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명예퇴직을 앞두고 잠을 이룰 수 없어요

  • 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입력2009-10-05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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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퇴직을 앞두고 잠을 이룰 수 없어요

    중년 남성에게 실직은 평생 기울여온 모든 노력을 무효화하고 믿고 의지하던 기반마저 무너뜨리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Q 작지 않은 회사의 중견 간부입니다. 10년 넘게 이 회사를 다녔고, 나이는 43세입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갈수록 제 위치가 불안해지는 걸 느낍니다. 조만간 회사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도는데, 아무래도 퇴직 신청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막상 마음을 먹고 나니 막막합니다. 이제껏 열심히 살아왔는데 손에 쥔 거라고는 32평짜리 아파트 하나뿐입니다. 고1, 중2 두 아들과 전업주부 아내는 저만 믿고 있습니다. 고육책으로 음식점이나 할까 하고 요리학원에 등록했지만, 자신도 없고 앞치마를 두른 제 모습이 한심해 보입니다. 젊음을 바쳐 열심히 일했는데 이제 와서 내치는 회사가 원망스럽고 화가 나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어떻게 이 난국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A 일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근본요소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일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정신건강의 지표가 된다. 일은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 외에도 많은 의미를 지닌다. 성인이 된 후 우리는 직장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은 우리에게 경제적, 내면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선 일은 정체성의 중심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을 소개할 때 흔히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부터 말한다. 한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은 그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또한 우리는 사회에서 평가하는 직업의 보편적 가치에 따라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이 결정된다고 느낀다. 하는 일의 성격에 따라 사람을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로 분류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자신이 하는 일로 평가하려 한다.

    또한 일은 개인이 꿈꿔오던 것을 성취할 수 있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장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을 통해 돈을 벎으로써 그동안 간직해온 꿈을 실현할 현실적 기반을 마련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 그 자체를 통해 삶의 목표를 달성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일은 이렇게 우리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를 사회와 연결해주며 우리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

    그런데 요즘 중년 남성들에게 위기가 닥치고 있다. 그들이 평생 온 힘을 다해 지켜온 일과 직장이 그들을 배반하는 슬픈 현실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창 일하며 인생의 새로운 목표와 가치를 재정립해야 할 ‘인생의 정오’에 조기퇴직과 명예퇴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일의 박탈’이 기다리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와 일의 의미 변화

    현대사회가 과거 어느 시기보다 일의 수단적 의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은 비극적이다. 현대인은 일 자체가 주는 즐거움보다, 즐거움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의 가치를 더 중시한다. 일은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즐기고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동시에 사회적인 만족감을 얻고 이상을 성취하며 성숙한 성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수단,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심리사회적인 성공을 이루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회가 개인적인 성취, 특히 세속적인 직업의 성취를 높게 평가하는 상황에서 일을 통해 성공하는 것, 명성을 얻는 것은 점점 중요해진다.

    게다가 현대는 속도경쟁의 시대다. 나이 든 사람은 곧 무용지물이 돼버릴 과거의 지식을 빨리 새 지식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좀 더 나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남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 이러한 역동성은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을 안겨준다. 현재나 미래 상황이 불확실할 때 사람은 불안해 하고 이에 대한 방어로 과거로 퇴행하거나 공격적이 된다.

    현실 상황이 예측 가능할 때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자기 개발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바탕으로 삶을 계획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가 불확실하고 위험할 때 사람들은 즉각적인 만족과 탐닉에 몰두하게 된다. 동시에 자신을 개선하기보다 보존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그것도 멋지고 성공한 모습으로 살아남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된다.

    그런데 직장은 더 이상 평생고용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개인은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즉시 폐기처분되는 부속품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미국의 사회학자 크리스토퍼 라쉬 교수는 이러한 변화가 공허감과 불안감에 방황하고 소외되는 개인을 양산한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불안정한데 생존욕구는 점점 강해진다. 이 상황에서 이제 조직의 구성원은 ‘게임인’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성공의 개념에 ‘승리 의지’가 개입되면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성공이란 인간의 편안과 향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도덕적·사회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성공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만을 띠게 된다. 이제는 성공 자체가 목적이다. 자신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승인을 얻어내고, 자신의 경쟁자들에게 승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공을 추구하게 된다. 이때 조직 구성원들은 조직 내에서 승인을 획득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게임인이 되며, 지도자는 사회에서 팀을 이끌어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변화는, 라쉬 교수의 말처럼, 현대인이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인(economic man)’에서 근심과 내면적인 공허감에 시달리며 필사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찾아 헤매는 ‘심리인(psychological man)’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렇게 성공이 중요해진 시대에, 그것도 가장 활동적일 나이에 직장을 잃는 것은 물질적으로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된다.

    인생의 정오에 맞는 위기

    40세는 인생의 정오라 하여 자신의 인생과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시기다. ‘제2의 사춘기’라고 하는 이 시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지표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다. 더구나 지금의 40~50대는 평생직장의 신화를 믿고 회사를 위해 가정까지 희생해가면서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바친 세대다. 자신이 한창 나이에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만둔 후의 생활에 대한 준비 또한 없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정리해고는 그동안 기울여온 모든 노력을 무효화하면서, 믿고 의지하던 기반마저 와르르 무너뜨린다.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이제 무능한 중늙은이를 반겨줄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집에서는 무능한 가장이자 아버지가 돼 설 곳을 잃고, 사회에서는 인생의 패배자로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손에 쥐어진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들고 온 가족의 생계와 아이들의 교육을 마저 책임져야 하는 가장은 불안하기만 하다. 배운 것이라고는 해오던 일밖에 없는데 새롭게 창업을 하려 해도 자본금이 부족하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몸과 마음이 다 지치고 쇠해버린 상태에서 새롭게 무얼 시작하는 것은 겁나는 일이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남은 건 아무 데서도 불러주지 않는, 그 어느 곳에서도 소용가치가 없는 인생의 실패자요 패배자로서 초라한 자신의 모습뿐이다.

    이처럼 인생에 위기가 닥칠 때 많은 사람은 그 의미를 축소하고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혼자서 모든 어려움을 감당하려다보면 분노와 좌절감과 두려움이 해소되지 못하고 쌓여 자칫 우울증이나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실패자라고 느낄 수 있다. 창피하고 사람 만나기 싫고 모든 것에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끝까지 뛰어봐야 아는 마라톤처럼 결국에는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당신이 어떤 일을 해왔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서 얼마나 행복과 기쁨을 누려왔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당신이 지금 정리해고를 당한 것은 무능하거나 모자라서가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왔어도 세상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의외의 일은 항상 일어난다. 지금의 시련 역시 그렇게 일어난 일일 뿐이다. 당신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세상의 변화 속도를 예측하고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이런 일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달리 생각하면,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느라 놓친 잘못 아닌가. 그러니 이 시련을 혼자 끙끙 앓으며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자. 가족이란 고통이나 기쁨을 같이 나누며 함께 가는 사람들이다. 부인과 아이들에게 현재 당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라. 당분간 이 위기를 이겨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같이 의논하고 결정하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면 모두 다 같이 노력할 수 있다.

    이 기반 위에서 충분한 조사와 검토 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자칫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는 판단력을 잃기 쉽다. 다른 직장을 구하거나 다른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전까지 자신이 누리던 사회적 지위나 체면 등은 덮어두고 무시하는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일의 전망이 어떤지,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얼마나 맞는 일인지만을 생각하라.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이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가능성을 배제하다보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남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각오로 다시 한 번 뛰어들어야 한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이해와 지지는 이때 당신에게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가족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라

    미래가 암담하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현실의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더구나 매스컴에서는 수시로 ‘미래에 대한 준비는 젊을 때부터 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 않은가. 맞다. 당신은 이미 늦었다. 그러나 한 달 후, 일 년 후와 비교하면 결코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당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자식에게 쏟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 일정 부분은 꼭 떼어 남겨두어라. 경제적인 부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할, 당신이 좋아하는 그 무엇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것. 부부가 함께라면 더욱 좋다.

    명예퇴직을 앞두고 잠을 이룰 수 없어요
    김혜남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現 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경희대, 인제의대 외래교수

    저서: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왜 나만 우울한 걸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지금 당신은 삶의 위기를 맞았다. 일단 한 템포 늦추고, 그 위기가 당신에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 위기가 당신에게 변화를 요구한다면 거기에 맞춰라. 절대 지금의 당신을 과거의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 스스로에게 당당해야 한다. 만일 새롭게 도전할 일이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라면, 더 잘됐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져라. 당신은 위기를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극복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인생에서의 성공이란 경쟁에서 승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했으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필요하고 사랑받는 존재였느냐 하는 데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품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당신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다.

    ●‘신동아’에서는 중장년층 남성의 고민을 듣고자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담은, 그렇지만 쉽게 풀지 못하는 고민을 spring@donga.com으로 보내주십시오.

    정신분석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혜남씨가 카운슬링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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