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분단의 섬 민통선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강사 koyou33@empal.com│

    입력2009-10-05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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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의 섬 민통선
    책에 그림이나 사진이 많이 담기면 ‘보는 책’이다.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하면 ‘읽는 책’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가슴이 울렁거리면 ‘감동을 주는 책’이고 밑줄 그을 정보가 그득하면 ‘유익한 책’이다.

    비무장지대(DMZ) 역사기행집인 ‘분단의 섬 민통선’은 앞서 언급한 책의 특징들을 두루 갖추었다. 넓적하고 두툼해 제법 무겁기도 한 이 책을 휘리릭 넘기면 화려한 컬러사진, 꼼꼼하게 그린 지도가 눈길을 끈다.

    책 내용을 살펴보자. 머리말부터 심상찮다. 눈요기용 사진에다 헐렁한 해설 몇 줄을 덧붙인 여느 관광안내서 같은 책이 아니다. 한반도 중심부에서 펼쳐진 수천 년 역사의 파노라마를 조망하는 저자의 진지한 역사의식이 돋보인다. 오늘날 남북 분단 상황의 문제의식까지 담았다. 표지를 다시 들추니 아스라이 보이는 군사분계선 너머 북녘 사진이 다가오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역사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역사 현장을 답사하는 한편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고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도 한다. 전공 분야가 ‘전쟁 고고학’이라 하니 이 책의 저술 방향과 꼭 맞는 듯하다. 저자의 경력과 수련 자세가 믿음직스러워서인지 이 책은 학술적 분위기를 풍기는 르포르타주의 백미(白眉)처럼 여겨진다.

    저자는 2년 반 동안 국방문화재연구원의 이재 원장과 이우형 조사팀장 등 전문가와 함께 비무장지대에서 발품을 팔며 문화재를 살폈다. 6·25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어서 지금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다. 곳곳에 깔린 지뢰 때문에 조심스레 걸어야 한다.



    이 책은 6부로 나뉘어 한반도의 역사 흐름을 더듬는다. 제1부 ‘문명의 탯줄’에서는 30만년 전 한탄강 유역의 장면이 나온다. 구석기 시대에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농기구는 돌을 다듬거나 갈아서 썼다.

    1977년 4월 미 공군에 근무하는 그렉 보웬 병사가 한탄강 부근(경기 연천군 전곡리)을 애인과 함께 거닐며 데이트하다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주먹도끼를 발견했다. 무심코 보면 돌덩어리에 불과한데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청년의 예리한 눈은 사람이 깎은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이로써 한반도에 사람이 산 역사 흔적은 3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주먹도끼는 국제학계에서 공인받았고 세계고고학 지도에 등재됐다. 이 구석기를 쓴 사람들이 오늘날 한민족의 조상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4300여 년 전의 단군이 아득한 옛날의 신화상 인물로 여겨지는 판에 30만년 전에 한탄강변에서 원시인들이 살았다는 물적 증거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상상력은 엄청나게 넓어진다.

    제2부 ‘난세의 여울’을 펼치면 역사시대로 성큼 접어든다. 임진강, 한탄강, 한강이 어우러진 이 유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세력을 다투던 무대였다. 고구려 유리왕의 핍박을 받아 남쪽으로 내려온 온조가 세운 초기 백제(하남위례성) 터는 지금 서울 올림픽공원 부근이었다. 풍납토성이 그 유적이다. 온조는 하남위례성 이전에 하북위례성에 먼저 자리 잡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그러나 아직 하북위례성 유적은 규명되지 않았다.

    덤프트럭을 몸으로 막다

    이 책은 경기 연천군 적성읍 임진강변에 위치한 육계토성이 하북위례성인 것 같다고 밝혔다. 1996년 여름에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진 폭우 탓에 지표가 쓸려 내려가면서 땅 밑에 있던 유물이 무더기로 드러난 일이 있었다. 이곳을 둘러본 여러 전문가는 “풍납토성 모양과 흡사한데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하북위례성인 듯하다”고 평가했다. 당시 발굴조사 요원이었던 황소희 한양대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의 무용담도 귀를 솔깃하게 한다. 주민들이 굴삭기와 덤프트럭을 갖고 와 정지작업을 하려 했는데 황 연구원이 흙을 쏟으려던 덤프트럭을 몸으로 막았다. 젊은 여성의 기개가 문화재를 보존한 것이다.

    이 책이 독자에게 박진감을 주는 것은 저자가 지뢰와 불발탄이 질펀하게 깔린 비무장지대를 누볐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군 당국의 허가를 얻어 들어갔다. 현장 주민의 증언과 전설, 설화를 반영한 점도 생동감을 더해준다. 후삼국 시대의 영웅 궁예가 웅지를 펼쳤던 철원평야에서 구전 설화를 채집해보니 궁예를 숭모하는 민심이 면면히 이어 내려온다. “궁예는 포악한 군주”라는 평가는 역사의 승리자인 고려 왕조가 과장했다는 것.

    제3부 ‘영욕의 강산’에서 돋보이는 문화유적지는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에 있는 덕진산성. 민통선 북부에 있기에 군부대 승인 없이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광해군을 내쫓은 반정 병력이 이 산성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당시 장단부사 이서(李曙·1580~1637)는 비밀리에 군사 700명을 키웠다. 이들은 1623년 3월12일 밤에 이곳을 떠나 13일 새벽 창덕궁을 급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새 임금으로 추대하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은 구석구석에 야사(野史)를 넣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데 이서의 아내에 관한 애달픈 사연도 전한다. “거사에 성공하면 나룻배에 붉은 깃발을, 실패하면 흰 깃발을 달고 돌아오겠다”고 말한 이서는 약속대로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뱃사공이 흰옷을 벗어 붉은 깃발 위에 걸어놓았다. 멀리서 흰 깃발을 본 이서의 아내는 남편이 반정에 실패해 대역죄인이 된 줄 알고 자결했다.

    1500년 역사를 지닌 대규모 사찰 건봉사(강원 고성군). 신라 법흥왕 때 혼혈 스님인 아도화상이 창건한 이 절에서 조선시대에는 사명대사가 승병 700명을 훈련시켰다. 640칸 규모의 최대 사찰이자 호국불교의 상징이었다. 건봉사의 비극에 관해 저자는 이 책의 제4부 ‘믿음의 성지’에서 비감한 심경으로 서술했다.

    6·25전쟁 때 남한을 침공한 북한 인민군이 북으로 퇴각하면서 건봉사에 집결했다. 유엔군은 포탄 10만발을 발사해 이곳을 초토화시켰다. 국보 412호 금니화엄경 46권과 사명대사의 유물이 모조리 사라졌다.

    신라의 마지막 왕은 경순왕이다. 경순왕은 재위 9년 때인 935년 10월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겼다. 이에 앞서 927년 11월 경애왕은 후백제의 지도자 견훤이 경주에 쳐들어왔을 때 포석정에서 술잔치를 벌인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은 제5부 ‘삶과 죽음의 공간’에서 이견을 제시한다. “경애왕이 추운 겨울에, 국난에 빠진 상황에서 술판을 벌였겠느냐”는 의문을 던졌다.

    저자는 경순왕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자리 잡은 경순왕릉을 찾아간 방문기가 흥미진진하다. 농가 사이를 지나 좁은 길 양쪽에 달린 ‘지뢰’라는 살벌한 표지판이 보인다. 길이 끝나는 곳에 야트막한 언덕이 펼쳐지면서 경순왕릉이 나타난다. 왕릉비는 6·25전쟁 때 총탄을 맞아 곳곳이 파였다. 이 왕릉은 1973년 1월 관할 중대장이던 여길도 대위가 발견했단다.

    경순왕이 마의태자의 읍소를 뿌리치고 고려에 손을 든 것은 백성의 희생을 막기 위한 애민정신의 발로라는 것. 결사항전한다면 더 버틸 수 있었겠지만 그럴 경우 백성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겠는가. 경순왕은 왕건으로부터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고려 수도 개경에 머물렀다. 통일신라가 망한 후에도 43년간이나 살았고 왕건보다도 35년이나 더 오래 살았다.

    경순왕은 사후에 고향에 묻히지 못했다. 신라 유민들이 경주에 능지를 잡았으나 고려 조정은 긴급 군신회의를 열어 “왕의 운구는 100리를 넘지 못한다(王柩不車百里外)”고 결정했다.

    이 책은 경순왕과 관련한 이곳 전설을 소개했다. 경순왕이 고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해서 이름 붙은 곳이 도라산(都羅山)이라는 것.

    동의보감은 최초의 국제적 베스트셀러

    파주에 있는 의성(醫聖) 허준 선생의 묘는 어느 서지학자의 10년간의 집념 어린 추적 끝에 발견됐다. 서지학자 이양재씨는 1982년 한 골동품 거간꾼에게서 허준 선생의 친필 편지를 건네받았다. 이를 계기로 허준의 묘소를 찾아 나섰다. “파주 장단 하포 광암동 동남쪽에 있으며 무덤은 쌍분(雙墳)”이라는 ‘양천 허씨 족보’ 내용을 토대로 삼았다. 후손들을 만나고 토지대장을 뒤졌다. 후손 대부분이 이북에 살아 어려움이 컸다. 우여곡절 끝에 1991년 7월 땅속에 묻힌 허준 비석을 발견했다. 비석은 두 동강 난 상태였다.

    이 책은 정치 싸움의 희생양이 된 허준 선생의 파란만장한 삶을 파헤쳤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동의보감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도 출판돼 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제6부 ‘전쟁의 그늘’은 6·25전쟁의 잔혹함을 기술하고 역사적 교훈을 강조한다. 적군과 아군을 합쳐 1만8000여 명이 숨진 백마고지 전투. 그 처절한 싸움이 벌어진 철원군 고암산은 궁예의 도성이 자리 잡았던 곳이기도 한 역사 유적지다.

    답사여행을 함께 하며 전문가로서 조언을 준 이재 국방문화재연구원장은 추천사에서 “양구 해안분지, 연천 임진강변의 적석총들, 오두산성, 덕진산성, 경순왕릉, 허준 묘 등은 그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거의 숨겨진 채로 남아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드디어 제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면서 “비무장지대 및 민통선 일원의 주요 유적들을 깊이 있고 흥미롭게 다룬 사실상 최초의 유적 답사기”라고 평가했다.

    60년 가까이 인적이 끊어진 비무장지대는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지역이다. 자연생태계 측면에서도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 거대한 역사, 생태의 보고(寶庫)가 됐다. 이 책은 그런 가치를 일깨워주는 격조 높은 길라잡이 구실을 한다. 맛집 안내책자를 들고 쏘가리 매운탕집을 전전하는 것보다 이 책과 더불어 임진강, 한탄강변 역사기행을 하면 좋을 터!

    ‘분단의 섬 민통선’ 이기환 지음/책문/488쪽/1만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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