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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인명진 목사의 몽골 드림

“한·몽 결합은 몽상 아닌 필연… 한·몽 국가연합 저작권자는 MB”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

인명진 목사의 몽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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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진 목사의 몽골 드림

몽골은 한반도 7배 면적의 영토대국이다.

“자존심 상한다고 그런다.”

▼ 황씨는 대통령과 교감을 가진 것처럼 말했다. 현실정책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뉘앙스였다.

“그게 잘못됐다는 거다. 소설가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는 있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주위 환경도 있고, 민감한 문제인데…. 지금 입 밖에 꺼낸 건 경솔했다. 최소한 중국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훗날의 일이고, 되더라도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정부와 교감 있는 것처럼 말해서 득 될 게 없다. 정부가 나설 때도 아니고 나서서도 안 된다.”

칭기즈 칸의 나라

몽골은 13세기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대(大)제국을 세웠다. 그 후 중국의 지배를 받다가 1921년 옛 소련의 도움으로 독립해 1924년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중국과 러시아 틈에 낀 몽골은 자원부국으로, 영토 면적은 미국 알래스카 주보다 조금 작다. 몽고(蒙古)란 명칭은 중국이 오랑캐라면서 얕잡아 부른 것.



▼ 몽골 친구가 여럿 있는데 자부심이 강하더라.

“그렇다. 몽골이 어떤 나라인가. 칭기즈 칸의 후예 아닌가. 한국에서 몽골 여자가 한국 남자와 결혼하면 커뮤니티에서 왕따당한다. 칭기즈 칸의 피를 더럽힌다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살만하니, 돈푼이나 있으니 흡수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잘못된 거다.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주장이 그렇지 않았는가. 몽골대사관에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더라. ‘국가연합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근로자들 때리지나 말라’고.”

황씨는 블로그를 통해 “현재의 세계적 공황과 한반도가 부딪친 정치·경제적 한계를 극복하고 활로를 모색하려면 국가 경영에 대한 비약적 상상력과 기획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북미관계 정상화를 돕고 남북이 불가침협정을 맺어 광활한 땅을 개발하는 게 문명의 대안”이라는 것이다.

인 목사도 황씨와 생각이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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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대국 몽골은 중국의 영토욕을 두려워한다. 사막화는 몽골의 또 다른 골칫거리다.

“몽골 민족은 우리와 핏줄이 가장 가깝다. 한국인은 몽골을 떠올리면 향수를 느낀다. 몽골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외국인이 아닌 형제로 느낀다. 재미난 게 미국의 한인타운 근처엔 예외 없이 몽골 사람이 산다. 핏줄이 당겨서 그런 거다. 언어도 알타이어 계열로 비슷하다. 우리말의 ‘사돈’이라는 단어가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다. 몽고는 고려를 사돈국이라고 불렀다. 고려의 왕비가 몽골인이고, 고려 여자가 몽골의 귀족을 낳았다. 제주도 방언은 몽골말에 뿌리를 둔다. 제주도의 합덕이라는 지명은 몽골의 함트에서 나온 거다. 그리고 몽골이 보유한 엄청난 지하자원을 생각해봐라. 몽골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건 우리에겐 필연이다. 한국 자본은 몽골의 소득을 늘려줄 수 있다. 내륙국인 몽골은 바다로 진출하기를 원한다. 그 꿈을 이뤄줄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몽골은 또한 남북의 통일을 돕는 다리 구실을 할 수 있다. 대륙 한복판의 광활한 땅과 북한 노동력을 연계하면 엄청난 효과가 나온다.”

인명진 목사의 몽골 드림
그의 말처럼 한국은 몽골과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으로 가깝다. 쿠빌라이 칸(1215~1294)은 20만명의 여성을 한국으로 보냈으며, 몽골과 고려는 서로를 ‘신부 나라’ ‘신랑 나라’ ‘어머니 나라’라고 불렀다. ‘조선왕조실록’은 명나라 주원장(1328~1398)의 군대와 전쟁을 치르던 몽골군이 현지에 살던 고려인을 동족이란 이유로 죽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잃어버린 형제 찾는 일”

▼ 언제부터 몽골에 관심을 가졌나.

“19년 전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선교를 해왔다. 한국에서 제일 먼저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게 우리 교회다. 당시 만 해도 이주노동자가 갈 교회가 없어 주일마다 600~700명씩 우리 교회에 왔다. 인권·복지·의료가 모두 열악할 때다. 보험 안 되고 말 안 통하니 약 한 알 못 사 먹었다. 주일마다 의사를 조직해서 치료해줬다. 우리 민족이 따지고 보면 단일 민족도 아닌데 다른 인종에 배타적이다. 지금은 한결 나아졌지만 백인에겐 열등감을 느끼면서 그밖의 인종은 깔본다. 목욕탕에서 이주노동자를 안 받아 교회에서 목욕시설을 제공했더니 그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교회 안에 몽골교회를 세워 몽골인 목사를 데려와 목회하게 했다. 그런데 몽골인과 함께 지내보니 풍습, 정서가 우리랑 똑같은 게 아닌가. 그즈음부터 몽골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박원길 교수(고려대) 같은 몽골 전문가와 교유하게 됐다.”

코리아몽골포럼은 5월 울란바토르에서 촐 몽 울란바토르대 부총장을 비롯한 몽골 학자 7명과 한국의 역사학자 3명이 참석한 세미나를 열었다. 몽골+2코리아 국가연합을 학문적 차원에서 뒷받침하고자 마련한 행사다.

“몽골 학자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또 한번 놀랐다. 인종적, 역사적으로 몽골과 한국은 뿌리가 하나다.”

▼ 혈연공동체 운운하는 건 파시즘적이지 않은가.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게 어떻게 파시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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