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심층리포트

경제의 창(窓)으로 들여다본 북한 : 김정운의 ‘150일 전투’와 북한경제의 함수

“150일 전투는 죽은 계획경제에 산소호흡기 단 정신 나간 짓”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경제의 창(窓)으로 들여다본 북한 : 김정운의 ‘150일 전투’와 북한경제의 함수

2/3
경제의 창(窓)으로 들여다본 북한 : 김정운의 ‘150일 전투’와 북한경제의 함수

북한 경제는 최악의 고비를 넘겼다.

서비스업도 발달하고 있다. 목욕탕, 식당 같은 ‘봉사기관’에선 중국의 친척한테 밑천을 제공받은 화교가 맹활약한다. 탈북자 D씨는 기차역에서 세숫물을 팔았다. 물건을 떼러 먼 곳에서 온 상인에게 씻을 물을 판 것이다. 북한 상류층엔 ‘가정부 두기 바람’이 불고 있으며, 마사지를 해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고 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운수업도 등장했다. 시장화로 물류 유통이 활발해진 덕분이다. E씨는 북한에서 ‘서비차’ 운전수로 일했다. 서비차는 영리 목적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자동차를 가리킨다. 돈주들은 자동차를 구입한 뒤 공장, 기업소 명의로 등록한다. 시·군 보안서에 수익의 일부를 바치면서 운수업체를 운영하는 것이다. E씨는 “서비차 장사를 1년만 하면 투자금을 뽑는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버스보다 요금이 싸서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서비차는 지저분하고 화물과 뒤섞여 움직여야 해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버스나 기차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계획경제는 시장이 형성한 부(富)를 세금 등의 형태로 흡수하면서 근근이 버텨왔다. 상점은 자본주의 국가의 소득세 격인 국가납부금을 낸다. 주민들은 부동산사용료, 토지사용료를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북한 당국은 한국 정부와 민간이 인도적으로 지원한 식량과 생필품을 주민한테 팔아서 재정을 충당하기도 했다.

자본시장

북한의 조선중앙은행은 중앙은행이면서 상업은행이다. 계획경제가 만신창이가 되기 전 국가가 노동자에게 준 돈은 국영상점의 물품 판매를 거쳐 중앙은행을 통해 회수됐다. 북한의 화폐는 국영상점에서만 쓰이는 수동적 화폐였다. 조선중앙은행은 기업소에 자금을 빌려주고 주민의 예금을 받는 상업은행 구실도 했다.



“은행에 돈을 마지막으로 맡긴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십수년 전에 은행에 갔더니 예금한 돈을 인출해주지 않더라. 내줄 돈이 없다는 거였다. 그 뒤로 누구도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았다.”(탈북자 F씨)

국가→개인→국가의 화폐순환 구조가 붕괴한 것이다. 1세대 돈주 격인 G씨는 1992년 화폐개혁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수수료를 주고 사람을 사서 신권으로 최대한 바꾼 뒤 남은 돈은 벽돌처럼 묶어서 대동강물에 내다버렸다.”

북한 당국은 통화를 회수하고자 화폐개혁을 하면서 신구화폐를 1대 1로 교환하되 주민보유 현금은 일정 한도까지만 교환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은행에 예금한 후 나중에 지급하도록 했다. 당시만 해도 돈 가진 걸 죄악시하던 때라 G씨는 돈을 내다버릴 수밖에 없었다. 1세대 자본가의 상당수가 1993~94년 숙청당했다고 한다.

2세대 자본가들은 ‘달러’나 ‘위안’으로 부를 축적한다. 관료와의 유착, 애국헌금, 국채매입을 통해 보험도 들어놓는다. 국가한테 받은 표창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방패 구실을 한다.

조선중앙은행이 상업은행 기능을 하지 못 하다보니 기업소나 개인은 돈주에게 이자를 주고 자금을 공급받는다. 외화를 축적한 돈주가 자본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 수산업 등 1차산업으로도 돈주의 자금이 흘러들어간다.

2002년 이후 ‘원화 경제’가 ‘달러화 경제’‘위안화 경제’로 개편되면서 ‘외환시장’(외화 암거래 시장)도 확장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는 북한의 돈주와 화교(華僑)다. 외화를 ‘계획’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당국이 암거래를 단속하고 있으나 시장의 외화 수요가 커 외화거래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은 유로화를 공식 외화로 삼고 있다. 북한의 ‘원’은 유로에 환율이 고정돼 움직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로’가 아닌 ‘달러’와 ‘위안’으로 경제행위가 이뤄지고 있다.

북한은 2006년 상업은행법을 제정했으나 상업은행을 아직 설립하지 못했다. 은행을 세울 자본이 없을뿐더러 돈을 떼인 경험이 있는 주민들이 은행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의 창(窓)으로 들여다본 북한 : 김정운의 ‘150일 전투’와 북한경제의 함수

평양 모란봉에 들어선 옥수수국수공장

위안화 경제

청진시의 수남시장은 함경북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종합시장이다. 수남시장에서 판매하는 공산품은 거의 모두가 중국산이다. 식량 생산량이 게걸음 치고 있는데도 기근이 잠잠해진 건 중국과의 무역 덕분이다. 지금 북한의 쌀값은 안정적이다. 5월 1kg당 북한돈 2000원 수준이던 쌀값은 7월 1kg당 18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금 북한은 ‘자립적 민족경제’로 상징되는 폐쇄된 경제체제가 결코 아니다. 수출입이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린다. 북한의 시장화는 ‘중국 의존적 시장화’다. 중국은 북한의 산업생산 영역뿐 아니라 주민의 소비생활 영역에서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중국 비중은 25~30% 수준에 머물다가 2002년부터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2005년엔 중국 비중이 50%를 상회했으며, 2006년과 2007년엔 각각 56.7%, 67.1%를 차지했다. 중국은 2004년부터 대북(對北)투자에서도 1위에 올라섰다.

중국은 지난해 2월 북한의 기업과 개인에게 위안화 결제계좌를 터줬다. 외화를 합법적으로 반입·반출할 루트가 뚫린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위안화 경제권’ 편입이 자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본다.

2004년을 기점으로 중국과의 무역이 급증하면서 예전엔 차별당하던 화교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졌다. 화교들의 위세는 웬만한 도당, 시당 간부에 버금간다. 반면 일본에서 북송된 ‘귀국자’의 처지는 곤궁해졌다고 한다.

부유층을 중심으로 중국어 교육 열풍도 불고 있다. 과외선생을 들여 자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북한에서 중국어 구사 능력은 곧 경쟁력이다. 간부들은 자녀를 중국으로 유학 보내고 싶어한다. 당 간부가 되거나 전문직을 갖는 것보다 중국과 무역하는 일이 자녀의 장래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가 북한의 가족, 친척에게 송금하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H씨는 얼마 전 북한의 가족에게 장사 밑천으로 삼으라고 1000만원을 송금했다. H씨는 “서울에서 돈을 벌어 북한의 가족, 친척을 부양하는 새터민이 적지 않다”면서 “오늘 중국의 브로커한테 돈을 보내면 내일 북한에서 위안화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2/3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경제의 창(窓)으로 들여다본 북한 : 김정운의 ‘150일 전투’와 북한경제의 함수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