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입력2009-10-06 1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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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공호’를 기억하는가. 40대라면 대부분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1982년. 기자가 중학교 2학년이던 시절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 전투기 제공호가 창공을 가르던 순간, 나이 어려서 ‘자주국방’ 등 복잡한 내용은 잘 몰랐지만 괜히 자랑스럽고 가슴이 뿌듯했다.당시 제공호를 대한항공이 제작했다는 사실을 기자가 알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일반인에게 대한항공은 대체로 항공사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국내 최초로 완제기를 제작했고, 2600여 명의 항공기 제작관련 연구 및 생산인력을 보유한 항공우주산업 선도자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대한항공 테크센터.

    부산에 있는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테크센터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취재 일주일 전에 사진기자가 가지고 가게 될 카메라 기종까지 적어서 제출하라는 연락이 왔다. 국방부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대한항공이 방위산업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1976년 설립된 대한항공 테크센터는 부산 김해공항에 인접해 있다. 대지 총 70만7866㎡, 연건평 26만6180㎡ 규모로 항공기 생산에 필요한 각종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면적이 너무 방대해서 사무실 사이를 이동할 때에는 골프장에서는 카트와 비슷한 차량이나 자전거를 이용해야 했다. 일부 사원들은 급한 일이 있으면 승용차를 타고 이동할 정도로 대지가 넓다.

    테크센터는 겉으로 봐서는 방산업체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 테크센터 곳곳에 계류 중인 대형 비행기들이 없다면 언뜻 봐서는 거대한 물류센터 혹은 할리우드 영화세트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곳에 처음 공장을 지을 때에는 보안상의 이유 때문에 모두가 ‘새마을 공장’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그리고 외부에서 건물을 봤을 때 방산업체라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외벽에 특별한 방법을 동원한 위장도색을 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테크센터를 밖에서 봤을 때에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안내를 맡은 대한항공 송주열 부장의 설명이다. 테크센터에는 지금까지 7300억원이 투자됐다.

    송 부장을 따라서 테크센터의 한 군용기 창정비장에 들어갔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헬리콥터 동체가 눈에 띄어 “헬기 뼈대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부서진 UH-60(일명 블랙호크)를 복원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골조에서 헬기를? 대한항공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기술을 갖고 있나? 믿어지지 않아 재차 물어봤더니 송 부장은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나중에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대한항공은 이미 1990년대에 중형헬기인 15인승급 UH-60을 성공적으로 제작해 우리 군에 공급한 경험이 있었다. 이미 완제기 제작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헬기 골조에서 완벽한 UH-60을 재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항공기 제작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한진그룹 창업자인 고 조중훈 회장이 1975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항공기 생산사업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같은 해 대한항공은 ‘군용 항공기 정비·조립·생산 군수업체’로 지정됐고, 당시로선 엄청난 액수인 700억원을 투입해 김해공항 인근의 늪지대를 메워 항공기 생산 공장(현 부산 테크센터)을 건설했다. 기술을 이전받아 처음으로 생산한 완제기는 토우미사일 장착이 가능한 헬기인 500MD였다.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최초 국산 전투기 제공호.

    제공호의 탄생

    보통 항공기 제작산업의 기술은 ‘정비 수리 능력 보유→기술 도입을 통한 조립 생산 및 부품 제작기술 습득→기술제휴를 통한 항공기 부품 자체 설계→초기 훈련기의 자체 개발 능력 확보→고급 훈련기 개발→전투기 공동 개발→전투기 자체 개발 능력 확보’의 순으로 발전해나간다.

    대한항공은 당시 정비에서 조립생산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조립생산으로 완제기 제작에 첫발을 내디뎠던 대한항공이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인 1982년 당시 차세대 전투기(F-5E/F 제공호)를 어떻게 해서 생산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당시 국제정세의 흐름을 잘 읽은 경영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수교를 서두르면서 대만에 있던 태평양지역 미군 군용기의 정비기지를 옮겨야 했다.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대한항공은 그동안 쌓은 정비 노하우와 500MD 생산 경험을 내세워 대한항공을 새로운 정비기지로 지정해줄 것을 미군 측에 요청했다. 대안을 찾지 못해 고심하던 미군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미군은 대한항공을 태평양지역의 창급 정비기지로 선정했다. 대한항공은 1979년부터 미국의 주력 기종이던 F-4 팬텀기의 정비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항공기 정비는 분해·결합이 기본이고, 수리를 위해서는 생산하는 것 이상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한항공으로선 항공기 제조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항공에 최신예 전투기 생산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미국 노스럽(Northrop)사의 F-5F가 모델로 결정됐다. 대한항공이 당시 기술전수를 위해 노스럽에 파견한 기술인력만 600여 명에 달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첫 국산 전투기 제공호가 3년 뒤인 1982년 9월9일 탄생했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과 대만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로 전투기 생산국이 됐다. 특히 제공호는 고성능 초음속 전투기로 당시 북한 공군의 주력기이던 ‘미그-21’보다 성능이 뛰어났다.

    대한항공은 제공호 제작 과정에서 국산화율을 23%로 끌어올리는 한편 기술연구소를 통해 설계기술을 꾸준히 축적해나갔다. 꾸준한 기술 축적 끝에 1985년 순수 독자 기술로 1인승 경비행기 ‘창공-2호’를 개발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어 1988년 2인승 ‘창공-3호’를 개발했고, 1995년에는 5인승 ‘창공-91호’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이 생산한 완제기는 500MD, 500D, F-5E/F, UH-60 등 헬기 및 전투기를 비롯해 자체 설계 개발한 5인승 경항공기 창공 91 등 모두 500여 대에 달한다.

    1979년부터 미군의 F-4 팬텀기 창정비를 맡았던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는 이후 미국의 전폭기, 수송기, 헬리콥터 등 주요 군용기 정비 및 개조 수리, 창정비 등을 맡아오고 있다.

    기자가 부산 테크센터를 방문했을 때에도 A-10, CH-53, F-15, F-16, CH-47 등 미군 항공기들이 줄을 서서 수리 및 정비를 받고 있었다. 특히 이라크전쟁에 투입됐던 헬기들은 본국으로 향하기 전에 대부분 이곳에 들러 수리 및 정비를 마쳤다고 했다.

    현재 대한항공은 태평양 전역에서 운용 중인 미군의 전 기종 항공기를 정비 및 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군 항공기 종합정비 수리창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보잉에 공급하는 윙팁(왼쪽)과 군용헬기 정비 현장(오른쪽).

    블루오션, 항공기 부분품 수출

    최근 들어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캐시카우로 등장한 분야는 항공기 부분품 수출시장이다.

    윤신 항공우주사업본부 상무는 “지난해 항공기 부분품의 수출 매출이 2억달러를 넘어서면서 매출증대에 큰 기여를 했다”며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로 당장은 항공기 시장이 주춤하고 있지만 경기가 회복되면 성장세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항공기 부품시장은 제조업의 특성상 물량증가로 인한 규모의 경제 달성시 큰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유망한 분야”라고 덧붙였다.

    초기에는 제작에 중점을 두었으나 점차 설계 분야에 참여하면서 영역을 넓혀 나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MD-11 여객기의 날개에 조립되는 스포일러의 개발. 스포일러는 항공기 날개에 장착되어 비행시 또는 착륙시 항력을 증가시키고 양력을 감소시키는 구조물로 설계에서 제작, 시험, 인증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일괄 수주해 미 연방항공청(FAA)의 인증까지 받아 한국 항공산업에서 처음으로 항공기 기체 부분품을 설계 개발에 성공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기수동체, 중앙동체, 날개구조물 등 대한항공이 자체 생산한 항공기 부분품을 사용한 항공기는 보잉사의 B717, B737, B747, B767, B777, B787, MD-11, MD-80, MD-90과 에어버스사의 A330, A340, A380, 브라질 엠브레어사의 EMB170, EMB190 등이다.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유나이티드 항공 여객기 중정비 현장.

    대한항공은 2001년과 2007년에 미 보잉사로부터 전세계 수만 개에 달하는 보잉사의 협력업체 중 구조물, 전기, 전자 등 10개 분야에 걸쳐 분야별 최우수 협력업체를 선정해 시상하는 최우수 사업 파트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2007년에 선정된 최우수 파트너상은 보잉이 미래 항공시장을 주도할 차세대 주력기종으로 개발 중인 B787 항공기 개발제작에 공동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대한항공은 최첨단 복합소재로 제작되는 보잉의 차세대 항공기 B787 개발사업에서 후방동체, 날개 구조물 등 6개 분야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보잉과 공동 제작하는 만큼 업무 협력을 위해 보잉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에 기술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시애틀 파견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설계개발팀의 안현수 대리는 “윙팁(wing tip)의 경우에는 대한항공이 부품 자체설계, 제작능력을 보유한 1차 부품공급업체(Tier 1) 부품공급자로 참여하고 있다”며 “이는 보잉으로부터 그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말했다.

    테크센터에는 조만간 보잉으로 인도될 첨단 소재의 제품들이 대기 중이었다. 기체의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부분품인 ‘섹션48’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플라스틱 같은 느낌을 줬지만 초강도를 자랑하는 탄소강화 복합소재다. 알루미늄보다 훨씬 가볍고 강도가 강해 항공사의 가장 큰 고민인 연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이 큰 강점이다. 연료비가 항공사 비용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복합소재 항공기는 앞으로 항공기산업에서 대세로 떠오를 전망이다. 보잉과의 계약상 이 부분품의 사진촬영은 허용되지 않았다.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비상 탈출 슬라이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는 장면.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에는 독일 유러콥터사와 A350 항공기의 화물용 도어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에어버스는 2013년 운항을 목표로 270~350석 규모의 A350 기종을 개발 중이다. 기체의 60% 이상에 탄소강화 복합소재와 최신 금속재를 사용해, 기체를 가볍게 하고 운항 비용을 기존 항공기보다 20% 절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대한항공이 개발하는 A350 항공기 화물용 도어는 전후방 모두 3개로 구성돼 있다. 운항 중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는 동체에 장착돼야 하기 때문에 출입구 개폐를 위한 구동장치 설계기술과 고도의 정밀기술을 요구한다. 대한항공은 2010년 하반기부터 유로콥터에 인도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이 이처럼 항공기 부분품 수출에 역점을 두는 것은 대한항공이 공급하는 부분품으로 제작한 항공기가 많이 팔릴 경우 매출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6개 분야에 참여하는 B787은 이미 선(先)주문량이 800대를 넘어섰다. B787의 경우 여러 회사가 참여하고 새로운 소재를 써서 제작한다는 점 때문에 최근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해 항공기 인도가 늦어지고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이 보완돼 항공기가 본격 생산되면 대한항공으로선 수출이 크게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항공이 동체구조물을 납품하고 있는 브라질의 항공기제작사 엠브레어의 EMB170/190은 경기가 좋을 때에는 연간 180대가 팔리기도 했다. 대한항공으로선 1년에 180개의 동체구조물을 수출한 것이다.

    무인기 개발사업

    대한항공이 항공기 부분품 수출과 함께 미래 전략사업으로 추진 중인 것은 무인기 개발이다. 대전에 있는 대한항공 기술연구원 주도로 2007년에 반경 40~50㎞의 영역을 주야로 정찰 감시할 수 있는 근접 감시 무인기 KUS-7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현재는 차세대 전술 무인기인 KUS-9을 개발 중이다. 금년 말 개발 완료예정인 이 무인기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은 정찰 공격용 무인헬기와 무인전투기(UCAV)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연구하는 등 미래 무인기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항공은 또 우리나라 위성개발 태동기인 1993년부터 무궁화 1, 2호 방송통신 위성의 본체와 태양전지판 구조물을 설계 및 제작함으로써 인공위성 제작에 관한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형 통신위성인 무궁화 3호의 탑재체 패널과 태양전지 패널을 제작해 위성 제작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다목적 실용위성(KOMPSAT)의 위성본체 구조물도 제작했다.

    윤신 상무는 “대한항공은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의 선도자로서 항공기 부품 제작과 민간 및 군용기 정비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과 역량, 그리고 마케팅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대한항공의 목표는 전세계에서는 유일하게 항공기 제작사업과 항공사 운영을 동시에 하면서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테크센터 취재 중 인상 깊은 장면은 대형 민간항공기 중정비 현장이었다. 취재 당일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B747-400 여객기가 ‘HMV(Heavy Maintenance Visit)점검을 수행하고 있었다. HMV점검은 미 FAA 규정에 의해 6년 주기로 항공기가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중정비. 현장에 있는 B747-400은 문자 그대로 껍데기만 빼놓고 모두가 분해된 상태였다. 엔진, 바퀴 등 주요 부분은 물론이고 의자, 카펫까지 떨어져 나와 있었다.

    항공기 안으로 들어가보니 직원들이 바닥 리벳을 일일이 풀어내 점검 중이었다. 항공기 안쪽 단열재까지 보였는데, 조만간 단열재까지 일일이 열어봐서 점검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중에 조립할 때 수십만 개의 부품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만큼 ‘완전 분해’된 모습이었다.

    HMV점검의 경우 걸리는 기간은 30~40일.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기의 특성상 기체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큰 사고로 연결되기 때문에 리벳 하나까지 일일이 점검한 뒤 문제가 있으면 교체한다”고 말했다. 중정비가 끝나고 재결합되면 시험비행을 거쳐 항공사에 인도된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중정비 부문에서 유나이티드 항공 등 해외항공사로부터 벌어들인 수익은 500억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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