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국방부 3각 파워게임의 전말

기무사·현역·외부인사 얽힌 긴장관계…국방개혁 앞두고 ‘폭풍전야’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0-01-07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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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밤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기무사의 연락장교 조사
    • 대청해전 직후 격노한 장수만 차관과 ‘서열10위’論
    • 대통령 측근 의견서에 담긴 ‘기무사 행보 비판’
    • 기무사령관이 조계종 총무원장을 찾은 까닭은
    • ‘국방부의 국회 사찰’ 장관 보고문서, 누가 왜 유출했나
    • MB대선참모의 개혁실장 내정…“전쟁하러 오는 것 아니냐”
    •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국방부 수뇌부에 전한 ‘추천의견’
    • 연말·연초 국방부 고위직 인사를 주목하는 이유
    국방부 3각 파워게임의 전말
    #장면1.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취임을 계기로 조만간 4성 장군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던 2009년 9월 초순, 국방부 주요 인사들과 국회 국방위원회 관계자들 사이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하나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발표도 되지 않은 진급대상자 명단이었다. 합참의장을 포함해 주요 직위가 모두 포함돼 있었지만, 눈길을 끌었던 대목 가운데 하나는 김종태 국군기무사령관(중장)이 대장으로 진급해 야전 군사령관으로 나간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막상 인사발표가 있었던 9월14일, 김 사령관의 이름은 명단에 없었다. 애초에 잘못된 명단이 돌았던 것인지, 그 사이 진급대상이 바뀐 것인지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설명이 엇갈린다. 분명한 것은 이 ‘잘못된 명단’ 건과 관련해 국회와 정보기관 등에서 연락업무를 담당하는 군 관계자 상당수가 기무사령부의 보안조사를 받았고 일부는 징계처분을 당했다는 것. ‘인사 관련 유언비어 유포자 처벌’이라는 게 국방부의 공식입장이지만, 군 관계자들 사이에서 기무사의 행보를 두고 뒷말이 나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장면2. 10월 중순 이른바 ‘대통령 측근’으로 불리는 한 인사는 ‘국방개혁 결실방안’이라는 의견서를 김태영 장관에게 건넸다. 국방예산 합리화 문제와 관련해 여러 차례 ‘소신’을 피력한 바 있는 이 인사의 의견서에 국방부 고위관계자들이 긴장했던 것은 불문가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인사와 예산, 조직 등 다양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이 의견서가 공격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기무사의 최근 행보였다. ‘사령관이 대통령을 독대한다’는 소문이 퍼진 데다 민간인 사찰 의혹이 제기되는 등 기무사의 움직임이 군과 정치권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는 게 그 요지였다. 이 문제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정권에 만만찮은 부담과 후유증으로 남을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면 3.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남북 해군 간 교전 사태가 벌어진 직후인 11월 중순 국방부 회의. 이날 장수만 국방부 차관은 참석한 국방부와 합참의 고위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전한다. 교전과 관련한 주요 상황정보가 자신에게 실시간으로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이 그 골자. “차관이 이렇게 중요한 사건에 관한 정보를 신문을 보고 알아야 하느냐”고 일갈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 차관은 보안정보의 언론 유출 문제를 격한 어조로 비난했다고 알려져 있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이에 대한 군 고위관계자들의 반응. “국방부 차관은 다른 부처와 달리 장관부터 따질 경우 서열 10위에 해당하는 자리인데, 경제관료 출신인 장 차관이 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거나 “장 차관 역시 지난 여름 예산문제와 관련해 장관을 건너뛰고 청와대와 직접 논의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이야기였다. 8월 이상희 전 장관의 ‘항명성 서신 파동’ 이후 국방부 내부의 정서를 보여주는 반응이었다.

    세 개의 힘

    앞서 살펴본 세 가지 에피소드는 최근까지 국방부와 군 주변에서 세 종류의 파워그룹이 어떻게 서로 얽히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각각 군 고위관계자들을 포함한 국방부 내부인사들, 새 정부 들어 국방부에 입성한 이들을 비롯한 이른바 대통령 측근 그룹, 그리고 김종태 사령관을 필두로 한 기무사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국방부와 기무사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면, 두 번째는 측근그룹과 기무사 사이의 이상기류, 세 번째는 외부출신 인사들과 내부출신 인사들 사이의 길항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지난해 이후 이들 세 가지 힘은 꾸준히 긴장관계에 있었고, 당분간 비슷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의 흐름과 국면 변화에 따라 얽히고설킨 힘의 균형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대체적인 구도는 여전히 뚜렷하다. 특히 국방개혁과 군사 분야 합리화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이들 힘과 힘의 충돌이 어떤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낼지도 쉽게 점칠 수 없는 형국이다.

    이들이 새 정부 출범 이후 군과 국방부 주변에서 어떻게 얽혀왔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전개될 그림은 또 무엇인지, 지금부터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공간’이 만들어진 이유

    국방부 3각 파워게임의 전말

    2008년 7월 조계종을 비롯한 전국 각지 사찰의 스님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 시국법회’를 마친 후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실세 중의 실세’류우익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고교 동기동창이자 인척관계인 김종태 기무사령관의 발탁을 두고 임명 초기부터 뒷말이 무성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청와대 독대보고에 대한 일련의 소문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반면 야전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작전통’ 이상희 전 장관의 경우 기무사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 초기의 긴장관계가 주로 기무사와 국방부 인사들 사이에서 빚어진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7월 하순 김 사령관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예방한다. 공식명분은 신임 인사. 그러나 당시는 이미 취임 후 4개월 이상 지난 시점으로, 공교롭게도 한승수 총리가 총무원장을 예방한 직후였다. 이른바 ‘종교편향’ 논란과 맞물려 촛불시위 동참을 고려하던 불교계에 ‘우호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작업으로 비치기에 충분한 정황이었다. 이러한 행보가 과연 기무사령관의 직무에 포함되는지는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분위기’에 진노해 있던 당시 청와대의 눈으로 보자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다.

    이즈음 김 사령관은 이명박 대통령 본인을 포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에게 이른바 ‘독대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독대 횟수는 그리 많지는 않다는 게 당국자들의 한결같은 설명이지만, 당시 김 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보고 사실이 널리 전해지면서 청와대와 군 주변에서 기무사의 위상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이름하여‘문고리 권력’이었다.

    김 사령관이 이렇듯 적극적인 행보를 펼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는 이상희 당시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여권 관계자들 사이의 불편한 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강직한 군인’이라는 이 장관의 성격이 청와대와 군 사이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장관직의 ‘정무적 특성’과 잘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막 쏟아져 나오던 시점이었다. 2008년 3월의 장성급 인사와 관련해 이 장관이 청와대의 ‘의중’을 신경 쓰지 않고 독자적으로 인사안을 만들어 올렸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청와대와 당시 국방부 수뇌부 사이의 벌어진 틈에서 상대적으로 청와대와 가까웠던 기무사령관이 ‘정무적 행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는 게 국방부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도 ‘고민거리를 알아서 챙기는’ 김 사령관의 움직임이 싫을 이유가 없었으리라는 것. 이후 제기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 김 사령관의 독대 보고 채널을 계속 유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사이버방호사령부의 정치학

    ‘실세 사령관’으로서 그의 평판은 기무사 내부에도 영향을 미쳤다. 취임 이후 김 사령관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기무사 전역자들의 재취업 문제. 자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관련업계에서는 곤혹스럽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높아진 위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기회가 생긴 기무사 관계자들의 사기는 급속도로 상승했다. 숙원이었던 새 청사 입주를 마무리한 것이 2008년 11월의 일. 이 무렵 군 주변에서 “기무사가 요즘 너무 잘나간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2009년 9월 초 불거진 기무사의 이른바 ‘민간인 사찰’ 의혹과 사이버방호사령부 논란은 이러한 분위기와 연관해 해석할 수 있다.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기무사 측은 ‘군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조사했던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군 관련성’의 범주를 지나치게 폭넓게 잡고 있다는 반론이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앞서 설명한 대로 2008년 이후 기무사령관이 직무범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운 영역까지 활동범위를 넓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점에 공개된 기무사의 사이버방호사령부 창설방안은 2009년 7월 디도스 공격으로 주요기관의 홈페이지가 다운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당시 기무사가 국방부에 보고한 방안은 평시의 사이버테러 방어와 유사시 역해킹 공격을 모두 포함하는 파격적인 기구의 창설이었다. 총 500명 규모로 편성해 기무사 예하부대로 둔다는 방안에 대해 정치권은 곧바로 민간사찰 가능성을 우려하고 나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 비판의견은 약간 각도가 달랐다. 이미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에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 있는데 기무사가 새 조직 창설을 주장하는 것은 ‘과잉 의욕’이라는 지적이었다. 디도스 공격으로 사이버테러 방어의 중요성이 증가했다면 정보본부 산하 조직의 규모와 예산을 늘리는 것이 옳지, 기존의 조직을 기무사로 통합해 새로 부대를 만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일이라는 요지였다.

    공교로운 것은 기무사가 이렇듯 복잡한 처지에 처했을 때 김태영 장관이 새로 부임했다는 사실이다. 국방부 직할부대인 기무사는 원칙적으로 장관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 앞서 설명했듯 기무사가 그간 활동공간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청와대와 이상희 전 장관 사이의 불편한 기류 때문이었지만, 신임 장관 임명을 계기로 청와대 관계자들이 ‘새로운 지형’을 그리려고 하자 국면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문서 유출과 거짓말탐지기

    이 같은 상황 전개에 기름을 부은 것이 2009년 10월 초 국회에서 터져 나온 국방부의 국회의원 사찰 의혹이었다. 헌병대를 관할하는 국방부 조사본부가 국회 국방위원의 사석 발언이나 정치권 인사의 출마설 등을 담아 이 전 장관에게 보고한 문서가 통째로 공개된 사건이다. 김태영 장관을 호되게 질책하고 나선 국회 국방위원회의 분위기는 “군의 정치사찰에 분노한다”는 것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런 시점에 이런 문서가 밖으로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혹 어린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한 국방위 관계자는 “기무사를 궁지에 몰아넣은 민간인 사찰 의혹을 ‘물타기’하는 차원에서 기무사와 가까운 내부인사들이 벌인 일 아니냐는 의혹이 심각하게 제기됐다”고 전한다. 민간인 사찰의 책임을 기무사 외부로 돌리려는 시도로 보인다는 취지다. 새 장관의 취임으로 유임을 장담하기 어렵게 된 인사들이 ‘실세’ 기무사에 줄서기를 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도 국방위원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장관 보고문서에 접근할 수 있을 정도의 인사가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신임 장관을 곤혹스럽게 만든 셈이 된다.

    이후 국방위는 김태영 장관에게 문서 유출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실관계 조사와 관련자 문책을 강하게 요구했고, 국방부는 유출 당사자로 의심받은 고위인사 A씨의 부하직원들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한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조사였다.

    그 결과 해당 문서가 이 부서에서 유출된 것은 확인됐다는 게 조사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인사들의 설명이다. 이상희 전 장관 시절 핵심 중의 핵심으로 불렸던 A씨는 김종태 사령관과도 인연이 깊었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A씨 본인에 대해서도 거짓말탐지기 조사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본인이 ‘차라리 물러났으면 물러났지 그런 수모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청와대 관계자들과 대통령 측근인사들 사이에서 기무사의 과잉행보가 정부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상희 전 장관의 항명성 편지 파동 이후 냉각됐던 군심(軍心)을 다독이려는 청와대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정부 핵심관계자는 이 무렵 기자에게 “(청와대는) 새 장관을 중심으로 국방부와 군을 추스르는 새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데, 기무사의 행보는 여전히 청와대와 국방부가 불편하던 시절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부 3각 파워게임의 전말

    2009년 1월2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장수만 국방부 차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드라마틱한 상승과 하강”

    국회와 국방부 주변에는 김종태 사령관의 9월 대장 진급 제외를 이러한 청와대 주변의 분위기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그런가 하면 11월 말에는 앞서 설명한 사이버방호사령부를 당초와 같은 기무사 예하부대 형식이 아니라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에 설치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규모 역시 공개된 기무사 방안과는 달리 200명 규모라고 국방부는 발표했다.

    사이버방호사령부의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 편제는 이 무렵 진행된 국회 국방위의 예산심사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당국자들은 전한다. 민간사찰 가능성을 우려하는 국회 분위기를 감안해 이미 사이버테러 방어임무를 일부 수행하고 있는 정보본부에 기능을 통합하겠다고 국방부가 밝힘에 따라, 국방위도 사업시작 예산을 반영해주기로 결정했다는 것.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국방부의 최종 입장이 김태영 장관 본인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는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한동안 승승장구했던 기무사의 위세가 국방장관 교체 이후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 군 관계자는 “드라마틱했던 상승만큼이나 하강도 드라마틱하다”고 평했다. 국방부 핵심과 기무사 사이의 긴장감 혹은 경쟁관계도 빠른 속도로 정리되고 있는 모양새. 앞서의 군 관계자는 이를 “그간 비정상적이었던 상황이 정상화되고 있는 단계”라고 표현했다.

    2009년 가을부터 겨울로 이어진 이러한 극적인 변화 양상에는 변화한 청와대의 처지도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가 의욕적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던 2008년의 청와대는 촛불시위 등으로 곤혹에 처해 있었지만, 지지율이 50%를 육박하는 현재의 상황은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할 만큼 난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정부 관계자는 “국가정보원에 대한 장악력이 상승한 것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2008년 김성호 원장의 국정원이 촛불시위 과정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청와대와 여권의 비판에 시달렸던 것과는 달리, 원세훈 원장 부임 이후 국정원에 대한 조직장악력이 급속도로 강화됨에 따라 청와대가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방문

    이렇듯 청와대와 국회, 국방부와 군을 둘러싸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됨에 따라 이전의 구도는 가라앉았지만, 대신 최근에는 이제까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또 다른 긴장관계가 수면으로 떠오르는 형국이다. 국방부 및 군 내부인사들과 청와대의 ‘명’에 따라 국방부에 부임한 외부출신 인사들 사이의 심상찮은 분위기가 그것이다.

    서두에서 설명한 대청해전 직후 장수만 차관의 발언은 이러한 구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대선 당시 MB노믹스 입안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던 장 차관이 그간 ‘실세차관’으로 불리며 국방예산 문제에 관한 청와대와의 조율을 주도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 앞서의 해프닝은 부임 1년이 가까워오는 장 차관의 국방부 내 입지가 이 전 장관의 편지 파동을 거치면서 간단치 않은 상황에 처했음을 시사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방부 주요 직위에 임명된 외부인사가 장 차관 한 사람뿐인 것은 아니다. 2009년 2월에는 예산문제를 담당하는 국방부 기획조정실장(1급)에도 관세청과 재정경제부를 거친 경제관료가 발탁된 바 있다. 장 차관의 개혁과제 수행에 필요한 ‘손발’을 마련해준 인사였다는 게 국방부 안팎의 대체적인 시선. 최근에는 역시 1급으로 국방개혁 작업을 총괄하는 국방개혁실장에도 이 대통령의 대선캠프 출신인 H교수가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지는 외부인사의 국방부 입성에 청와대의 의지가 반영돼 있음은 불문가지다. 이는 10월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국방부 수뇌부에게 고위직 인사와 관련해 ‘뜻’을 전달했다는 소식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국방부 국회 사찰 의혹과 관련해 잡음이 불거진 A씨의 경질, 그리고 H교수의 개혁실장 임명을 추천했다는 것이 그 골자다. 새 장관 임명 후에도 고위급 참모진을 교체하지 않았던 국방부 수뇌부는 보안조치 등 H교수의 임용절차가 마무리되는 시점을 맞춰 고위직 인사를 단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칼이 아니라 의사소통이다”

    사실 H교수의 경우 2009년 봄부터 국방부 고위직에 대한 하마평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청와대의 뜻에 이상희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내부인사들의 반발이 워낙 강했고, 예산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 분위기도 점차 고조되는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H교수에 대한 청와대의 뜻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고, 해당직위에는 현역 군 인사가 임명되기에 이른다. 국방부 인사들의 반감과 청와대 관계자들의 불만이 모두 비등점을 넘은 사건이었다. H교수의 개혁실장 기용이 확실시되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군 일각에서는 여전히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마디로 ‘국방부와 전쟁을 하러 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청와대의 뜻에 따른 외부 인사들의 국방부 입성과 내부 인사들의 불편한 심기는 외적으로 ‘군과 낙하산의 대립’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예산문제와 국방개혁에 대해 대통령 본인이 분명한 의지를 표하고 있고 청와대와 측근그룹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군 개혁을 위한 ‘손발’이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으므로 조만간 큰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바야흐로 ‘폭풍전야’라는 것이다.

    결국 그간 국방부와 군 주변에서 이어져온 다양한 긴장관계의 뿌리는 청와대와 국방부의 관계, 혹은 군을 다루는 청와대의 방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임 장관과의 불편한 관계가 기무사가 활동 폭을 넓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국방개혁에 관한 공공연한 의지가 외부인사와 내부인사 사이의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보자면 이는 향후 청와대가 군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이러한 긴장관계의 전개 양상이 정해질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성품과 리더십

    한 가지 긍정적인 시그널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현재 상황에 대해 국방부 수뇌부의 대응방식이 전임 장관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소신을 지키되 상하 불필요한 잡음을 최소화할 줄 아는 김태영 장관의 ‘덕장(德將)’ 캐릭터가 반영됐다는 게 국방부와 군, 청와대와 국회 주변의 대체적인 평가다. ‘다양한 힘’이 모두 취임 이후 현재까지 김 관장이 보여준 리더십에 공감하고 있는 셈. 청와대 관계자들의 인식과 태도도 이전에 비해 사뭇 유화적이다. “칼을 휘두르려 (외부 인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와 군 사이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청와대 핵심인사들의 설명은 이러한 기류를 반영한다.

    다만 이들 외부출신 인사의 행보와 행동방식은 앞으로도 군 안팎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2010년 4월 계급정년을 맞이하는 김종태 기무사령관의 후임 인선 문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기무사 고위인사들 가운데는 내부승진 가능성을 점쳐볼 인물이 마땅치 않다. 새 사령관을 발탁하는 과정에서 권력핵심과의 친분 같은 불필요한 잡음이 다시 발생할 경우, 군 전체의 분위기나 청와대가 그리는 국방개혁 수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최종적인 키워드가 김태영 장관의 역할임은 불문가지다. 12월말 혹은 2010년 초로 예상되는 국방부 고위직 인사를 필두로, 김 장관이 군과 외부출신 인사들 사이의 긴장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통합해나가느냐가 핵심적인 방향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전직 국방부 최고위관계자의 말이다.

    “국방장관이 기본적으로 청와대와 군 사이의 가교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군의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하는 데 주력하느냐, 청와대의 입장을 군에 관철시키는 데 주력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밖에서 보듯 이제부터가 청와대의 뜻이 더 많이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를 국가의 미래에 누가 되지 않도록 탄력적으로 조율하는 게 장관의 과제가 될 것이다. 김 장관의 성품과 리더십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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