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한·미·일 이야기꾼들의 글쓰기 맘보

  • 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입력2010-01-11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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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생활 15년에 단행본 편집자로 5년을 지내고 나니 글쓰기에 직업병이 생겼다. 이유는 이렇다. 기자는 사건을 취재하는 사람이다. 취재를 하고 다양한 근거를 확보해서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스토리를 재구성하여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 정확한 출처는 기사의 생명이다. 자연히 ‘누구의 입’이든 ‘무슨 자료’에서든 인용이 많아진다. 기사 쓰기에 숙달될수록 인용 없는 글을 쓰는 것이 두렵고, 글에서 자신을 드러내려면 낯간지럽다. 그래서 대체로 기자 출신들이 쓴 책은 재미가 없다.

    책 편집자가 되면서 직접 쓰는 일보다 남의 글을 ‘만질’ 일이 많다. 편집자는 기본적으로 잔소리꾼이다. “선생님, 이거 저거 추가해주세요.” “선생님, 너무 장황하니 확 줄이죠.” “선생님, 이 부분은 확인 부탁드립니다.” 원고의 구성에서부터 분량을 맞추는 일, 내용 확인, 매끄럽지 않은 문장의 교정 교열까지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저자를 들들 볶는다.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정작 편집자들은 글을 못 쓴다. 남의 글을 만지다 진저리가 난 걸까? 아니면 자신도 그런 잔소리를 듣게 될까봐 두려운 것일까? 여하튼 “책을 써보라”는 말만 나와도 손사래를 친다. 이것이 글쓰기의 기자병, 편집자병이다. 그래서 할머니 무릎 베고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힘 안들이고 자기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은 글을 보면 부럽다. 그러면서도 제 할 말 다 한 글을 보면 약이 오른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한·미·일 세 명의 이야기꾼이 바로 그런 글을 쓴다.

    추억의 장인 무코다 구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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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코다 구니코(向田邦子)는 1929년에 태어나 1981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여성 작가다. 1959년부터 1만 편이 넘는 라디오 드라마와 1000편 이상의 TV드라마를 썼으니 방송작가라는 호칭이 어울리겠지만, 1978년에 쓴 에세이집 ‘아버지의 사과편지’는 그를 일본 최고의 에세이스트로 만들었고, 1980년에는 ‘수달’ ‘꽃이름’ ‘개집’이라는 단편소설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중에서 뒤늦게 국내에서 번역된 ‘아버지의 사과편지’(강, 2008)를 보면, 일본인들이 왜 무코다 구니코를 가리켜 “일본 근현대의 살아 있는 서민의 역사”라든지 “추억의 장인(匠人)”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지 알 수 있다. 표제작 ‘아버지의 사과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어린 시절 무코다의 아버지는 보험회사의 지방 지점장이었다. 부친의 얼굴도 모른 채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성마르고 권위적이고 남에게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집에는 아버지의 술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전쟁 직후 부족한 살림에 술꾼들 뒷바라지를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어느 추운 아침, 술에 절어 새벽녘에야 돌아간 손님의 것이 분명한 토사물이 문지방 한가득 얼어붙어 있다. 엄마는 문지방에 뜨거운 물을 끼얹으며 토사물을 치운다. 벌겋게 부어올라 갈라터진 엄마의 손을 보고 있자니 장녀인 무코다는 화가 치밀었다. 이런 일까지 묵묵히 참아내는 엄마에게도, 시키는 아버지에게도 화가 났다. 무코다는 “제가 할게요” 하며 문지방 틈에 잔뜩 들러붙은 것을 이쑤시개로 파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버지가 마루 끝에 맨발로 서서 그 모습을 본다.



    이쯤 되면 ‘미안하다’라든지 ‘잘못했다’라든지 무슨 위로의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했다. 며칠 후 학교에 가기 위해 도쿄의 할머니댁으로 돌아가는 날, 엄마로부터 한 학기분의 용돈을 받으며 무코다는 혹시 그날 일도 있고 하니 조금은 많이 주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딱 정해진 돈만 들어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버지는 역에서 무코다와 동생을 배웅했다. 그런데 도쿄에 도착하자 할머니가 “네 아버지한테 편지가 왔더구나” 하며 건네준 편지에는, 붓으로 쓴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 외에 “지난번에는 각별한 수고”라는 한 줄이 있고 거기에만 빨간 펜으로 줄을 그어놓았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과편지였다.

    ‘아버지의 사과편지’에는 스물네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한 편의 글에서도 기본적으로 네댓 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러나 제각각 무심하게 나열된 듯한 에피소드들이 결말에서는 어느새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네즈미하나비(쥐불꽃놀이라는 뜻으로 쥐처럼 땅 위를 빙빙 돌다가 터진다)’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추억이란 네즈미하나비와 같아서, 일단 붙이면 순식간에 발밑으로 작은 불꽃을 쏘아올려,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날아가 터지면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이처럼 기억의 심연에서 하나의 추억을 건져 올리면 다른 추억이 따라 나오는 연상작용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 시청각이다. 항아리 속에서 탁주가 발효되면서 내는 “폭, 폭” 끓는 소리, 밤새 발을 따뜻하게 해준 ‘유단포’(뜨거운 물을 넣어 보온을 해주는 금속통의 일본말)의 미지근한 물을 세면대에 쏟아낼 때 나는 쇳내, 짚으로 눈을 꿴 생선을 보고 있노라면 눈 안쪽이 따끔따끔 아파오는 느낌까지 무코다 구니코는 섬세한 표현으로 독자를 쇼와 시대(1926~89) 일본으로 안내한다.

    빌 브라이슨의 낯설게 보기

    한·미·일 이야기꾼들의 글쓰기 맘보
    다음 작가는 미국의 빌 브라이슨이다. 그는 이미 ‘나를 부르는 숲(A Walk in the Woods)’을 통해 국내에서도 여행작가로서 인지도가 높다. 여기서는 산문집 ‘발칙한 미국학’(21세기북스, 2009)에 나타난 빌 브라이슨의 글맛을 보기로 하자. 빌은 미국인이지만 젊은 시절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타임스’와 ‘인디펜던트’ 기자로 일하다 20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온다. 이때부터 2년간 영국 잡지에 기고한 미국 생활 체험기가 ‘발칙한 미국학’이다.

    빌 브라이슨의 첫 번째 글쓰기 전략은 낯설게 보기다. 그는 20년 만에 다시 미국인으로 돌아오니 모든 게 새롭다. 집집마다 채워도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는 광대한 지하실, 공짜 얼음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야구 해설 방송, 엄청나게 큰 눈송이, 추수감사절, 독립기념일,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까지 미국인에게는 당연한 것이 그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빌 가족이 뉴햄프셔 주의 하노버 시에 정착하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따뜻하게 맞아준다. 이사 온 첫날밤 외식을 해서야 되겠냐며 빌의 여섯 식구를 기꺼이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이웃 등 미국인들의 친절함은 끝을 모른다. 빌은 미국에서 살 집을 구하러 다니다 이 마을에서는 아무도 문을 잠그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자동차 문도 잠그지 않는 것에 감탄한다.

    반면 그의 글에는 엄청나게 불합리한 미국인의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미국인은 차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은 하루에 328m도 채 걷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집 밖에 나갔다 와야 하는 일의 93%에 자가용을 이용한다. 걸어서 6분밖에 안 걸리는 체육관까지 차를 몰고 가서는 주차할 데가 없다고 불평을 한다. 체육관까지 걸어가고 운동을 6분 덜하지 그러냐고 물으면 “러닝머신에는 나한테 알맞게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어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는 게 미국식 합리성이다. 사람들이 걷지 않으니 교차로에 횡단보도가 없다. 횡단보도만 있으면 단숨에 건너갈 수 있는 곳도 자동차로 빙 돌아서 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게 미국인이다. 그래서 마을마다 화단 대신 자동차 도로를 넓히고 주차장을 만든다.

    빌 브라이슨의 두 번째 전략은 ‘일상’이다. 외국인 배우자(빌의 영국인 아내)의 미국 체류를 허가받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설명하며 ‘관료주의’를 꼬집고, 대형마트에서 파는 아침식사용 시리얼의 종류가 200개도 넘는 ‘정크푸드의 천국’을 한탄하기도 한다. 또 버몬트 주의 독특한 방언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투덜거림에는 20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 대한 애정이 듬뿍 발라져 있다. 그의 세 번째 전략은 ‘유머’다. 각종 통계자료를 들이대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표현은 위트가 넘친다. 그가 구미에서 ‘잘 팔리는 작가’가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말을 잘 부리는 사람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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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작가는 이윤기다. 그의 산문집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동아일보사, 2009)가 9년 만에 개정판을 냈다. 10여 년 전 ‘신동아’에 연재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이제 글에서 묵은내가 좀 날 거라 예상했는데 여전히 그의 글맛은 김칫독에서 금방 꺼낸 김장김치처럼 톡 쏜다.

    ‘말(言)을 잘 부리는 사람’ 이윤기의 글쓰기 전략은 무엇일까? 산문집에 실린 ‘물소리가 아름다운 까닭’은 개인적으로 첫손으로 꼽는 작품이다. 어딜 가도 마이크 잡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노래처럼 친숙한 소재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민요 아리랑 2절의 노랫말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에는 희망도 많다’는 대목에서 저자는 골을 낸다. 원래 ‘수심도 많다’였던 것을 군사정부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며 노랫말을 손봤다는 것이다. 무수한 잔별만큼이나 애잔한 수심이 따라 나와야지, 희망은 당치도 않다. 마땅히 수심이어야 한다. 그는 예를 하나 든다. 한 어리석은 사람이, 시냇물 소리가 하도 좋게 들려서 더 좋게 하려고 바위를 몇 개 들어 치워주었더란다. 그랬더니 시냇물에서는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더란다. “‘수심’은 바위와 같은 것이다. 그걸 치우고 ‘희망’을 박아 넣은 노래, 나 같으면 안 부르겠다.” 이것이 이윤기식 ‘입말’이다.

    “눈물을 뜻하는 한자에는 루(淚)와 루(?),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는 흐르거나 떨어지는 눈물, 후자는 괴어 있는 눈물이다. 노래방에는 전자가 있을 뿐, 후자는 없다. 괴는 족족 흘려보내는 시대, 물소리 지어낼 바위 하나 없는 이 시대가 나는 싫다.” 그는 이렇게 현란하지 않으면서, 빈정거리지 않으면서 그러나 할 말을 다 한다.

    요즘 서점에는 ‘예쁜 에세이’가 넘쳐난다. 표지며 본문 편집이며 디자이너의 역량은 빛나는데 정작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책이 너무 많다. 이윤기 선생의 말대로 ‘괴는 족족 흘려보내는 시대’가 만들어낸 책들이다. 과연 10년 뒤에도 우리가 그 책을 다시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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