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집권 중반기 이명박 정부의 성과와 과제

‘더 큰 대한민국’과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결합하라

  •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입력2010-01-29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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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정부가 집권 3년째를 맞았다. 2007년 대통령선거와 2008년 촛불집회를 떠올리면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집권 3년째라면 초기 시행착오의 학습을 바탕으로 가장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기다. 2년 동안의 성적표를 분석하고 남은 임기에 이뤄야 할 과제를 점검해본다.
    돌아보면 지난 1년 이명박 정부의 성적표에는 명암이 교차한다. 먼저 2008년과 비교할 때 지난 1년은 상당히 선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새해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증명한다. 2008년 연초와 비교해 국정운영 지지율은 50%를 넘나들 정도로 크게 상승했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지지율을 떠올리면 이명박 정부로서는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1월1일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이명박 정부의 자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2008년의 성과가 너무 초라한 탓에 2009년 성적표가 돋보이는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50%를 상회하는 국정운영 지지율은 2007년 대선에서 받은 지지율을 다시 찾은 것이지, 지지율이 더 올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정운영 지지율은 정치적 상황 및 국면에 따라 매우 가변적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지지율이 계속 유지되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집권 중반을 돌아서는 시점에 치러지는 6월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중대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지난해 ‘신동아’ 2월호에서 이명박 정부의 1년을 평가하고 2년째를 전망한 바 있다. 이제 다시 이명박 정부의 지난 2년을 평가하고 3년째를 전망하고자 한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에 관한 것이 하나라면 국가 정책의 기조 및 방향에 관한 것이 다른 하나다. 마지막으로 살펴보려는 것은 집권 3년째의 전망과 이와 관련해 부여되는 이명박 정부의 과제다.

    성취 지향적 리더십의 명암

    먼저 2009년을 돌아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특유의 추진력이 있는 리더십을 나름대로 발휘해온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일련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보여줬던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정을 이끌어왔다. 미디어 관련법 개정, 4대강 정비 사업 추진,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세종시 건설 수정 등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온 리더십은 마치 산업화 시대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집권 1년째인 2008년의 이명박 정부는 국가를 운영하는 리더십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성공한 서울시장으로 평가받은 이명박 대통령이었지만, 시정(市政)의 리더십과 국정(國政)의 리더십은 사뭇 다르다. 시정과 달리 국정의 경우 정책들 간에 직접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시정보다 더욱 세심한 정책적 조율과 정치적 포용력을 중시하게 된다. 시장이 기본적으로 행정가라면 대통령은 행정가인 동시에 정치가라고 볼 수 있다.

    지난 한 해 행정가이자 정치가로서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은 결단력과 추진력을 양 축으로 하는 전형적인 ‘성취 지향적 리더십’이었다. 기업 운영과 시장 경험에 터한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때로 반대에 직면했더라도 특유의 결단력과 추진력을 통해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했으며, 경제위기 탈출에서 4대강 사업 추진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지난 연말에 이뤄진 아랍에미리트 원전공사 수주는, 비록 논란이 없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하는 대통령’이라는 이 대통령 본래의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이 사례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이들에게는 그를 선택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준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성취 지향적 리더십’에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리더십은 일의 절차와 과정보다는 결과와 효율을 중시한다. 문제는 주어진 목표를 도달하는 데에 다른 행위 주체들과 의사결정을 공유하려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에 있다. 오늘날 어느 사회이건 거버넌스를 중시하는 것은, 그것이 단기적으로 비효과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거버넌스는 국정의 또 다른 목표인 사회통합의 제고에 적절한 운영 방식이기도 하다.

    지난 한 해 동안 이명박 정부가 사회통합에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12월에 출범한 사회통합위원회는 이를 입증한다. 우리 사회의 각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회통합위원회는 이념·계층·지역·세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집행기구가 아닌 자문기구인 만큼 사회통합위원회의 활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공론장과 여론형성에서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대연정 실험과 세종시 수정

    집권 중반기 이명박 정부의 성과와 과제

    1월11일 ‘행정도시 원안사수 충청권 연대회의’ 관계자들이‘세종시 원안 고수’를 촉구하며 집회를 벌였다.

    리더십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관계다. 최근 우리 정치사회에서 특이한 현상의 하나는 집권 여당 내에 또 다른 강력한 리더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여당 내의 차기 리더들은 선거 국면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대통령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데 반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관계는 협력보다는 긴장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이른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의 갈등으로 볼 수 있는 이러한 특수성은 지난 한 해 내내 국정에 미묘하면서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특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논란을 거듭해온 세종시 건설 문제다. 널리 알려졌듯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기존의 세종시 건설안을 수정하려는 데 반해 박근혜 전 대표는 ‘원안 플러스 알파’를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박 전 대표가 ‘원안 플러스 알파’를 고수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박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반복해 표명해왔듯이, 세종시 건설은 정치적 신뢰의 문제다.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는 박 전 대표로서는 세종시 건설의 수정이 기본적으로 ‘박근혜식(式) 정치’가 아닌 셈이다.

    둘째,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박 전 대표로서는 충청권의 민심을 외면하기 어렵다. 지역주의 투표의 현실적 조건을 고려할 때 충청권의 정치적 풍향은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다름 아닌 ‘DJP 연합’과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었다. 따라서 박 전 대표로서는 세종시 건설 수정을 반대하는 현재의 충청권 민심을 고려하지 않고 대선을 치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한걸음 물러서 보면, 세종시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대연정을 떠올리게 하는 사안이다. 5년 단임 정부에서는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국정운영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되면 일종의 승부수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그것은 대연정으로 나타났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처지에서는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대연정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선택일 수 있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민주화 시대를 경유하면서 보수 대(對) 진보개혁으로 구조화된 갈등구도 아래 그 어떤 정책도 효율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노 대통령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2005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대연정은 결국 좌절됐다. 무릇 정치란 정치사회 내의 여러 세력 간의 타협, 그리고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간의 복잡다단한 상호작용으로 이뤄진다.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정치가 특정 주체의 의지대로 추진되는 경우가 드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5년 당시의 정치적 조건 아래서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 아니라 차라리 민주노동당과의 소연정(小聯政)이 더 가능한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대연정을 주목하는 이유는 대연정 논란 이후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지방선거를 맞게 되는데, 이미 그때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를 상당히 철회한 상태였다는 점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이 과연 이명박 정부의 의지대로 될 것인지, 아니면 대연정의 반복이 될 것인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여론의 풍향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설령 여론 변화를 통해 박근혜 전 대표를 설득한다고 해도, 세종시 수정은 4대강 사업처럼 야당들과 진보적 시민사회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그 이유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국정철학과 균형발전을 중시하는 국정철학 간의 차이가 세종시 논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세종시 문제는 이명박 정부 리더십의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친서민 중도실용의 성과와 한계

    지난 1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전환점을 이룬 것은 ‘친(親)서민 중도실용’ 정책이었다. 2008년 감세를 단행하고 법치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 중도실용을 새로운 국정 기조로 내걸고 이를 추진함으로써 2007년 대선 당시 보여준 중도보수적 성향을 강화했다.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이 거둔 성적표는 나름대로 효과적이었다. 여름과 가을을 경유하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서서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친서민 중도실용에 대한 국민의 체감도는 여전히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1월8일 헤럴드경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의 체감도에 대한 질문에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라는 응답은 76.8%였지만, ‘피부에 와 닿는다’라는 응답은 16.7%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노선은 ‘완고한 보수’로 비쳐온 이명박 정부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그만큼 국민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서울신문이 실시한 새해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 추진에 대한 공감도는 52.0%를 기록했으며,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1.0%인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 추진을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으로의 변화로 읽고 싶다. 보금자리주택, 미소금융, 통신비 인하 등의 정책들은 그 정책의 실효성과는 별개로 정치적 효과를 갖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담론 영역에서 친서민을 선점한 것이 상당한 헤게모니 효과를 발휘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2.0 정부’로의 전환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1.0 정부’에서 ‘1.5 정부’로의 진화가 진행돼왔다고 볼 수 있다.

    돌아보면 2008년 집권과 함께 이명박 정부는 봄의 촛불집회로부터 비롯된 정치위기와 가을의 미국발 금융위기로부터 촉발된 경제위기라는 ‘이중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권위주의적 법치로,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대규모 재정지출과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으로 대응해왔다. 전자의 권위주의적 법치에 대해서는 진보개혁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후자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지구적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에 내재된 위기에 대한 새로운 계몽을 제공한 동시에 경제의 선차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적지 않은 국민에게는 어떻게 경제를 살릴 것인지도 중요했지만, 경제부터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무의식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경제위기가 강제하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해졌고 바로 이런 맥락 속에 정부가 내건 친서민 중도실용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강조했듯이 친서민 중도실용의 정책기조는 올해에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공기업 민영화를 포함한 신자유주의 정책들도 꾸준히 강화될 것이며,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 정치는 이명박 정부 대 야당 및 진보적 시민사회 사이에 일진일퇴가 진행되는 일종의 진자 양상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친서민 중도실용, 4대강 사업 등을 포함한 정책적 이니셔티브를 잡은 이명박 정부의 드라이브가 강화되고 그 과정에 보수적 헤게모니가 팽창할 가능성이 있지만, 한편으로 심화하는 사회 양극화가 이러한 팽창을 견제할 가능성 역시 상존한다.

    더불어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처방한 대규모 재정 지출에 따른 적절한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것도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다. 이와 연관해 주목할 것은 세계경제의 흐름이다. 해외의존도가 높은 만큼 세계경제의 상황은 한국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수라 할 수 있다.

    올해 세계경제의 전망은 비관적 견해보다는 낙관적 견해가 우세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세계경제의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에 대비하면서 재정적자를 줄여 건전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치사회학적으로 볼 때 경제위기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미묘한 것이어서, 어느 지점에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실망과 비판으로 갑자기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한편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야당들의 대응은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1년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들은 미디어 관련법에서부터 4대강 사업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의 정책 추진에 대해 총력전으로 맞서왔다. 일부 국회의원은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으며, 장내와 장외를 오가며 관련 법안 통과를 저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그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의석수가 소수인 만큼 적지 않은 법안이 결국 여당의 의지대로 통과됐으며, 그 과정에서 야당의 선명성을 보여줬다 하더라도 진보개혁 세력을 지지하는 국민이 보기에는 적잖이 미흡한 수준이었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야당에 부여된 과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효과적인 비판이며, 다른 하나는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서의 자리매김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2년을 돌아볼 때, 전자가 국회의 현재 의석 구도 아래 구조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면, 후자는 야당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를 추구하는 보수세력에 맞서는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야당들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집권 중반기 이명박 정부의 성과와 과제

    2009년 12월23일 공식 출범한 사회통합위원회.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야당들이 제시한 국가 비전들이 진보개혁 세력을 지지하는 국민의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경우 지난해 봄 ‘뉴민주당 플랜’을 의욕적으로 선보였지만 진보개혁 세력의 반응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를 강조했지만, 민주당 내 진보적 그룹과 진보 세력으로부터 우경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경우 지난해 여름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발표한 ‘민들레 연합’이 나름대로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진보신당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적은 탓인지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지난 1년 동안 진보개혁 세력의 정치적 연대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응하는 진보개혁 세력 내에는 두 개의 정치 구도가 공존하고 있었는데,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 ‘신자유주의 대 반(反)신자유주의’ 구도가 그것이었다. 문제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는 최대다수 정치연합이 이뤄졌지만,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구도에서는 정책적 교집합이 사실상 부재했다는 데 있었다.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대응이 전자의 대표적 사례였다면, 쌍용차 사태에 대한 대응은 후자의 대표적 사례였다.

    물론 지난 한 해 동안 야당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4월과 10월 두 번에 걸친 재·보궐선거와 교육감선거는 야당에 대한 기대를 확인해주었으며, 이는 무엇보다 권력에 대한 일종의 견제심리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최근 야당과 진보적 시민사회에서는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와 관련해 선거연합을 둘러싼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연장선에서 ‘민주대연합’이 제기되고,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구도의 연장선에서 진보대연합이 제안되고 있다.

    문제는 선거연합의 공통분모를 이루는 이른바 ‘반(反)MB연합’으로 진보개혁 세력이 국민 다수를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는지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의 시각에서 볼 때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는 최소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다시 말해 ‘반MB연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보개혁적 성향의 국민을 정치적으로 결집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 ‘새로운 개혁’의 구체적인 콘텐츠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정치적 연대의 기본조건인 정책적 공통분모로 삼을 때에만 선거연합은 나름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변수

    그렇다면 2010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은 어떻게 예상할 수 있는가. 먼저 국정기조의 경우 그 기본 방향은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연설에 반영돼 있다. 이 대통령은 1월4일 신년연설에서 ‘글로벌 외교 강화, 경제 활력 제고 및 선진화 개혁,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3대 국정운영 기조로 ‘경제회생, 교육개혁, 지역발전, 정치선진화, 전방위 외교’를 5대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여기서 글로벌 외교 강화는 오는 11월 G20 정상회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경제 활력 제고 및 선진화는 경제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교육개혁과 정치선진화다. 교육개혁은 지난해 정부와 여당의 일각에서 제기된 외국어고 문제를 중심으로 교육문제 전반의 개혁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으며, 정치선진화는 개헌 문제를 포함한 선거법 개정, 행정구역 개편 등 정치사회 전반의 일대 개혁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국정과제 추진은 일차적으로 지방선거의 결과와 연동될 것이다. 6월2일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그 기본구도는 예상컨대 ‘경제 살리기’ 대 ‘이명박 정부 심판론’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서울과 경기도를 포함한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선전할 경우 이명박 정부는 선거에서 확인된 정치적 신임을 바탕으로 정책 드라이브를 강화할 것이지만, 한나라당이 참패할 경우 이명박 정부는 정책을 추진하기는 하되 그 동력을 적잖이 상실할 수도 있다.

    지방선거 결과가 야당의 처지에서도 중대하기는 매한가지다. 2006년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개혁 세력은 정치적 헤게모니를 지속적으로 상실해왔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진보개혁 세력은 앞으로 상당 기간 헤게모니를 회복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더욱이 박근혜 전 대표가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위치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진보개혁 세력에 올 한 해가 중차대한 정치적 국면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2월25일로 집권 3년째를 맞이하는 이명박 정부에 올 한 해는 집권 5년에서 가장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서서히 가시화되는 지방선거 국면에서 11월에 개최될 G20 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일정이 이어질 것이다. 이 과정 속에 위치한 4월 4·19혁명 50주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6월 6·25전쟁 60주년과 남북정상회담 10주년, 8월 한일강제병합 100주년 등의 역사적 기념행사들은 우리 사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의미를 묻게 될 것이며, 더불어 이명박 정부의 집권 전반기에 대한 평가도 이뤄질 것이다.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정리하자면 집권 3년째를 맞이하는 이명박 정부에 부여된 주요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 이명박 정부는 더욱 유연한 리더십을 모색해야 한다. 기존의 ‘성취 지향적 리더십’에 ‘과정 중시적 리더십’을 결합해 국민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어느 사회이건 이익과 가치관은 빠른 속도로 다원화하고 있으며, 어떤 정부이건 이런 다원적 이익의 조정과 가치관의 공존을 활성화함으로써 이를 국정운영에 반영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지지그룹을 중심으로 한 추진력 있는 국정운영이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국가적 측면에서는 전체 국민과의 소통에 터 잡은 국정운영이 규범적으로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의 정보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은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닌 다품종 소량생산의 정치다. 속전속결(速戰速決)·일망타진(一網打盡) 같은 ‘속도의 리더십’이 아니라 화이부동(和而不同)·야단법석(野壇法席) 같은 발상의 전환을 모색하고 공존을 추구하는 ‘소통의 리더십’, 다시 말해 ‘과정 중시적 리더십’이 이명박 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친서민 중도실용의 정책적 콘텐츠를 강화해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친서민 중도실용으로의 노선 전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높지만 그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한편에서 수출 대기업이 주도하는 위기 극복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더라도,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위기 속에서 상시적 구조조정, 청년실업,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더해 사교육비 증가, 주택 및 전세가격 상승, 그리고 무엇보다 점점 심화하는 사회 양극화가 다시 한 번 사회적 균열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에서 주력해야 할 것은 이른바 4대 불안의 해소다. 현재 우리 국민 다수가 갖는 불안의 주요 원천은 일자리, 교육, 주거 그리고 노후에 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자리 창출이, 사교육비를 감소시키고 효율과 형평이 공존하는 교육제도 개혁이,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주거정책 변화가, 그리고 다수의 노년층이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고령화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서는 노후 대책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친서민 중도실용이란 말에 담긴 서민친화적이고 실용적인 본래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4대 불안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을 더욱 활발히 개발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집권 중반기 이명박 정부의 성과와 과제
    김 호 기

    1960년 경기도 양주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 박사, 미국 UCLA 초빙연구원

    現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정치사회학회 부회장

    주요 저서: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등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내건 메시지는 ‘더 큰 대한민국’이다. 예상컨대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해 이명박 정부는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 녹색성장 등 글로벌 이슈 주도, 중장기 자유무역협정(FTA) 전략 모색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외적 여건을 고려할 때 ‘더 큰 대한민국’은 적절한 방향일 수 있다. 특히 세계화 시대에 점증하는 국가 간 경쟁이나 동북아시아에서 진행될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고려할 때 ‘더 큰 대한민국’은 새로운 국가 목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나라의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절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선진국에로의 도약은 ‘더 큰 대한민국’이 ‘더 따뜻한 대한민국’과 결합할 때 가능한 법이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규모만 키우는 데 주력해왔을지도 모르며, 이 과정에 양극화 해소 등을 포함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데 소홀했을지도 모른다. 삶의 양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삶의 질도 중요하다. 집권 3년째를 맞은 이명박 정부가 질 높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도약을 이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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