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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잠망경

“어업, 북한 자본주의 전초지대로 뜨다”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어업, 북한 자본주의 전초지대로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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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 북한 자본주의   전초지대로 뜨다”

그물을 손질하는 북한 어부 모습.

대게 50kg에 술 몇 병

1980년대 중반 이씨 옆집에 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에서 활동하는 친척이 찾아왔다. 옆집은 평소에 ‘째포’네 집으로 불렸다. 째포란 ‘재일동포’의 줄임말이 변환된 말로 1960년대 북송선을 타고 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이 집은 일본에 친척을 둔 덕분에 마을에서 최고 부자였다. 그때까지 돈을 부쳐주던 이 친척은 북으로 간 친척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직접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 방문길에 나선 것이었다. 그가 갖고 온 물건 중에는 ‘빤짝지’라고 불리는 양복천이 무려 20벌 분량 들어있었다.

빤짝지는 양복천이 햇볕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1980년대 중반 북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노동자 월급이 60~70원일 때 빤짝지 한 벌 가격이 500원이었으니 양복지 20벌은 1만원, 노동자 10년치 월급 이상에 상당하는 금액이었다.

모처럼 찾아온 친척을 접대하기 위해 째포는 부두에 나가 대게를 50㎏ 마대 가득 얻어왔다. 이씨 마을에서 나는 대게는 남한의 영덕대게보다 크고 살도 많다.



게들을 큰 가마솥 두 개에 가득 넣고 찌기 시작하자 일본 친척이 입을 딱 벌렸다.

“이 게를 다 사온 거니? 얼만데.”

“그래봤자 나중에 술 몇 병 갖다주면 돼요.”

일본 친척은 할 말을 잃었다.

“와보니 진짜 부자는 너희들이다. 내가 사는 도쿄에서 빤짝지 한 벌 옷감은 고작 1000엔이지만 저런 게는 한 마리에 2만엔을 한다. 그러니 이 게 한 마리 가격과 내가 갖고 온 반짝지 20벌 가격이 같다.”

그 말은 비단 째포뿐 아니라, 온 마을을 술렁거리게 했다.

“아니, 일본에선 이따위 게 한 마리가 빤짝지 스무 벌 가격이래. 참 이상한 동네구만. 쯧쯧.”

그때 이씨 마을은 이렇게 살았다.

그런데 1986년부터 이상하게 바다에서 명태와 정어리가 사라져 잡히지 않았다. 영웅선장도 허탕을 치는 일이 잦았다. 왜 그런지 누구도 몰랐다. 해류가 바뀌어서 그렇다는 말들이 떠돌았다. 다른 고기도 점점 씨가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1980년대 말 이씨 마을 해변에서 3~4㎞ 떨어진 앞바다에 멋진 상선이 나타났다. 북한 상선은 칠이 다 벗겨지고 마스트에 공화국기(인공기)가 그려져 있는데 이 상선은 희고 푸른 페인트가 깨끗하게 칠해져 멀리서도 번쩍거렸다. 공화국기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 상선의 정체가 뭔지 궁금했다. 동시에 이씨 마을에 ‘8군단 외화벌이 기지’라는 명칭의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일본 무역상선의 등장

기지에 소속된 잠수배들은 갯바위 주변에서 성게와 해삼을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보통 잠수배는 길이가 10m 정도인 철선인데 산소공급장치를 싣고 다니면서 잠수작업을 했다. 지금까지 해삼이나 성게, 전복은 쪽배를 타고 바다 위에서 갈고리로 건져 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처녀지인 갯바위 부근 바닷속을 휘젓고 다니는 잠수부는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해산물을 건져 올렸다.

그즈음 이스즈, 닛산 같은 일본 브랜드를 단 소형차들이 이씨 마을에 나타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에선 보기 힘든 고급차들이었다. 이 차들은 잠수배가 건져 올린 수산물들을 실어 날랐다. 여러 곳에서 잡힌 해산물은 한 곳으로 실려와 박스에 포장된 뒤 다시 배에 실려 멋진 상선으로 옮겨졌다.

뒤늦게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저 상선이 일본 무역 상선이래.”

일본 상선의 등장은 어부들의 삶도 바꿔놓았다. 어부들은 바다에서 성게, 해삼을 잡아오면 수산조합에 바치는 것이 아니라 8군단 기지에 팔았다. 이곳에서는 상당히 높은 값으로 구매해주었다.

이제 어부들은 잘만 하면 하루에 한 달 치 월급을 벌 수 있었다. 이씨 마을 어부들도 점차 돈에 눈뜨기 시작했다. 한두 해가 지나면서 이씨 마을에는 8군단 외화벌이 기지뿐 아니라 5군단, 호위사령부 등 군 소속 외화벌이 기지들이 들어서더니 나중에는 석탄공업성, 옥류회사처럼 국가기관 소속 외화벌이 기지들까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자가용에 운전기사 둔 벼락부자 1세대 등장

이런 기지마다 잠수배 두어 척씩 갖다 놓고 마을 앞에서 닥치는 대로 수산물을 건져 올렸다. 어부들도 점차 무엇을 잡아야 돈이 되는지 깨닫게 되었다. 제일 비싼 것은 전복, 그 다음이 해삼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많지 않았다. 대신 많이 잡아서 팔 수 있는 것이 성게와 오징어였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왜 갑자기 이런 기지들이 번창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난 뒤에 그 내막이 드러났다. 돈벌이에 눈뜬 몇몇 사람이 수산업에 진출했던 것이다. 북한에서 싼 해산물이 해외에서는 비싼 상황을 이용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게 한 마리가 북한 노동자 10년치 월급에 상당하는 가격에 팔린다는 것을 안 순진한 어촌 사람들은 단지 혀를 차면서 머리를 흔들기만 했지만 높은 지위에 있던 몇몇 사람은 ‘그럼 우리가 가져다 팔면 될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들은 선각자들이었다.

이들은 무역일꾼들을 내세워 일본 바이어를 찾았고, 뒤를 봐줄 만한 배경을 찾았다. 배경으로 가장 좋은 것이 바로 군부였다. 민간은 노동당 지도를 받아야 하고 행정기관 간섭을 받아야 하고 보위부, 검찰, 보안성 등 온갖 곳의 트집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군부는 윗선만 뇌물로 삶아놓으면 간섭하는 데가 별로 없었다. 바이어를 확보한 선각자들은 군단장 등 해당 지방 군사령관을 찾아갔다.

“저희에게 인원을 좀 대주고 명칭만 허락해주면 매달 수십만원씩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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