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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술 이야기 ⑦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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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판에서 자신이 창작한 칵테일이 맘에 든 본드는 이 술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야겠다고 여긴다. 본드는 포커 게임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면서 베스퍼에게 칵테일의 이름을 ‘베스퍼’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베스퍼는 짐짓 당황하며 그 칵테일의 쓴맛을 떠올리면서 조심스럽게 말한다.

“Because of the bitter aftertaste?”(씁쓸한 뒷맛 때문인가요?)

본드는 “No, because you′ve once tasted it, that′s all you want to drink.”(아니오. 한번 맛을 보면 그것만을 갈망하게 될 것이오)라고 답한다. 이 말을 듣고 베스퍼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지금까지 베스퍼 칵테일의 탄생 설화를 길게 설명했다. 이 칵테일은 지금도 베스퍼 마티니라는 이름으로 애주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술꾼들은 이 술을 마시면서 007과 베스퍼의 추억을 되새긴다.

젓지 말고 흔들어서



베스퍼 칵테일은 ‘카지노 로얄’의 속편인 ‘퀀텀 오브 솔라스’에도 등장한다. 22번째 007시리즈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전편에서 베스퍼의 비극적 죽음을 경험한 본드가 복수심에 사로잡힌 채 배후를 추적하는 스토리다. 본드는 볼리비아의 군부 독재자 메드라노 장군에게 가족을 희생당하고 복수를 노리는 카밀을 만난다. 본드의 목표는 냉혈한 사업가이자 베스퍼를 죽음으로 이끈 거대 범죄조직의 실질적 보스인 도미닉 그린. 그린은 망명 중인 메드라노 장군이 다시 권력을 잡는 것을 도와주는 대신 볼리비아의 물 공급원을 장악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린과 메드라노는 각각 본드와 카밀에게 제거당한다. 이후 본드는 러시아로 날아가 상습적으로 고급관료들에게 접근해 고급 정보와 돈을 빼내던 베스퍼의 옛 애인을 체포한다.

베스퍼 마티니는 본드가 마티스와 함께 올라탄 볼리비아행 비행기에서 등장한다. 마티스는 ‘카지노 로얄’에서 르쉬프의 모함으로 인해 이중첩자라는 오해를 받았으나 수사 결과 결백이 드러났다. 그는 은퇴해 이탈리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정보국과의 갈등으로 자금줄이 끊어진 본드를 도와줬고 함께 볼리비아에 가게 된다.

비행기 안의 바에서 술을 마시던 본드에게 마티스는 무엇을 마시느냐고 묻는다. 본드는 짐짓 모르는 체하면서 바텐더에게 자기가 마시는 술이 뭐냐고 묻는다. 본드는 속으로 베스퍼와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바텐더는 앞서 언급한 베스퍼 마티니의 레시피를 읊으면서 본드가 벌써 여섯 잔을 마셨다고 말한다. 그만큼 본드는 베스퍼를 사랑했으며 또 잊지 못했던 것이다.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김원곤

1954년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 의학박사(흉부외과학)

우표, 종(鐘), 술 수집가

現 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007의 술을 얘기하면서 그 유명한 대사-젓지 말고 흔들어서-로 상징되는 보드카 마티니를 떠올리는 이가 많다. 이 대사는 007시리즈 3탄 ‘골드핑거’에서 처음 ‘직접적으로’ 등장한 이후 007시리즈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화에서 패러디되며 영화사의 명대사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젓지 말고 흔드는’ 보드카 칵테일은 본드의 입을 빌리지 않았다뿐이지 007시리즈 첫 작품 ‘살인번호’에도 등장한다. 본드가 이 영화의 무대인 자메이카에 도착해 호텔에 여장을 풀었을 때 룸서비스를 가져온 바텐더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본드에게 술을 따라준다.

“One medium-dry vodka martini, mixed like you said, sir, not stirred.”(미디엄 드라이 보드카 마티니,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젓지 말고 흔들어서)

본드가 칵테일을 주문하는 장면은 영화에 묘사되지 않지만 007시리즈 1탄의 이 대사가 ‘젓지 말고 흔들어서’의 효시다. 오늘밤 007과 베스퍼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바텐더에게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고 외쳐보는 건 어떨까? 베스퍼의 테마음악이 흐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신동아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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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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