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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의 Face to Face ⑥

노무현의 정신적 스승 송기인 신부

국회의장한테 물병 던지고 대통령 화환 짓밟고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노무현의 정신적 스승 송기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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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정신적 스승 송기인 신부

2005년 12월22일 노무현 대통령이 진실·화해위원회 위원 13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송기인 위원장과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 언제 처음 사망소식을 들었나요.

“그날 아침(5월23일) 아는 부산시민이 연락을 해왔어. 9시 반께. 신부님, 뉴스 봤냐고. 대통령 돌아가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지. 바로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달려갔지. 여기서 승용차로 30분쯤 걸려. 검시(檢屍)한다고 좀 기다리라고 하더라고. 11시쯤 냉동실에서 시신을 살펴봤지.”

그가 자신의 어깨와 목 부위를 만지며 말을 이었다.

“여기가 멍이 많이 들었데. 얼굴은 깨끗하고. 내가 옛날에 이마에 물을 부었잖아. 세례. 이번에 다시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했지.”

“뭐라고 기도했냐”니까 라틴어로 뭐라 한참 중얼거렸다. 사람이 죽었을 때 하는 기도문으로 ‘편안히 하느님 품으로 가시라’는 뜻이란다.



▼ 처음 소식 접하고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사람이 멍해지지.”

▼ 나름대로 걱정된 바가 없었는지요.

“검찰 수사와 관련해 권양숙 여사가 어떻게 될까봐 걱정은 했지. 대통령은 전혀….”

▼ 대통령 얼굴이 평온하던가요.

“평온하고 깨끗하더라고. 평상시와 똑같아. 기분 좋게 자는 것처럼.”

▼ 자살은 기독교에서 큰 죄악 아닌가요.

“가장 큰 잘못으로 간주하지. 자살자에 대해선 교회가 영례를 박탈해버려. 성당에 시신을 모실 수도 없고 묘지에 다른 신도들과 함께 묻히는 것도 거부당하지.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경우는 극도로 고심하다 자살을 했다기보다는 문제해결의 방편으로 자살을 했다고 보기에 조금 다르게 생각하지.”

▼ 그게 구분이 됩니까.

“되진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송 신부가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워진 계기는 1982년 3월 부산지역 대학생들이 일으킨 부산미국문화원 방화사건(부미방사건)이다.

“내가 노 변호사를 변론인으로 끼워 넣었어. 한 명이 모자라서. 박찬종을 빼고. 월요일마다 재판이 열렸는데 재판이 끝나면 함께 저녁식사를 했어. 그 자리에서 많이 가까워졌지.”

“자기 집하고 바꾸자고…”

그는 ‘노무현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는 데 대해 “스승은 무슨, 친구지” 하고 자신을 높이는 것을 경계했다.

“아무래도 내가 가장 큰 책임을 느끼지. 그렇게까지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했으니…. 봉하(마을)에 전화하니, 자기가 연락한다 하고는 안 하더라고. 그러다 저런 일이 벌어졌지. 내가 만난 지 꽤 됐어. 대통령 물러나고서 그 집에 세 번 갔어. 혼자 간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양반이 여기 와서 점심 한 번 했고. 그게 다야. 이 집에 와 보고는 자기 집하고 바꾸자고 하데. 신부님 집이 더 좋다며. 아이구, 나는 그런 집 청소 못해, 했지. 내가 책을 보낸 적도 있어. 백낙청 전집 5권짜리. 나는 읽기 지루해서, 에이 너나 봐라 하고….”

그가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지난해 겨울. 검찰수사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드러났지만, 이때쯤 이미 검찰은 커다란 올가미를 만들어 노 전 대통령 쪽으로 던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닌자의 은밀한 공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 당시 봉하마을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여남은 명이 가서 저녁을 같이 했지. 그때도 자기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지방분권 문제였던 것 같아. 나는 반주를 하는데, 노 대통령은 술을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술대접할 줄을 몰라. 내가 포도주 갖고 오라고 하자 (사저 직원이) 뛰어가서 포도주를 사 왔는데, 한잔 따라놓기만 하고 마시지 않더라고. 사실 나는 소주를 더 좋아하는데. 내가 지금 한 가지 아쉬운 게, 검찰 수사가 불거진 다음에 한 번 가봤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는 거지.”

▼ 자살을 선택할 만한 성격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렇지. 그럴 수도 있는 성격이지. 자신이 당하는 건 어렵지 않아. 내가 1970년대 (중앙)정보부에 잡혀가 있을 때도 옆 사람 괴롭히는 게 더 견디기 힘들더군. 나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다친다는 생각에. 정보부에서 전화만 와도 끔찍하던 시절이잖아. 권(양숙) 여사에 대해서도, 애들에 대해서도 그랬던 것 같아. 그런 걸 참아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 봉하마을에 사는 김OO이라는 사람이 나한테 전화해 자살이 아니라고 우기더라고. 화장하면 안 된다는 거야. 부검해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유서 보면 이의를 달 수도 없잖아.”

▼ 경복궁 집례는 가족의 요청이었나요.

“천주교 예식에 들어 있지. 대체로 해당 지역의 본당 신부가 하는 건데, 장의위원회에서 높은 사람을 원치 않더라고. 나보고 하라기에 정진석 추기경한테 전화해 ‘추기경께서 하시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나보고 하라고 하시더라고.”

“저, 착하게 사는데요”

노 전 대통령은 1986년 송 신부한테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유스토. 가톨릭교의 관습대로 유스토라는 성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유스토는 라틴어로 정의, 올바름이라는 뜻이다. 세례를 받으려면 교리 학습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거꾸로 세례를 먼저 받고 학습에 들어갔다. 그나마 학습도 엉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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