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4대江을 어찌할꼬

  • 입력2009-09-11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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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가을, 막히고 덮였던 청계천이 열리고 새 물이 흘렀을 때 이명박 서울시장은 그의 ‘야망의 계절’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음을 직감했을지 모른다. 2년 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청계천이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청계천이 없었다면 그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는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를 만들고 뱃길을 연다면, 그것을 어찌 청계천의 업적에 비하겠는가. 대통령은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니 사업추진에도 별 어려움은 없지 않겠는가. 대통령은 아마 그렇게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운하 구상은 펼쳐보기도 전에 접어야 했다. 정부 출범 초 몰아닥친 ‘촛불’ 앞에서 대통령은 “대운하사업은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대운하가 물러선 자리에 ‘4대강 살리기’가 들어섰다.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목표는 미래의 자원인 물을 확보하고, 홍수를 예방하며,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며, 이 사업을 통해 34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약 40조원의 생산유발효과로 실물경기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뉴딜사업’이란 근사한 이름도 붙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정부의 말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떡하든 대운하를 만들려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결국 지난 6월말 대통령이 직접 “(대운하사업은) 내 임기 내에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한 뒤에야 의심은 수그러들었다.

    의심이 수그러들었다지만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믿음에는 변화가 없다”는 대통령의 미련과 맞물려 있다. 무엇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토록 대운하에 집착하게 한 것일까? 그것을 설명해줄 객관적인 자료나 증거는 없다. 다만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를 자신의 치적으로 남기고 싶어 했으리란 추측은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치적에 대한 미련을 얘기할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4대강 살리기 자체가 자칫 계륵으로 변할지도 모를 처지이니까 말이다. 그 첫째 이유는 여당 내에서 터져 나온 이른바 ‘4대강 블랙홀 논란’이다.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내년도 4대강 살리기 관련 예산을 올해의 8배 수준인 6조2000억원으로 올리는 바람에 지역에 필요한 예산이 제대로 편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조원을 들인 인천지역 산업단지의 경우, 1300여 업체가 입주를 기다리고 있으나, 폐수종말처리장 예산 95억원이 편성되지 않아 단지 전체의 가동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환경부 쪽에 문의해보니 4대강 지역 폐수처리장 시설에 예산이 집중돼 다른 쪽에 예산을 배정하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이경재 의원), “지역마다 비슷한 문제들이 앞으로 예산편성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불거질 것이다.”(남경필 의원), “4대강 사업 때문에 사회간접자본(SOC)사업, 복지예산 편성에 차질이 온다고 하는데 신규 소요(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에 필요한 정부예산 1조9000억원)가 또 생기면 정부재정에 얼마나 많은 부담이 가겠느냐”(허태열 최고위원) 등의 발언이 그것이다. 8월7일에 열린 당정협의에서 토론자로 나선 한나라당 의원 16명은 한목소리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다른 복지예산, SOC예산을 빼앗는다. 2012년까지 총 3년의 사업기간 중 초기 1,2년에 집중되어 있는 예산을 연도별로 골고루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SOC예산은 평년수준으로 유지하고, 복지예산도 가급적 줄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민주당 최영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163만2000명인 기초생활급여대상자를 내년에 162만5000명으로 7000명 줄이기로 했다. 정부 측은 기초생활급여대상자를 줄인 것이 아니라 급여대상자 수가 줄어든 것이라고 하지만, 경제 위기로 극빈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에 비추어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얘기다.

    여당 내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험담’이 쏟아지자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여당과 정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한구 의원은 “이거는 내 정권하에서 결정된 거니가 괜히 시비 붙지 마라? 확정됐으니 그대로 가야 된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MBC 뉴스데스크)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을 지낸 이 의원은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등은 재정사정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을 때 나온 계획으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역구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내려는 의원들의 주장을 모두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권이 ‘4대강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사설조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소리가 될 법하다.

    “돈 쓸 곳은 많은데 곳간은 비어있고, 세입은 줄어드는데 감세정책을 되돌릴 수도 없고, 다른 예산 잡아먹는 4대강을 어찌할꼬. 민생 복지 예산 줄어들면 대통령의 중도, 친(親)서민은 뭐가 되고, 내년 지방선거는 어찌될꼬.”

    4대강 살리기가 계륵이 될 수 있는 둘째 이유는 과연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데 있다. 8월6일 한국수자원학회가 개최한 ‘제1회 4대강 살리기 콘퍼런스’에서 다수의 전문가는 이 사업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심순보 수자원학회 고문은 “보와 대규모 준설은 주운(舟運) 목적이 아니면 그 가치를 인정할 만한 객관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낙동강의 8개 보(洑)는 주운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병호 고문도 “정부가 낙동강 수심을 6m로 유지하는 목적을 솔직히 밝히지 않고 있다. 주운이 아니면 하라고 권고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계획이라면 차라리 운하를 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박재현 인제대 토목공학과 부교수 또한 “수질을 악화시키는 보를 낙동강에만 8개 설치하는데 여기에 갑문만 달면 운하가 된다”고 주장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홍수 피해가 지방 중소 하천에 집중돼 있는데 4대강에 보를 설치해 홍수를 방어한다는 논리는 억지춘향식이다. 지류 문제는 지류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통계에 따르면 4대강 등 국가하천 정비율은 97%가 완료된 반면, 소하천은 38% 완료에 불과하다.

    이상훈 수원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보를 설치하면 저수량이 늘고 용존산소공급이 느려져 조류발생 위험이 커진다. 보 건설로 악화된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3조40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것은 2중 예산 낭비며, 병 주고 약 주는 정책이다”라고 말했다. 김승 ‘수자원의 지속적 확보 기술개발사업단’ 단장은 “7개 부처가 참여하는 엄청난 사업이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기술적 검토, 경제성 분석 등 사업의 타당성을 논의할 수 있는 완성된 계획을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김영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이 기술의 불확실성에 더해지면 사업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준설과 보가 수질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으니 한꺼번에 추진하지 말고 하나씩 추진하며 시행착오를 거치는 적응형으로 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동진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위원도 “외국이라면 계획에만도 몇 년이 걸린다. 묶음으로 모든 사업을 한꺼번에 추진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모아 추진하면서 불확실성과 오류 가능성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석 서울여대 환경생명과학부 교수는 “하천의 직선화는 복원이 아니며 자연친화적인 시설이 하천을 살리는 것이다. 인공 트랙 등으로 동식물의 이동공간을 뺏는 방식이 아니라 하천과 주변 생태계가 친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완전히 죽었던 태화강을 준설 등 친환경적으로 정비해 생명력이 넘치는 울산의 보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다수 전문가는 4대강 사업이 보 건설 중심인 데 반해 태화강은 하류에 설치되어 있던 수중보를 철거해 수질 악화를 방지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4대강 사업을 통해 3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경실련 윤순철 시민감시국장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조사결과 불법체류 외국인의 72.8%가 건설현장에 투입되고,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도 건설업을 창출한 일자리의 68.5%가 단순 노무직이었다. 4대강 사업이 국가경제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4대강 사업으로 국가재정 사정이 악화될 게 빤하다면서 “한정된 자원으로 할 때에는 국가경쟁력을 올리는 산업투자나 다른 재정투자가 우선순위가 되어야지 SOC사업을 서둘러서 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비판은 더욱 신랄하다. “4대강 정비사업은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지도 않거니와 실제로 환경을 보존하지 않는 개발형사업으로 미래를 내다본 국가과제가 될 수 없고, 우선순위에서도 시급히 추진해야 할 내용이 아닌 것에 30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 붓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4대江을 어찌할꼬
    전진우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물론 4대강 정비는 필요하다. 홍수도 방지해야 하고 수질도 개선해야 한다.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강을 결코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대통령의 의지도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의 성공여부가 정권 재창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업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내용을 공개석상에서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한나라당 김성조 정책위의장)는 식으로 비판을 봉쇄하고 밀어붙이는 자세는 옳지 않다. 대통령의 말대로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강’은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이자 후손에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무엇보다 국가재정 악화를 무릅쓰고 22조2000억원이란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는 거대한 국책사업을 3년이란 짧은 시간 내에 끝내려고 서두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과연 4대강 사업을 대통령 임기 안에 마쳐야만 대통령의 치적이 된다는 것인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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