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노무현 서거와 이상득 2선 후퇴, 여권에 후폭풍

당·정·청 요직의 이상득계는 지금 좌불안석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09-07-07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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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득, 내부 암투에 맥없이 당했다
    • 다음 타깃은 ‘3인방’ 박영준, 장다사로, 김주성?
    • ‘보이지 않는 손(이상득)’ 대신 ‘빤히 보이는 손(이재오)’ 득세
    • 이재오계, 8월쯤 여권 접수설
    노무현 서거와 이상득 2선 후퇴, 여권에 후폭풍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한나라당이 5년 동안 지켰던 정당 지지율 1위는 민주당 차지가 됐다. 그러잖아도 4·29재보궐선거 참패로 쇄신운동이 일고 있던 한나라당에서는 주류인 ‘친(親)이명박’ 진영 내부의 주도권을 쥐는 이너서클이 바뀌고 있다. 민주당에선 ‘자성(自省)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노무현당’ 창당설도 나돌고 있다.

    6월4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연찬회장에서 당 쇄신특위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민주당 23%, 한나라당 21.1%.’ 한나라당 자체 조사에서 1위를 지키지 못한 건 2005년 이후 처음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전까지 민주당의 지지율은 10%대 초반에 불과했다.

    정당 지지율은 언제든 다시 역전될 수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의 후폭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부 역학구도에 이미 상당한 영향을 미쳤거나, 앞으로 미칠 전망이다. 심지어 한참 흘러간 ‘양김(兩金)시대’의 주역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목소리를 높이게 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에 어떤 격랑을 추가로 몰고 올지 알 수 없다. 쇄신운동에 따른 조기 전당대회론, 10월 재보선, 내년 6·2 지방선거 같은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MB와 상의 안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은 ‘2선 후퇴’를 선언했다. 이 의원은 6월3일 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 나와 “지금까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철저히 노력해왔지만 앞으로는 당과 정무, 정치 현안에 관여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욱 엄격하게 처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말하자면 고통의 나날이었다. 정말 고통스럽다”고 했다.



    이 의원 본인과 측근은 2선 후퇴 이유에 대해 “대통령 친인척으로서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관리를 철저히 하며, 오로지 당의 단합과 화합만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왔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권 내의 역풍과 쇄신 논의 과정에서 고심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과 상의하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이 의원이 정계를 떠난 것은 아니다. 포항 지역구의원,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한일의원연맹회장 역할은 계속한다. 본인도 “당 화합에 동참하되 저 자신은 지역구 일과 경제·자원·안보·외교 문제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선 후퇴 선언 다음날인 6월4일 일본으로 갔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격론이 벌어진 날이다. 이 의원은 연찬회에 참석하지 않고 2박3일 동안 일본에 머물며 정·재계 인사들과 두루 만났다. 일본기업의 포항부품소재산업단지 진출을 요청했다. 귀국 후 되도록 포항에 머물며 개항을 준비 중인 영일만 신항과 배후산업단지 현장을 둘러보고, 장애인 자활회사를 방문하는 등 지역구 순회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의원이 포항 읍·면·동을 돌며 민심탐방을 하고 있던 6월10일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태백산 새벽산행과 막장체험에 나섰다. 6·10 민주항쟁 주역으로서 의미를 되새긴다는 취지였다. 그의 산행에는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 당협위원회 관계자 20여 명이 동행했다. 천제단에 오른 그는 동행한 측근들에게 “정상에 오를 때는 정상이 보이지 않지만 올라야 한다. 일단 정상에 오르면 다른 사람을 위해 내려가야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전 최고위원은 그날 밤엔 자신의 팬 카페 ‘재오사랑’에 올린 글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서울광장 집회에 대해 “이제 서울광장에는 거짓과 허위의 깃발을 내리고 민주주의 성숙의 깃발을 올리자”고 썼다. 이명박 정권 창출에 일조한 중진 정치인으로서 야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두 사람의 이 같은 엇갈린 행보를 보면 ‘이상득의 실각과 이재오의 득세’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형님으로 모시겠다” 했는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총선 패배 후 미국에 머물다 3월말에 귀국했지만 당시 귀국에 반대하는 이상득 의원 측 견제로 꽤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오죽하면 미국으로 자신을 찾아온 박창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에게 “이상득 의원과의 오해는 모두 풀었다. 돌아가면 이상득 의원을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을까. 박 총재는 이 의원의 포항인맥이다.

    그러나 이 전 최고위원은 귀국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이 의원에게서 친이 진영의 주도권을 빼앗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명박 정부 주류의 권력 이동은 여권 내부 사정과 4·29 재보선 결과,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여러 사정을 감안한 이 대통령의 의중도 실린 것으로 봐야 한다. 이 대통령은 연초 국정운영 2년차에 접어들면서 이상득 의원에게 “너무 여러 가지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여의도 정치권에서만 나를 도와주시라”고 간곡하게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이 의원은 주로 ‘친이명박’ 내부 결속과 ‘친박근혜’ 끌어안기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서 그나마 정치에서도 2선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노무현 서거와 이상득 2선 후퇴, 여권에 후폭풍

    김주성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왼쪽). 장다사로 청와대 민정1비서관(오른쪽).

    이 의원의 실각 조짐이 나타난 것은 4월29일 치러진 경북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였다. 정종복 전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가 ‘친박근혜’를 표방한 무소속 정수성 후보(예비역 육군대장)에게 졌다. 다른 선거구에서도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자연스럽게 책임론이 일었고 그 여파로 당내에 원희룡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쇄신특위가 설치됐다.

    특히 경주 패배를 놓고 당내에서 ‘SD(이상득) 책임론’이 제기됐다. “지난해 4·9 총선에서 친박연대 후보에게 패했던 정종복 전 의원을 재공천하면 승산이 희박하다”는 당내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상득 의원이 공천을 밀어붙였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선거과정에서 정수성 후보가 “이상득 의원이 이명규 의원을 내게 보내 후보사퇴를 종용했다”고 폭로하면서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큰 후유증을 남겼다.

    노무현 서거와 이상득 2선 후퇴, 여권에 후폭풍

    1월20일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맨 왼쪽)이 임명장을 받은 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이제 확실해졌잖아요”

    쇄신특위 차원에서 ‘SD 퇴진론’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적은 없다. 다만 ‘지도부 퇴진론’에는 실질적으로 당무에 영향을 미치는 이 의원의 2선 후퇴도 포함되는 것으로 비쳤다. 소장파 일부에선 논의 과정에서 그의 이름을 거명하기도 했다. 5월21일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 이 의원은 결정적 타격을 입는다. ‘친박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에도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던 그는-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당시 안상수 원내대표 후보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과 최경환 정책위의장 후보가 제기한 ‘보이는 손’ 논쟁에 휘말렸다.

    김성조 정책위의장 후보와 러닝메이트로 나선 안상수 후보는 자기들이 우세한 위치에 있던 경선에 갑자기 황우여 원내대표-최경환 정책위의장 후보조가 뛰어들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을 겨냥한 말이다. 이 의원은 당내 화합을 최우선으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친이 강경파인 안상수 후보가 원내대표로 선출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 중립성향인 황우여 후보와 친박 계열인 최경환 후보 조합을 선호한다는 얘기와 함께 황우여-최경환 조합을 직접 구상했다는 분석까지 떠돌았다. 이 때문에 한때 황우여-최경환 조의 승리가 확실시된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경선 1차 투표 결과 황우여-최경환 조는 47표에 그쳤다. 최경환 후보는 2차 투표를 앞두고 “어제, 그제부터 ‘보이는 손’이 움직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오더 내리는 ‘보이는 손’은 잠시 외면하고 심사숙고해달라”고 의원들에게 호소했다. 2차 결선 투표에서 황우여-최경환 조는 전체 출석 의원 159명 중 62표를 얻는 데 그쳤고 안상수-김성조 조가 95표를 획득해 당선됐다. 최 의원이 주장한 ‘빤히 보이는 손’은 누구일까. 최 의원은 경선 뒤 “할 말이 엄청나게 많지만 지금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그는 “선거 다음날 청와대 핵심 인사에게서 전화가 와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되레 묻더라. 또 박근혜 전 대표는 ‘그쪽(친이)이 원하는 게 뭔지 확실해졌잖아요’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재오-정두언 제휴설

    당내에선 ‘보이는 손’이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상득 의원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한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 전 최고위원 계열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SD가 정종복 전 의원을 무리하게 경주에 공천해 힘이 떨어진 상태에서 이재오-정두언 라인에게 맥없이 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둘 사이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 (SD를 실각시키는) 일에는 손을 잡은 것 같다”고 정리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정두언 의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정부 요직 인사, 지난해 총선 공천 과정 등에서 이상득 의원과 몇 차례 권력투쟁을 벌인 바 있다.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손’이 각각 어떻게 작용했기에 선거 결과가 여권 주류의 권력지형 변화까지 몰고 왔다는 해석이 나올까. 당시 경선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친박 계열 관계자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상황은 이렇다.

    박희태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례회동을 통해 마련한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가 “원칙이 아니다”며 일축하자 이상득 의원이 새로운 대안 모색에 나섰다. 강성(强性)인 안상수 의원에게 원내대책을 맡기면 사사건건 야당과 부딪칠 가능성이 높고 당내 친박 진영과의 갈등도 깊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중립성향에 온건론자인 황우여 원내대표 후보를 낙점했고, 친박 계열의 지원을 받기 위해 같은 경북 출신 최경환 의원에게 “황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달라”고 설득해 수락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최 의원이 박 전 대표에게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박 ‘좌장’이라는 김무성 의원의 원내대표 추대에 반대했던 박 전 대표가 측근인 최 의원의 정책위의장 도전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이상득 의원은 자신의 의중이 황우여-최경환 조에 있음을 계파 의원들에게 넌지시 알렸고 이 조합의 지지세가 단번에 쑥 올랐다. 이에 안상수-김성조 조는 발끈하며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을 경고했다. 특히 안 의원은 귀국 후 중앙대 강의에만 전념하며 암중모색하고 있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에게 ‘SOS’를 쳤다.

    경선을 앞두고 잠시 일본을 방문했던 이상득 의원이 경선 사흘 전인 18일 귀국했다. 황우여-최경환 진영에서는 “그 다음날부터 표가 날아가기 시작해 이틀새 40표가량이 빠졌다”고 말했다. 황우여-최경환 조를 지원하는 이 의원이 귀국했는데 왜 표가 늘지 않고 오히려 대거 달아났을까. 경선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모종의 작업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상득계’도 무너지나

    “친이계 특정 라인에서 SD에게 ‘자꾸 그러면 우리가 후보를 사퇴하는 대신 (SD를 상대로)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안다. 그러자 가뜩이나 쇄신특위 활동으로 위기를 느끼던 SD가 황우여-최경환 조를 지원하라고 지시했던 계보 의원들에게 회군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노무현 서거와 이상득 2선 후퇴, 여권에 후폭풍

    5월28일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서울 역사박물관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SD가 강하게 치고 나왔어야 했다. ‘그래, 나도 아무 일 안 하고 뒤로 나앉을 테니 당신도 물러나라’고 했어야 한다. 그런 강단을 보이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혼자 2선 후퇴를 선언하는 지경이 된 것 아니냐”고 했다. 한쪽의 일방적 주장일 수 있다. 이 의원이 2선 후퇴를 결심하는 결정적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는 이명박 정부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5월29일 국민장을 전후해 추모 물결이 극에 달했고 6·10 민주항쟁 기념일까지 겹치면서 제2의 촛불 사태가 우려됐다. 한나라당 쇄신특위도 국민장 기간 잠시 멈췄던 활동을 재개해 지도부 퇴진론의 불씨를 살려나갔다. 야당은 야당대로 이 대통령의 사과와 관계자 문책 등을 요구하며 6월 임시국회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섰다. 이런 상황은 대통령의 형이 권력 중심부에 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던 셈이다.

    정가 일각에선 이 의원의 2선 후퇴 선언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친박 계열의 한 중진 의원은 “언제는 1선에 있었느냐”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년4개월 동안도 막후에서 인사와 정책에 관여했지 않았느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상득계의 화려한 부활은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벌써 친이 계열 일각에서 조차 이상득 의원의 핵심 측근인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장다사로 청와대 민정1비서관, 김주성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의 이름을 거론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당·정·청 곳곳에 퍼져 있는 SD계 공직자들이 좌불안석일 것이라고 한다. 빈 자리가 나오면 이재오계 등이 속속 채울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 조짐은 벌써 나타났다.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경선에 이어 6월1일 단행된 당직개편에서 사무총장에 장광근 의원, 여의도연구소장에 진수희 의원이 발탁됐다. 두 사람 모두 이재오계 핵심이다. 이로써 이재오계는 여당에서 원내전략(안상수), 당 살림 및 조직 관리(장광근), 여론동향 파악 및 전략 수립(진수희) 등 핵심 자리를 모두 차지하게 됐다.

    특히 사무총장에는 당초 화합 차원에서 친박 계열 정갑윤 의원이 유력했지만 청와대의 압력에 의해 막판에 장 의원으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친박 계열인 한나라당 이성헌 사무1부총장은 6월11일 불교방송 라디오 ‘김재원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박희태 대표가 당내 화합을 위해 사무총장으로 정 의원을 추천했지만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거부해 지금은 다른 분(장광근)이 총장으로 와 있다”고 폭로했다.

    청와대의 거부가 이 대통령의 뜻인지, 대통령실 내에서도 만만찮은 파워를 형성하고 있는 이재오계의 작용에 따른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이재오계의 강해진 힘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당초 사무총장에는 또 다른 친이 핵심인 임태희 전 정책위의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이재오사단, 기세 등등

    정가 일각에선 심지어 이 전 최고위원이 당권마저 넘보려 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당내 소장파들이 박희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퇴진과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하다가 다시 ‘화합형 전당대회’를 거론하는 것은 ‘이재오 대표 만들기’의 일환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6월2일 당대표 즉각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한 친이 계열 7명 중 상당수가 이재오계로 꼽힌다. 이재오계에선 “황당한 얘기”라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계보내 소장파 의원들이 보스의 화려한 복귀를 위해 깃발을 들었다고 볼 여지는 있다. 같은 날 이 전 최고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선거에 패한 자들은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것이) 이재오였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18대 총선 직후 자신이 외압(?)에 의해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 데 대한 회한을 남긴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 추대’를 염두에 둔 듯한 화합형 전당대회론에 대해서도 친박 계열 한 의원은 “덫을 친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원내대표 경선과 당직개편을 할 때는 ‘주류책임론’을 제기하며 친이가 당을 이끌어야 한다고 하더니 불과 며칠 만에 ‘박근혜 대표론’을 거론하는 게 말이 되느냐. 박 전 대표가 그런 카드를 받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정면 돌파를 위해 대표직을 받으면 일찌감치 정치 전면에 올려놓고 허수아비를 만들거나 마구잡이식으로 흔들기를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한나라당은 4·29 재보선 참패에 이은 조문정국 여파로 어떤 식으로든 인적쇄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그 격변기를 타고 이재오계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재오계가 여권 주류에 안착하고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반이 되는 8월쯤 대대적인 당·정·청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뉴 민주당 플랜’ 잡탕 되나

    민주당의 경우는 어떨까. 당의 역량이 조문정국에만 집중돼버린 탓에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상태로 갈 경우 정당 지지율이 다시 역전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 전에 추진했던 ‘뉴 민주당’ 플랜에 갑자기 ‘노무현 정신’을 집어넣으려는 것은 무리수가 아니냐”는 말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도저도 아닌 잡탕이 된다는 우려다.

    더구나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에 반발해 우라늄 농축작업 착수를 선언했다. 국제사회가 봉쇄를 시도할 경우 전쟁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까지 나선 상황임을 감안하면 전술 변경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반대로, 모처럼 역전된 상황을 활용해 제1야당의 기반을 굳건히 다지고 이 기세를 10월 재보선은 물론 노 전 대통령 1주기와 맞물리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몰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6월4일 의원 워크숍에서도 양 갈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노무현 서거와 이상득 2선 후퇴, 여권에 후폭풍

    한나라당 이재오계의 안상수 원내대표, 장광근 사무총장, 진수희 여의도연구소장(왼쪽부터)

    “전통적 지지자가 복원됐다. 울타리를 치고, 국민이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느끼는 감정에 집중해 전략적 스탠스를 잡아야 한다”(최재성 의원), “한번 물면 똥개든 진돗개든 불독이든 절대 놓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정당한 국민적 요구를 가지고 지도부가 지독한 마음을 먹어줘야 한다”(강기정 의원), “노 전 대통령을 보면서 심지어 가해자 편에 서지 않았나 깊이 반성해야 이명박 정부의 반성을 요구할 수 있다”(김영진 의원), “노 전 대통령의 공은 공이고 과는 과다. 하려면 진작부터 계승하지 죽었다고 계승하냐”(김성순 의원).

    민주당에선 당내 친노 세력이 일제히 빠져나갈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노무현당 창당설’이다. ‘노무현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전부터 거론됐다.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압박이 시작되고 나서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사실 노 전 대통령 서거 전날에도 우리끼리 모여 밤새도록 노무현당을 만들어야 할지 토론하다가 서거 소식을 듣고 급거 봉하마을로 갔다”고 했다.

    ‘노무현당’ 창당한다?

    친노 직계들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노무현당 논의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다. 노 전 대통령 국민장에서 조사를 낭독했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이들이 차기 대선주자나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상위권으로 도약한 게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한때 주목받다가 이명박 정권 출범을 앞두고 해체된 ‘참여정부평가포럼’의 재결성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광재 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박정규 전 민정수석 등 친노 핵심 인사들이 구속돼 있는데다, 서갑원 의원도 기소되는 등 친노 세력의 재집결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조문정국을 맞아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6월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돌 기념 특별연설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 “민주주의를 역행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대정부투쟁을 선동하는 발언을 쏟아내 정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유감을 표명했고 그의 ‘천적’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씨는 이제 자신의 입을 닫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조국을 사랑하는 국민이 그 입을 닫게 하고야 말 것”이라고 일갈했다. 한나라당은 “전직 대통령이 국론 분열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민주당은 “국가원로로서 할 말을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DJ의 관계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흥미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 물결로 그동안 DJ가 차지하고 있던 민주화세력·진보진영의 상징이 노 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 성지(聖地)도 봉하마을이 된 셈이다. 이런 현상으로 DJ와 민주당 내 DJ계열은 미묘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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