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미래 전장서 군용 배터리 ‘퇴출’

  • 이정호 /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입력2009-09-03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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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전장서 군용 배터리 ‘퇴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중년층을 중심으로 고조되면서 최근 저녁이면 달리기에 열중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강변이나 하천 근처의 평탄한 길을 따라 뛰는 이들의 모습은 살기 좋은 동네의 상징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달리기가 늘 ‘레저’의 수단인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목적의 달리기가 필요한 곳도 있다. 바로 군대다. 군대에서 달리기는 무기와 장비를 둘러 메고 신속히 이동하는 방법이다. 공격이나 방어에 유리한 지점을 적보다 먼저 찾으려면 빠른 발은 필수라는 얘기다.

    문제는 군용 배낭의 무게. 배낭 안에는 양말, 속옷, 군복부터 군화, 휴대용 삽까지 갖가지 물품이 들어 있다. 많은 가짓수에 따른 엄청난 무게 탓에 군인의 이동 속도를 늦추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하지만 전투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라 어느 것 하나 뺄 수도 없다.

    그런데 해외의 한 연구진이 최근 군용 전기·전자 장비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퇴출시켜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화제다. 영국 리즈대 연구팀은 병사들이 걸을 때 생기는 충격을 전기로 만드는 방법을 150만달러(18억원)를 들여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만든 전기로 군용 조명등과 무전기를 켜겠다는 것. 배터리 대신 일종의 초소형 발전기를 만들어 병사들에게 지급하겠다는 얘기다.

    연구팀이 ‘군용 배낭 경량화’라는 과제에 ‘배터리 퇴출, 초소형 발전기 개발’이라는 답을 내놓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군용 장비는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설계된다. 그 결과 전력 소모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배터리 무게도 ‘헤비급’이다.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군의 군용 배낭 무게가 65kg인데, 그중 배터리가 10kg이나 차지하는 것이 한 사례다. 이를 줄이면 병사들은 무게가 15% 줄어든 배낭을 멜 수 있다. 그러면 이동 속도가 빨라져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병사가 그냥 걷기만 해도 전기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뭘까. 그 비밀은 ‘압전 효과’에 있다. 이 효과는 말 그대로 힘을 줘 누르면 전기가 생기는 것으로 수정을 비롯한 몇몇 광물에서 일어난다. 발이 땅에 닿을 때의 충격이 만든 기계적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로 바뀌는 것이다. 연구팀은 병사들의 무릎 보호대 안에 압전 효과가 나타나는 광물을 집어넣을 계획이다.

    만약 압전 효과를 이용한 초소형 발전기를 쓰지 않은 채 배터리 무게만큼 배낭에서 물건을 덜어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병사는 휴대용 삽이 없어 참호를 파지 못하거나 갈아 신을 전투화가 없어 젖은 발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반합이 없어 식사를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든 정상적인 전투가 불가능하다.

    리즈대 연구팀의 앤드루 벨 교수는 병사마다 다른 걸음걸이가 전력 생산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그 정도의 문제는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장에 스며드는 하이테크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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