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스타데이트 엄지원

“홍상수 감독과의 영화는 매순간 전투 같아요”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0-01-07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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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데이트 엄지원
    “키워드를 몇 개 준비했어요. 하고 싶은 얘기를 하시면 됩니다. 답을 하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드려요.”

    “정말요? 재밌네요.”

    “어렵지 않아요. 자, 그럼 시작할까요?”

    영화배우 엄지원(32)은 ‘2009 마구마구 프로야구 일구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시상식을 위해 입은 검정색 미니스커트 차림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섹시하고 우아한 분위기에 기자는 잠시 멈칫거렸다. 그녀는 현재 연예인 야구단 ‘비광’의 구단주를 맡고 있다.

    # 달콤한 휴가 중



    엄지원의 미니홈피 머리말이다. 족히 2~3년은 돌보지 않은 것 같은 미니홈피. 여행사진이 많았고 친구들과의 수다가 읽을 만했다. 6년만의 스크린 나들이를 의식하며 첫 번째 키워드를 던졌다.

    “미니홈피 안 한 지 2~3년 됐어요. 그때 올려놓은 게 지금까지 있는 거예요. 배우는 자기 내면의 것을 끊임없이 소진시키는 직업이거든요. 그래서 작품이 끝날 때마다 나를 위한 휴가를 준비하곤 해요. 올해도 제주 올레길을 4번이나 찾아가 걸었고 지난 10월에는 짬을 내서 뉴욕에도 다녀왔어요. 친구 만나서 좋은 시간 보냈어요.”

    # 아날로그형 인간

    엄지원은 언젠가 올린 미니홈피 글을 통해 자신을 ‘아날로그형 인간’으로 소개했다. 무슨 뜻일까. 인간 엄지원의 일상이 궁금했다.

    “전 그냥 사람?(웃음) 사실 요즘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잖아요. 뭔가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이미 끝이 나거나 또다시 돌아가고요. 그런 게 저하고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냥 천천히 가는 게 전 좋거든요. 정서가 좀 느껴지는 그런 게 전 좋아요. 글을 쓸 때도 자판으로 쓰는 것보다 손글씨가 좋고요. 기사도 인터넷보다 신문으로 보는 걸 더 좋아해요. 아날로그형 인간은 그런 의미예요. 미니홈피도 남들보다 늦게 만들었어요. 배우 박은혜씨가 제 미니홈피에 ‘남들은 미니홈피 닫을 때 시작하는 센스’라는 꼬리말을 달아준 적도 있어요. 미니홈피는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친한 친구가 캐나다로 유학을 가면서 대화할 창구가 필요해서 만든 거였어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하는 게 제 성격에 맞는 것 같아요. 그래야 성에 차요. 사실 미니홈피의 글이나 사진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올리는 거잖아요. 그런 게 저의 모든 걸 말해줄 순 없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만 보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잖아요. 저에겐 그냥 의미가 없어 보여요.”

    엄지원의 미니홈피에는 4곡의 음악이 흐른다. 월광소나타와 영국 팝그룹 The feeling의 노래 ‘Love it when you call’ 등이다. 낮보다는 밤에 어울리는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음악, 그녀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 홍상수 감독

    2005년 엄지원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극장전’으로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았다. 2009년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로 다시 홍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두 편의 영화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극장전은 엄지원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와 비현실적인 상황의 베드신이 전체를 압도했고 엄지원에게 ‘스크린의 여왕’이란 별칭을 갖게 했다. 질문에 답을 하기 전 엄지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독님, 제가 좋은 영화배우가 될 수 있게 좋은 영향을 주는 한 사람이고 편한 사람입니다. 물론 일적인 부분에선 미울 때도 있지만….”

    스타데이트 엄지원
    ▼ 어떨 때 미워요?

    “감독님 작품은 대본이 그날그날 나와요. 대사와 상황을 배우들이 모르고 진행이 되죠. 매순간 인물과 싸워야 하는 순간에 대면하게 돼요. (홍 감독의 영화에는) 인물에 대한 조롱과 해학이 항상 있잖아요. 다 알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아요. 기분이 좀 섬뜩할 때가 많죠. 등이 시릴 때도 있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끊임없이 전투하는 기분이랄까. 맞아요. 홍 감독과의 영화 작업은 매순간 전투 같아요. 그와 나와의 싸움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홍 감독과 영화를 하면서 엄지원은 때로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부담이 됐다고 했다. 동시에 게임처럼 재밌다고도 말했다. 엄지원은 그런 과정이 모두 “나를 깨워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표현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좋은 연기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배우의 가장 큰 미덕이죠.”

    # 담배와 술

    엄지원의 출연작 중 영화 ‘똥개’는 이래저래 의미가 많은 영화다. 엄지원의 첫 주연 영화면서 그간의 이미지를 깬 첫 영화였다. 소매치기 출신의 다방레지. 청순가련, 조신함 같은 건 없었다. 영화 똥개에서 엄지원은 담배를 피운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장난으로 피우는 담배가 아니어서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극장전에서는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또한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았다. 정말 술을 먹고 찍었나 싶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 담배 피워요?

    “원래 못 피웠어요. 그런데 똥개 찍을 때 감독님이 ‘가짜로 하는 게 싫다’고 하셔서 배웠어요. 저도 거짓으로 연기하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 물론 지금은 안 피우죠. 피우긴 했어도 솔직히 맛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 술도 정말 맛있게 먹던데, 술 잘 해요?

    “극장전 찍기 전엔 못 마셨어요. 극장전 하면서 술이 엄청 늘었어요. 회의 때마다 홍 감독님이 술을 드셨거든요. 그때 소주, 막걸리를 처음 먹어봤죠.”

    ▼ 주량은 얼마나.

    “와인 한 병 정도요. 맥주는 여러 잔. 그 정도면 잘 마시는 편이죠? 그래도 술 마시고 실수한 적은 없어요.”

    # 금일봉

    엄지원씨는 경북 정무부지사를 지낸 엄이웅(62)씨의 막내딸이다. 데뷔 초기에는 유명인사인 부친 덕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엄지원씨의 미니홈피를 보다가 우연히 종이봉투가 찍힌 사진을 발견했다. “항상 건강하고 매사에 조심하며 잘 다녀오길 바란다. 아버지, 어머니가”라고 쓰인 흰 봉투. 엄지원씨는 사진제목에 ‘금일봉’이라고 적었다. 따뜻한 가족의 사랑이 느껴졌다.

    “여행할 때 아빠가 주신 돈이에요. 이제는 누구에게 금일봉을 줄 일이 많아졌지만…, 전 아직 어린데 말이죠. 엄마, 아빠가 지금도 가끔 용돈을 주시지만 이제는 제가 엄마 아빠를 보호해야 하고 금일봉을 드릴 때가 됐죠. 가족을 생각하거나 얘기하면 눈물이 나요.”

    이쯤에서 대화가 끊겼다. 엄지원은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아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지금 많이 아프셔서….”

    ▼ 2009년 초엔가 산악자전거를 타시다가 다치셨다는 기사도 봤습니다.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 회복 중이세요. 이 질문은 통과할게요.”

    # 여행

    엄지원은 여행을 아주 좋아한다. 미니홈피만 봐도 알 수 있다. 수백장의 사진 대부분이 여행사진이다. 대충 보니 전세계 안 다닌 곳이 없다.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물었다.

    ▼ 최근에 제주도 올레길을 다녀오셨다고.

    “2009년 여름에 올레길을 4번에 걸쳐 나눠서 갔다왔어요. 7월에 뮤지컬(기쁜 우리 젊은 날)이 끝난 뒤 여행을 정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주도에 내려가서 올레길 10코스에 여장을 풀고 9~11코스를 걸었어요. 그리고 서울에 와서 일하다가 다시 내려가서 5~6코스 걷고 또 서울에 왔다가 다시 내려가서 1~2코스 걸었죠. 아직 3~4코스는 못 걸었어요.”

    ▼ 좋았어요?

    “정말 좋았어요. 파울로 코엘류의 ‘순례자’를 읽고 나서 언젠가 한번은 꼭 순례자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40일 정도 시간을 내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일단 올레길을 먼저 걸어보자, 걷는 것이 나하고 잘 맞는지 내가 견뎌낼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는 생각을 했죠. 일종의 테스트 삼아 걸었어요.”

    ▼ 제일 좋았던 건.

    “우선 땅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늘 차를 타고 다니는 생활, 땅과 숨 쉬며 호흡할 일이 별로 없는 생활을 해왔거든요. 제주도가 그렇게 아름다운 곳인지도 몰랐고요. 생각이 달라졌어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제주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것도 좋았고요.”

    ▼ 가장 좋았던 길을 하나 찍어주신다면.

    “우도 올레길을 꼭 걸어보세요. 아침부터 걸으면 금세 다 볼 수 있어요. 중간에 보말칼국수도 먹어보면 좋죠. 소라처럼 생긴 것을 넣어서 만든 칼국수인데 정말 맛있어요. 정말 아름다운 바닷가가 있고요. 걷다보면 송아지, 말들도 만나고 해녀도 만나고, 사람들이 심어놓은 땅콩밭도 지나가고, 뭔가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돼요.”

    # 영어

    엄지원은 영어를 잘한다.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고 무리 없이 인터뷰가 가능한 정도다. 얼마 전에는 프랑스 여배우 소피마르소와 통역 없이 인터뷰하는 장면이 방송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잘 못해요. 과대평가됐죠. 얼마 전에도 샤넬의 누가 왔는데 만나자는 얘기도 듣고, 좀 부담스러워요. 영어는 국제언어잖아요.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그래서 대학 다닐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죠. 그런데 솔직히 한국말이나 잘했으면 좋겠어요.(웃음) 과외도 했어요. 개인교습도 받았고요. 뭐든지 오래하는 사람 앞에는 배겨나는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본어도 잘한다고 들었어요.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죠. 물론 그분들은 불편하겠지만요.(웃음)”

    #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엄지원이 6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며 선택한 작품이 바로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다.

    2004년 MBC에서 방송한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속편. 30대 중반 세 여자가 새로운 삶을 깨우쳐가는 유쾌한 내용의 에피소드를 담아낸다. 드라마를 핑계 삼아 결혼 계획을 물었다.

    “전 ‘아직도’는 아니고요. 뭐랄까…, 결혼할 여자? 아니면 결혼해야 되는 여자? 언젠가 할 여자?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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