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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팜파탈과 카리스마, 그 영원한 매혹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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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과 클레오파트라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저서 ‘색공지신 미실’(푸른역사)에서 정리한 내용이다

[보기] 1. ~ 는 미실이 색공한 순서(세종은 성골도 아니고 미실이 그의 정비였기에 색공관계는 아님)

2. [ ]는 왕의 대수

3. 점선은 동일인물

내 앞을 가로막는 자들에겐 죽음뿐

남성이 남몰래 품고 있는, 강한 여성에 대한 근원적 공포와 적대감이 투사된 캐릭터가 바로 미실과 클레오파트라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첫 회부터 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왕의 유서를 은닉한 후 다음 왕좌에 오를 사람까지 자신이 직접 결정하며, 그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화랑, 즉 군사력을 동원해 멀쩡한 국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쿠데타를 감행한다. 천하를 호령하던 최고의 남자를 둘이나 제거해버린 미실의 강력한 힘 앞에서 대적할 사람은 없다.



그녀는 천하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황후가 아닌 것이 싫다. 그녀의 유일한 결핍을 채워줄 사람을 찾기 전까지 그녀는 어떤 잔혹함도 불사할 것이다. 진흥대제의 유훈을 저버리고 금륜태자를 유혹해 동침한 그녀는 그를 ‘진지왕’으로 만들고 그의 아기까지 낳았지만 황후로 만들어주겠다던 애초의 약속을 들어주지 않자 자신의 아기까지 서슴없이 유기한다. “미안하구나. 아가야, 난……. 이제 더 이상 네가 필요 없다.” 자신의 아기까지 버린 마당에 남의 아기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미실을 대적할 자! 북두의 일곱 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오리라!”라는 신탁을 실현할지도 모르는 쌍둥이가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나자 미실은 불안에 휩싸인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다는 끔찍한 금기 때문에 아이를 숨길 결심을 한 진평왕은 시녀 소화를 시켜 미래의 선덕여왕을 데리고 멀리 도망가달라고 부탁한다. 그 쌍둥이를 찾아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된 미실은 궁궐의 입구를 철저히 통제하여 쓰레기 한 조각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지만, 풍월주 문노와 소화의 협동작전으로 아기는 무사히 궁을 빠져나가고 만다. 끝내 아기를 찾지 못한 미실은 궁궐의 출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병사들을 무참히 학살한다.

“사람은, 능력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부주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병사의 목을 벤다. 그녀의 얼굴 또한 죽은 병사의 피로 얼룩져서 한층 그로테스크해진다.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어! 칠숙! 지금 당장! 그 계집과 쌍둥이의 한쪽을 찾아와라! 얼마가 걸리든, 얼마가 죽든 상관없다! 반드시 찾아 내 앞에 데려와라! 알겠느냐?”

흥미로운 점은 미실은 늘 수많은 사람 앞에서 대사를 읊지만, 단 한 사람도 미실에게 ‘예, 아니오’ 이외의 다양한 의견을 내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지만 사실 대화는 없고 오직 추상같은 명령과 독백에 가까운 선언만이 난무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모두를 지배할 수 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철저히 외롭다. 궁궐 안의 모든 비밀, 왕실 사람들의 모든 치부와 아킬레스건을 샅샅이 알고 있는 미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운명의 덫에 걸려 신음하는 영혼들을 한껏 비웃는다. 비밀의 열쇠는, 오직 미실의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왕조차 숨죽여 지내게 만드는 미실의 권력, 그 배후에는 ‘사랑의 기술’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실이 신라의 권력을 제패하게 만든 첫 번째 색공의 대상은 진흥왕이었다. 이미 세종의 아내이면서 게다가 금륜태자의 아이를 가진 상황에서도, 미실은 진흥왕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진흥제가 한 번 사랑하고 두 번 사랑하고는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미실에게 전주의 이름을 내렸는데(그 지위는 황후와 같았다). 미실을 총애함이 사해를 뒤집을 만하였다.”(‘화랑세기’, 김대문 지음, 이종욱 옮김, 소나무, 123쪽에서 인용)

타인의 욕망을 읽는 기술

신라의 권력자들이 하나같이 미실의 색공에 무장해제당했듯이, 로마 최고의 권력자 안토니우스 또한 이집트 여왕의 매력에 기쁘게 굴복한다. 로마의 영광을 부르짖던 남성들은 하나같이 안토니우스가 아닌 클레오파트라를 비난했다. 로마 역사가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침실에 들어간 것은 분명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였음에도 그들의 욕망이 아니라 ‘이집트 여자’의 유혹만을 단죄했다. 마치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비난이 로마의 역사를 구하기 위한 미션이라도 되는 듯이.

총명하고 용감했던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마력에 홀려 로마를 도매금에 팔아넘겼다는 식의 묘사가 로마 측 기록에 난무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 이집트 여자가 만취한 로마 장군에게 로마 제국을 통째로 요구하게 되었다. 그녀의 애정을 받는 대가로 그는 그 괴물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플로루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을 묘사하는 문헌들에서 그녀는 단지 색공의 화신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클레오파트라의 가장 큰 매력은 그녀의 화술에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매력은 미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모두들 이야기하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이 뛰어난 것도, 보는 순간 사로잡힐 만한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는 “미모로도, 기품으로도 옥타비아(안토니우스의 아내)를 능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플루타르크는 클레오파트라가 상대를 놀라게 하고 ‘넋을 빼앗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화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지적이고 생동감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말하는 모든 것의 묘미를 돋우는’ 달콤한 목소리를 타고 듣는 이를 사로잡아서 ‘그녀에게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 에디트 플라마리옹 지음, 지현 옮김, 시공사, 117쪽 인용)

마찬가지로 미실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무기는 바로 뛰어난 독심술과 현란한 화술이다. 수많은 은유와 상징을 품어 안은 말들을 단 한순간 짧은 문장으로 툭 내던지는 미실의 화술은 클레오파트라가 남성들을 매혹시킨 화려한 화술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미실 또한 자신을 위협하는 천명공주의 성장 앞에서 매혹적인 화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거의 독백과 다름없이 진행되는 그녀의 연설 앞에서 미실파 남자들은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그녀의 전광석화 같은 두뇌회전에 감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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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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