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나를 되돌아보는 순례자의 길

  • 사진/글 ·신석교 사진작가 kr.blog.yahoo.com/rainstorm4953

    입력2010-01-07 1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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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되돌아보는 순례자의 길

    추수가 끝난 밀밭 사이로 난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뜻하는 ‘카미노(길) 데 산티아고’는 중세에 만들어진 순례자의 길입니다. 9세기 무렵 스페인의 북서부 도시 산티아고에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돼 성지가 된 것입니다. 그 후 유럽 각지에서 순례자들은 야고보의 유해가 모셔진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를 향해 길을 떠납니다. 종교적 이유, 이국문화 체험을 위한 여행, 혹은 자기성찰을 위한 시간 등 다양한 목적으로 고행에 나섭니다. 각자가 떠나온 이유는 다르지만 순례자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만나고 헤어집니다. 800km의 긴 여정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 아름다운 풍경, 그 모든 것에 대해 애써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지도 헤어짐을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흘러가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제 갈길, 제 있어야 할 곳에 내버려두는 일, 산티아고에서 새삼 느끼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입니다.

    흘러가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묵묵히 길을 걷습니다. 눈앞엔 앞으로 가야 할 머나먼 길,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이미 추억이 된 지난 시간이 보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카미노를 걸으며 지난날을 성찰하고 현재의 나를 살피며 앞으로 가야 할 내 생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즐겁다 해서 마냥 머물고 힘들다 해서 돌아갈 수 없으며 짐이 무겁다 해서 버릴 수 없음은 인생과 카미노의 공통점입니다. 어차피 져야할 짐이고 가야 할 길이라면 가벼운 몸과 마음, 웃음 띤 얼굴로 그 길을 가야겠지요.

    산티아고 가는 길은 여러 경로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스페인과 접경한 프랑스의 생 장 피드포르를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자치구인 나바라, 라 리오하, 카스티야 레온, 갈리시아를 거쳐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입니다.

    나를 되돌아보는 순례자의 길
    1 순례자의 땅끝 마을 피스테라. 산티아고가 아쉬운 순례자는 100km 남짓한 거리의 피스테라에 도착해 함께해온 신발을 태우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2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피레네산맥의 푸른 초원.

    3 갈리시아 산골마을 언덕 위의 십자가.

    4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

    나를 되돌아보는 순례자의 길
    1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서 한 달여 고행길의 감회에 젖은 순례자들.

    2 포도축제가 열린 로그르뇨에서 만난 가장행렬.

    3 포도밭, 밀밭길 지나 해바라기가 가득 피어난 9월 하순의 평원.

    4 세탁물을 말리며 길을 걷는 순례자.

    5 산티아고 가는 길은 자전거 애호가에게도 각광받는 여행코스다.

    6 순례자의 길을 걷는 젊은 여성들. 이들에게 카미노는 세계 각지의 친구를 만나는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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