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하루 10시간 뼈 빠지게 일해도 일당 1만2000원, 사고라도 당하면 쫓겨나는 신세”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0-01-06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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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사고 현장(왼쪽). 이 사건으로 사망한 일본인들의 시신 운구 현장에서 유가족들이 합장하고 있다.

    “저도 투어 나갔다가 사고 당하면 딱 이런 취급을 받겠죠. 모르던 사실도 아닌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씁쓸해요. 일하다가도 자꾸 그 생각이 나고….”

    A씨를 만난 건 2009년 12월 초 서울 명동에서였다. 가로수마다 색전구가 반짝이고 상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밤이었다. 축제 분위기의 거리를 오가는 행인 셋 중 한 명은 일본인으로 보였다. 지도를 펴들고 쿠폰북을 뒤지며 그들은 떡볶이 포장마차, 삼계탕집, 화장품 가게를 누볐다.

    사격장도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한 건물 12층에 위치한 실탄 사격장에 들어서니 일본인 서너 명이 총 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TV에서 한국 사격장에 대한 보도를 보고 호기심에 찾아왔다고 했다. 사격장 입구에는 ‘후지TV에 방영된 곳’이라는 소개 문구가 일어로 쓰여 있었다. 명동 거리의 관광객들 사이에서 11월 중순 일어난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참사는 이미 까맣게 잊힌 듯했다.

    그러나 A씨는 여전히 그 충격 속에서 산다. 그의 직업은 관광통역안내사. 흔히 ‘가이드’라고 한다. 기자를 만난 날도 막 한 팀의 관광객들을 호텔에 ‘모셔드리고’ 오는 길이었다. 그러면서 계속 ‘사고’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부산 사고 이후 날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고민한다”고 털어놓았다.

    “소처럼 일하다 개처럼 죽었다”



    부산 사격장 사고 당시 현장에는 일본인 관광객뿐 아니라 한국인 가이드 2명도 함께 있었다. 이명숙(40)씨는 현장에서, 문민자(66)씨는 나흘간 화상 치료를 받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각각 세상을 떠났다. A씨를 힘들게 한 건 그 후 벌어진 상황이다. 언론이 일본인 관광객의 죽음을 떠들썩하게 보도할 때, 가이드 2명의 유가족들은 장례비를 구하러 뛰어다녀야 했다(이후 장례비는 부산시가 일단 선지급했다). 외국인 사망 사고로 국내 관광산업이 위축될까 우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이드의 죽음을 애도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행사 역시 이들을 외면했다. 문씨는 1989년부터, 이씨는 2007년부터 줄곧 한 회사에 근무했다. 하지만 이들의 ‘사후(死後)’를 돌봐줄 장치는 없었다. 일본인 관광객은 여행자보험, 사격장 직원은 산재보험으로 각각 피해를 보상받게 됐지만 가이드들이 받은 보상은 현재까지 전무하다. 고용돼 있되 고용인은 아닌 가이드 직군의 특수성 때문이다.

    “고용계약만 없을 뿐 가이드들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며 회사 돈을 벌어줍니다. 관광객이 많을 때는 한 달 내내 투어를 나가요. 가라는 코스, 가라는 업소, 하라는 옵션을 하죠. 그런데 사고를 당하면 졸지에 프리랜서가 됩니다. 퇴직금 산재보험 아무것도 못 받는 ‘개죽음’이죠. 이번 사건을 보고 우리끼리 그랬습니다.

    소처럼 일만 하다 개처럼 죽었다고요.”

    인터뷰를 익명으로 진행한 건 그가 앞으로 여행업계에서 일하는 데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후 만난 가이드들도 한결같이 실명과 업체명은 비밀에 부쳐주기를 바랐다. 전국에서 활동 중인 4000여 명의 관광통역안내사 가운데 1400여 명이 가입해 있는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이하 안내사협회) 강영만(39) 사무국장은 “처음엔 협회 가입조차 꺼리는 분이 많았다. 회원들의 권익을 얘기하다 괜히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회원들이 큰 충격을 받고 어떻게든 문제를 삼아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협회가 생긴 이래 이렇게 전화가 쏟아진 건 처음이에요. 두 분 소식이 알려진 뒤 수많은 회원이 전화를 걸어와 우리라도 뭐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난리였어요.”

    안내사협회가 유족들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을 제안하자 순식간에 2500만원에 달하는 성금이 모였다. 협회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지금도 “가슴속에 담아 두어야 할 슬픔과 애통함이 너무 커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로 시작하는 모금 안내문이 떠 있다. 강 사무국장은 “원래는 12월6일까지만 돈을 받아 유족에게 전달하려 했는데 입금이 이어져 계좌를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기본급 10만원짜리 노동자

    관광통역안내사는 1962년 생긴 국가자격증. 연 1회 실시되는 시험에 합격하면 관광진흥법상 ‘관광종사원’으로 일할 수 있다. 여행사에 취업해 ‘가이드’가 되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지만 이들의 신분은 제각각이다. 강 사무국장에 따르면 가이드의 고용 형태는 크게 세 가지. 정규직과 전속파트, 프리랜서로 나뉜다. 전체 가이드의 5% 안팎인 정규직 가이드는 회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매달 일정액의 급여와 4대 보험 혜택을 받는다. 이들 외에 상당수는 ‘전속파트’라는 이름으로 일한다. 특정 회사에 소속된 점은 정규직과 같지만 직원은 아닌 그룹이다. 월급과 4대 보험이 없고 관광 안내를 나갈 때마다 일당만 받는다. 프리랜서는 말 그대로 자유직이다. 어느 회사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반면 일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사망한 가이드 2명은 모두 전속파트였다. 한 회사 일을 꾸준히 했음에도 퇴직금과 산재보험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다.

    “사고를 당한 가이드가 정규직이었다면 최소한 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됐겠죠. 하지만 손에 쥔 액수는 형편없었을 겁니다. 가이드 월급이라는 게 20만원이 채 안 되거든요. 그동안 밖에 말하기 창피해서 쉬쉬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이드 인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엔화 강세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다. 관광객이 붐비는 공항 풍경.

    강 사무국장은 2007년 안내사협회가 조사한 자료를 꺼내 보였다. ㅎ여행사의 직원 월급 체계는 두 개로 나뉘어 있다. 직원은 기본급 10만원, 상여금 300%에 안내수당 5000원. 전속파트는 기본급 및 상여금이 없는 대신 안내수당이 1만5000원이다. 안내수당은 가이드가 투어를 이끌 경우 받는 수당. 프리랜서는 보통 전속파트직과 같은 수준의 보수를 받는다. ㅎ여행사 정규직이 한 달 내내 일해 안내수당을 30일치 받을 경우 급여명세서에 찍히는 금액은 25만5000원이 된다. 물론 여기서 국민연금, 의료보험료 등이 공제되기 때문에 실수령액은 더 적다. 전속파트나 프리랜서는 20만원쯤 많은 45만원까지 벌 수 있지만, 사고가 나면 아무 보호대책 없이 내몰리게 된다.

    “이 자료를 만든 건 그 무렵 가이드들 사이에서 비정상적으로 낮은 임금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회원들을 찾아다니며 임금을 조사하고 ‘힘을 합치자’고 얘기한 가이드들이 여행사에 찍혀 불이익을 당하면서 권리 주장 요구가 쑥 들어갔죠. 그때나 지금이나 임금은 거의 비슷할 겁니다. 그러다가 이번 일이 생긴 거예요.”

    처우 개선 요구하면 ‘블랙 리스트’

    당시 ‘불이익’을 당한 이들 가운데는 김아미(43) 제주관광통역안내사노조 위원장이 있다. 그는 1990년부터 일해온 경력 20년차 베테랑 가이드. 그러나 2007년 이후 한 달에 1~2건씩 중소여행사의 일을 받는 것 외에는 사실상 휴업 상태다.

    “그때 제주도에 있는 여행사들 사이에서 ‘블랙 리스트’가 돌았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13명의 주동자에게는 투어를 맡기지 말라는 내용이었죠.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ㄹ사, ㅎ사 같은 대형업체들이 이 일을 주도했고, 실제로 그때부터 일이 뚝 끊겼어요. 그전까지는 일을 골라 하는, 제법 잘나가는 가이드였는데 말이죠.”

    그가 대단한 걸 요구한 것도 아니다. 요구사항의 핵심은 관광통역안내사의 일비(日費)를 3만원으로 인상해달라는 것, 그리고 고용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IMF 이전까지만 해도 가이드들은 박봉일지언정 대부분 정규직으로 일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으로 비정규직이 확산되자 여행사들도 앞 다퉈 정규직 가이드 채용을 중단하고 전속파트나 프리랜서 같은 고용 형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임신, 출산 등을 이유로 한 해고 사태가 줄지어 벌어졌다. 정규직 가이드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행사를 폐업한 뒤 다른 이름으로 다시 개업하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경력 20년차 일본어가이드 B씨에 따르면 부산 화재 사고로 사망한 문씨 역시 1989년 자격증을 취득한 뒤 처음에는 ㅅ여행사에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그런데 ㅅ여행사가 2005년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문제는 ㅅ여행사의 경영진이 곧바로 이름도 똑같은 ㅅ관광이라는 여행사를 차린 뒤 가이드를 제외한 직원 대부분을 다시 채용했다는 점이다.

    “갑자기 실직 상태가 된 가이드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어요. 이미 다른 여행사에서도 정규직은 뽑지 않는 상황이었는데요. 결국은 그동안 쭉 같이 일해온 ㅅ관광에 가서 전속파트 형태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거의 모든 가이드가 그 회사에 다시 들어갔죠. 같은 사람들이랑 똑같은 일 하면서 신분만 비정규직으로 바뀐 채로요. 이번에 문 여사님 사고 나니까 ‘고용 계약이 없는 비정규직’이라는 얘기가 바로 나오는데, 이런 속사정 다 아는 우리들은 그 얘기 들으면 아주 분통이 터져요.”

    2007년의 단체행동 시도가 무위로 끝나면서 가이드들의 고용 문제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그래도 당시 노력 덕분에 조금이나마 급여를 올린 회사들이 있다. 여행사들 사이에서 일단 관광통역안내사들을 잠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국내 굴지의 여행사에 근무하는 정규직 가이드 C씨도 그때 이후 임금이 ‘소폭 인상’됐다고 했다. 그의 2009년 11월 소득명세서를 봤다. 기본급 18만6000원, 통역안내사 수당 18만6000원이 찍혀 있다. 총 소득액은 37만2000원이다. 여기서 국민연금 1만8040원, 고용보험료 1674원, 의료보험료 2만6610원, 노동조합비 1만원을 제하고 31만5676원을 수령했다. “2007년까지 10만원이던 기본급이 이후 몇 번의 인상 덕에 18만6000원으로 올랐어요. 안내수당도 5000원에서 6000원이 됐지요. 지난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서 수당 18만6000원을 받은 겁니다. 전속과 프리랜서의 안내수당도 2만~3만원 수준으로 올랐다고 들었어요. 예전과 비교하면 오른 건 사실인데 총 수입이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죠. 일이 적은 달에는 여전히 손에 쥐는 돈이 30만원이 채 안 돼요.”

    물론 이 액수가 C씨 수입의 전부는 아니다. 가이드들은 관광객의 쇼핑 및 옵션 구매에 따라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는다. 문제는 기본 급여로 생활할 수 없는 이들에게 쇼핑 및 옵션 판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이다.

    2박3일 관광에 2만6000원

    가이드 경력 7년차 D씨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치열하게 물건을 팔아야 한다”고 했다. 중국 관광객 전문 프리랜서로 일하는 그의 안내수당은 맡는 팀의 인원수에 따라 달라진다. 관광객 한 명당 30위안. 현재 환율로 따지면 4800원쯤이 가이드 팁으로 배정된다. 10명 단체를 받으면 4만8000원이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중국에서 한국까지 손님을 데려오는 TC(tour conductor)의 몫. 기사팁은 하루 2만원으로 고정돼 있다. 하루 종일 10명의 관광객과 씨름하면 1만2000원을 받는 셈이다.

    “패키지 투어를 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일정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잖아요. 이 돈은 손님들 호텔에 모셔드리고 집까지 택시 타고 가기에도 부족한 액수죠. 여행사라고 그 사실을 모르겠어요? 결국 이 돈 주는 건 ‘어떻게든 쇼핑, 옵션을 창출해라. 너 먹고살 돈은 스스로 벌어라’라는 메시지인 겁니다.”

    실제로 각 여행사가 산출하는 여행상품원가 구성항목에는 관광통역안내사 임금이 아예 빠져 있다. 여행상품 가격을 어떻게든 낮추고 보는, 고질적인 덤핑 판매 관행 때문이다. 안내사협회 강 사무국장에 따르면 일본 신주쿠나 오사카 대로에서 판매하는 한국 여행상품 가격은 보통 1만8000엔(23만6000원)에서 3만엔(39만3500원) 사이다. 2만엔짜리 상품이 팔리면 항공료와 일본 여행사 몫으로 1만8000엔이 나간다. 한국 여행사는 판매가의 10%에 불과한 2000엔(2만6000원)으로 2박3일 동안 관광객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관광도 시켜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적자를 메울 방법은 쇼핑·옵션 판매수수료밖에 없다.

    “해외여행객은 동선 하나하나마다 수수료가 걸려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 관광객을 자기 시·도로 데려오면 1명당 1만원 정도씩 수수료를 줍니다. 대형 면세점들도 관광객이 가게에 들어오기만 하면 여행사에 1만원 정도의 입점수수료를 줘요. 매출이 발생하면 그에 따라 별도의 판매수수료를 지급하지요. 여행사 입장에서는 아무리 덤핑 판매를 해도 관광객이 수수료 지급 업체를 하루에 몇 군데씩 방문해주기만 하면 상품의 기본 단가를 맞출 수 있게 됩니다.”

    국제시장 빈대떡 집도 지정업소

    4박5일간 관광객들이 비행기를 5번 타게 만드는 여행 상품은 이런 구조에서 탄생한다. 중국전문 가이드 E씨는 “비행기를 5번이나 타는 이유는 나흘 사이에 서울, 부산, 제주도를 다 둘러봐야 하기 때문”이라며 “수속을 기다리고 곳곳의 면세점에 다 들르면서 이분들이 한국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게 될지 솔직히 미지수”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입점수수료는 관광통역안내사에게 오지 않는다. 이들은 판매수수료 가운데 일정 비율을 받을 뿐이다. 면세품 가격의 3%, 비면세품 가격의 7%가 가이드 몫. 그래서 쇼핑 사이사이 남는 시간에는 옵션을 판매해야 한다. 역시 여행사와 수수료 계약을 맺은 업체를 이용한다. 난타 공연, 워커힐쇼, 땅굴 견학, 한국식 마사지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여행사와 가이드가 나눠 갖는다. B씨는 “일본인 관광객 한 명이 난타 공연을 보면 2만원 정도가 회사에 떨어진다. 가이드는 그 가운데 3000~5000원을 받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광통역안내사의 개성과 전문성은 발휘되기 어렵다. 여행사가 지정한 장소, 지정한 옵션을 최선을 다해 판매하기에도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여행사와 사전에 계약을 맺지 않은 장소로 여행객을 데려갔다가는 벌금 등 페널티를 받는다. 심지어 계약해지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사라진 ㄷ여행사에서 팀장으로 일하던 F씨는 2004년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팀원 가운데 한 명이 관광객을 회사에서 지정하지 않은 사우나로 안내한 게 화근이었다.

    “마침 그날 폭설이 내려서 손님이 차를 타고 멀리 가야 하는 사우나는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대요. 호텔 주변에는 회사가 지정한 업소가 없었고요. 결국 이 가이드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근처에 있는 사우나를 소개했는데 그게 문제가 된 거죠. 저는 그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후배를 지켜주겠다는 마음에 ‘제가 대신 책임을 지겠다’고 했어요. 결과는 해고였죠.”

    F씨는 소송 끝에 복직했지만,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D씨는 “요즘엔 회사에서 프리랜서에게도 ‘지정업체를 안 가면 벌금 O만원’하는 식으로 업무지시서를 보낸다. 우리는 관광안내원이 아니라 회사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며 돈을 벌어다주는 ‘앵벌이’일 뿐”이라고 했다. A씨는 “부산 사격장 화재사건은 여행사가 가이드에게 특정 옵션을 강요하는 풍토에서 발생한 사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어떤 업체들이 여행사와 수수료 계약을 맺을지 생각해보세요. 여행사한테 돈 안 줘도 관광객이 알아서 찾아오는 곳은 굳이 그런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거든요. 좋은 공연, 대형 면세점도 옵션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이번에 사고 난 사격장처럼 노후하고 위험한 곳도 적지 않아요. 고객이 사격장에 가길 원하면 가이드는 여행사가 가라는 곳으로 모셔가는 겁니다. 심지어 부산 국제시장의 빈대떡 집 중에도 지정업체가 있습니다. ‘이 집이 가장 맛있다’고 데리고 들어가면, 나중에 빈대떡 값 일부가 여행사로 송금되는 거예요.”

    이제는 여행객들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관광통역안내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의심하고 ‘속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경력 7년차 영어가이드 G씨는 “공항에 나가면 솔직히 손님 관상부터 본다는 가이드가 많다. 저 사람은 얼마짜리인가 속으로 따져보는 거다. 나는 여행객을 볼 때 그들의 눈부터 바라본다. 10명 중 7~8명의 눈에서 ‘너한테 안 속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읽을 때면 숨이 턱 막힌다”고 했다.

    “다치지 마라, 죽어도 다치지 마라”

    “여행은 원래 일상의 어지러움 다 떨치고 마음껏 행복해지기 위해 떠나는 거잖아요. 그런데 패키지 투어를 오는 분들은 혹시라도 가이드한테 속을까봐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해요. 가이드들은 손님을 즐겁게 해드려야 한다,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는 마음 한편으로 계속 ‘돈도 벌어야 하는데’ 생각하고요. 그렇게 돈지갑과 사기꾼이 함께 보내는 2박3일이 과연 행복하겠습니까.”

    영어가이드의 특성상 G씨는 미국, 유럽 등에서 오는 관광객 팀과 싱가포르, 필리핀 등에서 오는 관광객 팀을 번갈아 맡는다. 미국 유럽의 관광객들은 처음부터 여행 콘셉트를 갖고 자체적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쇼핑, 옵션에 대한 부담이 없다. 대신 안내수수료를 15만~20만원 수준으로 받는다. 관광안내통역사로서 역량을 발휘해 한국을 충실히 소개하는 데 대한 대가다. 하지만 싱가포르 필리핀 등 동남아의 영어권 국가에서 온 관광객의 여행 패턴은 일본, 중국 패키지 투어팀과 다르지 않다. 형편없는 안내 수수료와 여행사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이번엔 ‘앵벌이’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처럼 투어를 나갈 때마다 냉·온탕을 오가기 때문에 그는 쇼핑, 옵션 수수료에 의존하는 우리 관광의 문제점을 더욱 절감하는 듯 보였다.

    “동남아투어팀을 안내할 때는 제 설명이 영미권 관광객을 대할 때와 다르다는 게 저부터 느껴져요. 바쁘니까요. 하루에 대여섯 군데, 꽉 짜인 일정을 돌려면 안내보다는 관광객 인솔과 안전 관리가 더 중요하고요.”

    특히 ‘다치면 안 된다’는 건 관광통역안내사들에게 지상과제다. 부산 사격장 화재사건이 나기 전에도 가이드들 사이에선 “사고 나면 끝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수많은 가이드가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업계를 떠났기 때문이다. B씨가 아는 한 가이드는 일본인 관광객들과 돌솥비빔밥집에 갔다가 뜨거운 돌솥에 안면 화상을 입었다.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지만 여행사는 ‘개인 책임’이라며 외면했다. 식당 역시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영세한 곳이어서 아무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치료 때문에 일을 쉬어야 하니 당장 생계가 어려워질 수밖에요. 그래서 피해 가이드가 계속 여행사에 치료비라도 좀 도와달라고 사정했는데 결과는 해고였어요. 정규직이 아니었으니 사실 해고랄 것도 없고, 그냥 다시는 일을 안 준 거죠. 그렇게 업계에 소문이 나면 다른 여행사도 그 사람을 찾지 않아요.”

    여행사 측의 대응에 불만을 품은 가이드가 많았지만, 누구 하나 드러내놓고 항의하지 못했다. ‘블랙 리스트’에 오를 것이 두려워서다. B씨에 따르면 여행사가 가진 전가의 보도는 ‘배정권’이다. 정규직이나 전속파트 신분의 가이드들은 회사로부터 매달 꾸준한 양의 일을 보장받지만 일의 성격은 천차만별이다. 패키지팀 인원, 성별, 연령대 등에 따라 쇼핑, 옵션 수입에 큰 차이가 난다.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B씨의 설명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관광 상품이 ‘2인 이상 출발 가능’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 판매됩니다. 실제로 2명짜리 패키지팀도 많아요. 이런 팀을 맡으면 하루 종일 일하고도 쇼핑 옵션 수입이 거의 없을 수 있지요. 반면 여고 동창생 30명이 함께 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어요.”

    그에 따르면 회사나 가이드는 일정표만 봐도 이 팀에서 수입이 얼마나 나올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마음에 안 드는 가이드에게 나쁜 팀만 줄곧 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이드가 항의할 수단은 없다.

    “불 다 꺼놓고 마구 때리는 거나 비슷해요. 누구한테 맞는지 뻔히 알아도 항의할 근거가 없잖아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서울 명동에는 해외 관광객을 겨냥해 일본어, 중국어 간판을 단 상점이 크게 늘었다.

    “관광 가이드, 우리는 캔디”

    여행사 입장에서 ‘예쁜’ 가이드는 옵션과 쇼핑을 열심히 알선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해서 회사 수입을 올려주는 이에게 당연히 좋은 팀이 배정된다. 관광 안내에 집중하느라 쇼핑센터에서 충분한 시간 머무르지 못한다면? 일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A씨는 “이런 구조 때문에 정말 가이드 직에 애정을 갖고 일하려는 이들이 업계를 떠난다. 신규 진입도 거의 없다”고 했다.

    가이드들에 따르면 관광 안내에 충실하고 양심적으로 옵션, 쇼핑을 권하는 이들이 벌 수 있는 수입은 연 2000만~3000만원 수준이다. 외국어 실력과 문화 역사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추고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하는 전문직 종사자로서는 초라한 수준이다. 그래서일까. 안내사협회 조사 결과 현재 활동 중인 관광통역안내사의 평균 연령은 48세로 나타났다.

    E씨는 “몇 해 전부터 재중동포 무자격자 가이드들이 여행업계에 뛰어들면서 업계 물이 많이 흐려졌다. 이분들은 한국 관광산업의 미래나 국격(國格) 같은 거 고민하지 않고 얼른 돈 많이 벌어서 돌아갈 생각만 한다. 그런 분들과 경쟁하기 싫어서 능력 있는 가이드 상당수가 일을 그만뒀다. 정말 이 일이 좋은 사람들, 또는 다른 데 갈 데 없는 사람들만 남아서 버티고 있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들어와 처음 만나는 사람은 가이드예요. 그들에 따라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좌우됩니다. 그런데 돈 버는 일에 혈안이 된 이들만 남고, 능력 있는 이들이 다 떠난다면 관광 한국의 미래가 있겠어요?”

    E씨의 일갈이다.

    최근 우리 여행업계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맞았다. 엔고 특수로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현지 은행에 환전을 위한 원화가 부족할 지경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는 2010년을 ‘한국 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이런 분위기를 이어갈 생각이다. 2012년까지 연간 외래 관광객 1000만명 유치, 관광수입 13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화려한 장밋빛 전망 뒤에서 관광통역안내사들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한 채 묵묵히 외국인 관광객을 맞고 있다.

    B씨는 “회사에서 무시당하고 관광객들에게 오해받을 때는 힘이 쭉 빠지지만 순간순간 느끼는 행복감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한다. ‘지금껏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속이고 살았는데 선생님 설명을 들으며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는 재일교포의 고백, 우리나라의 매력에 빠져 몇 번씩 다시 오면서 ‘설명은 꼭 선생님이 해달라’고 지명하는 일본인 주부들의 미소 같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 따르면 2009년 10월말 현재 우리나라 여행업체 수는 8977개다. 1982년 여행업제도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고, 1989년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되면서 소규모 여행업체가 폭발적으로 설립된 덕분이다. 2009년 12월 여행업체 설립자본금이 인하되면서 작은 여행사는 더 많이 생겨날 전망이다. 이제 6000만원만 있으면 국외 여행업체를, 3000만원이면 국내 여행업체를 세울 수 있다. 이들의 ‘피 튀기는’ 경쟁 속에 무리한 덤핑 판매와 옵션·쇼핑 강요 관광은 공고하게 정착될지 모른다.

    부산 사격장 사고가 난 뒤 문화관광부는 안내사협회에 관광통역안내사들의 요구사항을 올리라는 공문을 보냈다. 강 사무국장은 “상해보험 도입, 표준근로·용역 계약서 보급 등에 대한 내용을 적어 보냈다”고 했다.

    “최소한 협회 차원에서 관광통역안내사의 산업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공제보험이라도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썼어요. 하지만 검토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아무 얘기가 없거든요.”

    그는 “이번 사고가 난 뒤 가이드 몇 명이 한자리에 모여서 우리가 한날한시에 일을 멈추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얘기한 적이 있다. 한 해에 외국인 관광객 700만명이 입국한다니 하루 2만명쯤은 아마 공항에서 울게 될 거다. 경복궁 광화문 제주도 곳곳에서도 길을 잃어 헤매는 외국인이 속출할 거다. 정부는 정말 그런 상황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의 입장을 들었다. “안내사협회의 요구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당장 내놓을 대책은 없다”고 했다. 여행사 쪽에 고용이나 급여 등과 관련해 별도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방침과 어긋나고, 덤핑 판매로 야기되는 문제는 업계 자율 규제를 통해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번 사고로 사망한 두 명의 가이드에 대해서는 부산시가 조례 제정을 통해 소정의 위로금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연말 관광산업유공자 표창 때 이 두 명을 특별 수상자로 올려 상을 주겠다고 했다.

    부산 화재사고로 숨진 이명숙씨의 남편 최영찬씨는 이 소식을 전하자 반가워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서 지금껏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아내를 화장하고 나니 이미 부산시의 사고대책반은 문을 닫은 뒤였다. 유족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황망한 마음에 그저 시간만 보낸 12월14일 현재까지, 그가 받은 보상금은 0원이다.

    “여행사에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위로금은 좀 주겠다고 합디다. 사실 여행사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저도 그 회사 어려운 거 뻔히 알기 때문에 뭘 더 요구할 생각도 없어요. 우리 집사람 죽은 걸 정부에서 잊지는 않았다니, 그것만 해도 위로가 됩니다. 앞으로는 사람이 일하다 죽었는데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그런 상황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뭐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민자씨의 아들 박현수씨는 아직도 사건 뒷수습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4일간 중환자실에 입원한 탓에 생긴 2800여만원 치료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병원에서 이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처분해준 ‘지급 유예’ 기간이 12월 중순이면 끝난다. ㅅ관광의 협조로 산재를 신청했지만, 과연 문씨가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관광산업의 수레바퀴는 허덕허덕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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