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경력 과장하는‘요리계 신정아’, ‘블로그 마케팅’에 속는 손님들

  • 박찬일│요리사·‘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저자│

    입력2010-01-08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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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양식당가에서는 유학 경력을 부풀리는 가짜 주방장이 판친다. 주인은 식당이 망한 다음에야 이를 알아챈다. 또 이른바 바이러스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공의 블로거들을 동원해 가짜 입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이것이 통하는 것은 상당수 식당 소비자가 서양 음식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경력 과장하는‘요리계 신정아’, ‘블로그 마케팅’에 속는 손님들
    고급 식당이 몰려 있는 동네는 단연 서울 청담동이다. 청담초등학교에서 청담사거리로 내려가는 화려한 명품숍 거리의 뒷길에 주로 포진한다. 음악방송국 엠넷 뒤편과 탑웨딩홀 뒤편도 주요 식당이 있는 동네이기는 하다.

    청담동의 고급 식당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하면 딱 맞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뭐가 챙긴다는 말도 정답이다. 왜일까. 바로 가겟세 때문이다. 내가 일하던 한 식당은 월 매출이 1억원 정도 하는 작은(?) 업장이었다. 재료비로 30% 정도 나갔고 인건비는 20%를 차지했다. 인건비가 더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든 부족한 인원으로 쥐어짜야 식당을 운영할 수 있었다.

    또 전기나 가스요금, 보험료 같은 경상운영비가 10%는 너끈히 나왔다. 고급 와인이 많은 업장이라 보안설비를 필수로 이용해야 했다. 그러면 대충 따져도 총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대부분 신용카드 매출이라 부가세를 10% 가까이 내야 하니까 남는 건 30%선. 신규 투자가 약간 있고, 예비비도 조금 잡으면 매출의 80%가 비용으로 계산된다. 감가상각 같은 건 아예 넣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결정적인 건 가겟세다. 겨우 40석이 채 안 되는 작은 업장인데 월세가 무려 2000만원. 그것도 지출 처리를 하려니 부가세를 별도로 내야 했다. 문제는 이게 별로 비싼 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40~50석 규모에 3000만원을 내는 업장도 많다. 그러니 그야말로 재주만 넘고 세월은 가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빌딩을 가지고 있는 사람 처지에서야 투자비가 있고, 건물을 짓거나 사느라 빌린 돈을 갚아야 하니 비싼 세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가겟세 비싸기로 소문난 도쿄의 롯폰기나 에비스, 유럽 주요 도시의 도심에 비해서도 한국의 가겟세는 더 센 편이다. 그러니 이런 외국에서 더 솜씨 좋은 식당을 다녀본 손님들은 애꿎은 우리 식당들에서 분통을 터뜨린다. ‘이보쇼, 우리보다 물가가 더 비싼 도쿄나 뉴욕에서도 이 가격에 더 나은 음식이 나옵디다. 너무 한 거 아니요?’ 라고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도 할 말은 있다. ‘글쎄요, 우리도 재주만 넘고 있답니다, 손님.’



    유학 3년 만에 현지 주방장?

    그러면 남지도 않는 장사는 왜 하느냐고 힐난하는 이도 있겠다. 그러나 이게 울며 겨자 먹기다. 한마디로 ‘누가 이럴 줄 알았나’다. 지금도 청담동에 진입하려는 예비 식당업주들이 줄을 섰다. 청담동은 매년 열 개의 식당이 생기면 아홉 개는 망한다. 그렇다고 한 개의 식당이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냥 현상유지만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범위를 넓혀 스무 군데는 되어야 한 집이 그나마 벌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언제 고객의 마음이 바뀌어 테이블에 먼지가 앉을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청담동의 고객들은 유별나게 싫증을 잘 낸다. 새로운 식당이 생기면 메뚜기 떼처럼 휩쓸고 지나가고, 이내 그 식당을 떠나 새로운 식당으로 간다. 그것뿐이다. 10년이 넘게 선전하고 있는 식당은 열 곳이 안 된다. 그 넓은 청담동 바닥에서 겨우 열 곳이라니. 그런데도 지금도 업주들이 꾸역꾸역 청담동을 항해 부나방처럼 달려든다. 식당 비즈니스의 댄 메이어(뉴욕 최고의 식당 사업가. 여는 족족 대히트를 하며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 한국에도 ‘세팅 더 테이블’이란 책이 번역 소개되었다)를 꿈꾸면서 말이다. 쪽박과 대박의 차이가 습자지 한 장보다 더 얇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청담동은 그렇게 오늘도 저녁 장사 시작을 알리는 불을 켤 뿐이다.

    사실 나도 큰 덕을 본 경우다. 무슨 얘기냐고? 바로 유학파 셰프(주방장)들이다. 나 역시 유학파다. 1999년 이탈리아 요리학교에 건너갔으니 꽤 이른 축에 속했다.

    경력 과장하는‘요리계 신정아’, ‘블로그 마케팅’에 속는 손님들
    당시 한국에서 이탈리아 요리는 태동기였고, 당연히 쓸 만한 셰프가 적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큰 어려움 없이 헤드 셰프로 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식당 수준이 고르게 올라가고, 한국에서 제법 제대로 수련한 셰프가 꽤 나오는 요즘도 이런 일이 왕왕 생긴다. 역시 유학파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이게 함정 투성이다. 더러는 ‘요리계의 신정아’ 사태가 벌어진다. 경력 확인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일하던 식당의 인근 식당에서 셰프를 새로 뽑았다. 많은 이력서가 들어왔는데, 그걸 심사했던 한 주인은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박형. 유학 3년 만에 현지에서 주방장을 할 수 있어요? 이력서에는 그렇게 나와 있는데.”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시골이나 변두리의 조그만 카페테리아 수준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경력도 변변히 없이 무작정 요리학교를 나왔다고 현지에서 셰프 대우를 받았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언어 배우는 데 1년, 요리학교에 1, 2년 다닌 수준에서 어떻게 주방장을 한단 말인가. 예를 들어, 이탈리아인이 한국에 와서 요리학교를 나오고 한 3년 수련하면 그에게 번듯한 한식당의 주방장을 맡길 사람이 있을까. 하다못해 셰프나 주요 보직으로 일을 했다는 현지 식당에 전화 한 통화만 걸어봐도 알 수 있는 일을 말이다.

    가공 블로거 내세워 집중 포스팅

    적어도 나와 내 주변 후배들의 외국 경험에 비추어보면 한국인은 잘해야 5년 정도 지나서 셰프 드 파르티, 라인 담당 책임자를 했다면 아주 크게 성공한 사례라고 봐도 좋다. 특히 고급식당이라면 이 정도 보직은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외국인이 이 자리에 올랐다면 정말 대단한 실력파이며, 특히나 동양계 요리사인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런데 굴러다니는 이 동네 이력서에는 툭하면 부주방장(수 셰프. 불어로 sous chef, 영어로는 under chief), 심지어 주방장을 했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야말로 ‘신의 손’이 아니고서야.

    요리판에도 사대주의가 판치는 것이다. 실력 확인도 안 된 유학파 셰프에게 덜컥 식당을 맡긴다. 망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안다. 그러나 버스는 떠났고, 불판의 불은 꺼졌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많으면 10억원, 적어도 몇 억원의 비즈니스 머니가 들어가는 식당을 그런 식으로 운영하는 게 이 바닥 수준이다.

    요즘 신종 플루가 유행한다지만 좀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식당가에 침투한 건 오래된 얘기다. 이른바 바이러스 마케팅이다. 독한 바이러스처럼 순식간에 퍼진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로 입소문 마케팅을 이른다. 식당이 입소문 나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인위적으로 가짜를 만든다는 데 있다. 하루는 내가 일하던 업장의 사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박 셰프. 바이러스 마케팅이라고 들어봤어? 금시초문이라고? 글쎄, 요새 이거 안 하는 데 드물다고 하던데.”

    나는 그에게서 꽤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알 만한 식당 여럿이 이 마케팅을 써서 꽤 재미를 보았다는 거였다. 무슨 대단한 방법을 쓰는 건 아니다. 블로거를 동원해 마치 자연스럽게 식당을 다녀간 것처럼 해서 인터넷에 포스팅을 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언론에 나온 맛집 기사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한 신문사 요리 담당 기자의 말처럼 식당 기사의 90%는 ‘신문사 안팎의 민원 처리’에서 비롯된 신뢰 상실의 결과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급속도로 떠오른 것이 블로그다.

    언론사에서는 사실상 요리나 식당 전문기자를 키우지 않는다. 어느 언론사나 경제나 법률, 의료 전문 기자를 키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맛집, 요리는 전문기자의 몫이 아니다. 그러니 수준 낮은 기사가 양산되고, 소비자는 블로그에서 정보를 얻는다. 이런 상황을 역이용하는 게 바로 바이러스 마케팅이다. 대개 대여섯에서 열 명가량의 가공 블로거를 내세워 집중적으로 포스팅을 한다. 어떤 경우는 매일 그 식당에 들러 뉴스처럼 업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이런 방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여러 명의 블로거가 공통적으로 호평을 한 식당을 선택하게 마련이고, 포스팅이 많을수록 더 신뢰한다.

    경력 과장하는‘요리계 신정아’, ‘블로그 마케팅’에 속는 손님들

    한국에 진출한 이탈리아 요리사들은 한국인 특유의 입맛 때문에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런데 형편없는 식당이라면 금세 수준이 탄로 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특히 서양식을 하는 식당은 손님들의 감별력이 크게 떨어진다. 만약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맛이 없다면 신랄하게 비판을 할 것이다. 그런데 서양 음식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잘 모른다. 그러니 먼저 쓴 블로거의 정보와 칭찬하는 글을 ‘거역’하기 힘들다. 특히나 유명한 블로거의 글에 함부로 댓글을 달거나 다른 의견을 펴지 말아야 하는 불문율 비슷한 금기가 통용된다. 만약 그랬다가는 ‘이웃’들이 해당 블로그에 총출동하거나 자기들의 유력한 블로그에 비판 글을 집중적으로 싣는다. 결국 한 용감한(?) 블로거는 항복을 하고 해당 포스팅을 삭제해버린다. 피곤해지기 싫은 것이다.

    일류 요리사는 현지 식재료 활용

    이런 블로그 사회 특유의 정서를 등에 업은 엉터리 마케팅이 판을 치곤 한다. 전문가인 셰프들이 보기에 좀 수준 낮은 음식이 갑자기 블로그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사진이 줄줄이 올라오면 눈치를 챈다. 음, 또 시작됐나보다 하면서 말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식당가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겠는가. 대부분의 셰프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심하게 부끄러워 하고, 개탄을 금치 못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공인된 식당 비평 미디어가 한국에도 얼른 안착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미쉐린(미슐랭) 가이드나 자갓 서베이 같은 걸 이르는 거다. 미쉐린 가이드는 지난해 도쿄에도 진출해 무수히 별을 쏟아내면서 화제를 모았다. 홍콩과 마카오편도 출간됐다. 그러나 안 그래도 식당 수준이 낮은데다가 이런 엉터리 마케팅이 활개를 치니 식당가 사람들은 서울보다 늦게 미쉐린이 들어올 도시는 평양밖에 없다고들 자조적으로 내뱉곤 한다. 아시아에서 미식 문화가 뛰어난 몇몇 도시, 즉 싱가포르나 도쿄, 교토와 오사카, 상하이와 베이징 편이 나온 후에야 서울편이 편집될 것이라는 말이다.

    노골적으로 “미쉐린이 오면 한 50년씩 된 한식을 파는 노포(老鋪)들말고 내세울 양식당이 어디 있느냐”고 꼬집는 미식 전문가가 많다. 나도 뼈아프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그까짓 양식당 수준이 낮은 게 국제적으로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흔히 국력을 말할 때 그 나라의 국제적 스탠더드가 어느 수준에 있느냐를 본다. 양식당(와인문화를 포함하여)의 수준은 그 스탠더드의 한 축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먹고 자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과거 정권에서 특급호텔을 특별 허가해 짓네, 관광호텔을 짓네 했던 건 다 이런 경제 효과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고급 양식당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도시는 그 문화적 수준도 높게 취급되는 게 국제적 스탠더드인 까닭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엉터리 바이러스 마케팅이나 하는 식당들이 설치고 있다. 국제적 수준의 식당 문화는 참 요원한 일이다.

    외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니 당연히 외국인 요리사들이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 음식은 그 정체성과 관련해서 늘 화제에 오른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자장면 한 그릇을 먹어도 ‘화상(華商)’이 운영하는 곳을 더 쳐주는 문화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흔히 식당가에서 중국산 식자재는 ‘저급’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런 걸 쓰면 일부러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식당만큼은 자유롭다. 왜? 본토 재료를 쓰는 거니까.

    우스갯소리지만, 상당히 뼈 있는 얘기다. 고급 양식당은 수입 식자재를 쓴다는 걸 은근히 자랑한다. 그래야 ‘오리지널리티’가 산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는 미쉐린의 스타 셰프들은 오히려 현지의 식재료를 골라서 자기 요리에 쓴다. 뻔한 서양 재료에서 벗어나 훨씬 창의적이고 특별한 이미지와 맛을 창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롯데호텔 안에 식당을 연 미쉐린 스리스타급의 세계적인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는 김치와 물김치, 한국의 키조개, 한우 같은 재료를 자유롭게 자기 메뉴에 넣는다. 그들은 그런 의도를 자랑한다. 창조적이고 유니크한 요리인 까닭이다.

    경력 과장하는‘요리계 신정아’, ‘블로그 마케팅’에 속는 손님들

    부드러운 국수에 익숙한 한국인의 입맛은 덜 익힌 국수인 이탈리아 파스타에 잘 맞지 않는다.

    ‘약간 덜 익은 상태’

    그런데 한국인 셰프들은 아직도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 물 건너온 수입 식재료를 써야 손님이 좋아할 거라고 착각한다. 실제 손님에게도 그런 경향이 있다. 피에르 가니에르가 김치를 써서 요리하면 ‘유니크’한 거고, 양식을 만드는 한국인 셰프가 그러면 ‘엉뚱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심지어 ‘어이없는 짓’이라고 본다. 그러니 자꾸 수입한 재료나 자랑하는 수밖에.

    이탈리아 정부는 한술 더 뜬다. 전세계 이탈리아 식당을 상대로 현지 조사를 해서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식재료를 많이 쓰고 조리법을 지키는지 확인하는 ‘인증제’를 펴겠다고 한다. 지금 세계는 로컬 푸드의 붐이 일고 있다. 바로 그 붐을 일으킨 단체가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슬로푸드(Slowfood)협회다. 조리 스타일을 막론하고 현지에서 난 싱싱하고 건강한 재료를 써서 요리해야 더 맛있고 지구가 살 수 있다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착오적인 수입 식재료 사용 인증제를 펴겠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만약 한국에 이 인증제도가 도입되면 대부분의 이탈리아 식당은 인증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간도 쓸개도 없는 짓인데도 말이다.

    10여 년 전부터 한국에 이탈리아인 요리사가 진출했다. 그리고 매년 20여 명의 요리사가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 특유의 입맛 때문에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한다. 몇몇 요리사는 한두 달도 버티지 못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럭저럭 일하고 있는 셰프들도 장사가 잘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 사람의 입맛을 맞추기 힘들어서다.

    우선 스파게티 면을 오리지널하게 삶기 힘들다.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약간 덜 익은 상태, 즉 알 덴테(al dente)로 삶는다. 엄밀히 말해서 이미 익힌 국수이기 때문에(라면처럼), 덜 익은 것이 아니라 덜 부드러워졌다고 표현해야 맞겠다. 그런데 푹 익은 국수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은 이걸 견디지 못한다. 더구나 스파게티는 덜 익히면 딱딱하게 느껴진다. 밀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한국 국수에 익숙한 입맛이 이걸 견디지 못한다. 당연히 다시 삶아달라고 요구한다. 이탈리아인 요리사들은 이걸 자존심을 팔거나 요리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으로 이해한다. 당연히 못한다고 한다.

    신사동의 한 유명 식당에서는 두 명의 이탈리아인 주방장이 접시를 집어던지고 귀국해버린 일화가 있다. 좀 다른 얘기지만, 내가 아는 한 주방장은 이런 주문이 들어오면 그냥 접시를 내버려둔다. 그러면 스파게티가 자연히 불어버린다. 그때 가서야 한번 슬쩍 데워서 다시 낸다. 그의 주방은 이런 식인데, 희한한 논리다.

    “그걸 다시 삶아서 요리를 하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나 유별난 그 손님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피해를 봅니다. 주방의 흐름이 깨져요. 다들 바쁘게 다른 손님 요리를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스파게티를 다시 삶으라고 해봐요. 주문서도 없는 요리를 말이에요. 결국 전 다른 손님을 위해 그 접시를 미뤄두는 겁니다. 불은 국수를 원하는 것이니 틀린 짓도 아니잖아요?”

    한식 세계화의 함정

    이탈리아 요리는 좀 짜다. 이탈리아인 주방장이 있는 한 식당의 주문 테이블에는 아예 ‘살레 포코(sale poco)’란 말이 적혀 있었다. ‘안 짜게’란 뜻이다. 이런 소동을 겪으며 이탈리아 요리는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알 덴테 접시는 되돌아오고, 소금간을 싱겁게 해달라는 주문서가 쏟아지고 있지만….

    사족이지만, 이탈리아인 요리사 하면 ‘G’라는 녀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의 모 특급호텔에서 그가 총주방장을 할 때 만난 적이 있는데, 적당한 키에 아주 잘생긴 얼굴이 돋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의 한 호텔로 옮기고 나서 인물값 좀 하느라고 그랬는지 모 연예인과 다부지게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는 그 연예인말고도 사교계에서 꽤 많은 소문을 빚어냈다. 나중에 들으니, 얼마나 급하게 도망을 갔으면―그는 베이징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팔지 못해 한국에 있는 동료에게 급히 팔아달라고 전화를 했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려왔다.

    최근 한식 세계화가 화두가 되고 있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뭐든 급히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니 달가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한식 세계화가 ‘우리 음식을 더 많은 세계인이 사랑하게 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한다면 올바른 방향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전 국민의 운동처럼 되어버린 느낌이다. 음식문화는 강을 파거나 운하를 만드는 것과는 다른 경계에 있다. 포클레인을 동원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리는 건물을 짓는 것과는 다르다. 경제는 압축성장을 할 수 있지만, 문화는 그게 안 된다. 마치 퇴비를 뿌리고 토질을 바꾸기 위해 객토를 하는 것처럼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효과가 나타난다.

    우리는 그걸 겪었다. 88올림픽을 맞아 서울에 별 다섯 개짜리 특급호텔이 줄줄이 들어섰다. 돈이 돌면서 양식당도 엄청나게 생겼다. 양식이라면 돈가스나 햄버그스테이크가 전부이던 시절에 비추어보면 상전벽해였다. 그러나 식당을 여는 건 하루아침에 할 수 있지만 요리사의 수준은 절대 안 된다. 일정 수준에 오르기까지 별짓을 다해도 필요한 시간이 있다. 군대에 천재를 데려다놔도 병사 구실을 하려면 1년이 걸리고 서울대 박사라도 이등병은 이등병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양식당의 수준은 참 형편없었다. 훈련된 요리사는 빤한데 수요는 넘쳐 난리가 났다. 호텔뿐 아니라 강남에 수백, 수천 곳의 고급 양식당이 생겼다. 칼만 쥐면 부주방장이고, 냄비만 들면 주방장이었다. 그래도 경제 호황기를 맞아 식당은 손님으로 넘쳐났다. 이런 어이없는 후진국적 상황은 요리 지망생이 크게 느는 데 기여했다.

    “갈 데가 없잖아요”

    문제는 다들 양식만 하겠다는 것이다. 양식당이 가장 많지는 않다. 한식당과 일식당, 중식당이 더 많다. 그런데 대학 요리학과 졸업생은 열이면 아홉이 양식 전공이다. 고생만 죽어라 하고 폼도 안 나는 한식, 중식은 지원자가 거의 없다.

    내 식당에 일하러 오는 직원들에게 물어본다. 왜 한식을 지원하지 않느냐고. 대답은 한결같다.

    “갈 데가 없잖아요.”

    그들 얘기는 이렇다. 한식 전공을 해봐야 써먹을 데가 없다는 얘기다. 대개 한식당이란 고깃집을 의미한다. 그래야 매출이 오르기 때문이다. 백반류는 아무리 팔아봐야 재료비와 인건비를 건지기 힘들다. 그러니 밥은 어쩔 수 없이 팔지만 돈이 되는 고기구이를 주력으로 해야 한다. 젊은 요리사가 뽑히면 이 고기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백반은 누가 하나? 바로 ‘찬모’라고 부르는 일군의 아주머니들이다. 김치를 하고, 나물무침과 반찬을 만든다. 손맛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노동이다. 표준화된 레시피(조리법) 없이 느낌으로 요리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그 찬모들이 늙어서 은퇴하면 한식도 명맥이 완전히 끊길 것이라고 걱정하는 건 이런 형편에서 나온 것이다. 어차피 남지도 않는 백반, 젊은 요리사를 투입해서 할 일이 아니라고 업주들은 생각한다.

    게다가 요리사 처지에서는 누가 고기를 썰려고 한식을 전공하겠는가. 고기 써는 건 한식의 일부이긴 하지만, 변화무쌍하게 맛을 창조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뜻이 높고 팔팔한 20대 초반의 요리사들이 그 일을 지원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한식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는데, 밖에서 세계화를 외치는 우리 현실은 뭔가 아이러니하다.

    이런 젊은 요리사들을 받아서 기르고 일을 시키는 나는 참 불안하다. 내가 저 친구들의 미래를 담보하고 있다는 부담이 늘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이 바닥의 월급은 짜다. 100만원으로 시작해서 10년이 지나야 250만원대의 월급을 받는다. 보너스 따위는 당연히 없으며 장사가 안 되면 체불도 각오해야 한다.

    요리사는 한국에서 일반 회사원 다음으로 많은 직업군이다. 그만큼 영세하다는 얘기다. 10인 미만 업소가 대부분이고, 4대 보험의 적용을 제대로 받은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한 달에 4, 5번 쉬고 하루 열두 시간 노동은 기본이다. 친구들이 주 40시간을 일할 때 어떤 요리사들은 그 두 배를 뛴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늘도 요리를 한다. 그냥 요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늘 손가락을 칼에 베이거나 오븐에 데이고, 어떤 때는 그 데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데인다. 요리사의 팔뚝은 그래서 화려한 훈장 자국이 많다. 그렇다. 상처뿐인 영광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영광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오늘도 스파게티 한 그릇은 손님들의 식탁에 올라간다. 그리고 쏟아지는 주문을 처리한다.

    “3번에 에이 코스 셋, 라자냐 둘에 해물 스파게티 둘. 수프는 짜지 않게, 라자냐는 치즈 많이, 안심스테이크는 각각 미디엄 웰, 미디엄, 미디엄 레어. 올리브유 뿌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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