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이상희 국방장관 본지 상대 소송 패소

“합참, 미군기지 이전반대 평택 시위 때 농민들 구속 검토”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9-09-10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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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이상희 장관 국회 청문회 위증의혹 제기
    • 법원, “신동아 보도의 공익성과 진실성이 인정된다”
    • “경찰이 있는데 왜 군이 나서느냐”
    이상희 국방장관 본지 상대 소송 패소

    2006년 5월4일 완전군장을 한 군 병력이 평택시 대추리로 이동하고 있다.

    7월25일 KBS TV는 밤 9시 뉴스에서 ‘신동아’ 기사와 관련해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국회 위증의혹을 제기했다. 2008년 2월 장관 인사청문회 때 거짓말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날 KBS가 보도한 당시 인사청문회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장병력을 투입해 막아야 한다는 계획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이근식 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무장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군의 임무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계획을 세울 이유도 없습니다.”(이상희 국방부 장관 내정자)

    2006년 5월 경기 평택시 대추리는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현지 농민들은 서울 용산의 미군기지가 이곳으로 옮겨오는 것에 반대해 국방부가 사들인 미군기지 예정지에서 영농을 계속하는 한편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군 병력 3000여 명이 대추리 미군기지 예정지에 진주해 철조망을 쳤다. 군 병력이 민간지역에 출동한 것은 1980년 5·18 이후 처음이었다. 군 출동에 앞서 경찰 1만3000여 명이 대추리로 진입해 격렬한 충돌 끝에 농민시위대를 몰아냈다.

    “비무장 건의 인정된다”



    이날 군 작전은 ‘Y-지원계획(이하 Y작전)’으로 불렸다. 이 작전의 입안자가 당시 합참의장이던 이상희 장관이다. 당시 이상희 합참의장이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Y작전의 요지는 평택에 무장한 병력을 투입한다는 것과 방어선을 넘어오면 진압한다는 것.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의장이 설명한 ‘무장’은 총기를 휴대하되 실탄은 별도로 보관한다는 것이었다.

    Y작전의 실체는 ‘신동아’ 2007년 10월호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후 2008년 2월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한겨레와 내일신문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신동아’가 지난해 10월호에 ‘이상희 장관의 리더십과 정책’을 검증하는 기사를 실으면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자 이 장관은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했다. 그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한 대목은 크게 6가지인데 핵심 쟁점은 대추리 병력무장 투입계획이다.

    7월22일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5부)은 이 장관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윤광웅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에 변론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가 합참의장 시절 평택 대추리 시위사건과 관련해 당시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일명 ‘Y지원 작전계획’을 보고했고, 원고의 보고가 끝난 후 국방부의 주요 참모들이 회의를 열어 총기와 실탄을 가져갈 경우 유사시 현장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국민을 상대로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장관에게 비무장(총기 휴대 불가)을 건의한 사실이 인정되는 바, 위 인정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보면 당시 원고가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내용 중에는 시위진압병력에 총기를 휴대하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기사 중 해당부분은 사실과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그밖에 다른 쟁점들에 대해선 “사실에 부합하거나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며 기사의 공익성과 진실성이 인정된다”며 이 장관의 명예훼손 주장을 일축했다.

    이 같은 판결내용에 대해 상당수 언론매체가 관심을 보였다. 한겨레는 7월25일 ‘이상희 국방, 대추리에 군 무장 투입계획 드러나’라는 제목으로 이 장관의 패소 사실을 사회면 주요기사로 다뤘다. 오마이뉴스는 ‘법원, 이상희 대추리 무장병력 투입은 사실’이라며 사건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면서 이 장관의 국회 위증 의혹을 제기했다. 그밖에 연합뉴스를 비롯해 여러 일간지, 인터넷 매체 등에서 비중 있게 보도했다.

    “경계침범죄로 구속 가능”

    ‘신동아’ 후속취재에 따르면 2006년 5월 이 장관이 이끌던 합참은 시위대를 구속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합참에서 이상희 합참의장 주재로 열린 대책회의에는 합참 주요 간부들이 참석했고 국방부 법무병과와 인권부서 관계자도 배석했다.

    안건은 시위대 처리 문제였다. 합참 관계자는 “경계침범죄로 구속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국방부 법무병과와 인권부서 관계자는 견해를 달리했다. 인권부서 관계자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국방부 법무병과에서는 별도로 의견서를 작성해 합참에 전달했다.

    법무병과가 시위대 구속에 반대한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수용시설 부족. 당시 농민 시위대는 어림잡아 3000명이었다. 하지만 군 형무소와 헌병 유치장을 다 사용한다 하더라도 400명 이상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둘째는 수사인력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 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동원 가능한 수사인력은 100명이 채 안 됐다고 한다. 아울러 합참의 강경방침에 대해 “민간인을 담당하는 경찰이 있는데 왜 군이 나서느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농민시위에 대한 합참의 강경방침은 진압봉(2m 장봉) 논란에서도 확인된다. 합참은 출동하는 군인들에게 총기를 휴대하게 하려는 계획이 무산된 후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진압봉 휴대를 건의해 승낙을 받았다. 하지만 유혈사태를 우려한 국방부 참모들이 윤 장관의 결정을 바꾸어 진압봉 계획도 틀어졌다. 결국 진압봉을 가져가되 지급하지는 않고 창고에 보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애초 이번 재판의 선고일은 5월13일이었다. 하지만 선고일 하루 전 이상희 장관 의 변호인은 재판장에게 선고연기를 요청했다. 연기 사유는 ‘신동아’ 측과 조정해보겠다는 것. 이 장관 측은 재판부를 통해 “담당기자가 사과하면 소송을 취하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신동아’가 이를 거부하자 이 장관 측은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을 안 하다가 7월 중순에야 신동아 측에 조정내용을 전달했다. 사과와 함께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신동아는 이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고 법원은 뒤늦게 판결을 내렸다. 한편 이상희 장관은 1심 판결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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