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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과 러시아 역할론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한반도 통일과 러시아 역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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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과 러시아 역할론

중병설 이후 수척해진 북한 김정일 위원장. 미국 한 언론은 “1년 정도밖에 못 살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실 쌀 비료는 한국 정부가 북한 내부에서 민심을 얻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은 김정일 위원장 측근세력뿐 아니라 ‘인민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잃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우려스러운 점은, 북한정권이 정말로 핵을 끌어안고 붕괴했을 때 이런 최악의 불신과 증오로 점철된 남북관계에서 남측은 북한 엘리트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반도 통일작업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북한 핵과 관련해 금기시돼온 또 다른 논의도 있다. 왜 한국에 북한 핵만 위협이고 중국 핵은 위협이 되지 않느냐는 점이다. 미국 부시 정권 시절 주한미군 정책을 총괄해온 리처드 P. 롤리스 전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2007년 7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자국의 능력을 확장시키고 있으며 이는 직간접적으로 한국, 일본을 포함한 주변 이웃국가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과 같은 나라는 중국이 군사력을 키워나갈 때 그것을 자국을 향한 위협으로 보지 않고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만 본다. 그것은 한국이 동맹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흥미로운 상황이다.”

위구르와 티베트에서 벌어진 유혈충돌은 중국의 완강한 변방정책의 단면을 보여줬다. 중국이 두 지역을 복속한 건 불과 수십 년 전이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중국군이 북한에 주둔한다면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미국과 유엔(UN)이 어떤 이유에 의해 미온적이라면 ‘핵을 가진 중국’과 ‘비핵 한국’의 비대칭 상태에서 한국은 어떤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을까. 한국이 대략 구상해둔 ‘갑작스러운 통일에 대한 대비책’은 사실은 롤리스가 냉소한 ‘동맹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라는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을 뿐이다.

명분과 실리는 외교에서 모두 중요하다. 이 때문에 직접 대면이 부담스러우면 중개인을 동원해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남북관계는 중개인, 우회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 역할의 최적임은 러시아로 보였다. 러시아는 중국을 제외하면 북한 지도부와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국가이고 한국, 북한,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매개는 한반도의 장래와 관련해 유용한 ‘중도적 해법’이 될 수 있다.

한반도 통일과 러시아 역할론

러시아와 북한의 접경지인 두만강 하구.

윤성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남-북-러 철도연결’과 ‘천연가스의 한반도 공급’은 러시아가 내심 희망하는 사업이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철도 연결에 2억2000만달러가 들지만 매년 5000만달러의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 동해를 따라 부산에서 북한을 거쳐 유럽까지 철도가 연결될 경우 물류·관광 등 다양한 성장동력이 파생될 수 있다. 2007년 고려인인 블라디미르 차 러시아 대통령보좌역 일행은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남-북-러 철도가 연결되면 금강산 관광사업을 북한 동해 연안을 지나 러시아 바이칼 호까지 가는 철도관광사업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연구위원은 “러시아는 2007년 사할린 1가스전에서 바다를 건너 연해주 인근 하바로프스크까지 연결되는 502km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완성했다. 중국은 석탄 중심 전력체계이므로 러시아는 북한을 경유해 최다 소비처인 한국까지 공급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한국도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 저렴한 수송비용 등 이익이 크다. 북한은 철도통행료와 가스관의 통관료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3국 경제결속의 정치적 폭발력

철도-가스관은 커다란 정치적 폭발력을 갖고 있다. 남북한과 러시아의 극동 시베리아 지방이 경제적으로 결속되어 어느 한 국가가 임의로 이탈하기 어렵게 된다. 러시아 개입이 갖는 유용성이다. 또한 그 틀 속에서 도시-항만 건설, 자원개발 등 다양한 개발프로젝트를 진행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남북 경제의 동반성장, 교류 상설화, 일체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공통의 물적 기반은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한민족 중심의 한반도 안정화에 기여하는 효과를 낸다.

윤 연구위원은 “남-북-러 경제체제가 활성화된다면 러시아는 남북통일을 지지하거나 최소한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는 주변 4강국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다. 한국으로서는 우방인 미국, 일본의 지지를 기반으로 러시아의 지지를 끌어낸다는 건 통일의 전기(轉機)를 마련하는 일이며 중국을 보다 잘 설득할 수 있게 된다.

이명박 정권 들어 대(對)러시아 관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2008년 9월 한-러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을 경유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한국으로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연결하기로 했다. 그러나 선언만 있었지 실행에 옮겨진 건 거의 없었다. 러시아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질 기미도 없다.

북한의 핵실험 등 한반도 불안이 일차적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2008년 8월13일 러시아는 한국의 러시아 서캄차카 해상광구 개발권을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한국의 가장 큰 해외유전개발사업이었다. 대신 러시아는 이명박 정권이 눈독을 들여온 극동-시베리아의 에너지-자원 개발과 관련해 일본에 180개 사업 33조원의 투자를 요청했다. 러시아와 일본의 밀월시대가 왔다.

지난 4월24일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기자회견에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비건설적”이라고 말해 정부를 당황하게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날인 4월25일 청와대에서 라브로프 장관에게 “북한을 상대로 북한 경유 가스관 사업을 설득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날 사포노프 러시아 극동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27일로 예정된 방한을 취소한다”고 외교부에 통보했다. 한 러시아 소식통은 놀라운 얘기를 했다. “라브로프 장관이 이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는 오히려 극동관구 전권대표의 예정된 방한을 취소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인 고산씨 교체, 러시아 주재 한국 외교관 4명 추방, 러시아 체류 한국인 3명 강제출국, 이재오 대통령당선인 특사의 푸틴 대통령 면담 불발 등 불협화음이 잇따랐다. 푸틴 러시아 총리는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 면담 자리에 5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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