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인간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 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입력2009-10-05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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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인간의 본성들’폴 에얼릭 지음/ 전방욱 역/ 이마고/ 544쪽/ 1만8500원

    비만은 유전자 탓, 행복은 유전자 덕’이라고 말하는 세상이다. 각종 질병뿐 아니라 행복이나 폭력과 같은 인간의 심리와 행위에도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FTO라는 변이 유전자를 한 개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사람보다 몸무게가 평균 1.6kg 더 나가고, 한 쌍을 보유하면 평균 3kg 더 나간다고 한다. 행복은 유전자의 영향이 50%, 환경의 영향이 50%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즉 유전자가 행복과 관련된 성격적 특징 - 걱정이 지나치지 않고 사교적이며 양심적인 것 - 에 50%의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누가 조폭이 될 가능성이 높은가’도 유전자로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사회생물학적 범죄 전문가인 케빈 비버 교수 팀이 남자 청소년 2500명을 대상으로 DNA와 생활습관을 연구한 결과, ‘모노아민산화효소 A(Mo -noamine oxidase A)’라는 유전자를 지닌 남자 청소년들이 미래에 폭력조직에 가입하거나, 조직 안에서도 총기류 같은 무기를 사용해 더 폭력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공격성 유발 유전자를 전사(戰士) 유전자라고 하는데, 이 유전자가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 물질에 영향을 줘서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유전자냐 문화냐 오래된 논쟁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특징, 즉 형질을 만들어내는 인자로서 유전 정보의 단위가 유전자다. 이 유전자가 각각 고유한 형질 기능을 갖고 있으며, 인간과 같은 생명체는 이런 유전자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유전자 결정론’이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이란 DNA라고 불리는 분자를 복제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생존 기계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나 행위를 모두 유전자의 작동으로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 인간의 DNA에 어떤 행동적인 지시가 새겨져 있다면 왜 어떤 사람은 자식을 많이 낳고, 어떤 사람은 결혼하고도 낳지 않는가.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낳아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뜨리려는 ‘충동’이 ‘이기적인 유전자’의 선택이어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실제로 이 유전적인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피임을 하여 유전자의 번식 명령을 거부한다. 문화적 진화가 유전적 진화를 압도한 예다. 진화생물학자인 폴 에얼릭은 ‘인간의 본성들’(이마고, 2008)에서 “인간의 본성을 만드는 것이 유전자인가, 문화인가”라는 오랜 논쟁을 정리하고 각 이론이 갖는 한계와 진화학의 미래를 제시했다.

    스티븐 핑커 같은 진화심리학자는 뇌를 컴퓨터 하드웨어, 마음을 프로그램에 비유했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뇌는 컴퓨터 프로그래밍보다 훨씬 복잡하다.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수억 년의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많은 프로그램이 뇌에 저장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 뇌 프로그램에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할당하는 것이 바로 감정이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인지 능력과 함께 감정 능력을 키워왔으며, 적절한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뇌의 전두엽 한 부분에 손상을 입어 자극에 대한 감정 반응이 안 되는 환자들은,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일뿐 아니라 오늘 저녁 어디에서 식사를 할까와 같은 단순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한다. 뇌 속에 정보는 넘치지만 결정을 내리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얼릭은 이처럼 인간 행동을 무조건 유전자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한편, 인간 마음의 특성과 행동의 양상이 전적으로 사회적으로 결정된다고 믿었던 행동주의자들의 생각도 비판한다. 행동주의자들을 지배했던 ‘빈 서판’ 개념은 사람이 태어날 때 사랑, 공포, 분노를 경험할 수 있는 본능적인 능력만 가진 텅 빈 서판상태이며 이들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의사 변호사 화가 사업가 거지 도둑 등 무엇으로든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유전자만이 아니다’피터 J. 리처드슨, 로버트 보이드 지음/ 김준홍 역/ 이음/ 511쪽/ 2만5000원

    미국 남부의 살인율은 왜 높을까

    피터 J. 리처드슨과 로버트 보이드 교수도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두 사람이 함께 쓴 ‘유전자만이 아니다’(이음, 2009)는 문화가 어떻게 인간의 진화 경로를 바꾸었는지에 대한 방대한 종합보고서다.

    미국의 남부 지역이 북부보다 폭력적인 이유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미국 남부 지역의 살인율은 북부 지역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데,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과 도브 코헨은 ‘명예의 문화’라는 책에서 이러한 차이가 개인의 명예에 대해 문화적으로 습득한 신념이 서로 다른 데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즉 남부 사람들은 북부 사람들보다 개인의 명예를 소중히 하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명예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그런 명예 의식 때문에 앰허스트나 앤 아버 같은 미국 북부도시에서는 사소한 다툼으로 끝날 일도 애슈빌이나 오스틴 같은 남부 도시에서는 치명적인 폭력(살인)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니스벳과 코헨은 통제된 상황에서 진행된 실험에서도 지역간 명예 의식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부 출신과 북부 출신 사람들을 모집한 뒤, 실험자 중 누군가가 피실험자에게 일부러 부딪히면서 “개자식”이라고 투덜거려 모욕을 준다.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피실험자들은 좁은 통로를 걸어가다 마주 오는 다른 실험자를 만나게 된다. 실험자는 풋볼 선수로 어떤 피실험자보다 덩치가 크다. 이때 북부 출신들은 앞의 실험에서 모욕을 당했건 당하지 않았건 관계없이 좁은 복도에서 풋볼 선수가 2m 정도까지 다가오면 옆으로 물러섰다. 남부 출신들은 앞의 실험에서 모욕을 당하지 않았을 경우 3m 정도에서 옆으로 물러섰지만, 모욕을 당한 사람들은 풋볼 선수와 거의 충돌 직전까지 간다.

    이것은 남부 사람들이 명예를 위협받으면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언제든 싸움을 걸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이는 생리적 차이로도 나타났다. 모욕을 당했을 때 남부 사람들은 북부 사람들에 비해 코르티졸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훨씬 올라갔다.

    이 실험은 리처드슨과 보이드 교수가 ‘유전자만이 아니다’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두 가지 요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문화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과 문화는 생물학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미국 북부에서보다 남부에서 살인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남부 사람들이 개인의 명예에 대한 신념과 태도를 습득했기 때문이며, 이것은 다음 세대로 학습된다. 이처럼 의견, 신념, 태도, 사고습관, 언어, 예술적인 양식, 도구와 기술, 사회적 규범과 정치적인 관습 등 문화적으로 습득된 관념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남부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생리적인 변화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욕을 당한 남부 사람들에게서 다량 분비되는 코르티졸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며, 테스토스테론은 싸움을 걸기 전에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이러한 호르몬이 분비됨으로써 모욕을 당했을 때 더 즉각적이고 더 보복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결국 ‘유전자만이 아니다’가 강조하는 것은 “어떻게 인간이 지금과 같은 동물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문화가 제 역할을 하며, 문화가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과 밀접하게 연결된 이론으로만 대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유전자-문화 공진화(共進化) 이론’이라 한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의식적 진화

    다시 폴 에얼릭의 ‘인간의 본성들’로 돌아가보자. 에얼릭은 지난 세기 동안 인간 환경을 바꾼 문화적 진화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이루어진 반면, 인간이 새로운 조건에 유전적으로 적응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생물학적 진화에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문화적 진화에서도 기술의 영역과 가치, 윤리학의 진화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진화의 불균형을 가져오고 그것이 대재앙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작물을 공격하는 해충과 인간의 공진화를 보자. 인간이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살충제를 살포하면 할수록 해충들은 살충제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진다. 일시적으로 인간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과 해충의 경쟁은 영원한 무승부다. 항생제 남용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기적의 약과도 같았던 페니실린은 이제 위험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거의 효과가 없다. 어떤 항생제도 이겨내는 새로운 박테리아와 원생동물들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번지며 가금류의 집단폐사를 가져오고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지만, 결국 AI가 스스로 물러나주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이러한 결과가 가져다준 교훈은, 이제 우리에게 더욱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간의 신경계는 먹을거리를 발견하거나 위협적인 경쟁자의 출현, 이성(異性)의 존재와 같이 단기간의 사건에 더 잘 반응하도록 진화해왔다. 반면 지구온난화나 다양성의 소실과 같은 환경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느린 반사작용)은 발달하지 않았다.

    에얼릭은 ‘느린 반사작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수십 년 아니 수세기에 걸쳐 구체화되는 위협을 감지할 수 있는 느린 반사작용을 개발해왔고, 이것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의식적인 진화’다. 생태학자들이 대규모 수소폭탄 전쟁으로 인한 환경파괴를 우려하고 이것이 대중에게 전달되어 전면전의 가능성을 줄여나가는 것, 지구온난화 문제를 놓고 과학자와 일반시민이 함께 고민하는 것, 포화지방의 섭취나 흡연을 줄이는 것까지 모두 인간 본성을 바꾸는 의식적 진화의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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