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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의 언론과 현대사 산책④

6·25전쟁 시기 남북한의 신문(하)

북한의 작가, 시인, 문화인의 전쟁 동원

  • 정진석│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presskr@empal.com│

6·25전쟁 시기 남북한의 신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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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주필 장하일과 이원조

해방일보의 편집과 제작에 참여한 인물에 관해서는 해방일보 여기자 김가인(金佳仁)의 수기 ‘패주 5천리’가 가장 현실감 있는 자료이다. 수기는 1951년 ‘태양신문’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이듬해 2월 태양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발행하였다. 전쟁이 치열하던 때에 신문에 연재하면서 해방일보 관련자들의 실명을 밝힌 수기이므로 신빙성이 있는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김가인의 수기를 바탕으로 해방일보에 종사했던 인물을 정리해 본다.

장하일(張河一): 해방일보 발간 초기부터 책임주필이었다. 전쟁 전에는 평양에서 ‘로동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경력이 있었다.(김가인, ‘패주 5천리’, 태양문화사, 1952, 39쪽). 그의 아내는 작가 강경애(姜敬愛·1906.4.20~1943.4.26)였다. 장하일은 1931년 6월 간도로 가서 조선일보 간도지국을 경영하면서 용정의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광복 후 장하일은 북조선로동당 창립대회(1946.8.28~30) 때 황해도 대표로 참석했고, 전쟁 이틀 뒤인 6월27일자 로동신문에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한 전쟁에 모든 사업을 복종시키자!’는 글을 실었다. 그 직후 서울에 와서 해방일보의 책임을 맡았던 것 같다. 그는 8월 말 중앙당에 소환되어 평양으로 돌아가서 잠시 로동신문 주필로 영전하였으나 평양에서 후퇴할 때에 사업태만이라는 이유로 ‘민주조선’ 논설위원으로 격하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장하일은 1954년 4월에는 민주조선의 주필과 조선기자동맹 위원장에 취임했고, 1956년 4월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 되었을 정도로 북한 언론의 실세였다.

로동신문은 책임주필이 최고책임자로 그 밑에 주필, 부주필, 편집국장 등의 서열로 되어 있는데 1946년 10월의 판권에 나타나는 책임주필은 태성수(太成洙)였다. 1948년 3월부터 책임주필은 소련 출신 기석복(奇石福)이었으므로 장하일은 그 아래 편집국장이었을 것이다. 기석복은 1950년 말 책임주필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1951년 1월 박창옥(朴昌玉)이 잠시 ‘책임주필 대리’를 맡았다. 그는 북한체제 건설 초기에 소련계 제2인자로 1947년 초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근로자’의 주필을 맡았던 인물이다. 1951년 3월부터는 이문일(李文一)이 책임주필이 되었다. 이문일은 1956년 4월 장하일과 함께 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 되었다. 1956년 무렵부터 책임주필에 다시 태성수가 취임했다. 그는 전쟁 전 로동신문 초기 책임주필이었다가 두 번째로 책임주필이 된 것이다. 김일성대학 부총장 겸 문화선전 부상(副相)을 지내게 되는 인물이다.



이원조(李源朝·1909.6.2~1955?): 처음에는 조선인민보 편집국장이었다가 장하일이 평양으로 올라간 후 주필을 맡았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시인 이육사(李陸史)의 동생이다. 문학평론가로 조선일보 편집고문을 지낸 귀족 출신 이관용(李灌鎔)의 사위였다. 1930년대 초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참여하여 활발한 평론활동을 했다. 1935년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하여 1939년까지 근무했다. 광복 직후에 임화, 김남천, 이태준 등과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를 결성했으며,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하다가 6·25전쟁 전에 월북했다. 북한에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장을 지냈지만 남로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 남반부 공작의 본거지인 해주에서 ‘해주노력자’의 편집국장으로 있다가 전쟁 발발 후 서울로 와서 해방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주필을 맡았다.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김팔봉(金八峰·본명 金基鎭·1903.6.29~1985.5.8)은 인민재판을 받는 도중에 군중 속에 서 있던 이원조를 보았다. 그날은 7월2일로 해방일보가 창간된 날이었다. 해방일보는 인민재판이 열리던 바로 길 건너편 현재의 언론회관 자리에 있던 서울공인사(일제강점기 ‘경성일보’)에서 발행되었는데 이원조가 이 재판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지, 취재를 위한 참관이었는지 알 수 없다.

이원조는 1953년 남로당의 대거 숙청 때에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 1955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한다. 이때 이승엽, 임화 등은 간첩 혐의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기소된 12명 가운데 징역 15년형이 선고된 윤순달과 이원조는 사형을 면했다.

해방일보 참여 인물들

서강백(徐康百): 해방일보 편집국장. 일제강점기 조선중앙일보 정경부 기자로 출발하여 1939년 무렵부터 매일신보 정치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친일적인 글을 남겼다. 광복 후 서울신문 편집부장을 거쳐 편집국 차장을 지냈다. 전쟁 후 해방일보 창간 당시에는 정치면 편집 담당이었는데 편집국장 이원조가 주필로 승진하면서 편집국장이 되었다. 9·28 서울 수복 직전에 서울을 떠나 평양에서 며칠 동안 평남 도당 기관지 발행에도 참여하였으나 북으로 쫓겨 가다 평안남도 북단에 있는 개천(价川)에서 국군에 포위당했을 때에 아내와 아들 딸 가족을 모두 잃어버렸고, 자신도 고장(古場)과 풍장(豊場) 사이에서 비행기 폭격에 맞아 사망했다.

이주영(李周榮): 전쟁 전에는 평화일보 사회부장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동아일보 조치원지국장(1931.4~1932.6)을 지냈다. 1949년 8월1일부터 3일 사이에 경찰이 남로당 관련혐의로 여러 신문사 기자 22명을 검거했을 때에 구속되었다. 경찰은 관련 기자들 가운데는 남로당 중앙특수조직부 정보국원으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하여 군과 경찰, 정당·사회단체·국회·정부 등의 기밀을 탐지하여 남로당과 북로당에 제공하는 스파이 행동을 해 온 자가 있다고 말했다. 이주영은 중간 책임자급으로 분류되어 9월6일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유엔군의 서울 수복 직전 북으로 도주하던 중에 11월2일경 희천과 강계 사이에서 기총소사에 맞아 사망했다.

김제영(金濟榮):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두봉(金枓奉)의 사위로 해방일보 논설위원이었다. 일제 치하에는 동아일보 서무부와 사회부에 근무했다. 광복 후 1945년에는 ‘신조선보’에 참여했다가 1946년 4월에 창간된 독립신보의 영업국 차장, 안재홍의 한성일보 사회부장을 지냈다. 해방일보에는 8월말경까지 근무하다가 사라졌는데, 중국 지린성의 매화구(梅花口)역에서 해방일보 기자 일행과 마주쳤다. 북한군복을 입고 북한군 제8군단 본부가 있는 옌지(延吉)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송진근(宋珍根): 일제 치하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였다. 개성 출신으로 보성전문 법과를 졸업했고, 1936년 무렵에 아나운서가 되었다. 1943년 단파방송 청취사건으로 구속되어 징역 1년이 언도되었다. 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해방일보 취재부 기자로 활동했다. 해방일보 1950년 8월12일자 2면 머리에는 송진근이 고양군 숭인면에서 취재한 ‘토지 찾은 농민들의 환호는 고조’ 기사가 실려 있다. 그는 ‘야간주필’로 승진했고, 서울 함락 전인 9월24일 작은 별(小星) 4개를 다는 벼락감투를 얻어 썼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북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어 만주까지 갔을 때에는 서울에서 가지고 온 털외투의 속을 떼어 팔기도 했다.

이근영(李根榮): 해방일보 취재부장. 보성전문 출신으로 1934년 4월부터 동아일보가 폐간되던 1940년 8월까지 사회부에 근무했다. 1935년에는 ‘금송아지’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던 소설가였다. 1946년 2월에 서울신문 정리부장이 되어 이 해 4월 전조선신문기자대회 준비위원회 선전부장을 맡았다. 같은 해 10월경 서울신문을 사임했다. 해방일보 사원 42명이 9월26일 북으로 도주할 때에 이근영을 중심으로 8명이 한 조를 이루고 있었다.

홍두원(洪斗元): 해방일보 편집부장. 광복 후 조선중앙일보 기자였다.

김가인의 수기에 나오는 인물로 해방일보에 종사하다가 북으로 도주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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