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위기의 한국 조선업

최악의 수주 가뭄에 중국의 역습까지

  • 장창민│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cmjang@hankyung.com│

    입력2010-01-07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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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 국내 조선업은 ‘달러박스’였다. 수출 호조로 달러가 너무 많이 들어오면서 원화강세 현상이 나타나 정부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 조선업체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주가 뚝 끊기면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수주 가뭄이 계속되면서 앞으로 2,3년 후가 더욱 두려운 조선업체의 현황을 짚어본다.<편집자>
    위기의 한국 조선업
    2009년 12월 최근 서울 계동 현대 사옥.

    14층과 15층은 밤이 늦도록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해외영업본부 임직원들이 늦도록 퇴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상선이나 플랜트 수주 상담을 위한 전화 통화는 밤새 이어진다. 영업팀 직원들이 인터넷에서 선박 발주와 관련된 외신을 뒤적이는 일도 잦아졌다. 하지만 매번 수주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현대중공업과 함께 세계 조선 ‘빅3’를 차지하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대형 조선업체 영업팀 직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만 쳐다봤다.

    “입찰 공고 뜰 때가 지났는데….”

    이곳저곳 살펴보지만 입찰 소식은 없고 불안한 뉴스만 눈에 띈다. 페트로브라스가 국정조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부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까지.



    “이러다 올해를 넘기는 것 아냐?”

    브라질발(發) 대형 호재를 기다리던 국내 조선업체들은 이제 발주 소식을 기다리다 지쳐 포기했다. 수십조원짜리 초대형 수주를 터뜨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페트로브라스가 점점 안개 속으로 빠져들면서 이마저 포기하는 형국이다.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이 이처럼 대형 발주 소식을 목을 빼고 기다린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달러박스’의 수주 가뭄

    국내 조선업계의 2009년 선박 수주 실적은 참담한 수준이다. 대형 조선업체마다 연초에 세웠던 수주 계획의 5분의 1도 달성하지 못했다. 현대중공업은 2009년 초 166억달러 수주 계획을 세웠지만, 경비함 등 지금까지 고작 20억달러어치의 선박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각각 100억달러의 수주 목표를 세운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은 6억8000만달러짜리 LNG-FPSO(천연가스 생산 및 저장시설) 한 척을 수주한 데 이어 얼마 전 크루즈선 건조에 진출하며 간신히 체면을 살렸다. 대우조선해양은 3억달러 상당의 여객선과 유조선을 몇 척 챙긴 게 전부다. STX조선해양도 최근 유럽 선사로부터 옵션 계약분을 포함해 탱커선 몇 척을 수주한 것이 2009년 실적의 전부다.

    현대미포조선 한진중공업 등 중견 조선업체들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그동안 해양부문이나 특수선 등에서 수주 명맥을 겨우 이어왔지만 대부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신생 중소 조선사들은 이미 문을 닫기 시작한 지 오래다. C·중공업 녹봉조선 진세조선 등은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를 추진했지만 이마저 불투명한 형편이다.

    1년 가까이 수주가 끊기면서 대형 조선업체들조차 단기 유동성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넉넉한 여유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온 대형 조선업체들의 현금흐름에도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는 것. 신규 수주가 끊기면서 선수금이 들어오지 않는 데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의 건조대금 결제마저 늦춰지면서 현금성 자산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어서다. 조선업체들의 ‘돈 걱정’은 이미 실제 상황이 됐다. 언제쯤 수주 물꼬가 트일지도 불투명하다. 조선업을 둘러싼 금융환경은 점점 꼬여만 가고 있다.

    보통 대형 조선업체는 후판(선박 건조용 강재) 구매비용 등으로 분기당 1조~2조원 이상의 신규 운영자금을 투입한다. 이 돈은 대부분 신규 계약을 따내는 즉시 수주금액의 20%에 달하는 선수금과 네 차례로 나눠 받는 중도금으로 스케줄에 맞춰 충당한다. 하지만 신규 수주가 끊기면서 선수금이 들어오지 않는 데다, 이미 수주한 선박의 건조대금 결제마저 발주사의 요청으로 늦춰지면서 단기자금 운영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대형 조선업체들의 현금성 자산은 대폭 줄어드는 반면 매출채권은 늘고 있다. 매출채권은 매출이 일어났지만 대금을 회수하지 못한 ‘외상’을 뜻한다. 2008년 회사마다 1조~2조원대에 머물던 대형 조선업체들의 매출채권 규모는 4조~5조원 수준으로 늘어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의 현금성 자산은 바닥을 드러냈다. 2008년 하반기 이후 신규 수주가 사실상 끊기면서 선수금 유입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2008년 9월 말 4조원을 웃돌던 현금성 자산이 최근 1조원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현금성 자산도 같은 기간 바닥을 쳤다.

    위기의 한국 조선업

    선박 건조 장면.

    결국 대형 조선사들은 7년여 동안 이어온 무차입 경영을 사실상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 상반기에 단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 및 CP 발행을 단행했다. 2002년 회사채를 발행한 이후 지금까지 무차입 경영을 해온 현대중공업도 3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삼성중공업도 총 7000억원에 달하는 CP를 발행한 데 이어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추가 발행했다.

    성기종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조선 3사는 3~4년치 일감을 쌓아놓고 있어 중·장기적인 유동성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단기적인 현금 흐름은 신규 수주 실종으로 인해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에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대표 조선사들이 이미 순차입으로 돌아선 것에 주목하고 있다. 조선업체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회사채 공모 시장을 두드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약 2조8000억원 내외의 현대오일뱅크와 현대종합상사 인수 대금을 마련하려면 대규모의 외부 차입이 필요한 상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2009년 상반기 말 기준으로 각각 2130억원과 1703억원의 순차입으로 전환했다.

    따라서 회사채 시장 참가자들은 조선 3사가 추가로 회사채 공모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조선 빅3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운용자금 자체를 대기도 쉽지 않은 상태”라며 “풍력 등 에너지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투자금과 일상적인 고정비용을 조달하려면 은행 차입과 회사채 발행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박 인도 연기 및 발주 취소 사태 오나

    국내 조선업계의 문제는 수주 가뭄에만 그치지 않는다. 신규 수주는커녕 글로벌 선사들의 잇따른 발주 취소 및 인도 연기 요구로 이미 받아놓은 물량을 지키기도 벅찬 상태가 됐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등 대형 조선회사에도 해외 선주들의 선박 발주 취소 또는 인도 연기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셈이다.

    대형 업체들은 미리 받아놓은 수주 물량이 많아서 당장 타격을 입을 우려는 적지만, 해운·조선 시장의 침체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물론 국내 대형 조선사들 중 수주 취소 사실을 대외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주 취소 사례 공개는 주가와 유동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유럽의 글로벌 선사들이 흔들리면서 우려가 실제 상황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세계 3위 컨테이너 선사인 프랑스 CMA CGM사가 채무불이행(모라토리엄) 선언을 검토하고 나선 게 대표적 사례다. CMA CGM의 부채 규모는 약 35억유로(한화 6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이 회사의 회생을 지원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컨테이너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3위(약 1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인 CMA CGM이 만약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선박 발주를 취소한다면 국내외 조선·해운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조선사들이 CMA CGM으로부터 수주한 선박은 총 43척. 금액으로 따지면 총 50억달러 규모로 국내 전체 조선소의 한 달치 일감이다.

    국내 대형 조선회사 중 CMA CGM으로부터 가장 많은 선박을 수주한 곳은 현대중공업으로 2010년까지 1만1356TEU급 컨테이너선 9척을 인도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1만3300TEU급 8척, 삼성중공업은 8465TEU급 5척을 각각 수주했다. 현대미포조선은 로로선(자동차 운반선) 6척을 수주해놨다. 한진중공업은 부산조선소와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물량을 합해 모두 15척이다.

    문제는 CMA CGM이 시작이라는 점이다. CMA CGM이 채무 불이행 위기에 내몰리면서 글로벌 해운업계에 연쇄 부도 비상이 걸렸다. 세계적인 컨테이너 물동량 감소와 사상 최악의 해상운임 폭락 사태로 ‘빅3’ 해운사까지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스스로 출혈을 감수하면서 컨테이너 운임을 일정 수준 아래로 묶어두는 치킨 런 게임을 벌여온 후유증 탓이다.

    출혈경쟁과 최악의 시황 침체가 맞물리면서 선두권 선사와 후발주자가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선박금융회사인 로이드 펀드가 4억5880만달러 규모의 신규 선박 발주 물량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글로벌 해운회사들의 위기감은 더 높아졌다.

    독일 최대 해운사인 하팍로이드는 정부의 대출 보증이 연기되는 등 유동성 위기가 가시화하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을 준비 중이다. 머스크는 2009년 상반기 컨테이너 부문에서 9억6100만달러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 여파로 본사를 통합센터와 서비스부문으로 분할하고 본사 직원 중 100명을 감원했다.

    특히 독일 해운회사인 클라우스 페더 오펜사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국내 조선사들이 다시 긴장하고 있다. 이 회사가 국내 조선사에 발주한 선박은 총 44척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회사가 발주한 물량은 현대중공업 7척,삼성중공업 5척,대우조선해양 24척,대우조선 자회사인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 8척 등이다. 세계 5위 컨테이너 선사인 독일 페더 될레 쉬파르츠사도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글로벌 선사들의 구조조정에 따른 후폭풍을 국내 조선업계가 온몸으로 맞는 형국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아직까지는 무더기 발주 취소나 대금 미지급 등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수주 취소나 인도 연기 요청을 받지 않아서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이미 선수금과 중도금을 받았고 정부에 신청한 구제금융이 받아들여진다면 조선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계의 위기감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일부 인도 연기나 취소 요청이 들어온다면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국의 역습

    위기의 한국 조선업

    세계 최대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의 선박 건조용 도크.

    수주 가뭄과 선박 발주 취소 등의 악재로 국내 조선업계가 움츠리는 동안 중국 조선업계는 역습에 나섰다. 세계 조선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한국 조선산업은 남아 있는 일감인 수주잔량 기준으로 2009년 11월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2000년 일본을 추월하며 정상에 오른 지 근 10년 만이다.

    국제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2009년 11월 기준으로 중국의 수주잔량은 5496만218CGT(표준화물선 환산t수)로 5362만6578CGT를 기록한 한국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중국의 선박 수주잔량 점유율은 34.7%로 한국(33.8%)보다 1%포인트가량 앞섰다. 수주잔량은 전체 수주량에서 인도한 물량을 뺀 것으로,조선산업의 역량을 평가하는 통상적인 기준으로 통한다. 신규 수주량에서도 중국은 2009년 11월 말까지 270만CGT(52.3%)를 확보,164만CGT(31.8%)에 머문 한국을 따돌렸다.

    근 10년간 수주잔량에서 1위를 지켜온 한국 조선산업이 중국에 추격을 당한 것은 2008년 말부터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대형 선박 발주가 끊긴 탓이다. 컨테이너선,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에 주력해온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급격히 줄어든 반면, 중국 조선업계는 저가 전략을 앞세워 중·소형 벌크선 등을 꾸준히 수주해왔다.

    물론 중국 내 해운사의 발주 물량이 대부분 자국 조선사에 집중된 탓도 있다. 중국보다 앞선 건조 시스템을 가진 한국 조선업계의 건조 속도가 중국보다 빠르고 인도량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잔량이 줄어든 측면도 있다. 2009년 11월 말까지 인도량에서는 한국이 1281만CGT로 중국(879만CGT)을 크게 앞선 상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중국이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저가 수주를 통한 싹쓸이에 나섰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선박금융 지원은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경쟁력을 무력화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국영 수출입은행이 선박 12척을 발주한 이란 국영 해운사인 NITC사에 선가의 90%에 달하는 규모의 선박금융 지원을 약속하면서 물량을 싹쓸이했을 정도. 상하이조선과 다롄조선 등 중견 조선사 2곳이 32만DWT(재화중량t수)급 초대형 유조선(VLCC) 12척을 척당 1억달러에 수주하는 데 성공한 것.

    중국 조선사 2곳이 국내 조선업체들을 가뿐하게 따돌린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다. 국영 은행인 중국수출입은행이 배를 발주한 NITC사에 선수금도 아닌 전체 배 값의 대부분을 오히려 선주에게 대출해줬다. 당시 중국 조선사들이 제시한 선박 수주 가격은 국내 조선업체들이 제시한 수준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선박금융을 앞세워 선주들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중국 정부가 조선산업 육성을 통해 2015년까지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제시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의 긴장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 한국 수출산업 최고의 ‘달러 박스’로 꼽혀온 조선업계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함께 중국의 추격으로 세계 1위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처럼 대형 선박 발주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한 양적인 면에서 중국과의 경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직 선박 건조량 및 생산시스템 면을 고려할 때 위기로 받아들일 단계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고부가가치 선박건조 기술과 납기 준수 등에서는 중국의 실력이 아직 한국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급속히 위축된 글로벌 대형 선박 발주가 재개될 경우 한국 조선업계의 1위 재탈환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한국 조선산업 기술력의 80% 수준에 근접한 중국에 양적인 면에서 추격을 허용한 것은 분명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라면서도 “중국 조선업계는 선박 건조 과정에서 품질과 기술 경쟁력의 척도로 꼽히는 ‘납기일 준수’가 안 될 정도로 격차를 보이고 있어, 현실적인 위기감을 느낄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2010년이 더 걱정

    그러나 세계적인 발주량 감소 추세 속에서 저가 수주 전략을 앞세운 중국의 추격이 더욱 속도를 내 국내 조선업체들의 타격은 더 커질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업계는 아직 2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지만 세계 해운경기가 장기 불황 조짐을 보이고 있어 적어도 2010년까지는 수주 가뭄이 해갈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있어서다.

    이 같은 양상이 지속될 경우 ‘수주잔량 감소→중국과의 출혈경쟁→채산성 악화→구조조정 돌입→산업경쟁력 약화’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는 최근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및 지원방안’을 발표, 신용위험평가에서 C(워크아웃 대상),D(퇴출 대상)등급을 받은 8개 중소 조선사가 수리조선소나 블록공장 등으로 사업을 전환하면 지원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조석 지경부 성장동력실장은 “8개 조선사는 현행 사업으로는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이들 기업이 과거의 블록공장 등으로 사업을 재전환하는 길을 터주는 게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선박펀드가 선박을 매입할 때 투자하는 구조조정기금의 비율을 최고 60%로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지원책이 조선업 전반의 위기감을 잠재우진 못하고 있다. 이미 증권업계는 국내 조선사들이 외부차입에 나설 수 있고 치열한 가격 경쟁에 노출됐다며 2010년 조선업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유지했다. 중도금 납입 지연이 심각하고 2007년 이후 고가에 수주한 선박의 인도 연기가 여전할 것으로 내다봐서다.

    수급도 비우호적이다. 우리나라 주력 선종인 컨테이너선이 심각한 공급 초과 상태에서 2010년과 2011년 공급 증가율은 10%에 머물 것으로 전망됐다. 조선사들은 이미 생존을 위해 선종(船種) 구분 없이 가격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브라질과 중국, 러시아 등이 자국 건조를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국내 조선사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도 ‘돈이 안 된다’고 큰 신경을 쓰지 않았던 특수선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처지가 됐다. 중·소형 조선사 몫이라고 제쳐뒀던 선주들도 하나둘 챙기기 시작한 것.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익성을 따지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며 “요즘엔 병원선 급수선 등 아프리카 오지에 주로 쓰이는 중·소형 선박 시장까지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장섭 조선협회 부회장은 “예전만큼 회복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및 풍력 등 신사업 확대로 위기를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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