이의 ‘충돌’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파국은 없었다. 국세청과 검찰 고위층이 직접 나서서 이를 해결했다.

    신성해운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5~6월경, 법조계에는 ‘한 전 청장과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신성해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직접 만났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돌았다. “한 전 청장이 임 전 총장과 관련된 기업의 세무조사를 도와줬기 때문에 검찰이 국세청-한상률을 치지 못할 것이다”는 소문도 이때쯤 나왔다. 당시 소문을 접한 임 전 총장은 무척 화를 냈다고 전해진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가 누군지 찾아내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시 검찰은 ‘국세청이 소문을 내고 다닌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국세청 관계자의 얘기다.

    “검찰에서 오해를 했죠. 소문을 우리 쪽에서 낸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한때 그 문제 때문에 검찰과 국세청의 사이가 아주 안 좋았습니다. 검찰에 파견된 국세청 직원들에 대해서 조사를 하겠다고 검찰이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김&장 세무조사

    시간을 다시 2008년 1월로 돌려보자.

    신성해운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직전인 지난해 1월29일, 국세청은 난데없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 최근 ‘한겨레’(6월3일자)는 “당시 세무조사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대선자금을 추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으며 세무조사 과정에서 김&장 소속 일부 인사들이 이 대통령 후원회와도 연결된다는 정황이 포착되자 세무조사를 전격 중단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많았다. 세무조사 당시부터 한 전 청장이 이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김&장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재후 김&장 대표변호사가 ‘이명박후원회 회장’이라는 게 추측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한 전 청장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현재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이명박 국세청과 한상률

    2008년 11월28일 대검 중수부는 태광실업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장 세무조사가 한 전 청장에게는 분명 다목적 카드였을 것이란 점이다. 우선 김&장은 자신을 옭아매던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의혹 사건의 당사자였다. 신성해운이 국세청에 로비를 벌였던 2004년, 김&장은 정상문 전 비서관,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요청을 받고 신성해운의 변호를 맡아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한 전 청장으로서는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김&장의 입을 미리 막기 위해서라도 세무조사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 신성해운 사건이 보도되기 직전에 전격적으로 세무조사가 실시됐다는 점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한 전 청장이 검찰을 겨냥하기 위해 김&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많은 의혹을 남긴 채 막을 내린, 대기업과 관련된 각종 경제사건의 변호를 전담해온 김&장을 쳐서 검찰을 압박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확인한 결과, 김&장 세무조사는 지난해 5월 초 모두 끝났다. 통상적인 기업조사에서 발생하는 추징액에 대한 기업 측과의 갈등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조사 기간이 연장되지도 않았다는 게 국세청 측의 설명.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김&장이 100억원 가까운 추징액을 납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실패한 태광실업 압수수색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국세청이 박연차 전 회장의 탈세의혹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이고 검찰에 조사결과를 넘긴 것은 같은 해 11월이다.

    하지만 대검중수부가 수사에 착수했던 태광실업-박연차와 관련된 의혹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농협의 휴캠스 매각, 세종증권 인수 등의 과정에 의혹이 있다는 얘기는 이미 2005~2006년부터 정치권에 떠돌았다. 노건평씨를 비롯한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이 그 과정에서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는 것도 구문에 가까웠다. 노무현 정부 당시 검찰과 금융감독원은 이러한 의혹들을 조사했지만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한 일도 있었다.

    지난해 여름,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사건을 마무리해가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는 농협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농협 비리를 조사해달라는 진정이 들어와서 시작하게 됐다”는 게 당시 검찰의 설명. 수사의 포인트는 세종증권 인수과정 의혹, 휴캠스 매각 의혹, 정대근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모아졌다.

    특수2부는 지난해 9월 휴캠스 인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법원에 태광실업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으로부터 기각당했다.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이후 내사는 시들해졌다. 만약 당시 법원이 영장을 내줬더라면 이번 사건은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다. 이로부터 두 달쯤 후인 11월 말, 대검 중수부는 국세청의 고발을 받아 태광실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한상률의 욕심

    반년 이상을 질질 끌며 한 전 청장의 애간장을 녹였던 신성해운 수사가 마무리되고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의외의 성과를 내면서 한 전 청장은 편안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떤 전리품을 챙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뿐이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 과정에서 입수한 로비 리스트(다이어리)는 의외의 성과였고 무기였다. 한 전 청장은 이것과 세무조사 결과를 정리해 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고 칭찬을 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한 청장이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신동아’ 5월호는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보도를 한 바 있다. 한 전 청장이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를 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시기에 오히려 청와대가 한 전 청장에 대한 정밀 내사에 착수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신동아’는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청와대가 한 전 청장에 대해 내사에 들어갔던 이유는 청와대를 상대로 한 전 청장이 무리한 요구를 하며 거래를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한 전 청장이 (청와대의) 말을 안 듣는다고 들었다. 이대로 둬서는 곤란해진다는 말이 많았다. 그간의 행적이나 각종 의혹을 정밀하게 감찰하라는 청와대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한 전 청장의 낙마에 결정타로 작용한 지난해 12월 ‘대구 술자리 사건’은 이러한 정밀내사의 결과였다. 당시 사건을 추적한 몇몇 사정기관은 당시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상득 의원의 지인들이며 한 전 청장이 인사청탁을 위해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판단했다.

    한 전 청장은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를 검찰에 넘기는 과정에서도 조사 내용 일부를 고의로 누락해 논란을 빚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 전 청장은 궁지에 몰렸다. 검찰은 지난 5월6일,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국세청이 확보한 자료, 특히 국세청이 최초로 작성한 박연차 리스트 등을 확보한다며 서울청 조사4국과 법인납세국장실 등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그러나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압수수색 과정에서 박연차 리스트 원본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한 전 청장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 전리품으로 대체 뭘 요구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 한 전 청장은 대구 술자리 사건 당시 이 대통령 동서 신기옥씨, 이상득 의원의 지인인 포항지역 경제인들에게 “국토해양부 장관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또 최근에는 국세청과 정치권 주변에서 “한 전 청장이 원한 자리는 국가정보원장이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현재로선 없다.

    한상률의 추락

    지난해 국세청 내에서는 친(親)한상률파니 반(反)한상률파니 하는 편 가르기가 심했다. 친한상률파는 조홍희 서울청 조사4국장(현 법인납세국장)이, 반한상률파는 이현동 서울청장이 이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 청장과 함께 경북 의성 출신인 안OO 국장(영신고-경북대)도 반한상률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안 국장은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소위 ‘그림 로비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갤러리를 운영 중인 안 국장의 부인 홍OO씨가 문제의 그림 ‘학동마을’이 한 전 청장이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인사청탁을 위해 건넨 것이라고 밝히면서 그림로비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하여튼, 앞서도 언급한 대로 한 전 청장은 줄곧 반한상률파를 견제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정권이 바뀐 직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한 전 청장은 반한상률파를 견제하기 위해 자기 세력을 키웠는데 그 중심에 조홍희 국장이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청장과 행시 동기이면서 국세청내 기획통으로 불려온 조 국장을 자신의 직할부대인 4국장에 앉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는 전언. 조 국장은 한 전 청장의 직접 지휘를 받아 태광실업, 우리들병원 등 전 정부를 겨냥한 사정 성격의 세무조사를 진두지휘하며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한 전 청장의 측근으로 승승장구하던 조 국장은 지난해 12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감찰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포착돼 경고를 받았다.(신동아 2009년 5월호 참조) 당시 지원관실은 이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고위공무원에 대한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청와대 해당부서에 통보하면서 ‘인사 부적격’ 의견을 냈다. 하지만 조 국장은 승진했다. 이를 두고 국세청 주변에서는 “한 전 청장이 조 국장을 마지막까지 챙긴 결과다”라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또 다른 쪽에선 “조 국장이 내심 기대하던 국세청 조사국장에 가지 못한 뒤 한 전 청장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졌다”는 정반대의 얘기도 나왔다.

    한 전 청장의 재임 기간은 국세청으로서는 격변의 시간이었다. 일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사람을 평가할 때는 공과를 분명히 해야 한다. 끝이 좋지 않았다고 모든 것이 폄훼될 순 없다. 그런 의미에서 힌 전 총장은 이전 국세청장들이 생각지 못한 성과도 많이 남긴 국세청장이었다.

    정보를 아는 국세청장

    먼저 그는 ‘정보’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었다. 서울청 조사4국장에 오른 뒤부터 본격적으로 국세청 정보팀을 확대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선 세무서에서 방치돼 있던 세원정보과를 핵심 부서로 올려놨으며 일선 세무서에서 국세청으로 올라가는 정보의 물길도 정리했다.

    한 전 청장은 당근과 채찍을 잘 쓰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성과를 낸 직원에 대해서는 반드시 포상했고 격려했다. 포상을 할 때면 직원들을 대강당에 불러놓고 공개적으로 포상하는 식이어서 그와 같이 일한 직원들은 언제나 사기가 높았다.

    한 전 청장은 국세청에 기업마인드를 도입한 첫 국세청장이기도 했다. 고객신뢰도 조사라는 것도 도입해 납세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세무공무원들이 세무서를 찾은 납세자에게 일어서서 인사하는 문화도 이때부터 생겼다. 현재 직원들의 친절도는 일선 세무서장의 업무평가 항목에도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욕심’이 화를 불렀다는 점이다. 출세 지향적인 성격이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신성해운 사건으로 평정심을 잃은 그는 무리한 도박을 벌여 명예를 잃었다. 지난 2년간 한 전 총장을 지켜본 기자의 판단이다. 신성해운 사건으로 밤잠을 설치던 지난해 5월 ‘터가 좋지 않다’는 주변의 얘기를 듣고 수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청장실을 이전한 것은 복잡하고 답답했던 그의 심경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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