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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좌파논리로 우파정책에 반기 든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윤증현 식으로 영리병원 허용하면 정권에 혼란 온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좌파논리로 우파정책에 반기 든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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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논리로 우파정책에 반기 든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지난해 11월26일 국회에서 열린 쌀직불금국정조사에 참석한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오른쪽).

▼ 그렇군요.

“안기부에서 가장 많이 일했습니다. 기획판단국장 때 일입니다. 국장 앞으로 하루 2000건 넘는 첩보가 올라와요. 과장들도 자기 과가 생산한 첩보를 다 읽지 않습니다. 계장이 추려준 것만 훑어보죠. 저는 날마다 2000건을 다 읽었습니다. 그래서 문철만 보면 그 안에 어떤 정보가 담겼는지 다 압니다. 직원들이 놀라죠. 겁을 내고요. 글을 딱 읽어보면, 아~ 이 놈은 사우나 하다가 4시쯤 돼서 어디서 보고 베꼈구나 다 알죠.”

▼ 신문 몇 개 겹쳐서….

“이건 신문 몇 개로 짜깁기한 거구나, 아, 이건 고민하고 쓴 진짜 첩보구나, 읽어보면 곧바로 드러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와서도 건강보험에 관련한 모든 책자를 다 구해서 읽었어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의료개혁 방안이 담긴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도 모조리 읽었습니다. 아, 저 사람이 알고 지시하는 거구나, 나보다 더 알고 있구나, 이런 것이 리더로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리더가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열심히 안 하면 누가 따르겠습니까?”

“모조리 읽었다”



그가 배석한 직원에게 “책자 하나 좀 가져와봐”라고 말했다. 직원이 가져온 책은 두툼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개혁과 관련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부임 후 한동안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들여다보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의료정책을 다룬 책과 보고서를 섭렵했다. 좌파 성향의 책, 보고서도 탐독했다고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사, 치과의사, 약사, 교수를 상대합니다. 그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많이 알아야 해요.”

그는 오바마식 의료개혁의 이데올로그(ideologues) 격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의견을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크루그먼은 부시 정권과 보수주의자를 향한 공격수로 잘 알려진 진보주의 학자죠. 미국은 극소수의 억만장자가 과거보다 더 많아져 평균소득이 올라갔을 뿐이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되레 심화해 골고루 잘 살지 못한다는 게 그의 분석입니다. 그는 저서 ‘미래를 말하다’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재정·금융정책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전 국민 의료보험 보장을 비롯해 사회복지 정책을 확대하고 임금 인상을 통해 노동자의 구매력을 높이는 게 긴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미래의 이상적 국가는 중산층이 중심인 사회로 그런 국가를 만들려면 사회안전망을 넓히고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으라고 요구합니다. 그는 선진국 중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없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크루그먼이 주장하는 정책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을 통합하면서 취약계층 소외계층을 돌보는 게 국가의 기능입니다. 패자가 승자로 부활하게끔 도와줘야죠. 이것이 사회보장제도의 궁극적 목표, 신성한 가치라고 여깁니다. 서민이 돈이 없어서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게끔 보살피는 게 건강보험의 구실입니다. 사회보장제도는 국가의 밑바탕이에요.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제가 있기에 우리가 지금 경제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것입니다.”

주홍글씨

▼ 그런데 첫 번째 좌절은 뭐였나요?

“1995년 난생 처음으로 참담한 좌절을 맛봤어요. 김영삼(YS) 대통령 때인데 제가 여러 가지를 살펴보니까 좁은 국토에서 시·구의원까지 선거로 뽑으면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방자치제도 실시와 관련해 여론조사를 해보라고 각 지부에 문건으로 지시했는데 어느 지부에서 그 문건을 김대중 총재 측에 넘겼어요. 그걸 ‘동아일보’가 톱으로 보도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별일도 아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도덕 기준이 굉장히 높은 어른입니다. 기사를 보고는 노발대발해서 누가 이걸 했느냐, 그 사람 구속하라고 역정을 냈습니다.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했다. 다른 사람은 책임이 없다’면서 사표를 썼습니다. 원래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옮기기로 돼 있었는데….”

그는 1995년 권노갑 당시 의원이 안기부가 작성한 지방자치제도 연기 문건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면서 안기부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안기부의 2인자인 국내담당이던 그가 야당의 폭로로 일격을 맞은 것이다. 그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인 걸 YS가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4개월 뒤 김영삼 대통령이 선거에 나가라고 말씀하더군요. 그렇게 정치판에 입문한 겁니다.”

시국사건의 핵심에서 활약한 안기부 경력은 ‘정치인 정형근’에겐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용공조작, 정치공작이란 말이 이름 석자 뒤에 따라붙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승리한 뒤 그는 수난기를 보낸다.

“과거의 간첩사건 중엔 문제가 있는 것도 있겠죠. 북한이 우리의 모가지를 베어가고, 간첩을 남파하고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을 지금 잣대로 재단하는 건 잘못입니다. 그건 안 되는 거죠. 지금 잣대로 6·25 직후의 사건을 들여다보면 거의 모두가 무죄거나 잘못된 판결일 겁니다.”

김대중 정부 때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은 ‘정형근 파일’을 언론에 흘렸다. ▲1992년 홍사덕 후보 비방 흑색 유인물 살포사건 ▲서경원 간첩사건 수사 및 가혹행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그가 연루됐다는 거였다. 정형근 파일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고, ‘의혹’ ‘시비’로만 역사에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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