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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문제 해결은 통일로 가는 마지막 관문”

보수와 진보의 대화와 상생 토론회 ② 통일문제

  • 정리·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핵 문제 해결은 통일로 가는 마지막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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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문제 해결은 통일로 가는 마지막 관문”

남창희

서재진: 남창희 교수가 개념 혼란을 지적했습니다. 앞서 권만학 교수는 진보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더욱 진전하는 변화를 지향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점에서 북한에 접근하는 태도를 잣대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게 혼란스럽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달라서 그런 혼란이 나타난 걸까요? 아니면 대북정책에 대한 당파적 균열이 영향을 끼친 걸까요? 보수이건, 진보이건 ‘북한 체제는 정당하다, 따라서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대북정책을 논의하는 토론은 학술적 형태가 아닌 당파적 양상으로 흘러가곤 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갖고는 이해 안 되는 측면이 있는 거죠. 그래서….

남창희: 제가 그전에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글을 하나 썼습니다. 북한의 가치중심은 정권 핵심부, 좁게 보면 1000명, 넓게 보면 1만명에 위치한 반면 한국의 가치 중심은 국민, 즉 대중한테 있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 같은 주장에 다른 패널들도 동의합니까? 권만학 교수는 소수의 자유와 대다수의 비(非)자유를 개선하는 게 역사의 방향이자, 진보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한국과 북한 가운데 어느 쪽이 자유가 더 많습니까? 이 부분에서부터 공감대를 이뤄야겠습니다. 그래야만 남남갈등을 풀 수 있어요.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해봅시다.

권만학: 기왕에 제가 말한 주제로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좀 더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서재진: 그렇게 하세요.

권만학: 제가 말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은 특정 국가 한 곳의 정치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켜 설명한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선 상위계급, 하위계급의 정치적 위치가 진보, 보수라는 범주로 갈립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을 다른 사회로 옮겨서 적용할 때는 상당히 조심해야 해요. 자유는 참 좋은 거죠. 그런데 ‘자유와 빵 중 어떤 게 더 중요하다고 보느냐’고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 물어봅시다. 가난해서 굶는 사람에겐 빵이 더 소중할 수 있습니다. 자유는 빵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을 때 나오는 거예요. 우리도 참혹한 권위주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유가 부족해서 불만을 느낀 사람은 당시에도 처음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국민 처지에선 빵을 더 원했던 거거든요. 사실 자유보다는 빵입니다. 빵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동조합이 등장했고, 노조를 결성하려니까 탄압이 들어왔습니다. 그 결과 자유가 필요하다고 자각했으며, 그것이 민주화 요구로 폭발했다고 봅니다. 북한 주민이 100%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핵심은 북한도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루아침에 100%의 자유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미국은 지금 1인당 소득이 1000달러도 안 되는 국가를 향해 인권을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실제로 인권을 증진하려고 그런 주장을 하는 건지, 아니면 인권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건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말로써 북한 인권을 강조한다고 해서 인권이 얼마나 증진될까요? 실효성이 있을까요?



이일영: 사회자가 당파성에 따라 보수·진보가 갈리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진보 쪽에 앉아 있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남창희 교수 말대로 사회주의가 우월성을 가졌다고 생각해 북한을 동정하는 사람이 이른바 ‘진보’라면 저는 절대로 진보가 아닙니다. 역사적 사회주의와 인류 경제 발전의 진보로서 사회주의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김호섭 교수가 외교정책에 대해선 정확하게 지적한 것 같아요. ‘미국 헤게모니에 계속 편승하느냐, 아니면 다른 길을 생각해 보느냐’는 중요한 쟁점입니다. 진보·보수가 이 같은 쟁점을 주제로 토론하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보수·진보로 나누지 말고 ‘중도인 것’과 ‘중도가 아닌 것’으로 나눠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중도란 뭘까요? 중도를 ‘현실적인 것’이라고 정의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이 주도한 어떤 국제질서가 외교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작용했습니다. 저는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가 굉장히 위대한 성취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만 잘해서 산업화, 민주화를 이룬 게 아닙니다. 미국 헤게모니 안의 좁은 오솔길을 우리가 개척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헤게모니가 변화할 조짐입니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과거처럼 편승하는 게 앞으로도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심각하게 논의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논의를 안 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앞서 중도를 현실적인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주도의 헤게모니도 현실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그런데 새롭게 태동하는 질서도 그것과 함께 들여다봐야 합니다. 우리가 나아갈 현실적인 길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합의하려는 세력이 너무나 없습니다.

김호섭: 우리 쪽에 앉아야 되겠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바로 보수예요.

이일영: 그렇습니까? 그게 보수입니까?

김호섭: 조금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권만학: 김호섭 교수가 상당히 좋아하네요.

김호섭: 딱 한 가지 생각이 다른 게 있는데, 이일영 교수는 그것만 바꾸면 저보다 더 보수예요.

서재진: 이일영 교수의 발언은 대단히 현실적입니다. 현실은 끝없이 변하는데 과거에 안주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다는 얘기로 이해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가 미국이 만들어놓은 국제질서에 잘 편승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화를 달성했지만 그러한 구도가 영원할 것이냐, 중국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미국 헤게모니에 편승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냐는 지적이었습니다.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적응 방안을 모색하자는 말씀인데, 이 교수의 이런 견해는 김호섭 교수의 평가와는 다르게 아주 진보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의 관념, 가치에 안주하는 게 보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창희: 사회자가 북한 정권을 말하고 있군요. 북한이 과거에 안주한다는 것 아닙니까?

서재진: 북한이 과거의 관념과 가치에 안주해서 저 모양, 저 꼴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변화하는 국제 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이일영 교수의 지적이 오늘 토론의 중요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가 좋고, 진보가 나쁘다’ ‘진보가 좋고, 보수가 나쁘다’를 논할 게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 보수정책을 선택하고, 어느 상황에서 진보정책을 선택할지를 논의하는 게 올바른 방향 아닐까요. ‘지금 이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히는 게 사회과학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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