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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대운의 사나이 강희락 경찰청장

“운은 만들고, 때는 기다리는 것이다”

  • 이정훈│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

대운의 사나이 강희락 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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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의 사나이 강희락 경찰청장

강희락 경찰청장이 리더십과 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돈다. 연수원 때만 해도 많은 나이가 고민이었는데 경찰관이 되자 많은 나이가 그를 도왔다. 사시 출신이라고 새파란 사람이 과장이면 부하들은 쉬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 35세인 그는 제법 과장 티가 났다. 그리고 ‘가요반세기’란 별명에 걸맞게 밤무대에서 분위기를 휘어잡을 줄 알았으니 직원들은 그를 따랐다. 건대 분교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다른 과 직원들을 동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이다.

당시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88서울올림픽 준비였다. 1988년 여름, 전국을 도는 성화 주자가 두 번 충주를 지나갔는데, 이 성화 봉송로를 안전하게 지키는 게 경비과의 임무였다. 그는 지프를 몰고 충주시내 곳곳을 다니며 충주에 정이 푹 들었지만 곧 발령을 받아 청주경찰서 대공과장으로 옮겨갔다.

청주서 대공과는 청주 시내 3개 대학 시위를 막고, 대통령 전용 별장인 청남대를 관리하는 게 주 임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공(지금은 ‘보안’이라 한다) 형사들은 나이가 많아서인지 의욕이 적은 이가 많다. 따라서 운동권 학생을 잡아와 조사하다보면 ‘말발’에서 현저히 밀릴 수밖에 없다. 그는 즉시 대공간부연수 부소장을 하고 있던 이승재 경정에게 유물사관과 변증법, 민민투와 자민투에 관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매일 발표하게 했다.

그렇게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있는데 청주공단을 관리하는 청주서부경찰서 수사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곳은 강력사건이 많은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수사 형사들의 힘이 의외로 강하다. 형사들은 계급과는 별개로 자기들끼리의 대장이 있어 그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수사과장은 말만 과장이지 허수아비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는 술잔을 들고 철옹성 같은 형사 세계를 단박에 뚫고 들어갔다. 삼겹살 집에 30여 명의 형사를 모은 그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잔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열 잔을 받고 나니, 두세 바퀴를 돌아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소주잔을 전부 맥주잔으로 바꾸게 하고 소주를 가득 채워 건배를 제의했다. 그렇게 한 잔을 털어넣고 다시 한 잔을 채워 마시자고 하니 형사들의 기세가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두 번째 잔을 붓고 난 후 “2차 갈 사람 따라오라”고 하니 간부를 중심으로 서너 명만 따라 나왔다.



이 회식을 계기로 그는 형사들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청주서부서에서 검찰로 보낸 사건 송치서류 가운데 상당수가 ‘부적절 의견’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검찰에서 송치서류의 의견이 법조항과 맞지 않다며 되돌려 보냈기 때문이다. 사시 합격자인 그는 단박에 문제점을 알았다. 당시 일선서에서는 직원이 수사과장의 도장을 관리하며 검찰 송치서류에 의례적으로 도장을 찍는 게 관례였는데 그는 직접 송치서류를 본 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렇게 하자 반송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는 송치서류를 쓰는 조사계 직원들을 모아놓고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강의하며 송치서류를 제대로 만들도록 했다.

기자단과 충돌하다

이런 일들이 소문나면서 경찰청 본청의 관심을 받은 그는 서울로 올라가면서 새로 만들어진 보직인 경찰청 공보분석계장을 맡게 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경찰은 언론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언론에서 경찰을 ‘조지면’ 경찰은 국회와 행정부의 동네북이 됐다.

이에 김우현 당시 치안본부장이 술 세고, 입심 세고, 글 잘 쓰는 기자들을 상대하려면 그만한 직원을 내세워야 한다고 판단해 그를 지명한 것이다. 서울로 올라온 그가 기자실을 찾아가 첫 인사를 하자, 단박에 기자단은 “경정이 뭔데 인사를 와. 우리는 경무관 인사도 안 받아” 하고 들이받았다. 순간 자존심이 상한 그는 한바탕 속 감정을 퍼붓고 사표를 쓴 후 청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변호사 개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김우현 본부장이 찾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다시 올라와 공보분석계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다시 기자들을 성정이 만나보니 동아일보의 한진수 기자(연세대 출신)를 제외하곤 전부 그보다 젊었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김민배 기자를 필두로 절반 정도가 고려대 출신이었다. 기자들은 형사들과 비슷해 거센 것 같아도 한번 ‘통’하면 쉽게 마음을 연다. 그는 기질적으로 비슷한 기자들과 금방 하나가 됐다. 언론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경찰관을 뽑는 시험을 관리하는 고시계장으로 발령받아 문제도 출제하고 시험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경찰의 채점 방법이 영 구식이었다. 대입 수능을 비롯해 대부분의 시험은 OMR 카드를 이용해 금방 채점하는데, 경찰은 키펀치로 쳐서 채점하고 있었다. 그는 당장 OMR 카드로 채점하는 방식으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경찰관 당락을 결정짓는 인성검사 문제를 보니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엉터리였다. 그는 한국심리학회를 찾아가 경찰관에게 맞는 인성검사 자료를 만들어달라고 해 이를 적용했다.

이어 경찰 전체 살림을 책임진 경무국에서 그를 경무계장으로 불렀다. 경무계장은 경찰의 꽃인 총경으로 진급하는데 유리한 요직. 하지만 경찰청이 발표하는 신년사 송년사를 포함한 모든 연설문을 작성하는 어려운 자리였다. 경찰을 속속들이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 많기에 경찰의 모든 것을 경험한 사람이 총경으로 올라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거치는 요직이란 인식이 있었다.

이 자리를 거치지 않아도 진급할 방법이 많은 사시 출신은 결코 오지 않는 자리였다. 그는 경무계장 보직을 ‘천당과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지옥은 일 때문이었고 천당은 경찰 전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그는 백발이 되었다. 그런데 진급을 하려면 백발을 감추는 게 좋겠다는 선배들의 조언으로 염색을 했고 지금도 염색을 한다. 경무계장을 마친 그는 ‘드디어’ 총경으로 진급해 경북 청도경찰서장으로 나갔다.

수사형사들은 이따금 총을 소지하고 출동할 때가 있다. 그러나 형사라고 해서 모두 사격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사격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용의자와 1대 1로 맞닥뜨렸을 때 기싸움에 눌려 사격에 실패하는 이도 많다. 그는 눈이 아주 밝다. 군에 있을 때 특별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지만 권총 사격을 아주 잘했다. 청도 같은 시골에서는 이따금 시골 정서에 전혀 맞지 않는 강력사건이 일어난다.

히로뽕을 즐기는 한 사내가 추종자들과 함께 한 사람을 죽이고 또 한 사람의 손목을 자르고 도주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내가 왜관에 숨어 있다는 첩보가 오자 서장인 그는 “형사들 니들, 사격에 자신 없으면 총 들지 말라. 내가 놈의 다리를 쏴서 잡으마” 하고 권총을 들고 출동했다.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사시에 합격한 단순한 책상물림이 아니라, 순간 싸움을 할 줄 아는 무인 기질의 소유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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