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코레일 허준영 사장의 뚝심

“만년적자 철도, 2012년까지 확실한 흑자로 돌리겠다”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9-09-10 17: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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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기업체 CEO 하며 기업 생존논리 배웠다
    • 팀장급 이상 대폭 물갈이, 간부 임금 삭감, 정원 5115명 감축
    • 2012년 매출 5조1000억원, 영업흑자 1100억원 실현 목표
    • 본사·지사 통폐합 따른 대규모 인사태풍 예고
    • 다양한 테마열차 개발로 수익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 지금은 노조가 많은 걸 요구할 때 아니다
    코레일 허준영 사장의 뚝심
    “앞으로 서울-부산 열차의 역무원들이 손님들에게 이런 인사를 하게 될 것이다. ‘소나무 11그루 심으셨습니다.’ 서울서 부산까지 승용차로 가면 탄소 66㎏이 배출된다. 반면 기차로는 11㎏이 발생한다. 55㎏ 차이가 난다. 소나무 한 그루가 1년에 흡수하는 CO2가 5㎏이니, CO2 55㎏이면 소나무 11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한 양이다. 마찬가지로 서울서 대전까지 기차를 타면 소나무 4그루, 대구까지는 8그루를 심는 효과가 난다.”

    귀에 쏙쏙 들어온다. 기차가 왜 친환경적인지 이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임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허준영(57)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철도 전문가 같았다. 취임 당시 ‘낙하산’ 소리를 들어 더욱 열심히 공부했으리라 짐작도 되지만, 하여간 일에 대한 열성과 책임감, 직업의식은 알아줄 만하다. 경찰청장 할 때도 그랬으니까.

    그가 코레일 사장에 취임한 직후 5000여 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을 감축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자의 머릿속엔 그의 뚝심과 우직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허준영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친 자신감으로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쨌거나 그가 취임한 이후 코레일에선 속된 말로 곡소리가 나고 있다. 간부 급여 삭감과 임금피크제 도입, 팀장급 이상 대규모 물갈이 인사에 이어 조만간 전국 지사 통폐합에 따른 또 한 차례의 인사태풍이 예고된 상태다. 아무리 방향이 옳더라도 피곤한 게 개혁이다. 나중의 성과야 어떻든 당장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코레일 직원들은 이번 여름 태평양에서 밀려올 태풍이 한층 실감날 듯싶다.

    “백수생활 그만하라”



    허 사장은 3년 전 경찰청장에서 물러났을 때보다 풍채가 더 좋아 보였다. 짧게 깎아 올린 머리와 안경 너머에서 번뜩이는 작은 눈이 변함없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표정도 한결같다.

    ▼ 여름휴가는 다녀왔나.

    “내가 안 가면 다들 안 갈 것 같아 모범을 보여야겠다 싶어 다음주에 사흘간 잡아놓았다.”

    ▼ 예전엔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이 ‘오 솔레미오’였는데, 지금은 어떤가.

    “휴대전화를 바꾼 다음 아직 노래를 넣지 못했다. ‘오 솔레미오’를 직접 불러 입력할까도 생각하는데, 전화하는 분 귀를 즐겁게 하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 노래를 잘하는 걸로 아는데, 부임 후 직원들 앞에서 노래 부른 적은 없나.

    “9월 창립기념행사 때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유행가 중에서 기차와 관련된 노래를 골라 CD로 만들어 차에 갖다놓고 듣고 있다. 기차 소재 노래가 많더라. 20곡쯤 되는 것 같다. ‘고향역’ ‘남행열차’ ‘차표 한 장’ ‘대전발 0시50분’….”

    외무고시 출신인 허 사장은 외교관을 하다 경찰에 입문해 경찰총수까지 지냈다. 재임 중 경찰 수사권 독립을 공개적으로 추진하면서 검찰과 맞서고 중·하위 경찰관 처우개선을 비롯한 일련의 개혁정책과 소신 인사 등으로 경찰 내에서 큰 지지를 받았다.

    청장 임기는 2년이지만, 그는 1년 만에 퇴진했다. 2005년 11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담을 앞두고 벌어진 농민시위 사망사건 때문이었다. 쌀 개방에 반대하는 시위였는데, 경찰 진압과정에 2명의 농민이 사망했다. 거센 사퇴여론에도 그는 버텼다. 불법시위로 빚어진 일을 두고 경찰총수가 물러나는 건 공권력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경찰청장 임기제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청와대의 직접적인 사퇴 압박에 12월 말 끝내 옷을 벗었다. 그는 지난해 정치권 진출을 꾀했으나 사전선거운동 논란으로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했다.

    ▼ 철도 쪽 일을 하게 될 줄은 생각 못했을 것 같은데.

    “경찰청장에서 퇴임한 후 대기업체 고문 제의를 받았다. 그렇게는 일을 못 배우겠다 싶어 중소기업체 회장으로 10개월 근무했다. 지금보다 월급을 더 받았다. 공직자 이미지가 강해선지 주변에서 내가 취직한 걸 인정해주지 않더라. ‘백수생활 그만하라’며. 공직을 맡아야 일하는 걸로 인정하는 거다. 15만 경찰의 리더를 하다가 작은 기업체 회장을 해보니 차이점이 하나 있더라. 똑같이 경영자이지만 경찰청장 할 때는 경찰관들 월급 주는 걸 걱정하지 않았는데, 기업체는 월급 주는 게 오너의 큰 고충이더라. 피 말리는 일이었다. 공직에 있을 때 국민에게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일생의 목표인 경찰청장을 지냈기에 이제는 사회 환원 차원에서 국가와 국민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철도가 국가 기간산업인 만큼 외교와 치안 경력을 살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들과 철도 협력을 하는 데 외교관 경력이 도움이 된다. 내가 외무부에서 일할 때 알던 사람들이 지금 전세계 대사로 뛰고 있다. 경찰 경력도 마찬가지다. 테마여행이나 역세권 개발 등은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필요하다. 전국 각지의 경찰서장들이 나를 만나면 반가워한다. 이를 통해 지자체와의 협조도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아주 신명이 난다. 코레일은 큰 조직이고 전국조직이라는 점, 그리고 휴일근무와 야간근무를 한다는 점에서 경찰과 비슷하다. 안전에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똑같다. 다만 철도는 공익성 못지않게 수익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사기업체 CEO를 하면서 기업의 생존논리를 배웠다.”

    코레일 허준영 사장의 뚝심

    개통 2주년을 맞은 동해안 바다열차. 한국관광공사의 ‘여름휴가 추천상품 베스트12’에 선정됐다.

    공기업 윤리·투명경영 평가 1위

    허 사장 취임 후 코레일은 지사장급 45%, 팀장급 53%를 교체하고 보직 이동을 시켰다. 아울러 공기업 중 최대 규모인 5115명 정원 감축 계획을 확정했다. 또한 2급 이상 간부 임금 반납과 임금피크제, 연가 사용 촉진제를 도입했고, 9개 계열사를 5개로 단순화했다. 그 덕분인지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정부 공기업 경영평가 ‘윤리·투명경영 부문’에서 코레일은 A등급을 획득해 14개 평가기관 중 1위를 차지했다.

    ▼ 철도의 여객수송 분담률과 화물수송 분담률을 2~3년 안에 각각 7.8%에서 20%, 6.2%에서 15%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실현 가능한지 의심스럽다.

    “목표는 높게 잡을수록 좋다. 8월3일 ‘세계 1등 국민철도’ 비전과 ‘녹색철도 성장전략’을 발표하면서 구체적 실행계획을 밝혔으며, 이러한 자구노력과 더불어 정부의 철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전국 지자체와 함께 용산역이나 서울역 등 역세권과 민자역사를 개발하고, 지역별 테마여행열차를 꾸준히 개발해나갈 것이다.

    KTX가 올해 4월1일로 개통 5주년을 맞았다. 코레일은 향후 열차운행체계를 KTX 중심으로 구축할 방침이다. KTX 운행 횟수도 현재 1일 181회에서 2011년까지 약 300회로 늘릴 계획이다. 개통 5년 만에 1억7000여만명이 KTX를 이용했고, 최근 경기침체 여파로 주춤하고는 있지만 1일 평균이용객이 10만5000여 명에 달한다. 이제 KTX는 대표적인 국민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철도의 미래는 물류다. 국가적으로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국내 대기업과의 저탄소 녹색마일리지 협약 체결과 정부 조달물자·국방물자 등의 철도 수송을 추진하고 있으며, 에코레일 인증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특히 거점 간 단순이동물류에 머물지 않고 제3자 물류·보관·유통 등 사업다각화에 나설 계획이다.”

    ▼ 1961년 53%였던 철도의 여객수송 분담률이 7.8%로, 88%였던 화물수송 분담률이 6.2%로 떨어진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수십 년간 철도에 대한 투자가 미미했다. 과거 SOC(사회간접자본) 투자정책은 철저히 도로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61년 대비 도로 인프라는 4배 증가한 반면 철도는 1.1배에 그쳤다. 최근 선진국들의 철도 투자는 도로 투자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다. 8월3일 비전 선포식과 더불어 녹색철도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모든 역량을 가동해 2012년까지 여객은 20%, 화물은 15%까지 끌어올리도록 할 생각이다.”

    코레일 허준영 사장의 뚝심

    7월11일 코레일은 서울-영동을 오가는 와인트레인에 외신기자단과 가족들을 초청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담소하는 허준영 사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 승객이 가장 불편해하는 점이 뭐라 생각하나.

    “온라인 홈티켓 발권과 모바일 승차권 발매로 역 창구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크게 줄이는 등 고객서비스는 향상되었지만, 철도를 이용하기 위해 자택에서 철도역까지 가는 접근성 문제, 즉 연계·환승 인프라는 아직 크게 부족하다고 본다. 앞으로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과의 환승 문제와 자가용 이용 고객의 주차 문제 등을 ‘door-to-door’ 개념으로 접근해 불편을 최소화하겠다.”

    KTX-2에는 역방향 좌석 없어

    ▼ KTX의 경우 처음 설계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지 않나. 단기적 이익만 생각해 장기적 이익에 직결되는 승객 서비스를 소홀히 한 게 아닌가.

    “KTX 도입 초기 역방향 좌석에 거부감이 있었고, 불편과 어지럼증, 비좁은 좌석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는 승객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2005년 한국철도공사가 ‘역방향 좌석이 인체와 승차감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역방향 좌석은 승차감·고객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승차감에 대한 피로도·멀미감은 승객의 선호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탑승 방향보다는 좌석 자체의 안락감이나 서비스 만족도 개선이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 고속철도 사례를 보더라도 대부분 회전식 좌석이어서 역방향 좌석이 없는 일본을 빼고는 독일의 ICE나 우리가 도입한 프랑스의 TGV·AVE는 고정식 좌석으로 역방향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이 없다. 프랑스의 경우 승객들이 오히려 역방향을 선호한다고 한다. 경치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산책할 때 뒤로 걸으면 소뇌가 발달하듯 역방향이 몸에 더 좋을 수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데이터가 나오면 (역방향 좌석에) 가격을 더 붙여야 할 것이다.(웃음) 우리 국민은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에 익숙해 있고 정서적으로 역방향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 따라서 올 하반기 호남선에 도입할 KTX-2는 전 좌석을 회전식으로 만들어 역방향을 없앴다. 현재 운용되는 KTX는 20량 1편성으로 935명의 승객을 실어 나른다. 하지만 새로 나올 KTX-2는 10량 1편성으로 필요에 따라 객차를 늘리고 붙일 수 있다.”

    수익성 낮고 규모 작은 지사부터

    ▼ 역방향보다도 좌석이 좁은 게 더 큰 문제 아닌가. 차라리 무궁화(열차)가 더 안락하다는 사람도 있더라.

    “KTX-2는 좌석 간격이 5㎝ 늘어난다. 가족실, 스낵바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다.”

    ▼ 기차에서 파는 도시락을 먹어봤나.

    “내가 식도락가이지 않은가. 문제가 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잖아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위생검사에 걸려 지금은 팔지 않는다.”

    ▼ 특정업체의 장기독점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알고 있다. 이번에 철저한 경쟁을 붙여 맛 좋고 질 높은 음식을 제공하는 업체를 선정할 것이다.”

    코레일 허준영 사장의 뚝심

    “‘세계 1등 국민철도’가 꿈만이 아니다”라고 역설하는 허준영 사장.

    허 사장이 제시한 코레일의 비전은 ‘세계 1등 국민철도’다. 철도 얘기만으로 한나절을 보내도 지치지 않을 것 같은 표정으로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나라는 세계 5번째로 고속철을 도입한 나라다. 철도 운용 경력이 110년이다. 그만큼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TKR(한반도 종단철도)이 설치되면 서울역이나 부산역이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의 시발·종착역이 될 거다. TSR(시베리아 횡단철도), TCR(중국 횡단철도), TMR(만주횡단철도), TMCR(몽골 횡단철도)과의 연결이 가능해진다. 동북아 물류가 전세계 물류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1등철도가 꿈만은 아닌 것이다. 국내선 비행기는 경쟁력을 잃었고 도로는 포화상태이고 매연 피해가 심각하다. 여객과 화물의 철도수송 분담률을 크게 높여 수송뿐 아니라 오락과 교양, 휴식, 독서 등 다른 수송수단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냉장·냉동칸을 설치해 물류 기능을 강화할 것이다. 아울러 글로벌 비즈니스도 적극 개발할 계획이다.”

    코레일은 8월3일 ‘비전 선포식’과 ‘녹색철도 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철저한 성장 위주의 조직운영으로 경영수지를 개선하고 녹색철도로 거듭나기 위해 환경경영팀을 강화하고 녹색물류팀을 신설해 저탄소 녹색마일리지와 물류 인프라 조성을 활성화한다는 게 요지. 이날 허 사장은 서울역에서 고객 대표와 함께 ‘고객신뢰 선언문’을 발표하고 ‘고객과의 소통을 위한 벽 허물기’라는 뜻에서 자동개집표기를 철거하는 행사를 가졌다.

    모름지기 코레일 직원들의 피부에 와 닿은 것은 ‘2012년 매출 5조1000억원, 영업흑자 1100억원 실현’이라는 거창한 목표보다 녹색성장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본사 및 지사조직을 통폐합하고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한다는 구체적 실천방안이었으리라. 한마디로 구조조정하겠다는 얘기니까. 허 사장은 조직개편에 대한 강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옛날엔 지방철도청이 5개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사가 17개다. 너무 방만하다. 운영비용도 많이 들고. 철도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인사는 더디고 제한돼 있다. 17개 지사를 12개로 통폐합한다. 수익성이 낮고 규모가 작은 지사부터 통폐합할 것이다. 단 광역시를 포함한 도 단위에 한 개 이상의 지사를 유지할 것이다. 지사는 지역본부로 개칭된다. 아울러 철도 업무가 경부축 선상에 편중된 현상을 개선할 것이다. 이는 국가시책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정원감축은 강제퇴직 아니다”

    ▼ 매년 수천억원 적자를 낸다는데, 경영사정이 어떤가.

    “매년 약 60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금액이 우리가 정부에 지급하는 연간 선로 사용료와 일치한다. 세계적으로 이토록 많은 사용료를 내는 철도공사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용역조사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1700억원은 감면해야 한다. 사실 철도청 시절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정부 예산이 뒷받침됐으니까. 그리고 PSO(Public Service Obligation·공공서비스의무) 부담 비용으로 연간 3500억원이 든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2700억원만 지원하고 있다. 벽지노선의 경우 수익성을 생각하면 폐지해야 하는데 공익성 때문에 유지하고 있다. 어쨌든 이와 별개로 여객과 화물 수송분담률을 높여 수익을 내겠다. 또 용산역세권 개발 이익도 기대하고 있다.”

    ▼ 영업 자체로는 흑자라는 얘기인가.

    “KTX는 흑자, 다른 기차는 적자다.”

    ▼ 만약 선로 사용료를 감면받는다면 굳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없지 않나.

    “매출액 대비 인건비가 57%다. 사기업은 40%가 넘으면 망한다고 한다.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철도가 다른 분야에 비해 인건비 비중이 높은 건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높다. 요금이 외국에 비해 싼 것도 문제다. 최소한 10%는 인상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 5115명 정원 감축을 결정했다. 인원절감은 최후의 수단 아닌가.

    “코레일 연간 매출액이 4조원인데 인건비가 2조5000억원이다. 물론 인건비에 복지후생비가 포함돼 있지만 민간기업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계획에 따라 우리 공사는 2010년까지 영업적자를 현재의 50% 수준으로 축소해야 하고, 2012년까지 흑자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12년까지 5115명의 정원 감축이 불가피한 이유다. 그러나 현원(現員)을 감축하거나 강제퇴직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인 인원 감축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 현원 감축이 아니라니,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지금 일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내보내는 게 아니다.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감소와 신규사업 인력 재배치로 해결될 문제다. 다만 줄어든 인원만큼 신규 인력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노조가 파업으로 맞서고 있지 않나.

    “파업이 아니라 태업이다. 노조는 식당 아웃소싱과 조직 슬림화에 반대한다. 노조의 이해관계와 안 맞기 때문이다. 또 해고자 복직을 요구한다. 열차시간을 5분, 10분 늦추면서 준법투쟁이라고 주장하는데, 용어가 잘못됐다. 법을 빙자한 빙법(憑法)태업이다.”

    ▼ 해고자 복직요구는 들어줄 것인가.

    “다 사유가 있으니 해고된 것 아니겠나. 이런 문제는 원칙에 맞게 처리해나갈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노조를 의식한 듯 “내가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노조관을 가진 사람”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보다 월급 많은 노조원이 수두룩하다. 노조의 기여도와 역할을 인정하지만 지나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 와보니 공무원보다 복지가 잘돼 있더라. 지금은 노조가 많은 걸 요구할 때가 아니다.”

    코레일 허준영 사장의 뚝심

    6월22~23일 충남 아산 도고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코레일 ‘주니어 보드 전략캠프 워크숍’. 주니어보드는 40세 이하 직원들로 구성된 코레일 청년이사회다. 허 사장은 CEO특강을 하고 직원들과 만찬 및 간담회를 가졌다.

    부산발 KTX 막차 시간 늦춰

    ▼ 허 사장 취임 이후 실시된 지분 매각, 간부 급여 삭감, 임금피크제 도입, 지사장·팀장급 대규모 인사, 특별기동감찰 등을 보면 군사작전이나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을 보는 것 같다. 뭐든지 서두르면 실수나 부작용이 있게 마련인데.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고, 이사회를 통한 충분한 의견 개진과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다. 공기업 선진화는 비단 철도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공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공기업 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수준도 매우 높다. 외부의 압력에 굴복해 마지못해 하는 개혁은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고, 내부 직원들로부터도 외면받을 것이다.”

    ▼ 노조의 반발이 불가피해 보인다. 어떤 복안을 갖고 있나.

    “세계는 저탄소 사회로 전환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전략으로 삼으면서 친환경 교통수단인 철도가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은 초긴축 경영을 하지 않으면 구성원 전체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노경(勞經)이 서로 반목한다면 철도뿐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노경이 협력하지 않으면 ‘만년 적자 코레일’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철도 투자가 확대되고 있고, 우리 정부도 최근 철도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 지금이 적기다. 노조와 경영자, 우리의 고객인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윈윈윈(win-win-win) 전략이 필요하다. 다양한 대화채널을 통해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나 원칙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나 불법·부당한 행위와는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허 사장은 “구석구석은 몰라도 맥을 짚는 정도는 돼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디어맨’으로 알려져 있다. 5개월 동안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실천에 옮겼다.

    대표적으로 부산발 KTX 막차 시간 연장을 꼽을 수 있다. 부산에서 업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기에 막차 시간이 촉박하다는 한 승객의 의견을 허 사장이 직접 듣고는 KTX 막차 시간을 9시25분에서 10시5분으로 40분 늦춘 것이다. 승객의 반응이 좋아 코레일은 연간 35억원의 추가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축구선수 안정환을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안정환씨의 이름은 ‘안전’하고 ‘정확’하고, ‘환경친화적’이라는 철도공사의 지향점을 나타낸다.

    그 밖에 허 사장 취임 이후 코레일이 내놓은 상품은 다양하다. 주말부부를 위해 부산에서 월요일 새벽 4시30분에 출발하는 KTX가 신설됐다. 여객운송 약관도 고객 중심으로 바꾸었다. 웰빙열차 ‘누리로’, 자전거 테마 전용열차, 팔도장터 농심 체험 열차, 와인인삼 열차 등 다양한 테마열차를 개발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한편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기차와 배를 연계한 제주여행상품도 개발했다.

    코레일 허준영 사장의 뚝심

    허준영 사장은 8월3일 오전 서울역에서 고객 대표와 함께 ‘고객신뢰선언문’을 발표하고 ‘고객과의 소통과 신뢰를 위한 벽 허물기’ 일환으로 자동개집표기 철거 행사를 가졌다.

    허 사장은 이명박 정권의 주류 집단이라는 TK 출신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를 졸업했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이기도 하다.

    ▼ 취임 당시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허 사장의 싸이월드 글을 보니, “낙하산 인사라는 말은 가당치 않고 ‘우산 인사’라고 불러달라”고 했더라. 취임 5개월이 지난 지금 코레일 직원들의 마음속으로 얼마나 들어갔다고 생각하나. 직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

    “부임과 동시에 각종 비바람을 막는 우산 노릇을 자처했기에 ‘우산 인사’라고 불러주길 바랐다.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대규모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틈나는 대로 직원들과 식사미팅을 하고, 수시로 현장을 방문한다. 또 일일업무보고 체계를 구축해 전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조직의 리더는 직원들을 격려해야 하고 고객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려고 한다. 또 큰 소리로 직원들을 칭찬하기를 즐긴다. 스킨십도 많이 한다. 직원들과 반갑게 악수하고 함께 밥 먹고, 길흉사에 꼭 참석한다. 철도의 특성상 사건사고가 많은데, 사고 현장을 꼭 방문한다. 서울역이나 대전역, 지사를 방문할 때마다 예외없이 직원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하고 격려한다. 취임 직후 시작한 직원들과의 식사미팅도 계속하고 있다.”

    ‘낙하산’ 대신 ‘우산’으로

    그는 유머를 아는 사람이다. 3월19일 그가 취임하던 날 대전역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코레일 노조원 100여 명은 ‘낙하산 인사에 반대한다’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워낙 시위가 격렬해 그는 대전역에서 두 시간 동안 발이 묶였다. 그 바람에 취임식도 늦어졌다.

    “그런 일이 있을까봐 기차 타고 가는 걸 주변사람들이 만류했는데, 내가 밀고 나갔다. 그날 기자들이 내게 ‘기차 타고 오느라 고생했다’고 하기에 ‘이럴 줄 알았다면 낙하산 타고 올 걸 그랬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날 기자들 앞에서 ‘허철도’라는 유머러스한 표현을 쓰면서 철도업무에 대한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나는 철도기관사로 온 게 아니다. 나는 리더십 전문가다. 지금까지 누구 못지않게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내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경륜을 쌓아왔다. 앞으로는 ‘낙하산’이라 하지 말고 ‘우산’이라고 불러달라. 이름도 ‘허철도’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겠다.”

    유도 유단자인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스케이트, 스키를 잘 타고 특히 육상을 잘한다. 2002년 중앙경찰학교장(치안감)으로 근무할 때는 충주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해 풀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일선 경찰서장 시절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직원들과 함께 10㎞씩 조깅을 하면서 친밀감을 쌓았다. 요즘은 시간이 아까워 집에서 러닝머신을 이용해 30분간 달린다고 한다.

    “정치인 꿈은 포기했느냐”는 질문에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경찰청장에서 물러난 후 정치권에 진출하려 했던 이유는 조 기자도 잘 알지 않나. 임기제 경찰청장을 내쫓는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철도에 전념할 뿐이다.”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 그가 만년적자에 허덕이는 철도를 얼마나 지혜롭게 살려낼지 궁금하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경영자가 조직논리에 함몰되고 업무실적에 집착하다보면 정작 그 모든 것의 원동력인 사람의 가치를 경시할 수 있다. 그가 이끄는 코레일이 화합의 개혁을 이뤄내길 바란다. 그의 장점인 유머감각,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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