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한국 최초 여성 상임지휘자 김경희

“오케스트라는 나의 악기, 사람을 연주하는 지휘의 매력”

  • 글·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2009-10-01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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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 여성 상임지휘자 김경희
    9월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앉아 있는 무대 위로 검은 정장 차림의 여성이 걸어 들어왔다. 김경희(50) 숙명여대 교수. 과천시립아카데미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다. 그가 팔을 들어 가볍게 흔들자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가 공연장 가득 울려 퍼졌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지휘자다. 50여 명의 지휘자가 등록되어 있는 (사)한국지휘자협회의 유일한 여성 회원이기도 하다. 그가 동양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독일 베를린국립음대 지휘과를 졸업하고 1989년 대전시향 객원 지휘자로 무대에 선 순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어떻게 지휘를 해”라는 오랜 편견이 무너져 내렸다.

    그로부터 20년 후, 김 교수는 다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상임지휘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서울시향, 부산시향,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수차례씩 지휘하고 소피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러시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등 외국 교향악단도 지휘했지만 좀처럼 오지 않던 자리다. 2008년 9월 과천시립아카데미오케스트라가 창단하면서 그를 상임지휘자로 선택했을 때, 김 교수는 마침내 우리 사회에 남아 있던 또 하나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이날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창단 1주년 연주회는 여성 상임지휘자도 오케스트라를 멋지게 이끌 수 있음을 입증한 자리다.

    한국 최초 여성 상임지휘자 김경희
    김 교수가 처음 지휘를 한 건 초등학생 때. 전교생이 모인 조회에서 4분의 4박자 애국가를 지휘하며 묘한 설렘을 느꼈다는 게 그의 어렴풋한 기억이다. 하지만 지휘자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였다고 한다. 부산 동래여중 기악부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던 시절, 우연히 TV에서 본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그의 삶을 결정지었다.

    “폰 카라얀의 격정적인 지휘를 보는 순간 ‘나도 저 자리에 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크면 꼭 베를린에 가서 공부해야겠다, 그래서 꼭 지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처음엔 그저 철없는 동경 같은 것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열망이 더 강해졌어요. 그 뒤로 단 한 번도 그 꿈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중학생 시절 품은 지휘자의 꿈

    혼자 독일어를 공부하며, 지휘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여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을 때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을 배웠지만 대학에 진학할 때는 작곡과를 선택했다. 지휘를 하는 데 가장 적합한 전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 합창단 등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며 계속 지휘를 익혔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배울 기회는 찾을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MBC 어린이합창단의 지휘자 겸 반주자로 들어갔어요. 돈을 모아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김 교수를 보며 “지휘자가 될 자질이 있다. 꿈을 잃지 말라”며 격려해줬다. 독일 현지에서 공부 중인 유학생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씨 도움 덕분에 그는 1982년, 그동안 모은 돈을 들고 홀로 베를린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한국 최초 여성 상임지휘자 김경희

    김경희 교수는 “지휘의 매력은 나의 해석을 바탕으로 음악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독일이라고 해서 여성 지휘자에 대한 편견이 없던 것은 아니다. 베를린국립음대에 입학 시험을 보러 갔을 때 지휘과 라벤슈타인 교수의 첫마디가 “여자는 싫다”였을 정도다.

    “그러면서 ‘왜 지휘자가 되려 하느냐’고 물으셨어요. 제가 ‘나는 지휘자도 하나의 연주자라고 생각한다. 다만 연주하는 악기가 사람일 뿐이다. 다른 악기는 모두 여자도 연주하는데 왜 지휘만 할 수 없다고 하느냐’고 되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셨지요.”

    그는 김 교수에게 시험을 치를 자격을 줬고, 평가가 끝난 뒤 “여자라는 점은 마음에 안 들지만, 네가 가진 능력은 인정한다”며 독일어로 ‘Yes’를 뜻하는 ‘야’와 ‘No’를 뜻하는 ‘나인’ 사이의 대답 ‘야인’으로 그를 합격시켰다.

    “일단 제자로 받아들이고부터는 한 번도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았어요. 독일에서 결혼한 뒤 임신했을 때도 오히려 격려해주셨지요.(김 교수의 남편은 유학 시절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 경희대 음대 정준수 교수다) 그 덕분에 임신 7개월 때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기도 했어요.”

    라벤슈타인 교수의 가장 큰 가르침은 그것이라고 한다.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오케스트라 앞에 섰을 때는 그저 지휘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 볼티모어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여성 지휘자 마린 알솝은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여성이 권위 있는 모습을 갖는 걸 불편해 하기 때문에 여성 지휘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묻자 김 교수는 “나는 지휘를 하면서 한 번도 권위를 내세운 적이 없다”고 답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서 제 별명은 ‘살인미소’입니다. 연습 도중 누군가 실수를 하면 정확히 그를 향해 웃음을 날리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틀린 걸 알고 있다, 지금 그 부분에 문제가 있다, 다시 연습하라’는 메시지를 미소로 전달합니다. 그럼 단원들은 ‘저 사람이 음악 전체를 꿰뚫고 있으면서도 우리를 존중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돼요. 수많은 단원을 이끌며 음악을 창조해야 하는 지휘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권위가 아니라 실력입니다.”

    수십 개의 악기가 일제히 울리는 가운데 음정과 박자를 하나하나 구별해 듣는 것은 굉장한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일. 김 교수는 “다행히 체력을 타고났다”고 했다.

    “하루에 세 팀, 9시간을 연달아 지휘한 날도 있어요. 하지만 연습이 아무리 길어져도 절대 의자에 앉지 않습니다. 끝까지 서 있지요. ‘여자라서 약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지난 20년간 지켜온 저만의 원칙이에요.”

    김 교수의 팔에 단단히 잡힌 근육은 이처럼 남다른 노력으로 ‘최초’의 길을 걸었을 그의 지난 20년을 짐작케 했다. 이제 국내 최초 여성 상임지휘자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그의 목표는 과천시립아카데미오케스트라를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키우는 것. 이 오케스트라는 최근 2010년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의 교향악 페스티벌 ‘영 유로 클래식’에 한국 단체로는 최초로 초청돼 성가를 높였다. 김 교수는 “우리 오케스트라가 과천의 자랑, 나아가 대한민국의 자랑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더 이상 여성 지휘자가 특별하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미 성시연, 여자경, 채지은 등 많은 후배가 멋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지요. 숙명여대 제자들 중에도 지휘자의 꿈을 꾸는 이가 적지 않아요. 선배이자 스승으로서, 이들이 정말 훌륭한 지휘자로 성장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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