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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의 Face to Face ⑧

‘투사본색’ 이재오 의 직격탄

“국민에게 희망 주려면 현 한나라당 지도부 물러나야”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투사본색’ 이재오 의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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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본색’ 이재오 의 직격탄

2007년 8월13일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찰의 도곡동 땅 관련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 항의하러 대검찰청을 찾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정문 앞에서 비를 맞으며 농성하고 있다. 우산 아래 가운데 있는 사람이 이재오 의원.

“(웃음) 내가 시골 면서기 하나도 취직 못 시키는데 무슨 보이지 않는 힘이 있나요.(웃음) 나는 한번도 2인자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2인자인 것처럼 보인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고.”

▼ 실세라는 표현도 씁니다. 2인자와는 조금 다르지만. 김대중 정권의 권노갑, 박지원씨처럼.

“그 사람들은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실세인지 모르지만 나는 자리에 없잖은가, 지금. 그러니까 실세는 맞는데 ‘잃을 실’자의 실세(失勢)지. 내가 뭐 세력이 있나. 나는 야인이고 대학교수일 뿐이죠.”

▼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또 그렇게 비칠 만한 언행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지. 대통령께서 서울시장에 출마할 때 내가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서울시장선거를 총괄하지 않았습니까. 또 대통령후보로 나섰을 때 경선캠프의 실질적 책임자였지. 당내 경선을 치를 때 당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국회의원은 나 하나밖에 없었어요. 형님(이상득 의원)이야 형제 사이니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 처음 시작할 때 말입니까.

“그렇죠. 누가 있었나요. 아무도 없었지요. 한나라당 안에 이른바 이명박계라고 할 수 있는 의원이 있었나요. 사람들이 그런 걸 기억하고 뭐라 말할 수는 있겠지. 서울시장, 대통령 될 때 항상 내가 옆에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권력이란 걸 놓고 보면 나는 2인자도 실세도 아니야. 그런데 남들은 그렇게 안 봅니다. 내가 미국에 간 것도 그래서죠. 야당 10년 해보니 정권을 잡지 않고는 나라를 변화시키기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일을 했던 거지, 정권을 잡아 무슨 권력을 행사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대책본부장, 서울시장 인수위원장을 맡았지만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4년 동안 단 한 건의 인사청탁이나 다른 부탁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아마도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이 청와대 인사수석한테 한두 번씩은 전화했을 겁니다. 누구 어디 좀 부탁한다고. 나는 지금까지 단 한 통도 청탁전화를 넣은 적이 없어요.”

▼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 양심입니다. 그런 걸 거짓말 할 수 있나.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정권 창출에 참여한 것이므로 공적으로 일할 처지가 아닌 지금 그런 일에 관계하면 그야말로 권력을 행사하는 거지요.”

예나 지금이나 실세의 기준은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다. 이 전 의원은 지금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을까.

▼ 사람들이 의원님을 실세라고 부르는 건 대통령과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건 부정할 수 없지 않겠어요? 같이 걸어온 길이, 함께 만들어온 역사가 있으니까. 내가 부인한다고 부인될 수 없겠죠.”

“대통령 재산과 비교한 적 없어”

이 전 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의 인연은 1964년 한일굴욕수교회담 반대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전 의원은 중앙대 구국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 이 대통령은 고려대 상과대 회장 및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으로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벌였다.

“그때는 누가 각 대학의 대표라는 정도만 알았어요. 이 대통령을 깊이 알게 된 것은 6·3 동지회 활동을 하면서부터입니다.”

6·3 동지회는 1964년 6월3일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대학가 시위를 주동했던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다. 이 대통령은 1992년 6·3 동지회장을 맡았는데, 그때 부회장이 이 전 의원이었다. 이 전 의원은 2003년 제16대 6·3 동지회장을 맡았다.

“일을 같이 한 것은 15대 국회 때지요. 1996년 총선에서 나는 은평구에서, 대통령께서는 종로구에서 당선됐습니다. 나는 초선이었고 대통령께서는 재선이었지요. 둘 다 신한국당이었지요.”

15대 국회 때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계기는 두 가지였다. 이 대통령의 경부운하 구상에 이 전 의원이 깊이 공감했고 반대로 이 대통령은 이 전 의원의 행정구역 개편안에 적극 찬성했다.

“알려진 얘기지만, 그때 이 대통령께서 경부운하에 대한 구상을 죽 설명하셨는데, 막연히 운하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수치, 즉 물류 양과 모래자갈, 총공사비가 얼마인지 매우 구체적으로 얘기하시더라고요. 국가에 대해 이렇게 깊이 연구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그랬죠. ‘형님, 대통령 하시라’고. 나는 재야에서 운동만 하다가 의원이 됐기 때문에 국회에서 별로 어울릴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주로 어울린 사람이 이명박 의원, (민중당 출신으로) 나와 함께 당선된 김문수, 이우재 의원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의원이 선거법 위반 문제로 일찍 그만뒀잖아요. 사퇴하고 미국으로 떠났지요. 그때 내가 그랬어요. 국회의원 어차피 오래 할 것도 아닌데 미련 갖지 말고 다음에 서울시나 나라를 경영할 계획을 세워보자고.”

▼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크게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의기투합이 됐는지 궁금하네요.

“일을 두고 이야기할 때 의기투합하는 거죠. 정치인과 정치인이 만나면 일을 두고 얘기해야 정상적인 관계지, 사인(私人)도 아니면서 사사로운 얘기만 한다면 공인이 아니잖아요.”

▼ 대선 때 도곡동 땅 문제를 비롯해 이 대통령의 막대한 부동산을 두고 시비가 벌어졌을 때 곤혹스러우셨겠습니다. 재산이라고는 달랑 집 한 채인 의원님과 영 딴판이잖아요.

“남들 이야기, 다른 세상 이야기니까.”

▼ 그래도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

“가까운 사람이긴 해도 그런 건 다른 세계 이야기니까. 도곡동 땅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잖아요. 또 서울시장 출마할 때 한 번 걸렀던 문제이기에 나는 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나는 한번도 대통령 재산과 내 재산을 비교한 적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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