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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⑮

마릴린 먼로 20세기를 뒤흔든 섹스 심벌

“스크린 밖에서는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었다”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마릴린 먼로 20세기를 뒤흔든 섹스 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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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20세기를 뒤흔든 섹스 심벌

어린 시절부터 먼로는 사진 찍히기를 좋아했다. 무명시절 50달러가 필요해 찍은 누드사진으로 훗날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몸이 헤픈’그녀에게 양부모가 권한 것은 결혼이었다. 노마 진은 겨우 열여섯 나이에 스물한 살의 남자 도허티와 결혼한다. 본래 해병 입대를 원했던 첫 남편은 어린 신부의 외모에 반해 ‘입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결혼하지만 2년 뒤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그녀의 꿈은 남편의 배반으로 깨졌다. 당장 끼니를 때울 일이 막막해 군수공장에 들어가 페인트 칠, 낙하산 수리 같은 막일을 시작한다.

운명이란 게 있다면 이런 걸까. 마침 한 사진작가가 젊은 여성노동자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공장을 방문했다. 3일간 공장 이곳저곳을 찍던 사진작가는 유독 노마 진이라는 여자가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지 않은 포즈와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의 소개로 노마 진은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간다.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녀 나이 열아홉이었다.

운명처럼 열린 배우의 길

카메라 감각이 뛰어났던 노마 진은 1년 후 이름을 ‘마릴린 먼로’로 바꾸고 20세기 폭스사로 발탁되면서 모델에서 배우로 거듭난다.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은 폭스가 붙여준 ‘마릴린’에 생모의 이름인 먼로를 더한 것이었다. 그러나 데뷔 시절은 처참했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3년이란 세월을 무명으로 보내야 했다. “도저히 배우로서 자질이 없다”는 이야기도 수없이 들었다. 결국 1년 만에 해고된다.

그녀 인생에서 위기의 순간에는 늘 남자가 있었다. 해고 직후 다시는 할리우드에 발붙이지 못할 것 같던 그녀 앞에 배우를 발굴해 영화사에 소개해주는 일을 하던 솅크라는 남자가 나타났다. 솅크는 콜럼비아와의 계약을 주선한다. 당시 먼로 주변에는 그녀가 성공의 발판이 되어주는 남자들에게 “성상납을 한다”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남자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섹스를 한다는 것이었다.



콜럼비아 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코러스의 아가씨들’이란 영화에서 비중 있는 단역을 맡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1년 계약이 끝나면서 먼로는 다시 실직자가 된다.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다. 자동차 수리비 50달러가 필요해 사진작가 톰 켈리와 함께 누드 달력 사진을 찍은 것도 이 무렵이다.

이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영화계 관계자들을 만나 배역을 찾던 먼로는 마침내 할리우드의 실력자 조니 하이드와 인연을 맺는다. 조니는 그녀의 몸에만 관심이 있던 다른 남자들과 달리 먼로의 비참한 출생과 내면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먼로는 하이드의 소개로 유명한 존 휴스턴 감독의 ‘아스팔트 정글’에 출연하게 된다. 대사 몇 줄에 출연 장면도 두 군데밖에 없었지만 비중 있는 역이었다. 먼로는 처음으로 연기다운 연기를 했을 뿐 아니라 배우로서의 무한한 가능성까지 보여주었다.

마릴린 먼로 20세기를 뒤흔든 섹스 심벌

먼로는 요부의 관능미와 소녀의 천진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전쟁의 피로와 재건사업에 지친 남자들은 먼로의 ‘헤프고 착한 여자’이미지에 열광했다.

행운은 이어졌다. 곧바로 유명 감독 조지프 맨키위츠의 ‘이브의 모든 것’에 캐스팅된 것이다. 큰 배역은 아니었지만 존재감을 보여주기에 손색없는 작품이었다. 바야흐로 이제 그녀가 할리우드 스타덤에 오르는 순간이 오는가 했는데 후견인 하이드가 심장병으로 죽고 만다. 장례식 날 먼로는 절규하듯 통곡했다. 먼로는 당시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흔들렸다.

하지만 먼로는 하이드의 장례식을 마치고 영화 ‘당신도 젊다’를 찍으면서 감독이자 유명극작가인 엘리아 카잔과 인연을 맺게 되고 카잔의 연인이 된다. 그리고 1951년 1월1일 ‘라이프’지 표지모델이 됨으로써 드디어 인기정상의 궤도에 올라섰다.

관능미와 소녀의 천진함을 모두 가진 여자

그 후 2년 동안 그녀의 인기는 꾸준히 올라갔지만 ‘멍청한 금발미인’이라는 혹평은 늘 따라다녔다. 언론은 그녀를 향해 ‘모든 남자를 받아들일 것 같은 멍청한 미소를 지닌 할리우드의 표준적인 금발미인’이라고 혹평했다. 실제로 그녀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화제들, 이를테면 그림 음악 책 역사 지리 스포츠 정치 등에 대해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자괴감에 빠졌다.

그럼에도 먼로의 대단한 점은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대학 공개강좌를 듣기도 하고 본격적인 연기공부를 위해 뛰어난 연기지도자로 꼽히는 미하엘 체호프를 소개받는다. 위대한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후손이기도 한 미하엘 체호프는 “배우란 캐릭터의 단순한 모방자가 아닌 고도의 훈련을 거친 연출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먼로가 추구하는 지적, 예술적 관심을 높이 평가했다. 그의 교습법은 먼로에게 신선한 자극이었다. 먼로는 제자를 자처하며 그를 따랐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스캔들이 따라다녔다. ‘클래시 바이 나이트’ ‘우리는 독신자’에 출연하며 유명해지자 또다시 추문들이 터져 나왔다. 달력용 누드 사진을 찍은 사실이 폭로되었고 거의 고아나 다름없이 자란 이야기, 정신병원에서 죽은 어머니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여군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에서 목선이 지나치게 파인 옷을 입어 군인을 모독했다는 비난까지 나왔다.

스캔들에 대한 대처법은 철저하게 그녀다웠다. 성적 매력을 철저히 이용하면서도 자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순진한 아이 같은 표정은 위기마다 빛을 발했다. “생활고 때문에 옷 벗고 사진 찍은 게 그렇게 잘못이었나요?”라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슬픈 표정을 지으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용서해주었다. 추문이 터져 나올 때마다 애처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는 먼로에게 여론은 점점 관대해졌다. 연기력을 호평하는 평론가들도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릴린 먼로라는 스타 탄생에는 당시 미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남성적 세계와 질서를 거스르는 여성들을 ‘요부(妖婦)’라는 코드로 분석한 영국의 논픽션 작가 제인 발링허스트는 ‘요부 그 이미지의 역사’(이마고)에서 “1950년대의 먼로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포연이 가라앉고 나서 일상생활이 안정으로 돌아가자 남자 마음을 흔들되 너무 많은 보상을 요구하거나 남자들을 파멸로 몰아가지 않는 사랑스러운 미녀를 갈구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발링허스트에 따르면 먼로에게는 결정적인 비장의 카드가 있었으니 그것은 익히 알려진 관능미에다 어린 소녀의 천진무구함과 연약함을 결합시킨 이미지다. 전쟁의 피로와 전후 재건사업으로 지친 남자들은 유혹해도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을 ‘착하고 헤퍼 보이는’ 마릴린에 열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 먼로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녔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남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또 하나 중요했던 것은 먼로가 ‘남자보다 우월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남자를 기쁘게 해주는 것 말고는 다른 꿍꿍이가 없는 여자처럼 보였다. 남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끌어가든 관심도 없고 간섭할 생각도 없어 보이는 그녀가 필요로 하는 전부는 오로지 남자들의 애정을 받는 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생활에 찌든 남자들에게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고 환각의 재현을 보장하는 심리적 비아그라와도 같은 것이었다는 게 발링허스트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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