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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고미영의 동반자 김재수 산악 대장

“미영씨가 힘들어할 때 업고라도 하산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고미영의 동반자 김재수 산악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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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영의 동반자 김재수 산악 대장

고미영씨는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 등정을 목표로 했다. 김 대장은 고씨가 오른 11개 봉우리 중 10개 봉우리를 2년 반 동안 함께 올랐다.

▼ 왜 후배를 보내셨습니까.

“한국 산악계를 위해서는 이런 등반을 할 수 있는 후배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일(로프)의 정’이란 노래도 있듯이 우리는 로프라는 핏줄로 맺어진 형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형제보다 더 애틋한 사이입니다. 누군가 묶은 그 로프를 함께 잡고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 그때도 비용을 대셨나요?

“당연하죠. 만약 후배가 냈다, 그럼 ‘빳따’(몽둥이) 맞을 짓입니다. 선배가 아무리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선배는 선배입니다. 제가 어릴 때 주위에 많은 선배 분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재정적으로 여유 있지는 않았죠. 조선소에서 용접하는 사람, 막일하는 사람, 조그마한 중소기업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선배님들과 산에 갔다 오면 뒤풀이를 해주시는데, 없는 돈으로 튀김 1000원어치에 소주 한 병을 선뜻선뜻 사주셨어요. 오비베어 같은 데 가서 (맥주) 500cc 한 잔이랑 닭튀김도 사주시고, 가는 길에 택시 타라며 1000원 2000원 손에 쥐여 주셨죠. 제게는 그게 지금의 1억, 2억원보다 가치 있습니다. 그분들께 받은 거 후배들한테 돌려줘야죠.”

▼ 은혜는 도움 준 선배한테 갚아야지 왜 후배들에게 갚습니까.



“도와준 선배님이 무수히 계신데, 부자 된 사람이 사회에 환원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가난해도 되돌려줄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후배를 아는 사람이죠.”

▼ 선배들이 도와주셨다는 게 뭔지….

“…그분들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까. 열악한 환경에서 등반 루트를 만들고, 산길을 만들고, 자료로 지도를 만들고. 그 기록이 있어서 우리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요.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있는 겁니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다 대물림이거든요. 대한산악연맹의 지원으로 내가 얻은 명예를 후배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비 2억원을 들여 2007년에 에베레스트원정대를 꾸렸습니다. 후배들에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는 명예를 주면, 등정을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에베레스트나 K2는 누구나 아니까 거기 올랐다 하면 인정해주죠. 원정대 20명 중 10명이 등정했습니다. 히말라야 후배를 9명 기른 겁니다. 2008년 K2에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고. 내려오다 추락사한… 후배 세 명과 고미영, 나 이렇게 다섯이 정상에 올라갔습니다.”

▼ 대장님의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가고 싶은 산에 시간 내서 간다는 거였어요. 직업도 있고 가정도 있으니까 욕심내기가 어려웠죠. 고미영씨 만나기 전에 8000m급 봉우리 4개를 등정했고, 60세 되면 8000m 14개를 다 오르지 않겠느냐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제 얘기만 하는 거 아닌가요?”

▼ 이제 고미영씨 얘기를 하겠습니다. 두 분이 연인 관계였다는 소문이 있던데.

“소문 안 나면 제가 병신이라고 했잖아요. 연인을 뛰어넘은 관계였던 건 맞습니다. 나보다 나은 산악인도 많은데 그중에 나를 믿고 인정해준 사람인데, 어떻게 애틋하지 않겠어요. 미영씨가 힘들어할 때, 걷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업고라도 하산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1993년 에베레스트 등반하던 외국 산악인도 같이 온 사람을 살리다 죽었는데, 나를 믿어주는 동료를 위해서 내가 왜 못 죽습니까. 남자들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까. 다 손가락질해도 누군가 나를 믿어주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개를 다 오르고 나서 결혼식을 올릴 거라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그렇게 보도한 언론사한테 사과, 다 받았습니다. 사실이 아니에요. 저도 아내와 헤어진 사람이라 문제될 건 없어요. 미영씨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3년간 그렇게 붙어 있어도 이런 감정은 서로 얘기해보질 않았어요. 미영씨가 외향적이지만 진정으로 속마음을 얘기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내한테는 이것저것 많이 얘기했죠. 당뇨로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 산에서 만났지만 경제 문제로 이혼한 남편 얘기, 앞으로 만들고 싶은 등반학교 얘기…. 제가 미영씨네 집으로 상견례 갔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김장할 일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갔던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미영씨 모친이 그러시더라고요. 작년 여름에 와서 좋은 사람이 있다고 그랬다고…. 사람들이 저보러 자기 살 궁리하려 빠진다고 하지만 이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연인이다 아니다 부정하기 어렵죠. 말이 오가는 과정에 가족들은 상처 받겠지만….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관계가 발전할 수도 있었으니 부정할 수만도 없습니다.”

▼ 생전에 고미영씨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당찬 사람이었어요. 집요하게 전화해서 다 꾸려진 에베레스트원정대에 참여하겠다고 하고, 내려와서는 히말라야 14좌 목록이 적힌 종이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자기 목표라고 도와달라고 하고. 제가 머뭇거리니까 국제전화로 회사에 전화해 김재수 대장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러고, 많습니다. 자기가 목표 세웠다 하면 자기 혼자만 아는 게 아니라 만나는 사람에게 다 얘기하고, 낯선 사람에게도 계획표에 사인하곤 ‘제 계획이 이렇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이 산에 두 번 오기 싫다고, 목표지점까지 한 번에 가겠다고 당차게 웃는 그런 산악인이었습니다. 이런 후배를 키우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매니저가 되었고요. 삼겹살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구운 돼지고기를 못 먹는데, 미영씨는 점심때고 저녁때고 구워 먹었어요. 과일캔도 좋아하고, 구운 오징어는 한 마리씩 가지고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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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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