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엄마가 보고 있다. 열공하리라”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9-09-10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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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교육 없는 전국 최초 자율중학교
    • 전교생 70%가 외지 출신, 전원 기숙사 생활
    • 영어·수학 경시대회 휩쓸어
    • 영어·수학 수준별 이동수업, 방과 후 밤 9시까지 보충심화학습
    • 예체능·특기교육 활성화, 지도자 교육 실시
    • 매일 운동장 두 바퀴 돌고 졸업 전까지 유도 2단 따야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화산중학교 설립자인 심의두 교장(위). 화산중학교가 자랑하는 ‘잉글리시 카페’(아래).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다 논산 나들목에서 빠져나오면 전북의 북쪽 끝인 완주군 화산면이다. 전주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인 화산은 한우단지와 붕어찜으로 이름난 곳이다. 하지만 화산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전국 최초의 자율중학교인 화산중학교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단정한 느낌의 편도 1차선 도로를 5분쯤 달리자 화산면 화평리에 위치한 화산중학교가 나타났다. 은행나무와 설송이 교정에 이르는 진입도로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왼편으로는 운동장이, 오른편으로는 기숙사 두 동이 자리 잡고 있다. 파란 잔디로 뒤덮인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우레탄 트랙이 만들어져 있다. 학교 입구 쪽으로 테니스장과 농구장도 눈에 띈다. 3층 건물의 본관 옥상에는 한 시간에 20kW의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열 전지판이 설치돼 있다.

    방학이라 교정은 텅 비어 있었다. 칠순의 심의두(沈宜斗·74) 교장이 현관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교장실에 설치된 대형 컴퓨터 모니터로 지난 6월 교육방송 영어교육채널인 EBSe가 방송한 ‘영어강국 코리아-화산중학교 편’을 감상했다. 토익(TOEIC) 955점을 받은 이 학교 3학년 김법창 군의 유창한 회화 실력과 해맑은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농악을 배우는 화산중학교 학생들. 오른쪽은 컴퓨터실에서 영어 자습하는 광경.

    시골학교로 몰려든 대도시 아이들

    자율학교란 교장 임용, 교육과정 운영, 교과서 사용, 학생 선발 등에서 자율성을 갖는 학교다. 자립형 학교와 달리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 주로 농어촌 고등학교가 대상인데, 중학교로는 화산중이 1호다.



    자율학교는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다. 2009년 7월 현재 화산중 전체 학생수는 355명. 이 중 화산면 출신은 84명(23%)이다. 화산면에 소재한 화산초등학교와 삼오초등학교 졸업생은 무조건 입학시켜야 한다. 전주를 비롯한 전북 지역 출신이 전체의 31%(111명)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타(他) 시도 출신이다. 출신 지역을 보면 서울(27명)을 비롯한 광역시 이상의 대도시 출신이 57명이고, 경기도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모든 시도에 고루 분포해 있다.

    화산중의 학년당 학급 수는 4개 반, 한 학급 학생수는 30명이다. 이 자그마한 농촌 시골학교에 대도시 학생들이 몰리는 이유가 뭘까.

    화산중이 학부모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교육 광풍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 학교 학생들에게 사교육은 남의 나라 얘기다. 모든 교육이 학교에서 이뤄진다. 학생들의 공부는 밤 9시까지 이어진다. 정규수업이 끝난 후 보충심화학습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체 학생의 70%인 250명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화산면에는 학원이 아예 없다.

    사교육이 없다고 대도시 학생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겠지만, 화산중 학생들은 전국 단위 각종 학력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려왔다.

    MBC아카데미·중앙일보 주최 수학학력평가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한국생물올림피아드대회 동상, 국제영어대회(IET) 동상, 전국 중고 외국어경시대회 장려상 등 수상 실적이 화려하다. 특히 지난해 ‘제11회 MBC아카데미 전국 초·중 영어수학 학력평가’에서는 화산중 학생 43명이 대상, 금·은·동상, 장려상을 휩쓸었다. 또한 해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명문고에 다수 진학해 학교의 성가를 높이고 있다.

    화산중의 교육과정은 일반 중학교와 어떻게 다른가. 먼저 학습시간을 보자. 정규수업은 오후 5시에 끝난다. 저녁식사 후 6시15분부터 방과후 학습이 시작돼 9시까지 이어진다. 이때 일반 학급 학생들은 수업은 한 시간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율학습을 한다. 반면 수월성반(영재학급) 학생들은 3시간 내내 수업을 받는다.

    수월성반은 편제에 있는 학급이 아니라 영어·수학 심화학습 대상자를 모아 임시로 편성한 학급이다. 수월성반 학생은 학년당 20명. 매 학기 초 4개 반에서 시험성적이 우수한 상위 20명이 선발돼 특별수업을 받는다. 이들은 일반 수업은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받으면서 영어·수학과 야간 심화학습을 할 때만 수월성반에 편성된다. 화산중이 자랑하는, 이른바 영어·수학 수준별 이동수업이다. 말하자면 각 반 수재들이 영어·수학을 배울 때만 특정 교실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다. 마치 대학생들이 강의실을 찾아가듯 말이다.

    야간 심화학습은 영·수 위주로 진행되지만 과학과 국어도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배운다. 기숙사에서 지내는 학생들은 대부분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을 한다. 교사들이 기숙사에 상주하며 이들의 학습을 돕는다.

    화산중의 입시요강엔 영재학급 학생 선발이 포함돼 있다. 지원자 중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수학시험을 통과한 20명을 특별전형으로 뽑는 것이다. 이들은 1학년 수학 과정에 한해 영재반으로 편성되는데, 실제로는 수월성반 학생들과 겹치게 된다.

    화산중 학생들의 외국어 학습은 영어로 끝나지 않는다. 제2외국어로 중국어와 일본어 중 하나를 골라 배워야 한다. 심화학습 과목에는 한문도 있다. 전교생이 한자 급수 시험을 볼 정도로 한자 교육이 세다.

    그렇다고 공부만 죽어라 시키는 학교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화산중은 학생들의 예체능과 특기 활동에도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다. 전문강사를 초빙해 피아노 바이올린 가야금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우게 하고, 장기·바둑도 가르친다. 이를 포함해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특기 종목은 44개나 된다. 무술로는 태권도와 유도를 배우는데, 특히 유도의 경우 모든 학생이 졸업 전까지 2단 이상을 따야 한다. 이는 호신술로는 유도가 가장 좋다는 심 교장의 신조에 따른 것이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화산중학교 전경. 운동장엔 파란 잔디가 깔려 있다.

    매일 운동장 2바퀴 돌아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운동장 돌기다. 화산중 학생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두 차례 운동장을 2바퀴씩 돌고 있다. 이 또한 심 교장의 걷기 철학에 따른 것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시설도 좋아야 한다. 화산중처럼 공교육으로 승부를 거는 학교라면 더욱 그러해야 한다. 화산중은 기숙사인 문무숙(文武塾) 3동과 실내체육관(문무관·文武館), 인성교육관을 갖추고 있다.

    기자는 심 교장의 안내를 받아 교내 곳곳을 둘러봤다. 먼저 기숙사인 문무숙. 기숙시설과 더불어 자습실이 자리 잡고 있다. 한 방에 4~5명이 잔다. 온돌방이고, 방마다 화장실 옷장 세탁기가 갖춰져 있다. 난방은 구들 밑에 깔린 자갈을 전기로 달궈 한다. 지하층엔 탁구대가 놓여 있다.

    문무숙 3개 동에 있는 자습실은 모두 360석. 밤 10시 이후 이용할 수 있으며 대체로 새벽 2시쯤 문을 닫는다. 자습실 책상엔 사용자의 이름표와 함께 각자의 다짐이나 각오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중 ‘엄마가 보고 있다. 열공하리라’는 문구를 보고 기자는 가슴이 찡해졌다.

    화산중을 지원한 학생들은 서류심사와 심층면접 2단계를 거쳐야 한다. 서류심사에서는 토익과 토플 성적 우수자, 각종 수상경력이 있는 학생이 유리하다. 자기소개서를 잘 써내는 것도 중요하다. 대체로 입학정원의 2배수인 240명이 1차 관문을 통과한다. 심층면접에서도 영어·수학·한문 우수학생은 우대를 받는다. 그밖에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품성, 건강 상태 등을 본다. 전국에서 지원자가 몰리다보니 얘깃거리가 많다. 심 교장의 회고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기숙사 복도.

    “울산의 한 여학생은 6개월간 부모를 설득한 끝에 우리 학교에 올 수 있었다. 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부모가 반대한 탓이었다. 이 학생은 우리 학교의 잔디운동장을 비롯한 친환경적 시설과 홈페이지에 있는 교장 인사말이 맘에 들어 지원했다고 했다. 강원도 출신으로 유난히 키 작은 여학생은 오리엔테이션에 혼자 참석했다. 버스를 6~7차례 갈아타고 왔다는 그에게 ‘부모가 안 왔느냐’고 묻자 ‘왜 혼자 못 오느냐’고 대차게 되물었다. 이 학생은 졸업 후 내게 와이셔츠를 선물했다. 면접에서 ‘내가 대통령이 꿈인데 왜 안 뽑으려 하느냐’고 따지던 남학생도 기억난다.”

    공부 잘하면 장학금 듬뿍

    현재 화산중의 교원 수는 44명. 정식교사가 23명, 강사가 21명이다. 전체 학생 수가 355명이니 수치로만 따지면 학생 8명당 교사 한 명인 셈이다. 교사는 봉급 외에 야간수업 수당을 받는데, 시간당 3만~7만원까지 능력에 따라 금액이 다르다. 강사는 월 평균 220만원을 받는다. 영어교사들은 하나같이 해외연수를 한 실력파. 원어민 교사도 한 명 있다.

    화산중은 독특한 장학제도를 갖고 있다. 1등으로 입학한 학생에게는 1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2등에겐 50만원, 3등에겐 30만원을 준다. 매 학기 평균 95점 이상의 성적을 내면 10만원씩 지급한다. 현재 한 학년에 15명 정도가 이 장학금을 받고 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나 부산과학영재학교에 합격하면 1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함과 동시에 조기졸업 시킨다. 뒷날 서울대나 사법시험, 행정고시에 합격해도 100만원을 지급한다.

    기숙사와 우수한 교사 확보 등 수준 높은 학습환경을 갖추고 유지하려면 돈이 들 수밖에 없다. 중학과정은 의무교육이므로 학생들이 수업료를 내지 않는다.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국고지원만으로는 턱도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화산중 영어 교사는 모두 7명인데, 그중 정부지원 대상 교사는 학년에 한 명씩 3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4명의 교사에게 급여를 주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탓에 화산중은 외지 학생들에게 강사비로 한 달에 13만원씩 걷는다. 기숙사를 쓰는 학생들은 숙식비와 시설 이용비로 월 42만원을 낸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갈 때는 일종의 입회비인 학교발전기금을 낸다. 각자 형편껏 50만~100만원을 내는데, 내지 않는 학생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학습시설 중에는 컴퓨터실과 5000여 권의 장서가 비치된 도서관, 영어회화 전용교실인 멀티미디어실 등이 눈길을 끈다. 지도자 세미나실이라는 문패가 붙은 교실도 있다. 사회 지도자로 성장하라는 뜻에서 만든 이 교실에서 학생들은 사회 이슈와 관련해 자신의 주장을 발표한다. 이 방은 학교를 방문한 외국학생들과 교육관련 인사들의 토론회 장소로도 활용된다.

    본관 옆에 새로 짓고 있는 4층짜리 건물에는 현재의 비좁은 도서관을 옮겨 넓게 쓸 예정이다. 이 건물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자학당도 들어선다. 화산중은 중국 길림제일고와 자매결연을 한 상태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기숙사 자습실.

    마지막으로 강당을 둘러봤다.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커다란 강당에서 심 교장은 매주 월요일 아침 30분씩 훈화를 한다. 일종의 정신교육이다. 강당 전면엔 ‘천지개벽’이라는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심 교장은 “어떤 일을 하든지 천지개벽 하듯이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자율학교는 3년마다 새로 지정된다. 관련법이 바뀌어 올해부터는 지역 학생들만 뽑을 수 있다. 예컨대 전북에 있는 자율중학교는 전북 소재 초등학교 졸업생만 받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새로 자율학교로 지정된 화산중학교는 2년 후부터 이 법을 적용받게 된다. 심 교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지역인재를 양성하라는 취지인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책이다. 한 지역에서만 받으면 지도자를 키우는 의미가 없다. 외국 가는 건 놔두면서 타(他)지역으로 가는 걸 막는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교육당국을 설득해 법을 다시 바꾸도록 하겠다.”

    ****************************

    화산중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자율중학교로 우뚝 선 데는 이 학교 설립자인 심 교장의 공이 절대적으로 크다. 화산중의 역사는 교육에 평생을 바친 심 교장의 인생행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信義를 지키고 誠實히 努力하는 사람이 되자’는 이 학교의 설립이념은 심 교장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2000년 학생수 급감으로 폐교 위기에 몰린 화산중을 살려낸 사람도 바로 심 교장이다. 그가 이제껏 화산중에 쏟아 부은 사재(私財)는 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산중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심 교장의 삶을 알아야 한다.

    화산면이 고향인 심 교장은 초등학생 시절 꿈이 교장이었다. 교사가 아니라 교장이라니. 그 사연이 재미있다. 일제 강점기, 소년 심의두는 화산초등학교를 다녔다. 교사들은 일본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툭하면 아이들에게 매질을 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선생이 가장 높은 줄 알았고, 나중에 크면 선생이 되겠다고 맘먹었다. 그런데 열두살 때 일어난 사건이 그의 꿈을 선생에서 교장으로 바꾸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교장실을 청소하다 교장선생님의 회전의자에 앉아 봤다. 어디선가 주번교사가 나타나 ‘꼬마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셨네’ 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번교사는 ‘그 의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면서 엄청 두들겨 팼다. 아버지께서 ‘남자는 팔다리 부러지기 전에는 울면 안 된다’고 하셨기에 눈물을 꾹 참았다. 그때 다짐했다. ‘내가 지금 맞고 있지만 반드시 당신보다 높게 되겠다. 꼭 교장이 되겠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심의두 교장의 꿈은 화산중학교를 한국의 이튼스쿨로 키우는 것이다.

    심의두가 사는 화산엔 중학교가 없었다. 50리 떨어진 완주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왕복 100리 길을 매일 걸어서 통학했다. 새벽 5시 집에서 출발하면 오전 9시 학교에 도착했다. 그 시절 그는 중학교 설립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 ‘내 후배들한테는 이런 고생을 안 시키겠다’고 다짐하면서.

    ‘아, 참으세요’

    그의 집안은 가난했다. 고등학교에 갈 여건이 안 됐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자립을 결심했다. 서울에 가서 성공해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부친은 고생길이 훤한 어린 자식에게 쌀 한 가마니 값을 주면서 ‘돈 떨어지면 돌아오라’고 했다. 생전 울지 않던 분이 처음으로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부친은 “사람관계에서 신의를 꼭 지켜라”라고 당부했다. 심의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장을 따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고향을 떠났다.

    서울에 올라온 지 사흘 만에 그는 가진 돈을 다 종로깡패들한테 빼앗겼다.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고 종로에서 왕십리 자취방까지 기어갔다. 일주일 동안 굶고 난 뒤 죽으려고 한강에 갔다. 얼마나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지, 강변에 ‘아, 참으세요’라는 팻말이 있었다. 막상 죽으려니 아홉살 때 여읜 어머니의 무덤과 아버지와 한 약속이 생각났다.

    이를 악물고 발길을 돌린 심의두는 행상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한집에서 자취하던 여성이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5000원을 빌려줬다. 그는 또 같이 상경한 고향친구 세 명에게 2000원씩 모두 6000원을 빌렸다. 비누 칫솔 치약 실 바늘 성냥 초 따위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팔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컴퍼스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성실함과 신의를 인정받아 동료들보다 월급을 2배 더 받기도 했으나 컴퍼스를 밖으로 빼돌리는 동료들의 부정행위에 낙담해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가정교사를 해서 학비를 해결했다.

    고교를 졸업한 지 2년 후인 1959년 심의두는 군에 입대했다. 군 복무 중 전북대 분교가 부대 인근으로 옮겨왔다. 사단장은 하사관 이하의 군인이 입시에 합격하면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그 덕분에 그는 대학생이 됐다. 군인 신분이라 수업료도 면제받았다.

    1963년 4월, 그는 만기제대했다. 그가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그해 10월. 대학 4학년 2학기 때였다. 화산면사무소 회의실을 빌려 중학교에 가지 못한 청소년 7명을 대상으로 성인교육을 실시했다. 이것이 화산중의 기원이다. 그의 나이 28세 때였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화산중 학생들은 졸업 전까지 유도2단을 따야 한다.

    말이 학교지 교실이라고는 면사무소 회의실과 천막교실이 모두였다. 교실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심 교장은 부친이 떼준 1976㎡(590평)의 땅을 개간해 두 배로 불렸다. 고추농사로 돈을 벌어 학교 부지를 샀다. 2년째가 되면서 1학년 52명, 2학년 33명으로 학생이 늘었다. 교사라고는 심 교장밖에 없었다. 전 과목을 맡아 주당 72시간까지 가르쳤다. 이듬해 6개 교실을 짓고 화산고등공민학교를 세웠다. 학교 시설을 늘리는 데 필요한 비용은 오로지 심 교장의 몫이었다. 그는 사슴과 오소리를 키우고 결혼반지와 재봉틀까지 팔아 재원을 마련했다. 1969년 12월 마침내 화산중이 탄생했다.

    하지만 사재만으로 시골 사립중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공립보다 급여를 더 줘야 교사를 유치할 수 있었으나 도저히 그럴 형편이 안 됐다. 살길은 의무교육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1969년부터 1985년까지 문교부와 청와대를 줄기차게 찾았다. 청와대 교육정책자문위원을 맡으면서 주변의 도움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면담까지 했다. 그 시절 그는 새마을운동 강사로도 활약했다.

    “짐승처럼 스스로 강해져야”

    1985년 그는 전두환 대통령을 면담해 중학교 의무교육 실시를 건의했다. 이를 받아들인 전 대통령의 지시로 그해부터 중학교 의무교육과 더불어 사립학교 시설비 지원정책이 실시됐다. 전국 최초로 화산중을 비롯한 3개 중학교가 의무교육 시범학교로 선정됐다. 이후 중학교 의무교육은 점차 확대되어 2002년에 이르러 전국의 모든 중학교가 의무교육을 하게 됐다.

    “세상에 태어나 내가 할 게 뭔가. 농촌을 중흥시키는 일을 나의 소임으로 여겨왔다. 농촌은 뿌리고 도시는 꽃이다. 꽃을 피우려면 뿌리가 단단해야 한다. 농촌을 살리려면 교육을 살려야 했다. 교육 때문에 다들 떠나기 때문이다.”

    1995년 전북 교육위원에 선출된 심 교장은 교육위원회 의장과 전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장을 거쳐 1999년 9월 화산중 교장으로 복귀했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휘청거리던 2000년 화산중은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관내 7개 초등학교 중 6개가 폐교되면서 전교생이 54명으로 줄어든 것. 그해 입학한 학생이 17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때는 전교생이 900명에 달했던 학교가 그 지경이 된 것은 심각한 이농(離農)현상과 그에 따른 농촌인구의 급감 탓이었다.

    이때부터 심 교장은 제2의 개교를 위해 뛰었다. 사재를 털어 현대식 기숙사와 체육관을 짓고 영재교육 프로그램 등 교과과정을 새로 편성해 학교의 경쟁력을 높였다. 외지 학생과 학부모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5년 5월 교육당국은 화산중을 국내 최초의 자율중학교로 지정했다. 이때부터 전국 각지의 우수한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2006년 입학경쟁률이 10대 1에 달했고 학생 수는 300명을 넘어섰다.

    심 교장의 꿈은 영국 지도자의 산실이라는 이튼스쿨처럼 화산중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갈 지도층 인사를 많이 배출하는 것이다. 화산중이 내건 지도자 교육의 3대 요체는 계승, 개혁, 창조다. 매일 새벽 6시면 학교에 나와 밤 12시에 퇴근한다는 심 교장은 화산중 아이들에게 여생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짐승처럼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일찍부터 부모와 떨어져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어릴 때 습관을 어떻게 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영어 단어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생각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아이들은 사랑과 칭찬을 먹고 자라난다. 나는 학생들에게 훈화할 때 늘 ‘화산중학교 지도자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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